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266화 (266/575)

[266] 디 임팩트 11권 16화

놀란 도현의 눈이 커졌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나무속에 빈 공간이 존재할 줄은 몰랐다.

도현은 살짝 긴장을 하며 거목 안으로 들어갔다. 넝쿨에 뒤덮여 있어서 탁한 냄새가 가득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안의 공기는 신선했다.

‘사람이 살던 곳이다.’

램프 형태의 기름 잔을 발견한 도현은 불을 붙였다.

등불을 들고 도현은 내부를 살폈다.

먼지 쌓인 낡은 의자와 탁자, 청동 주전자와 식기, 화로 등이 보였다.

‘누가 살던 공간이지?’

내부를 둘러보던 도현은 계단을 통해 천천히 위로 올라가 봤다.

불빛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만들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는 나무 계단을 거쳐 2층에 도착한 도현은 그곳이 침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침대 위에 얇은 천을 만져 보던 도현은 흠칫했다. 누렇게 색이 바래 있긴 했지만 상태가 양호했다.

“나무가 어떤 작용을 한 건가? 넝쿨이 뒤덮은 모양을 보면 아주 오래된 나무 집 같은데, 천이 아직 멀쩡해.”

도현은 불빛을 비추며 2층을 자세히 조사했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없었다. 나무 집은 여기까지였던 것이다.

빈손으로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온 도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나무 집이 아니었나?”

몬스터가 모여 있던 이유를 이 집 안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특별한 건 없었다.

낡은 의자에 몸을 싣고 곰곰이 생각을 하던 중 문득 탁자 위에 놓인 술병에 시선이 갔다.

마개가 닫힌 술병을 열어서 술 냄새를 맡아 본 도현은 향긋한 주향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냄새 좋은데.’

며칠간 굶다시피 하며 달려온 도현은 입맛을 다시다 옆에 있는 술잔을 집어 들었다.

누가 이 나무 집에 살았는지 몰라도 지금까지 살아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살아 있었다면 이렇게 넝쿨에 뒤덮일 때까지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지 몰라도 잘 마시겠습니다.’

또르륵.

청동 술잔에 술을 담은 도현은 술을 들이켰다. 입안에 주향이 퍼지며 속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좋다.’

한 번에 다 마시기 아까워 반쯤 남겨 놓은 도현은 술잔을 내려놓다가 눈을 반짝였다.

‘이건, 그 술잔과 흡사한데?’

고대 도시 발굴 현장에서 짐브리오가 일꾼으로 들어가 몰래 가지고 나온 것 중 청동 술잔이 몇 개 있었다.

도현은 그 술잔에 술을 받아 마신 적이 있었기 때문에 술잔의 외양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 술잔처럼 아름다운 무늬와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이 동시에 새겨져 있었다.

‘발굴 중인 고대 도시에서나 발견되는 고대 술잔이 왜 이곳에…….’

도현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손에 든 술잔을 내려다봤다.

“설마 이곳이 고대인이 살던 집?”

수천 년 전 살았던 누군가의 집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도현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는 집 안의 물건들이 너무도 멀쩡했다. 위층에서 본 침대의 천도, 의자도, 맛을 본 술도.

비록 먼지가 가득했지만 썩거나 상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야, 그럴 수도 있어.”

도현은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목이 가지는 나무의 특수한 성분이 이 집을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일정 부분 보호했을 수도 있다.

처음 들어올 때 느꼈던 신선한 공기를 보면 일반적인 공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몬스터는 이 나무 집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분명히 이곳에 몬스터가 찾아온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야.”

도현은 양손을 이용해 나무 집 전체를 두들겨 보기 시작했다. 지하에 비밀 공간이 있는지도 세심하게 조사를 해 봤다.

나무 집 1층과 2층 전체에 도현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음.”

팔짱을 낀 도현은 나무 집을 둘러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곧 해가 질 것 같았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뭔가 석연찮았다.

수십 미터 높이의 거목을 올려다보던 도현은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암벽을 타듯 넝쿨을 이용해 빠르게 위로 올라간 도현은 나무 정상에 섰다.

그곳도 넝쿨이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

서걱서걱.

도현은 검을 휘둘러 정상의 넝쿨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넝쿨을 모조리 제거한 후 나무 전체를 다 조사한다.’

독하게 마음을 먹은 도현의 검이 춤을 추듯 움직였다.

나무 집에서 잠을 잔 도현은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갔다.

밤새 나무 넝쿨을 제거하고 몇 번이고 거목을 조사했지만 이 집의 비밀을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

“분명 뭔가 이 집에 비밀이 있는데…….”

그가 잠을 자고 일어난 사이 나무 집 밖에는 새로 나타난 고대 몬스터 한 마리가 주변을 얼쩡거렸다.

도현이 문 앞에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달려들지 않는다.

적의는 드러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목 안에 마련된 나무 집 가까이는 접근하지 않았다.

왜일까.

몬스터가 저러는 것을 보면 이유가 있을 텐데.

도현은 고대 몬스터와 이 장소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고 심증을 굳혔다.

‘다만 내가 못 밝혀내고 있을 뿐. 도움이 필요해.’

도현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어베인과 로나, 짐브리오를 떠올렸다. 리타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만 돌아가자. 발굴지의 몬스터가 이곳으로 오는 걸 밝혀냈으니까, 나중에 또 찾아오면 돼.’

도현은 집 안에서 찾아낸 가죽 가방에 청동 술잔과 어제 먹다 남은 술병을 챙겼다.

술병의 술이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대의 술이라면 수천 년이나 된 것이다. 동료들에게 맛을 보게 할 생각이었다.

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적의만 드러내던 고대 몬스터가 도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잘 지키고 있어. 또 올 테니까.”

인적이 끊긴 협곡 위의 고요한 숲이었지만 혹시 몰라 도현은 몬스터를 살려 두었다.

언제고 다시 올 때까지 나무 집은 유지되어야만 한다.

도현은 총알처럼 숲을 통과해 안개가 자욱한 협곡 사이의 돌다리를 건넜다.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원래 가벼웠지만 어제 고대 몬스터들을 많이 잡으며 상승한 내공의 깊이는 그의 신법을 또 다른 경지로 이끌고 있었다.

물론, 지난 3일간 고대 몬스터를 쫓기 위해 은밀함과 속도를 겸비한 신법을 유지하면서 그 운용법이 한 단계 더 상승한 이유도 있었다.

‘내공 상승이 정말 무섭긴 하구나.’

도현의 손에서 떠난 검이 아름드리나무를 여러 그루나 베고 돌아왔다.

어제 일로 내공이 상승하기 전까지는 비검술을 펼치는 검에 검기를 실어서 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면 너무 많은 내공 소모가 따라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았다.

쌍둥이 폭포에서 슈빅타이런을 백 마리 넘게 잡으며 얻은 내공의 양을 어제 한 번에 얻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충분히 버틸 만큼 내공이 급상승했다.

다음 날, 도현은 숲 속 공터에 도착했다.

며칠 전 얼음탑 마법사들과 고대 몬스터가 싸웠던 장소였다.

“내 검을 버리고 갔군.”

초라하게 땅에 버려진 자신의 검을 발견한 도현은 덜렁거리던 빈 칼집에 검을 꽂아 넣었다.

“대체 그들은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

쫓아가고 싶어도 이미 며칠이나 지나서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도현은 용병 시장으로 돌아오던 길에 고대 도시에 먼저 들렀다. 연합 측이 베일 가문의 방벽을 완전히 포위해서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힘들겠어.’

그가 고대 몬스터를 쫓기 전과 비교하면 베일 가문의 힘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그에 비해 연합 측은 기세등등했다.

용병 시장으로 돌아온 도현은 음식점에서 푸짐하게 배를 채우고 외곽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가면서 그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예상보다 연합 측에 힘이 많이 쏠리면서 힘의 균형이 급속도로 그들에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어베인을 만나 어떤 상의조차도 할 시간이 부족했다.

씨드가 존재한다면 동료들과 자신이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려운 점이 늘어 가고 있다.

‘동료들과 나만의 힘으로 독차지하기에는 점점 현실성이 떨어진다. 아쉽지만 나누더라도 파트너가 필요한 시점이야.’

도현은 다듬지 않아 제멋대로 자란 얼굴의 수염을 손바닥으로 훑으며 케일 경을 떠올렸다.

‘상황이 지금보다 더 다급해진다면 고대 왕궁에서 나오는 걸 반씩 나누자고 제안을 해도 받아들일 것도 같은데.’

어차피 저대로 가면 얼마 안 가 땅을 완전히 연합 측에 빼앗길 게 자명했다.

베일 가문의 병사들과 용병들도 모조리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느니 가진 것을 나누는 게 그들에게도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그러려면 내가 내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때까지 기다려야겠지.’

베일 가문이 지금보다 더 궁지에 몰려야 한다.

잔인한 생각이었지만 그러지 않고는 고대 왕궁에 대한 권리를 나눌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을 것이다.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일주일? 열흘?’

도현은 머릿속으로 전황을 저울질하며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디 다녀오는 거야?”

식탁 앞에서 리타와 고기를 뜯던 짐브리오가 도현에게 핀잔을 하듯 말했다.

“3일이나 기다렸잖아.”

리타가 지루한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짐브리오! 리타!”

도현이 환해진 얼굴로 달려와 짐브리오와 리타의 목을 뒤에서 동시에 껴안았다.

“커헉, 야! 고기 걸려, 인마!”

짐브리오는 발버둥을 쳤지만 리타는 편안한 얼굴로 입안의 고기를 우물거리며 꿀꺽 삼켰다.

“무사했군요. 사실 조금 걱정을 했습니다. 대장과 로나는요?”

도현이 팔을 풀며 물었다.

“위험은 넘겼어. 하지만 아직 몸이 많이 상해서 치료를 계속해야 돼.”

“다행입니다. 어디서 지내고 있습니까?”

도현이 의자를 끌고 와 그들 맞은편에 앉았다.

“그 죄수 노인네 있지? 톨리핀.”

“예.”

“그 노인이 알고 봤더니 약초꾼이더라고. 그래서 그 노인이 알고 있는 산속 거처에서 함께 지내고 있어. 치료도 그 노인이 해 준 거야. 약초꾼이지만 의술이 뛰어나더라고.”

도현은 말랐지만 근골이 튼튼해 보였던 톨리핀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브리오가 그 사람을 감옥에서 빼내 오길 잘했군요.”

“그럼. 내가 앞날을 좀 보거든. 고기 좀 먹을래?”

“드세요. 조금 전에 먹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지만 너도 무사해서 다행이다.”

짐브리오가 털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 속에는 위험을 감수하고 동료들을 구하려고 한 도현에 대한 고마움이 깊게 배어 있다.

도현이 없었다면 전투 몬스터나 마법사에게 발목이 잡혔을 것이다.

짐브리오의 마음을 읽은 도현은 가볍게 한번 웃기만 했다.

도현은 접시 위의 고기를 열심히 먹고 있는 리타에게 시선을 돌렸다.

“괜찮아?”

“응. 난 감옥에서 고문받지 않았거든.”

“근데 왜 그날은 정신을 잃고 있었지?”

뒤늦게 깨어나 비골을 소환해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리타는 성을 탈출할 동안 계속 의식이 없었다.

“스스로 나 자신을 가둔 거야.”

“자신을 가둬?”

“어베인과 로나가 고문받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스스로 잠에 든 거야. 계속 듣고 있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아서.”

무덤덤하게 말을 하는 리타 옆에서 짐브리오가 고기 뼈를 흔들었다.

“크샤코 가문의 차남 있지? 얼음탑 마법사란 자식. 그 개 같은 녀석이 리타의 흑마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대장과 로나를 미끼로 사용했어. 고문을 가하면서 리타를 압박한 거라고.”

“음…… 그렇군요.”

도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가 마법을 알려 줘도 그자가 우릴 죽일 거라고 생각해서 난 한마디도 안 했어.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

리타는 슬쩍 도현의 표정을 살폈다. 동료들이 고문당한 게 그녀 책임이라고 도현이 생각할까 봐 우려하는 것 같았다.

“네 잘못이라고 볼 수 없으니까 그런 생각 하지 마.”

도현의 말에 리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동료들 중 그 누구도 그녀를 탓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어베인과 로나는 정신을 차린 뒤 리타에게 잘 버텼다고 칭찬까지 해 주었다.

“도현, 네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마법사 녀석 있지?”

“네.”

“리타의 얘기를 들어 보니까 그놈이 바로 크샤코 가문의 차남 카샨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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