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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78화 (278/575)

[278] 디 임팩트 12권 3화

“내가 언제 굶어 죽는다고 했나? 앞서가지 마.”

“돈을 벌어 오시겠습니까?”

리드만이 은근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딘이 그 시선을 피했다.

“돈이란 게 있을 땐 있는 거고 없을 땐 없는 것이지. 그것 때문에 품위를 버릴 수는 없어.”

“돈이 있어야 정보도 구하고 이계의 수정도 찾아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영주님도 용병 시장의 상인들이 여기 발굴지의 물건들을 거래하는 걸 아시잖습니까?”

“흠.”

“영주님, 전 언제 일곱 신의 부름을 받아 세상을 떠날지 모릅니다. 그 전에 영주님이 폭주에서 해방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딘은 무거운 얼굴로 리드만을 바라봤다. 치료의 권능을 가진 일곱 신의 종은 흔치 않았다. 그것도 리드만처럼 단번에 높은 수준의 치료를 할 수 있는 사제는 어쩌면 대륙에서 그가 유일할지도 모른다.

그 능력을 바탕으로 어느 곳에 자리 잡아도 잘살 수 있는 그가 긴 세월을 하인처럼 따라다니며 영지 없는 영주를 보필하고 있다.

딘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리드만, 미안하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영주님의 아버님이 절 구해 주신 은혜는 이것으로도 갚지 못합니다.”

“자네는 이미 갚고도 남았네. 나의 답답함이 때로는 자넬 너무 힘들게 하고 있어. 하아, 참으로 어리석은 영주가 아닌가?”

딘이 시름 깊은 얼굴로 자책을 하자 리드만이 얼른 말했다.

“영주님은 당당하실 때가 보기 좋습니다. 스스로를 낮추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날 이해해 주는 사람은 자네뿐이야.”

“전 늘 영주님 편입니다.”

“좋네, 자네가 원한다면 일을 하겠네. 가서 땅을 파고 돌을 나르지. 자네가 좋아하는 브링틱 성의 그 고기구이도 다시 한 번 찾아가서 맛보고.”

“꼭 제가 그 음식점의 고기 맛을 잊지 못해 영주님을 괴롭히는 것 같군요.”

“아닐세. 사실 나도 지난번에 먹은, 향신료 가득한 그 고기 맛을 잊지 못하고 있었어.”

“맛이 아주 훌륭했지요?”

“그럼, 아주 맛있었지, 하하하.”

허름한 차림을 한 둘은 방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즐겁게 웃었다.

“근데 말이야, 리드만.”

웃음을 거둔 딘이 목소리를 낮췄다.

“일꾼으로 가면 푼돈이야 번다지만 그것으로는 이계의 수정과 관련된 정보를 모을 사람을 고용하거나 상인들과 거래를 트기에는 어림도 없지 않나?”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이 근처에 신전을 하나 여는 건 어떤가?”

“예에? 신전을요?”

리드만 사제의 눈이 커졌다.

“브링틱인들은 일곱 신을 믿지 않지만, 외지에서 온 용병들이나 발굴지 세력들 중에는 일곱 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들로부터 헌금을 받는 것이지. 제법 돈이 될 거야.”

“그거야 그렇지만 그런 목적으로 신전을 연다는 건 신성모독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신을 팔다니요.”

리드만은 먼지가 잔뜩 달라붙은 흰 수염을 훑어 내리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필요할 때마다 일곱 신을 이리저리 잘도 가져다 붙였지 않나? 이번엔 왜 안 되나?”

“신전은 함부로 여는 게 아닙니다. 일곱 신이 노하십니다.”

“그럼 한 가지 묻겠네. 다크캐슬의 대사제는 무슨 자격으로 신전을 열었는가? 그는 돈만 밝히고 자신의 이득만을 좇는 자인데 그는 왜 벌을 받지 않았나?”

“그는 우리를 기다린 겁니다.”

리드만이 평상시 보이지 않는 근엄한 얼굴로 답했다.

“우리라니?”

“영주님과 저 그리고 이 자리에 없는 도현 말입니다. 일곱 신의 섭리는 오묘하고 광대해서 그 진의를 파악하는 게 무척이나 난해합니다. 다크캐슬의 대사제는 미래에 올 우리를 위해 준비한 일곱 신의 선물이었던 겁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스므차의 성에 무난히 들어갔고 뜻한 일을 완성시켰던 게 아닙니까?”

“자넨 그것이 일곱 신의 의도라 보는군.”

딘이 피식 웃으며 엉덩이를 자극하는 작은 돌 조각을 빼냈다.

“그럼 이건 왜 내 엉덩이에 깔려 있는 건가? 무슨 이유로?”

“그거야 아무 이유도 없지요. 그저 돌 조각이죠.”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 아닌가? 일곱 신은 자네를 통해 말씀을 전하고 축복을 내리네. 이번 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는가? 가령, 일곱 신이 간절히 필요한 신자들이 이곳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나. 용병들이라고 신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고 말일세. 자넨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가 있어. 그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들이 자발적으로 헌금을 낼 수도 있고. 우리가 신전을 열면 안 되는 이유를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영주의 긴 설명에 리드만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일곱 신의 신전이 이곳에 있다는 소문을 도현이 듣게 된다면, 그는 반드시 신전을 찾아올 거야. 그가 만약 브링틱에 와 있다면 말일세. 그러지 않겠나?”

리드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돈도 벌고 일곱 신의 축복이 필요한 자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며 도현과 만날 수 있는 장소 역할도 한다.

“일곱 신은 자네의 진심을 알아주실 걸세.”

“그러시겠지요?”

“자네보다 깊은 신앙심을 가진 일곱 신의 사제는 본 적이 없네. 치료의 권능이 이를 증명해 주지 않나?”

“신전은 어디에 여는 게 좋겠습니까?”

마음을 굳힌 리드만이 물었다.

“흠, 내가 보기엔 고대 도시와 용병 시장 중간 정도가 좋겠어, 오가는 사람들도 많고. 용병 시장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자리를 찾아보세.”

“영주님, 일하기 싫어서 이러시는 건 아니시지요?”

“신전을 지으려면 내가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네, 나무도 베어 와야 하고. 일하기 싫어서라는 말은 맞지 않아.”

“그건 그렇지요.”

“어두워지기 전에 그만 일어나세.”

딘이 막 일어나려는 순간 방벽 위에서 거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벽 경비병이었다.

“당신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썩 꺼지지 못해?”

“꺼져?”

딘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나 위를 올려다봤다. 경비병 두 명이 당장이라도 화살을 쏠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은 잡담을 나누다가 뒤늦게 방벽 밑에 있는 딘과 리드만을 발견한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해 보게. 뭐라고 했나 지금?”

서늘한 딘의 눈빛에 경비병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거리가 제법 됐지만 이상하게도 바로 면전에서 응시하는 듯해 섬뜩하기도 했다.

“그만 가시지요. 방벽 경비병들은 당연히 이곳을 지켜야 하는 임무가 있지 않습니까.”

리드만은 일이 커질까 봐 딘에게 서둘러 말했다.

“경비는 무슨, 실컷 놀다가 우리에게 큰소리나 한번 쳐 보려는 속셈이겠지.”

딘은 방벽 위를 올려다봤다.

“이보게들, 혹시 일곱 신을 믿나?”

“안 믿소!”

딘의 범상치 않은 눈빛에 살짝 기가 죽은 병사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아래를 보며 대꾸했다.

“믿어 보게. 좋은 일이 생길 테니까.”

“시끄럽소! 그만 방벽에서 떨어지시오!”

“갈 테니까 그만 윽박지르게.”

돌아선 딘은 리드만과 함께 길을 걸었다.

“옷이 이 모양이니 아무나 나를 괄시하는군.”

“깨끗이 빨면 괜찮을 겁니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곳이 찢어지고 구멍이 났어.”

알레빙스 산맥에서 길을 잃고 고생을 한 그들은 옷이 엉망이 된 상태였다. 게다가 요 며칠 먹은 게 부실하고 얼굴도 지저분했다. 행색이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돈이 모이면 영주님 옷 먼저 사겠습니다. 기품 있는 옷으로요.”

“신전을 빨리 지어야겠군. 어서 가세.”

락제프

자수정 속 눈동자를 노려보던 짐브리오는 뒤에서 다가온 리타에게 자수정을 보여 줬다.

“이거 마법이냐? 왜 이런 거야?”

“마법 같기는 한데, 모르겠어. 처음 보는 마법이라.”

리타는 자수정 속 눈동자가 기이하기는 했지만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마법 중엔 이것보다 더욱 놀라운 현상을 일으키는 것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나 보네. 자수정에 눈동자라니.”

“짐브리오가 정리한 책장의 책들도 마법과 관련된 것들인가?”

자수정을 주의 깊게 응시하고 있던 도현이 리타에게 물었다.

“응, 그런데 딱 한 가지 다른 게 있어.”

“다른 거라니?”

“보여 줄게.”

리타는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양피지를 책상 위에 펼쳤다. 책상을 가득 덮을 정도로 커다란 양피지에는 세밀한 선들과 그림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이거 지도잖아?”

도현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자 리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무래도 지금 발굴 중인 고대 도시 지도 같아.”

그녀의 말에 놀란 도현과 짐브리오가 책상 위의 지도를 다시 살펴봤다.

고대 도시의 주요 도로들, 광장, 특별한 건물들의 명칭, 신분이 높은 귀족들의 저택, 군사들의 병영, 고대 도시 내부를 여러 갈래로 흐르는 강줄기, 고대 왕궁의 위치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세밀한 그림과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표기되어 있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여기 왕궁이라고 표시된 위치가 베일 가문의 땅이 있는 위치와 엇비슷하잖아. 그래서 고대 도시 지도라고 한 거야.”

리타의 부연 설명에 짐브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타 네 말이 맞다. 이건 고대 도시의 지도야, 확실해. 내가 일꾼으로 위장해서 발굴지 이곳저곳을 둘러봤었는데, 그중에 여기에 보이는 광장의 흔적들이 똑같이 존재했어. 이쪽의 강 흔적도 말이야. 지도의 그림과 위치가 같아.”

“놀랍군요. 여기서 고대 도시의 지도를 발견하다니.”

도현은 손상이 되지 않은 고대 지도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지도만 있으면 고대 도시 발굴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지도는 고대 도시에 위치한 왕궁에서 엄격히 관리했을 텐데, 어떻게 여기에 보관된 거지? 대체 이 집주인은 뭐 하던 자야?”

짐브리오는 바닥에 눕혀 놓은 작은 체구의 해골을 새삼스럽게 쳐다봤다. 마법사로 추정되는 그가 생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내가 누구냐고?

그때 갑자기 자수정에서 늙은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깜짝 놀란 짐브리오가 손에 든 자수정을 놓쳤다.

바닥을 데구루루 구른 자수정이 도현의 신발에 걸렸다.

눈동자가 도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현은 놀라움을 속으로 삭이고는 천천히 허리를 굽혀 자수정을 집어 들었다.

눈동자는 도현을 비롯해 주변에 서 있는 리타와 짐브리오를 훑어봤다.

-너희들 하는 짓이 참으로 귀엽구나. 내 집에선 뭘 찾고 있었던 것이냐?

도현은 내 집이라고 말을 하는 자수정 속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리타와 짐브리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 역시 내 집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에 잠시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도현이 먼저 정신을 차려 대꾸했다.

“여기가 당신 집이라고 했습니까?”

-그렇다. 저기 내 시체가 보이는군. 가련한 인생, 해골만 남았구나.

눈동자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 담담히 말했다.

“마법을 사용해서 자수정 안으로 들어간 건가요?”

리타가 한 걸음 다가와 도현의 손에 들린 자수정 속 눈동자를 보며 물었다.

-그렇다, 꼬마야. 네 허리에 있는 지팡이는 바로 내 물건이다.

“이 물건은 잘 쓸게요. 그런데 정말 당신은 대단한 마법사였군요. 육신을 버리고 영혼만 그 안에 들어가 있다니.”

리타는 마법사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흥미를 가지고 눈동자를 대하고 있었다.

-쉬운 마법은 아니다. 고통을 수반하는 마법이기도 하고.

눈동자는 말을 하며 스르륵 움직여서 어수선한 서재를 한 바퀴 둘러봤다.

-다시 묻겠다. 내 집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던 것이냐?

도현은 손에 들고 있던 자수정을 책상 위에 올려놨다. 아직 자수정 속 고대 마법사의 영혼이 어떤 존재인지 파악되지 않았다.

‘마법을 펼쳐 우릴 공격할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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