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 디 임팩트 11권 20화
리타가 바위에 앉아 다리를 까딱거리며 물었다.
“거들떠도 안 보겠지.”
“고대 왕궁의 보물은 우리 게 아니네, 그럼? 시시해.”
“기다려 봐. 브링틱의 원로들은 사이가 안 좋다고 소문이 났으니까. 의견이 모이는 게 쉽지 않을 거야.”
짐브리오는 리타에게 말을 한 후 생각에 잠겨 있는 도현을 쳐다봤다.
“수고했다. 돌아가서 기다리자.”
“예.”
도현은 고대 도시가 있는 방향을 한번 본 후 일행과 함께 용병 시장으로 걸어갔다.
원로들이 개입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도현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원로들이 베일 가문의 제안을 과연 받아들일까?’
브링틱 성 중앙에는 화려한 색으로 채색된 돌기둥 수십 개가 떠받치는 웅장한 원형의 건물이 존재했다.
바로 원로관으로, 안에서는 브링틱의 현안을 두고 매일 세 명의 원로들이 모여 의견을 나눴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원로들이 한 가지 주제로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왜 우리가 고대 도시에서 벌어지는 저들의 싸움에 개입해야 한다는 겁니까?”
베노아 원로가 졸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는 전날 환각 성분이 있는 약초를 빨며 술을 마신 여파로 정신이 몽롱해 있었다.
그의 말에 카샨과 카심의 아버지이자 크샤코 가문의 수장인 원로 올라르가 혀를 차며 말했다.
“몇 번이나 얘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내 입이 아프니 제발 이번엔 제대로 들어 주시오. 지금 저들의 싸움에 개입하지 않으면 뱃길이 열리고 얼마나 많은 외부 병력이 들어올지 모른단 말이오.”
“뤼호른 가문이 중심이 된 연합 세력이 조만간에 이긴다면서요.”
“이겨도 그게 끝일 것 같소이까? 그 연합 세력은 그들끼리 또 싸우게 될 거요. 고대 왕궁에서 나오는 것을 두고 말이요. 브링틱이 너무 혼란스럽게 되는 게 아니오?”
“브링틱이 혼란스럽진 않지.”
크샤코 가문의 원로 올라르와 튜샨 가문의 원로 베노아가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히반이 손톱 손질을 하며 끼어들었다.
히반은 볼란벤 가문 출신의 원로로, 눈이 침침했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손톱을 손질했다.
“혼란스럽지 않다니요?”
올라르가 물었다.
“그들끼리 싸우는데 브링틱이 왜 혼란스럽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베노아.”
“내 생각도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크샤코 가문의 올라르께서는 왜 저렇게 열을 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몽롱한 눈빛으로 몸을 좌우로 흔들며 베노아가 답했다.
“수천 명이 넘는 병력을 영주들이 계속 보낸다고 생각해 보시오. 우리 땅을 밟고 지나가는 저들을 보며 브링틱의 주민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소?”
“배를 타고 온다니 항구에서 세금을 많이 떼면 좋겠군. 이번에 항구 통과세를 두 배로 인상합시다.”
히반의 제안에 몽롱한 눈빛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베노아가 손뼉을 치며 동의했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당장 관리들을 시켜 법을 바꿉시다.”
“싸움이 오래가면 좋겠군. 브링틱 상인들이 물자를 많이 팔아서 좋아지면 우리에게 더 우호적일 게 아니오.”
“그것도 그렇군요. 원로께서는 참으로 현명합니다.”
베노아의 칭찬에 손톱을 손질하던 히반이 소리 내어 웃었다.
“별말씀을.”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올라르가 대리석 탁자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 좀 보세요. 우린 지금 항구세를 높이느냐 마냐가 아니라 베일 가문의 제안을 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히반과 베노아가 입을 다물고 다시 올라르를 응시했다.
“베일 가문의 땅을 두고 벌어지는 싸움을 뱃길이 열리기 전에 종결시킵시다. 때마침 베일 가문이 알아서 제안을 해 왔으니 우리로서는 반가운 일이에요. 각기 가문에서 보유한 전투 몬스터를 쉰 마리씩 보내고 병력도 그에 맞춰서 보내는 걸로 합시다. 발굴은 최대한 서둘러 끝내도록 우리가 인력도 지원해 주고요.”
“고대 왕궁에서 나오는 반을 우리 몫으로 주겠다고요?”
“아, 그렇다니까요. 땅을 큰돈을 주고 판 우리 입장에서는 알면서도 움직일 수가 없었는데,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올라르는 관심을 보이는 히반에게 웃으며 넌지시 말했다.
“고대 왕궁에서 아무것도 안 나오면요?”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왕궁인데.”
“우리가 싸움에 개입하면 연합 세력과 우리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럼? 그들에게도 돈을 받고 땅을 팔았는데 말이에요. 그들이 지금껏 우리 상인들에게 구입한 물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앞으로도 계속 주문을 할 텐데요.”
히반이 부정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맞아요. 사이좋게 지내요. 왜 싸웁니까, 이렇게 살기 좋은 곳에서.”
약에 취한 베노아가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우린 땅을 팔면서 중립을 지킨다고 계약을 맺었습니다. 약속을 저버리고 고대 도시에 있는 베일 가문의 편을 들어 주면 그땐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몰라요. 가뜩이나 외지인들이 우리 브링틱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는데,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오른쪽 손톱을 다 다듬은 히반이 왼쪽 손톱을 다듬기 시작하면서 말을 했다.
“더 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몇 번이나 말을 합니까?”
“복잡한데 그냥 놔둡시다. 고대 왕궁 없어도 그동안 우리 세 가문이 부족할 게 없이 잘 살고 있는데 왜 문제를 만듭니까? 자기들끼리 싸우겠다는데 막지 말자고요. 우리는 중립을 지키면서 항구 통행세 더 받고, 물품이나 팔자고요. 베노아 원로, 손톱 손질 좀 해야겠습니다.”
“나이 먹어서 손톱 손질은 왜요. 그저 약이 최고죠.”
“기품 있어 보이잖아요.”
히반과 베노아가 다시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누자 올라르의 얼굴이 점차 달아올랐다.
“좋소, 결정합시다. 베일 가문을 지원해야 한다는 원로는 손을 드시오.”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지 않았다. 결국 베일 가문을 지원하는 건은 무산됐다.
원로관 밖에서 기다리던 크샤코 가문의 장남 카심은 부친이 나오자 서둘러 다가갔다.
“어떻게 됐습니까?”
“두 원로들이 반대했다.”
“이유는요?”
“남의 싸움에 끼어들어서 머리 아픈 일을 만들기 싫다는 것이지.”
“그것이 왜 남의 싸움입니까? 고대 도시는 우리 품 안에 있는 땅입니다. 팔았어도 엄연히 우리 안에 있는 땅인데 필요하면 개입해야지요. 우리가 땅을 판 건 발굴을 하라는 것이지 싸움의 장을 마련해 준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참에 개입해서 브링틱에 들어와 있는 모든 외지인들에게 우리의 힘과 위엄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올라르는 목소리를 높이는 아들에게 피곤한 얼굴로 손짓을 했다.
“이미 끝난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 이번 일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우리 땅에 저들이 계속 들어와 살 텐데, 앞으로 저들이 우리 눈치를 보지 않고 지낸다면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통제하겠습니까? 저들이 힘을 합해 그 칼을 우리들에게 돌리면요? 잠을 자다 변고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음.”
올라르는 높은 담장이 쳐진 통로를 걸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들의 말이 과장된 측면이 있긴 했지만 일면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두 명의 원로들이 생각을 바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지금의 생활과 환경에 만족하고 있었다.
“위협이 된다면 두 원로들의 생각이 바뀌겠지.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잠자코 원로들의 결정을 따르도록 해.”
“고대 도시를 분할해 땅을 판 것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미친 결정을 내린 두 원로들도 책임을 져야 하고요.”
“화를 참을 줄도 알아야지. 감정대로 하면 브링틱은 유지되지 않아. 벌써 쪼개져서 세 가문들이 피 터지게 싸우고 있겠지. 사방에 시신이 넘치고 전투 몬스터에게 파괴된 건물 잔해들이 땅을 뒤덮을 것이다. 그게 네가 원하는 브링틱의 미래냐?”
돌담길을 걸으며 올라르가 아들을 꾸짖듯 말했다.
“하나를 얻고 싶으면 둘은 양보를 해. 앞으로 원로가 될 네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그것이 브링틱을 유지시키는 지혜고.”
올라르의 말에도 불구하고 카심의 얼굴엔 불만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카샨은?”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강한 마법사가 되어 돌아와 기뻐했는데, 녀석이 가문의 전투 몬스터를 헛되이 수십 마리나 죽게 만들었구나. 철갑 기마병도 큰 피해를 입었고.”
카심은 얼굴이 굳어졌다. 말은 카샨을 탓했지만 속뜻은 그를 탓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원로들이 어떻게 그 사실을 접했는지, 며칠 전엔 날 위로까지 했어.”
“죄송합니다, 아버지. 모두 제 불찰입니다.”
“고대 도시에 들어와 있는 저들을 걱정할 게 아니라, 넌 가문의 일이나 똑바로 신경 쓰도록 해. 몬스터 포획을 서둘러서 전투 몬스터가 죽어 생긴 가문의 공백을 메우도록 하고. 알겠느냐?”
지난 이틀간, 케일 경의 명령으로 무너진 방벽을 대신해 쌓인 수백의 시신들이 불에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길을 사이에 두고 베일 가문의 병사와 연합군이 기세 싸움을 벌이고 있다.
몇 시간에 걸쳐 타오르던 시신의 불길은 점차 사그라지고 뼈들이 수없이 드러났다.
“가지고 가라!”
연합군들은 화살을 겨누고 있는 베일 가문의 궁수들을 경계하며 죽은 자들의 뼈를 수레에 모아 뒤로 물러났다.
무너진 방벽 일대에는 베일 가문이 밤을 새워 파 놓은 깊은 구덩이가 가로 형태로 길게 존재했다. 6미터 정도 되는 깊이의 그곳엔 창을 거꾸로 박아 놔서 빠지면 죽거나 치명상을 입게 해 놨다.
적들이 굳이 이곳을 통해 재차 침입해 들어오려면 그에 대한 만반의 대비를 했더라도 그 대가를 크게 치러야 할 것이다.
요리사들과 발굴지를 조사하는 학자들까지 동원해 간밤에 구덩이를 파게 한 케일 경은 뒤돌아서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석양에 물든 하늘에 새 한 마리가 빠르게 낙하하고 있었다. 베일 가문이 사육해 훈련시킨 전서구였다. 원로들을 만나러 간 협상단이 이곳으로 오면서 먼저 전서구를 날린 것 같았다.
지휘소에 서둘러 도착한 케일 경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반돌로가 서신을 읽고 있었다.
“뭐라고 쓰여 있소?”
“그들은 고대 도시의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답니다.”
무거운 표정의 반돌로는 손에 든 서신을 케일 경에게 건넸다.
서신을 읽은 케일 경은 앉아 있는 반돌로에게 말했다.
“이들이 거부했으니 백도현과 계약을 맺읍시다.”
“고대 왕궁을 노리는 떠돌이 용병에게 말입니까?”
“그리 말할 게 아닙니다. 실력만 좋으면 됐지 그 이상 뭐가 필요하겠소? 당장 급한데 가릴 처지가 아니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공께 나중에 뭐라고 말한단 말입니까. 겨우 용병 한 명에 의지해서 땅을 지키고 그 대가로 고대 왕궁의 반을 넘겨줬다고 말을 해요? 난 그렇게 못 합니다. 베일 가문의 전체 명예가 달려 있어요.”
반돌로는 케일 경에게 도현의 얘기를 들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베일 가문은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지금까지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방벽 밖에는 연합군이 형성되어 있다.
그 모든 게 고대 왕궁 때문인데, 어디서 들어 보지도 못한 용병이 나타나 고대 왕궁을 나누자는 제안을 하다니.
책임자로서 화가 났다.
더구나 칼라치가 베일 가문에서 떠난 결정적인 계기도 그자 때문이었다. 발굴지에서 그자와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칼라치가 그런 식으로 베일 가문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랬다면 연합 측을 초반에 깡그리 쳐 없애서 지금처럼 많은 세력들이 모이지 않게 사전에 차단할 수가 있었다.
반돌로에겐 백도현의 등장이 그래서 달가울 리 없었다.
“이대로 가면 얼마 안 가 이곳은 함락될 거요. 그래도 좋소이까?”
“그가 있다고 해서 저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도 못 하는 거 아닙니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손해 볼 게 뭐겠소? 그가 제 역할을 못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지불할 게 아무것도 없게 되는 거요. 이곳을 지킬 때나 계약이 유효한 것이지.”
“그러다 덜컥 저자가 큰일을 해내면요. 모든 공은 그자에게 돌아가는 게 아닙니까? 대공이 볼 때 우리가 한 게 뭐가 있습니까? 원로들이라면 비교가 안 되겠지만 그자는 달라요, 아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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