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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87화 (287/575)

[287] 디 임팩트 12권 12화

털보 용병은 부담 없는 표정으로 바닥에 엎드려 신께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리드만은 턱이 뾰족한 용병을 응시했다.

“전 일곱 신의 신자가 아닙니다. 그냥 따라 들어왔을 뿐입니다.”

“그러시군요. 편히 앉아 있다가 돌아가십시오.”

리드만이 한쪽으로 물러나려는데 턱이 뾰족한 용병이 따라와 물었다.

“일곱 신의 사제님들은 치료의 능력이 있다던데요, 사실입니까? 직접 본 적이 없어서요.”

“그렇습니다. 다는 아니고 일부 사제들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요.”

“사제님은 어떻습니까?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까?”

“일곱 신이 허락하셔서 그런 작은 능력이 있습니다.”

턱이 뾰족한 용병은 미간을 좁혔다.

‘거짓말하고 있네. 그런 능력이 있다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곳에서 신전을 지어, 영주의 성이나 도시에서 신전을 짓지. 밖에 녀석과 신전으로 돈을 벌려는 사기꾼들 같은데.’

의심을 굳힌 그는 가죽 갑옷을 벗어 옆구리의 상처 부위를 보여 줬다. 붕대 위로 핏자국이 있었다.

“며칠 전에 창에 찔린 상처입니다. 꿰매고 약을 발랐지만 오래갈 것 같습니다. 정말 치료를 할 수 있다면 이걸 치료해 보겠습니까?”

리드만은 그의 시선에 의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막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신전은 치료를 해 주면 꼭 헌금을 받아야만 하는데, 괜찮겠는가?”

턱이 뾰족한 사내는 뒤에서 다가오는 딘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얼마나 말이오?”

“어디 보자. 흠, 이 정도 상처면 금화 세 개는 받아야겠지.”

“뭐라고?”

턱이 뾰족한 용병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편은 하겠지만 약을 바르고 한동안 쉬면 저절로 아물 상처였다. 용병 생활을 하며 이런 상처를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 금화 세 개라니.

“치료할 수 없으니까 이런 핑계를 대는군. 금화 세 개라고 하면 내가 거부할 거라는 것을 알고 말이야.”

“오해를 하는군. 여기 리드만 사제의 치료는 신성한 것이네. 신의 위엄을 내포하고 있지. 함부로 발휘하는 게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일단 치료의 권능을 사용하면 신을 위한 헌금을 바쳐야 하네. 그것이 금화 세 개 정도라는 거지. 치료를 받으면 상처가 그 즉시 아물고 통증이 사라질 걸세. 선택은 본인이 하게.”

리드만은 영주가 끼어들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고민하던 용병은 기도를 하는 털보 용병 쪽을 힐끔 쳐다보다가 말했다.

“믿기지 않아. 그 정도 능력이라면 왜 이런 곳에 있지? 영주나 왕의 곁에서 머물지. 당신들 수상해.”

용병은 허리에 있는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여차하면 뽑아서 피를 볼 것 같았다.

“좋다. 당신 말대로 내 상처가 바로 아물면 내가 당신들을 인정해 주지, 돈도 주고.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엔 내 검이 당신들 모가지를 썰어 버릴 거야.”

“신전에서는 말을 가려서 하시오.”

리드만이 점잖게 말을 했다.

“흥!”

턱이 뾰족한 용병은 중급 용병이었지만 일급 용병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경험과 실력을 갖춘 사내였다. 그렇기 때문에 늙은 리드만이나 몸에 무기가 없는 딘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자, 치료해 보시오!”

그는 붕대를 완전히 풀어 버리고 상처를 앞으로 내밀었다.

리드만이 허공에 신의 별자리를 찍자 상서로운 빛이 그의 손에 맺혔다.

“따끔할 거요.”

리드만의 손이 용병의 상처에 닿는 순간, 상처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잠시 후, 상처의 살들이 생기를 띠며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여 치료의 과정을 내려다보던 용병의 눈이 점점 커졌다. 믿을 수 없게도 창에 찔린 상처가 감쪽같이 나아 버린 것이다.

“흉터는 조금 남아 있을 겁니다.”

리드만이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

“수고했네.”

딘이 리드만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고개를 돌려 상처를 치료받은 용병을 응시했다.

“치료가 됐지?”

용병은 손으로 상처가 있던 부위를 만지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금화 세 개.”

딘이 헌금 상자를 내밀었다.

“진짜 금화 세 개를 내야 하는 거요?”

치료를 받아서 기쁘기는 했지만 금화를 주려니 용병은 가슴이 쓰라렸다.

“일곱 신은 약속을 저버린 자를 끝까지 처벌하시네.”

리드만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행여나 그가 엉뚱한 행동으로 영주를 자극할까 봐 경고성 말을 한 것이다.

한동안 갈등을 하던 턱이 뾰족한 용병은 주머니에서 금화 세 개를 꺼냈다.

금화를 든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용병은 몸이 생명이지. 창에 찔리지 않게 다음엔 조심하게.”

헌금 상자로 돈을 받은 딘은 기도를 끝내고 막 일어서던 털보 용병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다리를 좀 다쳤군.”

“도끼가 다리를 스쳐서요.”

기도를 하면서도 한쪽 귀로는 옆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들은 그는 딘에게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왠지 이들이 보통 사람들 같지 않아서였다.

“리드만 사제, 조금 쉬었다가 이 사람도 치료해 주시게.”

“괜찮습니다.”

금화 세 개를 달라고 할까 봐 겁이 난 털보 용병이 손사래를 쳤다.

“여기 기도에 대한 헌금입니다.”

딘이 들고 있는 헌금 상자에 은화 한 개를 집어넣은 그는 서둘러 신전을 빠져나갔다. 턱이 뾰족한 용병도 긴 한숨을 내쉬며 털보 용병의 뒤를 쫓아 신전을 나갔다.

딘이 헌금 상자를 열어 안에서 금화와 은화를 꺼냈다.

“꽤 짭짤하군.”

“금화를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영주님. 그 용병은 목숨을 걸고 번 돈인데요.”

“그럼 돌려줄까?”

“아닙니다, 영주님. 신전도 완성됐는데, 오늘은 용병 시장에 가서 그 돈으로 푸짐하게 음식을 사 먹지요.”

리드만이 홀쭉해진 배를 잡고 말을 했다.

“이게 다 자네가 모시는 일곱 신이 보내 주신 선물이네. 어쩌면 저들은 죽었을 운명일지도 몰라. 그들을 살려서 이쪽으로 보낸 이유는 굶주린 우리에게 바로 이 돈을 주시려는 목적이었던 거지.”

딘이 반짝이는 금화를 리드만에게 모두 넘겼다.

그때 신전의 문이 열리며 상인으로 보이는 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가 일곱 신의 신전입니까?”

“험, 그렇습니다. 들어오시지요.”

금화를 품에 넣은 리드만이 자비로운 미소로 상인을 맞이했다.

악취꽃

도현 일행은 고대 도시로 돌아오며 락제프의 3층 비밀 서재에 있던 고대 마법서와 지식이 담긴 책들을 나무 상자에 담아 숲 한 곳에 숨겨 놨다. 그들이 없을 때 누군가가 협곡 위 고요의 숲에 있는 락제프의 집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수천 년간 협곡의 돌다리를 건넌 인간들의 흔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야 했다.

리타는 몇 권의 책만 가방 속에 넣어 왔다. 서재에 있는 책의 내용들을 락제프가 알려 준다고 하니, 굳이 그 많은 고서들을 챙겨 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며칠 후 그들은 고대 도시에 도착했다.

-내가 다시 이곳에 올 줄이야.

락제프가 회한이 깃든 음성으로 말했다.

강 건너 방벽이 쳐진 고대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옛 도시 왕국인 라빌의 자취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립나요?”

자수정을 들고 있던 리타가 물었다. 그녀 옆에는 도현과 짐브리오가 서 있었다.

-그립지는 않다. 내게 라빌은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욕망에 찌든 왕이 죽고 왕실의 형제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다 최후를 맞이한 곳이니까.

도현은 리타의 손에 들린 자수정을 쳐다봤다. 왕실에 왜 원한을 갖게 됐는지 락제프는 여전히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다.

며칠 전 만화를 그려 주고 신전의 대사제와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아내긴 했지만, 그 뒤로는 개인적인 이야기는 일절 해 주지 않았다.

‘고대 몬스터를 동원해 왕실을 공격했다면 그 이유가 가볍지는 않았을 거야.’

도현은 고대 지도를 살피는 짐브리오에게 시선을 돌렸다.

“신전 지역이 그대로인지 확인해 볼까요?”

“당연히 그래야겠지. 가 보자고.”

그들이 없는 사이 팔리지 않은 신전 지역의 땅이 누군가에게 팔렸을 수도 있다.

강을 건너 고대 도시로 진입한 그들은 남의 이목을 생각해 락제프의 영혼이 담긴 자수정을 감췄다.

고대 지도에 표시된 신전의 위치는 발굴 중인 도시의 동쪽 귀퉁이의 작은 땅이었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발이 푹푹 들어가는 늪지대가 넓게 포진하고 있었다.

발굴하기 까다롭고 고대 도시의 중심부로 볼 수 없는 지역이기에 사람들이 외면한 장소다.

땅값이 싸면 그래도 누군가는 사서 발굴을 시도라도 했겠지만 브링틱의 원로들은 크게 가격을 낮추지도 않았다.

땅은 비싸고 발굴은 어렵고, 위치도 그렇게 썩 좋지도 않다. 팔리지 않은 땅들은 그만한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아직 그대로군. 땅을 매입한 사람이 없나 보다. 잘됐어.”

나뭇잎을 둘둘 말아 콧구멍을 막은 짐브리오가 재채기를 참으며 말했다.

“냄새가 너무 나는데? 여기 왜 이러는 거야?”

손으로 코를 막은 리타가 주변을 둘러봤다.

“왜긴 왜야? 늪에서 자라는 악취꽃 때문이지.”

짐브리오가 늪가에 있는 분홍색 꽃을 가리켰다.

“예쁜데 냄새는 독하네. 근데 정말 여기 밑에 신전이 있어?”

리타가 악취꽃을 따서 도현에게 걸어가는 짐브리오의 손에 쥐여 줬다.

“위치로 보면 여기야.”

악취꽃을 리타에게 다시 집어 던진 짐브리오가 늪을 바라보는 도현 옆에 섰다.

“무슨 생각 해?”

“늪요. 다른 곳은 흙과 돌을 치우면 되지만 여긴 …….”

도현이 도처에 널려 있는 늪을 둘러봤다.

“발굴에 신경을 좀 써야겠어요.”

“뭐 그렇긴 하겠지. 하지만 걱정 마라. 이거 보기보다 쉬워. 이쪽 늪지대는 비가 오거나 그럴 때 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생긴 거거든. 땅을 깊게 파서 여러 개의 배수로를 만든 다음, 늪지대에 고인 물들을 빼내면 돼. 진흙들이야 조심해서 퍼 올리면 되고.”

자신감 있게 말을 하던 짐브리오는 크게 재채기를 했다. 그 영향으로 콧구멍을 막아 둔 나뭇잎 뭉치들이 저만치 날아갔다.

“냄새 한번 지독하다. 발굴 전에 이놈의 악취꽃 먼저 제거해야겠다.”

“전 견딜 만한데요?”

도현이 장난스럽게 미소를 보였다.

“그만 나가자. 더 있다가는 미치겠다.”

일행과 함께 늪지대를 빠져나온 도현은 베일 가문의 땅으로 가는 길 앞에 섰다.

짐브리오와 리타는 용병 시장 외곽의 거처로 가고, 그는 반돌로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금화 10만 개에서 물러나면 안 된다. 그 정도 가치는 있는 곳이니까 말이야.”

고대 왕궁의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금화 10만 개를 요구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큰 금액이었지만 왕궁에 잠들어 있을 여러 보물들을 생각해 보면 그리 큰 액수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었다.

“걱정 마세요.”

빙그레 웃어 보인 도현은 몸을 돌려 베일 가문을 향해 움직였다.

베일 가문의 진영에는 반돌로가 없었다. 그는 일이 있어 브링틱 성으로 외출을 한 상태였다.

‘기다려야겠군.’

반돌로의 부관을 만나 그가 언제 올지 잠시 얘기를 나눈 도현은 지휘소를 나섰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발굴 현장으로 향했다.

발굴 현장은 지휘소와 상당히 떨어진 곳이라서 제법 걸어야 만했다.

도현은 축구장 서너 개 면적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발굴 현장을 눈으로 가볍게 훑었다.

하늘로 먼지가 뿌옇게 올라올 만큼 현장은 전쟁터처럼 치열하고 열기가 뜨거웠다.

그가 없었지만 베일 가문은 예정대로 고대 왕궁을 발굴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한 지 며칠 안 된 상태였지만 축구장 서너 개 면적이 지하 3미터 깊이 정도로 고르게 파 들어간 상태였다.

그곳에서 나온 많은 흙들은 가까운 방벽에 토성처럼 쌓이고 있었다.

‘왕궁은 지금 발굴하는 넓이보다 훨씬 더 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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