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282화 (282/575)

[282] 디 임팩트 12권 7화

거인의 섬

길을 잘못 들어 한 차례 고생을 한 도현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전날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바람에 확인하지 못했던 별자리들이 오늘은 반짝이며 그의 눈에 들어왔다.

“궁수 별자리가…… 저기에 있군.”

사람이 활시위를 당기는 모양의 별자리를 찾은 도현은 화살의 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파악하고는 피워 놓은 모닥불을 꺼 버리고 다시 길을 출발했다.

락제프가 알려 준 고대의 길은 이미 사라졌고, 강과 산도 그 지형이 적지 않게 바뀌었다. 그래서 그는 궁수 별자리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높은 암벽도 타고 맹수와 몬스터 들이 우글거리는 지역을 피하지 않고 돌파했다. 도현은 3일간 쉬는 시간을 아끼며 달린 끝에 칙칙한 빛이 감도는 회갈색 나무숲에 도착했다.

“이곳이 망각의 숲인가?”

높이 자란 나무들이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숲이다.

수통의 물로 목을 축인 도현은 검은 악령들이 돌아다닌다는 망각의 숲으로 천천히 진입했다.

이곳에 안개 호수와 거인의 섬이 존재한다고 했다.

숲에 들어선 도현은 바위를 하나 뛰어넘다가 흠칫했다. 인간의 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신발 밑에 밟히는 인간의 뼈 소리는 과히 듣기 좋지 않았지만 도현은 냉정함을 유지하며 숲으로 계속 들어갔다.

‘고대에 죽은 자들일까?’

숲 곳곳에 보이는 유골들과 주변에 떨어진 부식된 병장기들은 긴 세월을 엿보게 해 줬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 같은 새 우는 소리를 등지고 빠르게 달리던 도현은 이상한 기분에 뒤를 돌아봤다.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수십여 개의 검은 연기들이 허공에서 부유하며 그를 뒤쫓고 있었다.

검은 연기들은 괴로운 표정으로 울부짖는 인간의 모습을 띤 악령들이었다.

쉬이이익.

바람소리를 내며 도현의 주변을 순식간에 휘감은 악령들은 저마다 낮고 우울한 괴성으로 도현의 맑은 정신을 깨트리려 했다.

“사라지지 않으면 없애 버리겠다.”

주변만 맴돌던 악령들이 더 가까이 다가오자 도현은 허리에 손을 댔다.

칼집에서 폭발하듯 뽑혀 나온 검이 눈부신 속도로 주변의 악령들을 쓸어버렸다.

허공에 부유하는 악령들의 몸체에 도현의 검이 스칠 때마다 번쩍이는 불꽃과 함께 매캐한 탄 냄새가 났다.

타격을 받은 악령들이 놀라 숲 사방으로 흩어졌다.

검은 거둔 도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숲에 있는 안개 호수를 찾아 나섰다.

날이 지고 밤이 찾아왔다.

그동안 몇 차례 더 악령들과 싸운 도현은 눈앞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들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해골 병사들. 그들은 찢어진 깃발을 든 병사의 뒤를 따라 도현을 포위하고 있었다.

수백은 되어 보이는 해골 병사들은 고대의 갑옷과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들은 왕을 따라 망각의 숲에 들어왔다가 숲의 노예가 된 패잔병들이었다.

붉은 눈빛을 토해 내며 다가오는 해골 병사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도현은 옆에 서 있는 나무 위에 올라섰다.

굳이 힘들여 이들과 싸울 이유는 없었다.

“잘 있으시오.”

도현은 고개를 쳐들고 위를 올려다보는 붉은 눈빛의 해골병사들을 본체만체하며 그대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뛰어넘었다.

달아나는 도현을 멍하니 쳐다보던 해골 병사들은 힘없는 걸음걸이로 다시 숲을 배회했다.

‘꽤 깊이 들어왔는데, 대체 호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어느새 날이 새고 있었다. 밝아 오는 숲의 전경을 보며 걷던 도현은 옆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에 살짝 놀라고 말았다.

그가 놀란 까닭은 혀를 길게 내밀고 피부가 끔찍하게 갈라진 사람들이 좀비처럼 달려들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잿빛 로브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찢어진 의복이었지만 도현은 그 옷이 얼음탑 마법사들의 상징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그들의 목적이 정말 이곳이었나?’

눈앞까지 다가온 자들은 모두 세 명으로 이미 죽은 자들이었다. 그냥 놔두면 해골 병사처럼 숲을 떠돌아다니는 존재들이 될 것이다.

도현은 몇 미터 앞에서 훌쩍 점프해 송곳니를 드러내며 덮쳐 오는 그들의 목을 바람처럼 가벼운 검술로 베어 버렸다.

철퍼덕 소리와 함께 목이 잘린 마법사들이 몇 번 꿈틀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동료들과 함께 이곳을 통과하다가 낙오된 자들인가? 아니면 버려진 걸까?’

고대 몬스터를 쫓다가 우연히 마주쳤던 얼음탑 마법사들 중에는 강해 보이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크샤코 가문에서 상대한 카샨만 해도 검은 악령들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자들이 있는데 이들이 악령에 당해 숲의 노예가 됐다는 게 의외였다.

‘방심했을 수도 있겠지.’

시신을 내려다보던 도현은 몸을 돌려 앞을 봤다. 나무 사이로 멀리 물이 보였다.

‘호수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숲이 끝나고 자갈들이 곱게 깔려 있는 땅이 길게 펼쳐졌다.

자갈들을 밟으며 호수가로 다가간 도현은 좌우로 시선을 돌려 넓은 호수를 눈에 담아 갔다.

앞쪽은 맑은 호수의 물이 보였지만 그 뒤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물안개가 워낙 짙게 껴서다.

‘얼음탑 마법사들이 거인들을 제압했을까?’

얼음탑 마법사들의 목적지가 이곳이라는 것은 죽은 저들을 봐서도 거의 확실해졌다.

마음이 다소 급해진 도현은 숲의 나무들을 잘라 넝쿨로 엮어 통나무 뗏목을 만들었다.

호수에 뗏목을 띄운 도현은 나무를 다듬어 만든 노로 물을 밀어내며 물안개 자욱한 호수로 들어갔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노를 젓던 도현은 방향을 잡기가 어려웠다. 물안개가 워낙 짙어서 시계가 몇 미터도 안 됐기 때문이다.

‘바람을 따라가자.’

도현은 자신의 얼굴에 부딪혀 오는 바람을 거스르며 묵묵히 노를 저었다.

20여 분 정도 노를 저었을까, 갑자기 앞에 암초가 나타났다.

깜짝 놀란 도현은 장풍으로 급히 호수 물을 때렸다.

퍼엉 소리와 함께 출렁이는 물이 도현의 배를 거칠게 밀어냈다. 방향이 살짝 틀어진 배는 아슬아슬하게 암초의 옆면을 스치듯 지나쳤다.

“위험했어.”

간신히 암초와 충돌을 면했다.

“섬이 가까운 건가?”

안개 자욱한 주변을 살핀 도현은 더욱 신경 써서 노를 저었다.

호수 위로 삐져나온 작은 크기의 암초는 그 뒤로도 드문드문 등장했지만 도현은 앞선 경험을 토대로 어렵지 않게 암초를 피해 갈 수 있었다.

“암초가 있어서 금방 섬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호수에 배를 띄워 한 시간 가까이 섬을 찾아다닌 도현은 노를 놓고 잠시 휴식을 취하려 했다.

“안개가 약해지고 있어.”

뗏목에서 일어난 도현은 옆에 놓아둔 노를 다시 잡고 힘차게 물을 밀어냈다.

시야를 가리던 안개가 거짓말처럼 걷히며 육지가 나타났다.

호수의 끝에 다다른 게 아니라면 저 육지는 도현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거인의 섬이 분명했다.

도현은 노를 저어 배를 댈 만한 곳을 찾다가 암초가 없는 얕은 물가를 보고는 그쪽으로 배를 몰았다.

통나무 뗏목이 떠내려가지 않게 뭍으로 끌어낸 도현은 몸을 돌려 육지를 둘러봤다.

넓게 펼쳐진 들판 뒤로 고층 빌딩 같은 거대 건축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들판을 지나 가까이 다가간 도현은 돌을 쌓아 만든 수십 미터 높이의 구조물에 자신이 아주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거인의 섬이다. 이곳은 그들이 살던 주거지의 흔적이야.”

대부분은 원형을 알기 어렵게 부서져 있었지만, 일부는 이처럼 그대로 남아서 도현을 크기로 압도하고 있었다.

거인의 유적지를 한동안 둘러보던 도현은 섬의 안쪽에 있는 숲으로 진입했다.

거목들이 자라는 숲에는 새와 동물 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나무를 타고 다니는 원숭이도 보였다.

적지 않은 규모의 섬은 그들 나름대로의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숲의 꽃밭을 지나친 도현은 얼마 후 곡식이 제멋대로 자란 넓은 곡창지대에 발을 디뎠다.

누가 돌보지 않은 지역임에도 수확을 할 수 있는 곡식들이 적지 않게 널려 있었다.

까칠한 자극을 주는 곡식의 낱알들을 한 움큼 쥔 도현은 껍질을 벗겨 입에 털어 넣었다.

쌀과 비슷한 맛의 곡식은 단단했지만 몇 번 씹자 달짝지근한 맛이 우러나왔다.

곡창지대를 통과하며 곡식으로 배를 채우던 도현은 섬뜩한 느낌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허공에서 집채만 한 바위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도현은 옆으로 몸을 굴렸다. 거대한 바위가 도현이 있던 자리에 떨어지며 큰 소리를 냈다.

쿠웅.

땅이 진동하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마치 포탄이 떨어진 것 같았다.

‘어디서 온 돌이지?’

먼지를 뒤집어쓴 도현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바위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가까운 데서부터 먼 곳까지 시선을 두었다.

그때 맹렬한 속도로 수 미터 크기의 바위가 그를 향해 재차 날아왔다.

‘저곳이다!’

구릉지처럼 보이는 야산 높이의 언덕이 저 멀리 위치해 있었는데, 그곳에서 바위가 거의 일직선으로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처음엔 포물선을 그렸다면 이번엔 레이저로 정조준을 한 듯 똑바로 날아왔다. 그 속도도 무척 빨라서 눈 깜짝할 사이에 근처까지 왔다.

콰앙.

땅에 처박힌 돌은 먼지구름을 만들며 인근을 초토화시켰다.

직경 5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구덩이를 만든 돌을 힐끔 쳐다본 도현은 시선을 언덕으로 돌렸다.

‘락제프가 말한 거인의 언덕이 저곳인가 보군.’

락제프는 거인의 섬에 관해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저 거인의 섬을 돌아다니다 보면 거인의 언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만 했다.

도현은 신법을 발휘해 빠른 속도로 거인의 언덕을 향해 질주했다.

언덕과 가까워질수록 육중한 무게감과 거대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거인의 모습이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굉장한 크기다.’

도장 건물이 5층 높이였는데, 그것보다도 한 층은 더 높아 보였다.

‘20미터 정도 되는 거인이라니.’

이제껏 상대해 본 가장 큰 덩치의 적은 8미터 급 슈빅타이런이었다. 그런데 언덕에서 그를 향해 돌을 집어 던지는 거인과 비교하면 슈빅타이런은 어린아이처럼 작은 존재에 불과했다.

쿠웅.

땅을 진동시키는 돌 공격을 피한 도현은 언덕 바로 밑에까지 접근하다가 근처에 죽어 있는 열 구 정도의 시체들을 발견했다.

‘얼음탑 마법사들이다.’

심하게 부패된 시신들은 죽은 지 상당히 오래되어 보였다.

도현은 시신들을 지나쳐 수백 미터 높이의 언덕 정상을 향해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올라갔다.

언덕 중턱쯤에 이르자 돌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대신 거인이 직접 나섰다.

가볍게 공간을 단축하고 도현의 앞에 나타난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먹을 내리쳤다.

‘빠르다!’

거대한 덩치답지 않게 거인은 놀랄 만큼 쾌속한 동작으로 도현을 단숨에 죽이려 했다.

주먹을 피해 10여 미터를 순간적으로 이동했지만, 어느새 거인의 발등이 도현의 몸을 걷어차고 있었다.

돌처럼 단단한 거인의 널찍한 발등에 스치듯 가격당한 도현의 몸이 허공으로 높게 솟구쳤다.

‘빌어먹을! 거인의 공격 범위를 너무 좁게 판단했어.’

가격당하기 직전 막대한 내공으로 몸을 휘감았지만 머리가 띵할 정도의 고통이 내장과 뼈를 휩쓸고 지나쳤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몸이 산산조각 났을 정도의 파워였다.

땅으로 추락하는 도현을 쫓아간 거인이 몸을 낮추며 권투 선수처럼 잽을 날렸다. 주먹에는 큰 바위라도 모래처럼 만들어 버릴 만큼 어마어마한 힘이 서려 있었다.

‘맞으면 끝이다.’

전신에 소름이 돋을 만큼 긴장이 된 도현은 허공에서 몸을 여러 번 비틀어 종이 한 장 차이로 거인의 주먹을 피해 냈다.

땅을 구른 도현은 일어서며 번개처럼 검을 뽑아 땅에 꽂았다. 검기가 뭉쳐 형상화된 눈부신 황금 검이 경사진 언덕의 땅을 뒤집으며 거인에게 날아갔다.

미처 피하지 못한 거인의 발에 적중한 황금 검은 큰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앙.

거인의 발이 갈라지며 진득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