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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65화 (265/575)

[265] 디 임팩트 11권 15화

드비오의 안색이 시커멓게 변했다. 어젯밤에도 탐사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걸 엿들었다. 그런데 안 궁금하다니.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염치없는 늙은이들.”

“뭐라고?”

베져스와 후투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탑주 자리에 오르려고 탑주님에게 거슬리는 소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거지? 나 혼자 가서 미운털 박히라고 말이야.”

“멋대로 생각하면 수명이 짧아지는 법이지.”

“아무리 당신들이 탑주께 잘 보여도 샤비엔다와 카샨 중에 탑주가 나올 거야. 샤비엔다는 우리 중에 제일 마법이 강하고, 카샨은 탑주의 제자니까.”

일면 그럴듯한 말이었다.

베져스와 후투는 고요한 얼굴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는 얼음탑주를 힐끔 쳐다봤다.

“우린 탑주 자리에 욕심이 없네.”

“없기는. 날 자꾸 무시하는데,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별소리를 다 듣겠군.”

베져스와 후투는 드비오를 피해 카샨을 향해 걸어갔다. 카샨은 식사를 준비하는 마법사들 사이에 서 있었다.

“이보게, 카샨, 우리 좀 보세.”

은색 머리칼을 길게 기른 중년의 카샨이 그들에게 걸어갔다.

“자네도 알겠지만, 고대 도시에서 베일 가문의 땅을 두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네. 고대 왕궁 때문이라는데, 우리가 이렇게 손을 놓고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군. 왕궁 도서관이 존재한다면 고대 지식을 포함한 수많은 고서들과 마법 서적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베져스가 아쉽다는 말투로 말을 맺자 카샨이 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베일 가문의 땅을 두고 싸우느라 정작 발굴은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까요. 시간은 아직 많습니다.”

“탑주님이 그와 관련해 특별히 하신 말씀이라도 있는가?”

“‘고대 왕궁은 얼음탑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싸워서라도 필요한 것은 우리가 차지해야겠지. 한데 말이야, 자네 탑주님이 무엇을 찾아서 이리 가시는지 알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저도 궁금하지만 말씀이 없으십니다.”

“흠, 그렇군.”

베져스와 후투가 시선을 교환하며 뒤로 물러날 때였다.

숲 공터 외곽에서 경계를 서던 마법사 한 명이 고함을 질렀다.

“몬스터다!”

사람들이 시선이 공터에 난입한 몬스터에게 집중됐다. 몬스터는 사람들을 보자 적대감을 보이며 돌진했다.

“막아라!”

경계를 서던 얼음탑 마법사들이 일제히 얼음 화살을 날렸다. 열 발이 넘는 얼음 화살에 타격을 받은 몬스터는 주춤거렸지만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거대 몬스터도 저 정도 맞으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데, 이마에 뿔이 난 몬스터는 잘도 버텼다.

하지만 공터에는 수십 명이나 되는 마법사가 포진하고 있었다.

땅에서 솟아오른 얼음 가시넝쿨 수십 개가 몬스터의 몸을 휘감아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캬아아아아!

도현이 감탄할 만큼 폭발적인 순간 파괴력을 소유한 몬스터였지만 많은 마법사들이 동시에 펼친 마법을 뛰어넘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울부짖으며 여러 개의 얼음 가시넝쿨을 끊어 내던 몬스터는 결국 몸을 압박하는 얼음 가시넝쿨의 거대한 힘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이한 놈이로군.”

탑주가 바위에서 일어나 얼음 가시넝쿨에 속박당한 몬스터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그 순간, 번쩍이는 빛이 날아와 몬스터를 속박하던 얼음 가시넝쿨들을 모조리 잘라 버렸다.

번쩍이는 빛은 도현의 검이었다.

도현은 몬스터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할 수 없이 비검술을 발휘해 몬스터를 구한 것이다. 여기서 몬스터가 죽으면 그동안 추적했던 게 모두 물거품이 된다. 몬스터가 어디로 향하는지 그 궁금증을 풀어내야만 했다.

속박에서 자유로워진 몬스터는 위기를 느꼈는지 숲으로 도주를 감행했다.

“누가 감히.”

여마법사 샤비엔다가 손가락을 튀기자 도망가던 몬스터의 등 뒤로 거대한 얼음 낫이 생겼다.

얼음 낫이 몬스터의 허리를 절단하려는 순간, 또다시 나타난 도현의 검이 허공에서 얼음 낫을 막았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검이 마법을 연속해서 막아 내자 공터에 모여 있던 마법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기 사람이 있습니다!”

마법사의 외침에 사람들이 일제히 도현이 서 있는 나무 위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도현은 신법을 발휘해 이미 나무 위에서 사라진 뒤였다.

무성한 수풀과 나무 때문에 공터 안에 있는 마법사들은 도현의 움직임을 따라잡기 어려웠다.

‘얼음탑 마법사들이다. 크샤코 가문의 성에서 싸운 마법사도 있어. 저들이 왜 여기에?’

도현은 공터를 감싸고 있는 나무 사이를 빠르게 질주해 몬스터가 도주한 방향으로 이동했다.

뒤늦게 도현의 위치를 파악한 차기 탑주 후보들은 탑주를 돌아봤다.

“어떻게 할까요. 쫓아서 잡을까요?”

샤비엔다가 대표로 물었다. 탑주는 바닥에 떨어진 도현의 검을 주워 들었다.

한동안 검을 이리저리 살피던 탑주는 드비오에게 검을 주었다.

“이자의 능력을 추측건대, 작정하고 도망친다면 쉽게 잡기는 어려울 게야. 숲도 깊고.”

탑주가 몬스터를 구해 도망간 자를 높이 평가했지만 노마법사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마법이 아닌 실제 검을 저렇게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조종하는 인간은 처음 봤던 것이다.

“피해를 본 게 없으니 그냥 넘어간다.”

탑주는 도현을 쫓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도현이 사라진 방향은 그가 가려는 방향과도 달랐다.

“그래도 탑주님, 우리를 공격하던 몬스터를 도와준 자인데, 쫓아서 죄를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드비오가 발언을 했지만 탑주는 그를 가볍게 쳐다본 후 대꾸 없이 몸을 돌렸다.

다른 노마법사들과 카샨도 흩어졌다.

홀로 남은 드비오는 도현의 검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없는데, 젠장.”

도현은 뒤를 돌아봤다.

얼음탑 마법사들이 추격해 오는 느낌은 없었다.

그는 앞을 봤다.

마법사들에게 혼이 난 몬스터가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에 어느 정도 피해를 입긴 했는지, 전보다 속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내가 몬스터를 다 구해 줄 줄이야.’

녀석을 구하느라 허리에 차고 있던 두 개의 검 중 한 개를 포기해야만 했다.

백발의 늙은 여자 마법사가 만든 거대한 얼음 낫을 상대하고 검을 회수하기에는 이미 거리가 너무 멀어져 있었다.

‘여자 마법사도 상당히 강한 것 같았지만, 긴 지팡이를 들고 서 있던 노인의 눈빛이 아주 섬뜩했어.’

도현은 그 노인이 탑주인지는 알지 못했다.

‘얼음탑…… 만만치 않아.’

크샤코 가문에서 싸웠던 마법사도 강했는데 오늘 본 여자 마법사나 긴 지팡이를 든 노인도 모두 범상치 않았다.

‘어디로 가는 걸까.’

수십 명이나 되는 마법사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몬스터 추적 때문에 몸이 자유롭지 못했다.

휘익.

점프를 해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주먹만 한 과일을 딴 도현은 그것을 먹으며 몬스터를 계속 추적했다.

기이한 집

몬스터 추적 3일째.

도현은 수백 미터 높이의 협곡 사이를 잇는 돌다리에 올라섰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돌다리 같은데, 그 위치가 절묘해서 마치 사람의 손이 개입한 듯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다.

안개가 자욱한 수십 미터 길이의 돌다리 밑은 굉음을 내며 흐르는 계곡물이 존재했다.

도현은 안개를 헤치며 조심스럽게 돌다리를 건너갔다.

그렇게 넓지 않은 돌다리는 군데군데 금이 가 있어서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아주 오랜 세월 풍상에 시달린 흔적이었다.

협곡 정상의 돌다리를 무사히 건너간 도현은 재빨리 움직여 숲으로 들어간 몬스터를 추적했다.

‘여기였군.’

몸을 낮춘 도현은 수풀에 숨어서 정면을 응시했다.

그가 추적해 온 몬스터와 판박이인 이마에 뿔이 난 몬스터 수십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고대 도시에서 뛰쳐나온 몬스터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인 것 같았다.

‘왜 다들 여기로 온 거지?’

은밀히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도현은 한 가지 독특한 사실을 발견해 냈다.

몬스터들이 넝쿨로 뒤덮인 거대한 나무 주변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나무를 보호하려는 것처럼도 보였다.

‘저 나무가 특별한 건가?’

도현은 은밀히 이동하며 여러 각도에서 넝쿨에 뒤덮인 나무를 살폈다.

‘모르겠는데…….’

눈으로만 봐서는 한계가 있었다.

‘이곳이 최종 목적지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현재로서는 다른 게 없어. 저 나무밖에.’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하기 위해서는 나무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스물여섯 마리. 잡자.’

도현은 녀석들의 시선을 피해 뒤로 은밀히 물러났다.

3일간 쉼 없이 달려와서 몸이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싸워도 늦지 않는다.

슈빅타이런보다 체구는 훨씬 작지만 전투력은 더 높은 스물여섯 마리의 고대 몬스터 크레시스는 도현의 도발에 맹렬히 반응하며 달려들었다.

도현은 한 마리씩 꾀어서 잡을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녀석들의 중심부에 위치해 검 하나로 생과 사가 교차하는 싸움을 벌여 갔다.

무시무시한 몬스터의 눈빛이 코앞에서 보였고, 녀석들의 음습한 숨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려왔다.

그러한 압박감 속에서 도현은 차근차근 녀석들을 베어 넘겼다.

캬아아아아.

목이 잘린 고대 몬스터 크레시스가 쓰러지자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온 강한 기운이 도현의 타투를 통해 흡수됐다.

도현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쾌감에 이를 악물었다. 슈빅타이런 여러 마리를 잡을 때나 얻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기운이 한 번에 그의 몸을 휘돌아 단전의 내공으로 쌓이고 있었다.

도현의 검이 점점 더 빨라졌다. 단단한 몬스터의 피부를 뚫고 들어간 그의 검이 녀석의 심장을 관통했다.

도현의 머리를 물어뜯으려고 입을 내밀었던 크레시스가 분한 눈빛으로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검을 뽑은 도현은 몸을 숙이며 수십 번의 칼질을 했다.

번쩍이는 검광 속에 다리가 베이고 잘린 몬스터 여러 마리가 쓰러졌다.

진득한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쓴 도현은 눈 안으로 스며드는 피를 닦을 사이도 없이 다시 번개처럼 검을 휘둘렀다.

몬스터들은 부상을 입어도 끝까지 기어서 그의 두 다리를 붙잡으려고 했다.

사사삭.

도현은 좀비처럼 꿈틀거리는 몬스터들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 놓았다.

큰 부상 없이 몬스터들을 모두 제거한 도현은 내공이 크게 상승했다.

“고대 몬스터가 맞는 것 같아. 이렇게 많은 내공을 주다니 말이야.”

몬스터 이름도 모르지만 어베인의 추측대로 고대에 존재했다는 몬스터가 아닌가 싶었다.

도현은 휴식을 취할 때 발견한 작은 샘에서 몸에 묻은 몬스터의 피를 닦아 낸 후 되돌아왔다.

그는 넝쿨에 뒤덮인 나무 주변을 둘러보다가 검을 뽑았다.

넝쿨이 하도 촘촘히 뒤덮고 있어서 나무의 자세한 모습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검이 움직일 때마다 땅과 인근 나무에서 뻗어 나왔던 굵은 넝쿨들이 조금씩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넝쿨들이 이 나무를 감싸고 있었던 거지?’

넝쿨 속에 또 넝쿨이 존재했는데, 이미 생명력이 다한 가시넝쿨이었다. 바싹 말라붙은 가시넝쿨은 도현이 손을 대자 먼지처럼 부서져 버렸다.

‘굉장히 큰 나무야.’

둘레가 얼핏 봐도 집채만 했다.

이 숲에는 이런 거목들이 적지 않게 존재했다.

도현은 거목의 둘레를 돌면서 머리 높이까지 넝쿨들을 제거했다.

수십 미터 높이의 거목 전체를 감싼 넝쿨을 다 제거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일단 손쓰기 쉬운 곳 먼저 제거한 것이다.

머리 높이까지 넝쿨들을 제거한 도현은 검을 거두고 거목을 주의 깊게 살펴갔다.

고대 몬스터로 추정되는 녀석들이 고대 도시 발굴 현장에서 뛰쳐나와 약속이라도 한 듯 이곳까지 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나무 주변에 모여 있었어. 그들을 끌어당긴 건 이 나무거나…… 아니면 이 안에?’

넝쿨이 제거된 거목의 아랫부분을 살피던 도현이 손에 힘을 주었다.

단단한 나무껍질로 위장을 한 문이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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