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277화 (277/575)

[277] 디 임팩트 12권 2화

도현은 로브를 입은 작은 체구의 해골을 자세히 살펴봤다.

고대인의 집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이 공간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애초부터 무리한 상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닥에 지팡이다!”

리타가 책상 밑으로 굴러 들어간 지팡이를 발견하고는 몸을 숙여 손을 뻗었다.

팔이 짧아서 닿을 듯 말 듯 하자 약이 오른 리타가 고개를 돌렸다.

“도현, 꺼내 줘. 손이 안 닿아.”

“잠시만.”

도현은 해골이 앉아 있는 의자를 옆으로 옮긴 후, 손을 뻗어 지팡이를 꺼냈다.

50센티가 채 안 되어 보이는 지팡이는 육각형 모양에 겉은 복잡한 문양과 고대 마법어로 뒤덮여 있었다.

“오, 이거 고대의 마법 지팡이인데.”

짐브리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리타의 손으로 넘어간 마법 지팡이에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마법 지팡이 없이 돌아다녔던 리타는 밝은 표정으로 지팡이를 이리저리 살폈다.

“와아, 이거 좋은데! 이거 내가 가질게.”

“어떤 효과가 있는 거지?”

도현이 호기심에 물었다.

“모두 세 가지 마법진이 이 지팡이에 새겨져 있어. 마법 증폭, 마력 소모 감소, 마력 회복 증가.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말이야.”

옆에서 듣고 있던 짐브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명품 지팡이군. 내가 마법 지팡이를 팔아 봐서 아는데, 두 가지 이상의 효과가 동시에 부여된 지팡이는 흔치 않아. 그것도 고대 마법어로 완성된 지팡이는 아주 고가지. 그런데 세 가지 마법진이 그려진 지팡이는 나도 처음인걸.”

도현은 의자에 앉아 있는 해골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마법의 장막을 펼쳐 서재로 들어오는 입구를 숨긴 것을 보고 집주인이 마법사일 가능성이 높다 생각하고 있었다.

‘저 지팡이는 이 사람의 물건이었을 거야.’

해골이 된 그의 손에서 떨어져 책상 밑으로 굴러갔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저 귀해 보이는 마법 지팡이가 책상 밑에 방치될 리 없다.

“이거 내가 사용해도 되지?”

“뭐 그거야 상관없는데, 너는 흑마법사라서 지팡이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했지 않나?”

짐브리오가 물었다.

“이건 괜찮아. 내 흑마력과 충돌을 안 일으켜.”

리타가 흑마력을 지팡이에 주입시키자 육각 면을 가진 일자 형태의 지팡이에 검은 빛이 어렸다.

“봤지? 일반 마법 지팡이는 그냥 깨져 버리거든. 그런데 이건 내 기운을 받아들이고 있어.”

“얼음탑 녀석들과 싸울 때도 효과가 있겠네?”

“당연하지!”

“흐흐흐, 좋아, 그거 가지고 더 강해져서 얼음탑 녀석들을 다 없애 버려.”

기쁜 얼굴로 고대의 지팡이를 허리에 차는 리타를 가만히 지켜보던 도현이 짐브리오에게 물었다.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이 죽은 사람이 집주인 같습니까?”

“내가 봐선 그런데. 마법으로 보호되는 이런 은밀한 곳에 들어올 정도면 집주인이 아니고는 어렵지 않나? 더구나 집주인이 이렇게 외부인이 자리를 잡고 죽게 방치할 것 같지도 않고.”

짐브리오는 책상 위의 종이를 손에 들고는 예리한 눈빛으로 살피며 말을 이었다.

“문제는 집주인이 왜 이렇게 죽었냐는 것이지. 네 말대로 기록을 남기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리타가 인정할 정도로 강력한 마법의 장막을 펼쳐 놓을 정도면, 아주 뛰어난 마법사였을 텐데.”

집주인이 의자에 앉아서 죽음을 맞이한 것은 미스터리였다.

“서재를 조사해 보죠.”

“그래.”

도현은 책장에서 두툼한 서적을 꺼내 들었다.

겉표지는 얇은 청동 판으로 보호되었고, 안은 색이 바랜 두꺼운 종이들이 채워져 있었다.

‘고대어다.’

책을 봐도 까막눈 신세인 도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앞에 보이는 책장에 있는 책들을 한 번씩 다 꺼내서 뒤적여 봤다. 모두 고대어였고 그가 알아볼 만한 내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책들만 봐도 이집의 주인은 고대인이 분명해.’

고대인의 집이 아닐 수도 있단 일말의 의심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무슨 내용인지 알겠어?”

리타가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다가왔다.

“난 고대어를 모르잖아.”

“도둑인 짐브리오도 아는데, 도현은 왜 몰라?”

“공부를 안 했으니까.”

헛기침을 한 도현은 책장의 책들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책장의 고서들을 다 조사하면 그 뒤에는 책장을 옆으로 옮겨 숨겨진 공간이 있나 확인할 생각이었다.

사실 도현은 책을 읽는 것이라기보다는 빈 책장을 만들기 위해 그저 고서들을 바닥으로 내려놓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책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고대어를 아는 짐브리오와 리타의 몫이었다.

“내가 알려 줄까? 고대어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여기에 쓰인 고대어는 ‘하보란스어’야.”

“하보란스어?”

“응, 몇 달만 열심히 배우면 드문드문 해석은 할 수 있을걸.”

“글쎄, 배우면 좋겠지만 시간이 그렇게 넉넉지 않아서.”

리타는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은 말이야, 짐브리오도 여기 하보란스어는 아주 어려워해. 이 고대어는 굉장히 어려운 언어거든.”

도현은 뒤를 돌아봤다.

맞은편 책장에서 짐브리오가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도현처럼 책장의 책들을 바닥에 쌓아 놓고 있었다.

“걱정 마. 내가 나중에 다 읽고 책의 내용들이 어떤 건지 알려 줄 테니까.”

“리타는 어디서 고대어를 배운 거지?”

“전에 불태운 책들 있었지? 모엘의 동굴에서. 그 책들 중에는 다양한 고대어를 배울 수 있는 희귀한 고서들이 여러 권 있었어. 모엘은 바보 같아서 몇 가지 고대어밖에 못 배웠지만, 난 그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지. 여기 이 머릿속에.”

“그렇구나.”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 손에 들린 책을 가리켰다.

“무슨 책이야?”

“마법서.”

“그래?”

도현은 마법사의 서재에 마법서가 존재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그녀가 마법서를 들고 오자 기분이 묘했다.

“네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응, 깊이가 있어. 내가 배운 흑마법도 고대 마법의 일종인데, 통하는 바가 여러 가지 보여, 잠깐 읽어 봤는데도.”

“잘됐다. 이 중에 찾아보면 고대 마법서가 더 있을 거야. 나중에 돌아갈 때 챙겨 가자.”

“응, 고마워. 자아, 여기부터 그럼 분류를 시작할까?”

리타는 도현이 바닥에 쌓아 놓은 책들을 가볍게 훑어보며 어떤 성격의 고서들인지 분류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도현은 시선을 돌려 이번에는 수북한 양피지 묶음에 손을 댔다.

양피지도 고대어로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현은 과감히 모든 양피지들을 리타의 앞에 내려놓았다.

리타는 짧은 시간 동안 벌써 수십여 권의 고서들을 분류해서 좌우로 쌓아 두고 있었다.

‘머리가 정말 좋은 여자야.’

도현은 자신의 앞에 있는 책장을 살펴봤다. 백여 권 가까이 됐던 고서들과 수십 장의 양피지들은 모두 바닥으로 옮겨진 상태. 이제는 책장 뒤를 확인할 차례였다.

‘없다. 아무것도.’

일반 나무 벽이었다. 그러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마법의 장막이 혹시 이 서재 어딘가에 펼쳐져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끝!”

도현이 책장에서 내려놓은 고서와 양피지를 모두 분류한 리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벌써?”

“응, 여기 이 책과 양피지 들은 고대 마법서. 그리고 이쪽은 마법 지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

“다른 책은 없는 건가?”

“응, 모두 마법과 관련된 서적들이야.”

“고대 몬스터가 이곳으로 모이는 이유를 설명해 줄 단서가 될 책들은 안 보이는 거지?”

“빠르게 훑어봐서 정확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런 이유를 설명하는 책들은 없어. 기록도 없고. 나중에 천천히 다시 읽어 볼게.”

리타는 도현이 옮겨 놓은 책장의 뒤편에 존재하는 벽에 손을 얹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한동안 그쪽 벽 일대를 조사하던 그녀는 눈을 떠 도현을 바라봤다.

“마법의 장막이 느껴지지 않아.”

“수고했어.”

리타는 자리를 옮겨 짐브리오에게 걸어갔다. 짐브리오도 도현처럼 책과 양피지를 바닥에 다 쌓아 놓고 빈 책장을 한쪽으로 옮겨 놓은 상태였다.

“아, 머리 아파. 역시 하보란스어는 두통이 일어난다니까. 하보란스어는 대장과 로나가 잘하는데.”

“리타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도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그들은 리타가 분류를 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책상 쪽으로 시선이 갔다.

“저길 안 봤네.”

“조금 있다 보려고 했죠.”

둘은 의자에 앉아 있는 해골을 지나쳐 책상 앞에 섰다. 책상 서랍 안에는 필기도구와 호두만 한 크기의 자수정이 들어 있었다.

“별거 없네.”

입맛을 다신 짐브리오는 구슬 모양의 자수정을 도현에게 툭 던지듯 건넸다.

“설마 이게 이계의 수정은 아니겠지? 한번 잘 살펴봐.”

“색깔이 일단 다른데요.”

투명한 이계의 수정은 혼돈의 마나에서 나오는 어둠의 기운이 스며들게 되면 그 색이 검은빛으로 서서히 변해 간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손에 잠시 자수정을 쥐고 몸의 변화를 살피던 도현은 피식 웃고 말았다.

이것은 아니었다.

‘빛깔은 좋네. 홍영 씨가 자수정을 좋아할까?’

구슬 모양의 호두만 한 자수정은 광택이 나고 아주 보기 좋았다.

자수정을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앞으로 가져가던 도현이 흠칫한 표정으로 고개를 급히 뒤로 뺐다.

‘뭐지?’

“왜 그래?”

의자에 앉아 있는 해골을 바닥에 내려놓던 짐브리오가 그 모습을 보고는 이상하게 생각해 물었다.

도현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갑자기 자수정 안에 눈동자가 나타나서요.”

“눈동자? 무슨 눈동자?”

“사람 눈동자 같았습니다. 파란색의…….”

“잘못 봤겠지. 자수정에 왜 사람 눈동자가 나타나.”

짐브리오는 도현에게 자수정을 건네받아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냥 자수정이다.

“미안하다. 널 너무 혹사시킨 것 같아. 부담도 주고. 헛것이 다 보이다니…….”

“아닙니다. 제가 그냥 착각을 했나 봅니다.”

겸연쩍은 얼굴로 짐브리오에게 말을 하던 도현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져 갔다. 짐브리오의 손에 들린 자수정에 다시 파란 눈동자가 나타나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잘못 본 게 아니야!’

도현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하자 짐브리오도 덩달아 긴장했다.

“왜 또 표정이 그래?”

“짐브리오, 눈동자가 절 쳐다보고 있습니다.”

짐브리오의 시선이 자수정으로 향했다.

도현을 바라보던 눈동자가 스르륵 반대편에 나타나 짐브리오를 응시했다.

굵은 눈썹을 가운데로 모은 짐브리오는 자수정 속에 나타난 눈동자를 마주 노려보며 천천히 눈앞으로 가져갔다.

온갖 일을 겪은 짐브리오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필요하면 담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뭘 쳐다봐, 이 망할 눈동자야. 너 뭐야?”

“고대 도시가 넓군요.”

방벽으로 가려진 고대 도시 발굴 현장을 며칠째 기웃거리던 딘과 리드만은 지친 기색으로 그늘이 진 어느 방벽에 기대어 앉았다.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음식을 며칠간 먹지 못한 그들의 얼굴에 주름이 몇 개나 더 생겼다.

“일꾼으로 일하면 먹을 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는데 말입니다.”

“나보고 지금 저놈들 밑으로 들어가서 땅을 파라는 건가?”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둘 사이에 먼지바람이 들어왔다.

“물 좀 남았나?”

“여기 있습니다, 영주님.”

리드만이 가방에서 수통을 꺼내 건넸다.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먼지 묻은 얼굴로 마시는 영주를 보며 리드만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몸이라도 건강하면 일꾼으로 며칠간 일해 영주님을 잘 모실 텐데요. 늙은 몸이 한심스럽습니다, 쿨럭쿨럭.”

“자네 건강하잖아.”

“제가요? 영주님 눈에만 그렇게 비치지 다른 사람들은 늙은이 취급합니다. 무거운 돌과 흙을 못 나를 거라며 거들떠도 안 봅니다.”

“일꾼 모집인에게 언제 갔었나?”

“예. 제가 말씀을 안 드렸군요. 용병 시장에서 영주님이 주무실 때 만나고 왔었습니다.”

“쓸데없는 짓을 왜 하고 돌아다니는가?”

딘이 미간을 찌푸리며 수통을 돌려줬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귀하신 영주님은 꿈쩍도 안 하시는데요. 굶어 죽어도 일은 못 하시겠다고 하니, 제가 움직일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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