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 디 임팩트 11권 25화
“반돌로가 머리 쓰네. 그러다 문제 생기면 네게 책임을 돌리려는 거 아냐. 치사한 늙은이. 몰살당할 걸 구해 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말이야. 이렇게 대접하면 안 되지.”
도현이 연합 측에 붙었다면 승리의 축제를 벌이는 건 저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짐브리오의 투덜거림을 담담히 웃어넘긴 도현은 품속에서 보석이 든 주머니를 꺼냈다.
“일꾼용 몬스터를 구하는 것도 제가 맡게 됐습니다. 일단 이건 계약용으로 사용할 보석이고요.”
“어디 봐.”
짐브리오가 제법 묵직한 보석 주머니 안을 들여다봤다. 루비와 사파이어가 뒤섞여 있었다.
“팔면 돈 좀 되겠네.”
“나도 봐.”
리타가 보석을 보다가 사각 모양의 사파이어를 하나 꺼냈다.
“한 개 가져도 되지? 예쁜데.”
“가져.”
도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리타, 고대 왕궁을 발굴하다 보면 이깟 보석은 지천으로 널려 있을 거야. 그런 사파이어 하나에 마음이 빼앗기면 안 된다. 알았지?”
“응. 그래도 이거 가질래.”
리타는 품 안에 보석을 넣었다.
“일꾼용 몬스터를 어디서 구하면 좋을까…….”
짐브리오가 손가락으로 식탁을 톡톡 때리다가 도현을 쳐다봤다.
“다양한 종류의 일꾼용 몬스터를 많이 보유한 상인을 찾아가 보는 게 제일 좋겠지?”
“아무래도요. 여러 곳이 아닌 한 군데와 거래를 하는 게 관리도 쉬우니까요.”
“가자, 브링틱 성으로.”
“누구 생각해 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그때 그 상인.”
도현과 짐브리오, 리타는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는 옷차림으로 브링틱 성에 들어왔다.
그들은 짐브리오에게 고대의 지팡이를 구입했던 상인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어베인의 집에서 죽은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해 달라는 짐브리오의 청탁을 받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일꾼용 몬스터가 필요하다고요?”
“그렇소.”
짐브리오의 대답에 턱수염을 길게 기른 상인이 수염을 훑어 내리며 미간을 좁혔다.
“브링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일꾼용 몬스터를 팔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겠다는 게 아니라 일을 시키고 싶어서 빌리겠다는 거요. 몬스터 주인이 일꾼용 몬스터를 부려서 우리 일을 돕는 건 가능하지 않소.”
“뭐,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무슨 용도로 사용하려는 겁니까?”
상인이 차를 마시며 물었다.
“고대 도시 발굴지에서 발굴을 보조할 거요. 무거운 돌도 나르고, 짐도 옮기고.”
“고대 도시?”
깜짝 놀란 상인이 찻잔을 내려놨다.
고대 도시 발굴지는 외지인들이 땅을 사서 발굴을 하고 있다. 그들은 용병은 구해도 일꾼용 몬스터는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상인은 잘 알고 있었다. 위험하고 가까이하기 거북스러운 몬스터. 한데 몬스터를 발굴지에서 사용한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고대 도시에서 일을 시키려 한다는 겁니까?”
“그렇다니까 그러네.”
짐브리오가 달짝지근한 차를 단숨에 비우고는 찻잔을 내려놨다.
“나중에 드러날 일을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소. 더구나 우린 고대 지팡이를 거래한 사이인데.”
당당한 짐브리오의 태도에 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은근한 눈빛으로 물었다.
“혹시 몰래 남의 땅에 들어가서 발굴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그곳에 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를 하시오. 사정 알 만한 사람이, 거참. 아, 구해 줄 거요, 말 거요. 싫으면 다른 곳으로 가고.”
“아아, 진정하십시오. 구해 드리면 되지 않습니까.”
상인은 방 안의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적을 준비를 했다.
“어떤 종류가 필요합니까? 몇 마리나요. 기간은?”
“종류와 소요되는 비용을 먼저 설명해 주시면 좋겠군요. 일꾼용 몬스터 각각의 특징도요.”
도현이 차분히 말했다.
“혹시 한두 마리 빌리려고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도현이 반돌로에게 받아 온 보석 주머니를 탁자에 올려놨다. 내용물을 확인한 상인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 정도면 아주 큰 거래였다.
“오늘 당장 계약금이 지불될 겁니다. 일을 시작하는 것은 앞으로 15일 후, 그러니까 그 전까지 앞으로 우리가 계약을 맺을 일꾼용 몬스터들을 차질 없이 준비시켜야 합니다.”
“물론이죠.”
“이제 일꾼용 몬스터의 종류와 소요 비용, 작업 특징 등을 자세히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상인과 계약을 맺고 나온 도현 일행은 저녁을 먹기 위해 사람이 붐비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짐브리오가 괜찮은 음식점을 안다고 해서 그쪽으로 가는 길이다.
“대장을 만난 후, 그 수상한 나무 집으로 가는 거야?”
리타가 물었다.
“그러려고.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마땅치 않을 것 같아.”
고대인의 집으로 의심되는 거목 속 집으로 가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톨리핀의 산속 집에서 회복을 하고 있는 어베인과 로나를 만나 베일 가문의 일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설명해 주고 그곳으로 짐브리오와 리타랑 떠날 예정이었다.
돌아오면 얼추 반돌로가 말한 정비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일 것이다. 고대 왕궁의 발굴은 그때부터 시작하면 된다.
“도현, 걱정 마라. 이 몸이 그 수상한 집의 비밀을 다 밝혀낼 테니까.”
“내가 알아낼 수도 있어.”
리타가 말했다.
“내기할까?”
“응. 주먹으로 얼굴 때리기.”
“됐다. 널 어떻게 때리겠냐. 쪼그마한 애를.”
“애 아니라고 했지!”
도현은 티격태격 싸우는 둘에게 넌지시 말했다.
“둘 다 자꾸 이러면 그곳에 안 갈 수도 있습니다.”
짐브리오의 안색이 살짝 바뀌었다.
“안 돼, 가야 돼. 고대의 술이 어딘가에 또 존재할 수도 있단 말이지.”
“맞아. 꼭 가야 돼.”
짐브리오와 리타의 목적은 향기로운 고대의 술이었나 보다.
“그럼 힘을 합쳐서 비밀을 밝혀내자고요. 싸우지들 말고. 저도 그 술을 다시 맛보고 싶으니까요.”
도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들이 거리 저편으로 사라진 뒤, 먼지가 가득 쌓인 옷을 입은 중년인과 노인이 나타났다.
“영주님, 배고프시죠?”
리드만 사제가 물었다.
“배고프긴. 괜찮네. 나보다 자네가 더 배고프겠지.”
딘의 시선은 거리의 음식점에 꽂혀 있었다.
이들은 알레빙스 산맥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온갖 고생을 하다 간신히 브링틱에 도착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은화가 몇 개 남았으니 잠자리와 식사가 제공되는 깨끗한 여관을 찾아보겠습니다.”
“대충 찾게.”
“배고프시군요.”
“아니라니까. 저거 맛있어 보이는데.”
음식점 앞에 화덕을 설치해 놓고 고기를 굽고 있었다. 브링틱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점 문화였다.
“들어오십시오. 저희 집 요리는 대를 이어서 했기 때문에 깊은 맛이 있습니다.”
고기를 굽는 사람이 자랑스럽게 말을 하고는 고기에 향신료를 뿌렸다. 그 향이 말할 수 없이 진해서 하루 종일 굶은 딘과 리드만의 발길이 화덕 앞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영주님, 드시겠습니까?”
“그럴까? 날씨가 온화해서 굳이 여관에서 잘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들어가시죠.”
그들은 화덕에서 구워지는 고기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음식점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배불리 먹은 그들은 마지막 은화를 그곳에서 다 소비하고 길거리로 나왔다.
“여기도 살 만하군. 고기 맛도 좋고.”
“그럼요. 일곱 신이 창조한 세계는 저마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도현이 그 친구가 여기에 왔을까 모르겠군.”
“다크캐슬에도 분명 고대 도시에 관한 소문이 퍼졌을 겁니다. 그렇다면 왔을 수도 있습니다.”
“몇 달 안 봤는데 자꾸 보고 싶은 이유가 뭘까?”
영주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좋은 사람은 자꾸 보고 싶어지는 법이지요.”
“그 친구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영주님, 저쪽으로 가 볼까요? 골목 사이에 잠을 잘 만한 곳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고기를 괜히 먹었군. 숲도 아니고 도시에서 노숙을 해야 하다니.”
딘은 불평하면서도 골목에 자리 잡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톨리핀의 집에서 회복 중인 어베인과 로나를 만난 도현은 그곳에서 하루를 묵고, 고대 도시로 돌아와 반돌로와 케일 경을 지휘소에서 만났다.
여전히 마땅치 않아 하는 반돌로에게 상인과 맺은 일꾼용 몬스터 계약 내용을 설명한 도현은 열흘 정도 자리를 비우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무슨 일이 있나?”
케일 경이 물었다.
“개인적으로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발굴이 시작될 즈음에는 돌아올 겁니다.”
“자네가 오지 않더라도 발굴은 시작될 거네.”
반돌로의 말에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 몬스터들이 모이는 그 수상한 집에서 어쩌면 시간을 좀 더 소비할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등에 작은 여행 가방을 멘 리타와 제법 큰 가방을 멘 짐브리오는 도현을 기다리며 고대 도시 북쪽에 위치한 강가에 앉아 있었다.
짐브리오의 가방 안에는 혹시 있을 고대의 술을 담아 올 커다란 포대가 여러 자루 들어 있었다.
“저기 온다.”
리타가 빠르게 접근하는 도현을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잠시 후 그들 앞에 작은 가방을 멘 도현이 멈춰 섰다.
“리타, 서둘러서 움직여도 오가는 데 십 일 정도 걸릴 거야.”
혼자 움직이면 오 일에서 육 일 안에 돌파도 가능했지만 도현은 일행과 적당한 속도를 맞춰야만 한다. 잠도 자야 하고.
“알았어. 열심히 달릴게.”
리타는 강에 첨벙 뛰어들더니 작은 팔로 헤엄을 쳐 강을 빠르게 건너갔다. 체구는 작지만 팔다리 힘도 세고 체력도 좋은 그녀였다.
“신기해. 쪼그마한 게.”
짐브리오가 피식 웃으며 몸을 던졌고, 뒤이어 도현도 주위를 한번 돌아본 후 물속으로 다이빙을 했다.
적지 않은 폭을 자랑하는 강을 건넌 그들은 북서쪽 방향으로 이동했다.
고대 몬스터를 쫓으며 파악해 둔 길을 따라 도현은 일행의 앞에서 그들을 인도했다. 가급적 쉬는 시간을 줄였고, 리타가 피곤해하면 도현이 업고 달렸다. 짐브리오는 입에서 단내를 내며 도현의 뒤를 쫓아야만 했다.
“짐브리오, 조심하십시오. 이쪽은 전투 몬스터들로 사용되는 거대 몬스터들이 밀집된 곳입니다.”
“네 등 뒤에 딱 붙어 있을게. 그럼 안전할 거 아냐.”
짐브리오는 도현 대신 리타를 등에 업었다.
리타는 이틀을 달리자 피곤했는지 잠에 취해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캬아아아.
5미터 급 거대 몬스터가 나타나자 도현의 검이 눈부신 빛을 내며 날아갔다. 더욱 깊어지고 위력이 강해진 비검술이 몬스터를 베어 버리고 도현의 손으로 돌아왔다.
원거리에서 사용하는 비검술은 굉장히 위력적이었다.
몬스터의 기운을 흡수하는 도현을 향해 짐브리오가 놀라며 외쳤다.
“대단한데. 언제 그런 기술을 터득한 거야?”
“얼마 안 됐어요.”
도현은 미소를 짓다가 뒤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작은 몬스터 몇 마리를 검을 날려 없애 버렸다.
도현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거대 몬스터 지역을 통과한 일행은 며칠을 더 이동한 끝에 수백 미터 높이의 협곡 사이를 잇는 돌다리에 도착했다.
‘안개는 계속 있군.’
도현은 안개에 휩싸인 수십 미터 길이의 오래된 돌다리 앞에 섰다. 이 다리만 건너면 목적지가 코앞이었다.
“이거 부서지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불안한 모습이야?”
짐브리오는 근처에서 커다란 돌을 하나 주워 휙 던졌다. 돌다리는 이상 없었다.
“리타, 그냥 평지처럼 걸으면 돼. 밑에 계곡 내려다보지 말고”
“응. 걱정 마.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리타는 앞서가는 도현을 따라 씩씩하게 걸어갔고, 그 뒤를 짐브리오가 따라갔다.
돌다리를 건넌 그들은, 얼마 후 고요한 숲 중간 정도에 위치한 문제의 장소에 도착했다.
고대 몬스터가 그사이 세 마리로 늘어나 있었다.
“잠시 기다리세요.”
검을 뽑은 도현은 무섭게 질주해 오는 고대 몬스터들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얼마간의 싸움 끝에 고대 몬스터들을 죽여 기운을 흡수한 도현은 거목 안에 있는 집 입구에 서서 손짓을 했다.
“여기입니다!”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