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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93화 (293/575)

[293] 디 임팩트 12권 18화

야망이 큰 장남 카심은 동생과 손을 잡고 씨드를 손에 넣을 궁리를 할 게 뻔했다. 그가 말린다 해서 멈출 아이들이 아니었다.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던 올라르는 이마에 주름을 깊숙이 만들며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도현과 딘이 원로들의 결정을 기다리며 여관에 머무는 며칠 사이, 회오리바람이 사라지고 강을 통한 뱃길이 다시 열렸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여관에도 배를 타고 온 외지의 사람들이 숙박을 위해 들어왔다. 두 달 넘게 지속된 뱃길 중단이 막을 내리며 브링틱 성으로 상인들과 용병들이 빠르게 유입된 것이다.

도현은 여관 3층에서 거리를 내려다봤다.

‘어제보다 거리에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어.’

뱃길이 열리기를 기다린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린 것 같았다.

‘뤼호른 가문은 포기를 했을까?’

그들은 싸움에 패하고 고대 도시의 땅까지 전리품으로 빼앗겼다. 그러나 이제 뱃길을 통해 언제든지 병력을 투입할 수 있게 된 상황이다. 설욕전을 준비할 수도 있었다.

해가 기우는 거리를 한동안 응시하던 도현의 눈빛이 반짝였다.

‘짐브리오다.’

변장을 했지만 덩치 큰 짐브리오 특유의 걸음걸이는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때마침 고개를 든 짐브리오와 도현의 시선이 마주쳤다. 히죽 웃어 보인 짐브리오는 여관으로 들어가 도현을 만났다. 우연한 만남은 아니었다. 사전에 이 여관으로 짐브리오가 찾아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딘은?”

“옆방에서 자고 있습니다.”

“팔자 좋군.”

짐브리오는 모자를 벗으며 도현의 방에 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치료는요?”

“리드만 사제 대단하던데, 한 달은 더 쉬어야 될 대장과 로나가 지금은 뛰어다녀도 될 만큼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어.”

도현이 미소를 지었다.

“잘됐네요. 어디에 있습니까?”

“용병 시장으로 갔다. 나중에 만날 수 있을 거야. 땅은 어떻게 됐지?”

“아직 결정이 안 됐습니다. 내일 관청에 가 보려고요.”

도현은 며칠 전 관청의 관리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해 줬다.

“별일 없어야 하는데 말이다. 땅을 못 사면 골치 아파지거든. 몰래 발굴할 수 있는 장소도 아니고.”

“괜찮을 겁니다.”

“누가 왔나?”

딘이 문을 열고 등장했다. 낮잠을 길게 자고 일어난 그는 기지개를 펴며 걸어 들어왔다.

“어제 뭐 했기에 이 시간에 잠을 자고 있었던 거요?”

“뭐 하긴, 도박장에서 돈 잃고 아침까지 술을 마셨지.”

“잘하는 짓이오. 딱 보니 도현이 벌어 온 보석을 팔아서 돈을 물 쓰듯 하고 다니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마시오. 영주 체면 따지는 사람이 아랫사람이 힘들여 번 돈을 그리 쓰면 되오?”

“아랫사람이라니? 누가 아랫사람이란 말인가? 난 친구의 돈을 잠시 빌려 쓴 것뿐이네.”

“친구?”

짐브리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현과 난 친구 사이라고.”

“억지 부리지 마시오. 영주란 자가 얼굴이 두껍기는.”

짐브리오의 독설에 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둑놈 주제에 어디 감히 영주에게.”

“헛소리 집어치우고 얼른 나가서 술이나 한잔합시다. 어제 돈을 잃었다는 그 도박장도 알려 주고. 이따가 내가 가서 잃은 돈 모두 회복해 주겠소.”

“자네에게 그럴 만한 재주가 있나?”

“도박하면 바로 나요.”

짐브리오와 딘은 죽이 맞아 도박 얘기로 웃고 떠들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도현은 자신의 품에 있는 보석함에 손이 갔다.

‘또 돈이 나가겠군.’

변장을 한 짐브리오는 관청 밖에서 약간 초조한 눈빛으로 도현을 기다렸다.

변수가 없는 한 땅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중요한 일이다 보니 긴장이 됐다.

밤새 도박장에서 시간을 보내 충혈된 눈동자로 관청의 입구 방향을 힐끔거리던 그의 걸음이 멈췄다. 뒷짐을 진 세련된 복장의 딘과 호위로 따라 들어간 도현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됐냐?”

짐브리오가 급히 물었다.

“잘됐습니다. 신전 지역의 땅은 우리 것이 됐습니다.”

도현이 웃으며 말하자 짐브리오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빌어먹을, 됐어! 이제 론의 지팡이는 우리 것이다.”

“아예 고함을 치고 다니게, 거리에서 큰 소리는.”

딘의 지적에 짐브리오가 헛기침을 하며 멀쩡한 모자를 고쳐 썼다.

“도현, 용병 시장으로 가기 전에 일꾼용 몬스터를 구해 놓자.”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꾼용 몬스터는 빠른 발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은 베일 가문에 일꾼용 몬스터를 공급해 준 상인을 찾아가 딘의 이름으로 일꾼용 몬스터 수십 마리를 계약한 다음 용병 시장으로 향했다.

얼음탑

수백 명의 용병이 검과 활 대신 톱과 도끼를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더워지는 날씨에 웃통을 벗어 던진 그들은 사내다움을 뽐내며 늪지대 외곽에 적지 않게 분포해 있는 숲의 나무를 벌목했다.

도현과 어베인은 숲을 돌아다니며 그런 용병들을 지켜보았다.

땅을 산 지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신전 지역의 발굴을 위한 기초공사가 한창이었다. 숲도 구입한 땅의 일부로 그들의 소유였다.

“벌목장 같군요.”

“그렇다고 해도 무방하겠지. 이 숲의 나무들을 다 잘라 내기 전까지는 말이야.”

벌목한 나무들은 4미터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일꾼용 몬스터들이 달라붙어 발굴지 한쪽에 마련된 목재소로 옮겼다.

목재소에서는 임시로 고용된 수십 명의 목공들이 나무들을 여러 규격에 맞춰 잘라 냈고, 그것들은 다시 공터로 옮겨져 발굴지 인원들이 머물 집을 짓는 데 사용됐다.

현재는 수백 명의 용병들이 집 없이 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별 불만이 없었다. 다른 곳보다 보수가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꾼용 몬스터들이 주변에 돌아다녀서 불안하긴 했다.

“이틀이면 7백 명의 용병이 머물 숙소가 완성될 걸세. 우리가 잠을 잘 그럴듯한 집도 생기고.”

어베인과 짐브리오 로나, 리타, 딘, 리드만, 도현은 모두 이곳에 한데 몰려 있었다. 그들이 살 공간도 필요했다.

“나무가 넘어간다! 조심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거친 용병들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도현이 말했다.

“외곽에 방벽을 쌓는 데 나무가 부족하지는 않겠습니까?”

“우리가 산 땅은 다른 곳과 비교하면 그리 넓은 편이 아니야. 이쪽 숲과 짐브리오와 로나가 간 저쪽 숲의 나무면 충분할 거라고 보네.”

도현은 손에 들고 있는 지도를 펼쳤다. 그들이 산 땅이 큰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방벽을 칠 곳과 숙소가 들어갈 장소 그리고 발굴을 시작할 지점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었다.

“도현, 고맙네.”

“예?”

지도를 보고 있던 도현이 고개를 들어 푸른 눈의 어베인을 응시했다.

“돌이켜 보면 모두 자네가 힘을 써서 여기까지 온 거야. 자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

“아닙니다. 모두가 힘을 합한 결과죠.”

“겸손하기는.”

어베인은 넉넉한 미소를 지었다.

“자넬 처음 봤던 그때가 떠오르는군. 그땐 검술이 조금 뛰어난 도둑으로 봤는데, 갈수록 실력이 성장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내가 감히 평가할 수가 없는 수준이 되어 버렸어.”

“억울합니다, 대장. 그땐 정말 도둑이 아니었습니다.”

도현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그게 뭐 중요한가? 우리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됐다는 게 중요하지.”

어베인은 숲을 벗어나 신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늪지로 천천히 걸어갔고, 그 뒤를 도현이 따라갔다.

“로나가 그러더군. 씨드 때문에 그 위험한 거인들과 싸워야 한다면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이야.”

“로나가 말입니까?”

도현은 살짝 놀라며 대꾸했다. 그녀는 자신 앞에서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었다. 그저 밝은 얼굴로 짐브리오와 우스갯소리를 하며 깔깔대기 바빴다.

“고대 도시를 돌아다닐 때만 해도 씨드는 한낱 희망 사항에 불과했네. 그런데 고대 마법사의 영혼이 거인의 섬을 알려 주고 자네가 다녀오면서 상황이 달라졌어.”

어베인은 악취가 풍기는 늪지 앞에 멈춰 섰다.

“씨드가 마음속으로 그리는 환상이 아니라 실제가 되어 버린 거네. 그녀 입장에서는 당혹스럽고 무서울 걸세. 대적할 수 없는 무서운 거인을 향해 우리가 달려가는 게 꼭 죽으러 가는 것처럼 느껴질 테지. 그 모든 게 그녀 때문에 시작된 일이라는 부담감을 떨칠 수 없는 거야.”

“로나 때문만은 아닙니다.”

도현이 차분히 말했다. 그녀 심정이 어베인의 말속에서 깊이 느껴졌다.

한동안 말없이 늪지를 바라보던 어베인이 입을 다시 열었다.

“나는 로나를 친자식처럼 사랑하지만 자네를 계속 사지로 몰아넣고 싶진 않네. 자네가 우릴 위해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어베인은 몸을 돌려 도현을 따뜻하게 바라봤다.

“씨드를 단념하는 건 어떤가?”

“대장.”

“자넨 씨드 없이도 몬스터를 잡으며 계속 성장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위험을 무릅쓰고 씨드에 매달릴 이유가 없겠지. 결국은 우리 때문이 아닌가?”

“누구 때문이라는 이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씨드를 원하고 그것이 거인의 섬에 있다면, 그걸 위해 저는 갈 겁니다. 전력을 다해 보지도 않고 중도에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이건 로나와는 관련이 없는 저의 의지니까요.”

굳건한 힘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어베인은 그 눈빛이 그렇게 눈부셔 보일 수가 없었다.

어베인은 팔짱을 끼며 늪지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말이 없던 그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끝까지 가 보세.”

브링틱 성에서 출발한 마차 다섯 대가 어두워질 무렵 고대 도시에 있는 플레온 가문의 진영에 도착했다.

마차 문이 열리며 안에 타고 있던 서른 명가량 되는 얼음탑 마법사들이 내렸다. 그들 중에는 얼음탑주와 고위 마법사들인 차기 탑주 후보들도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탑주님.”

기다리고 있던 로스가 정중히 인사한 뒤 튼튼히 지어진 3층 규모의 건물 안으로 탑주와 고위 마법사들을 안내했다. 그들이 오늘 밤 머물 장소였다.

“시장하실 것 같아서 식사를 준비해 놨습니다. 방으로 들여보낼까요?”

“고맙군. 그래 주겠나?”

얼음탑주의 방은 로스가 사용하던 곳으로 다른 방과 달리 넓고 회의용 탁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늦은 저녁을 먹은 탑주는 그의 방으로 들어오는 샤비엔다와 베져스, 후투, 드비오, 카샨을 응시했다.

“다들 왜 이곳으로 온 건가? 덜컹거리는 마차를 타고 오느라 피곤할 텐데, 쉬지 않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여마법사 샤비엔다가 주름진 얼굴로 답했다.

“다들 그쪽 의자에 앉지.”

긴 회의용 탁자의 의자를 빼서 앉는 다섯 명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탑주는 느릿한 움직임으로 상좌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 할 말들이 뭔가?”

탑주가 말을 했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서로 간에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샤비엔다, 자네가 대표로 말을 해 보게.”

탑주의 지목을 받고서야 허리가 약간 굽은 여마법사 샤비엔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탑주님, 저희들은 탑주님의 지시라면 어떤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얼음탑의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알고 있네. 난 자네들의 충성심을 의심한 적이 없어.”

“그렇다면 저희들에게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조금이라도 알려 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저희들은 거인의 섬을 다녀왔습니다. 탑주님의 목적도 알고 있고요. 힘을 합해 탑주님을 돕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탑주님은 저희에게 아무런 말씀도 해 주시지 않아서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고대 왕궁을 차지해야 하는 이유가 그곳의 가치 때문인지, 아니면 마법의 결계를 푸는 열쇠가 그곳에 존재해서인지, 저희들은 아무런 언질도 받은 게 없습니다.”

“서운했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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