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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97화 (297/575)

[297] 디 임팩트 12권 22화

도현이 뒤돌아서는 순간, 허공에서 샤비엔다가 백발을 휘날리며 뚝 떨어졌다.

10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두고 도현의 앞을 가로막은 그녀는 베져스와 후투의 시신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네놈이, 네놈이 기어이 저들을 죽였구나! 으아아아!”

샤비엔다는 미친 듯이 고함을 내질렀다.

설마 하면서도 용병 하나쯤은 저들이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렇게 죽다니.

그녀를 지지하는 베져스와 후투는 젊었을 적부터 함께 얼음탑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이다. 그들이 죽었으니 어디 가서 친구들을 또 사귈까.

차가운 그녀의 마음에 분노와 서글픔이 차올랐다.

그녀는 검을 들고 다가오는 도현을 원한에 찬 눈빛으로 노려봤다.

“널 죽여 친구들의 넋을 위로하겠다.”

“친구라니 유감입니다. 하지만 진짜 유감은 당신이 여길 공격했다는 겁니다.”

“괘씸한 놈!”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시작합시다.”

도현은 멀리서 싸우고 있는 케일 경과 반돌로를 힐끔 쳐다보고 바람처럼 공격을 시작했다.

그가 기억하기로 카샨은 반돌로를 손쉽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마법사다. 그런데도 여태껏 상대하고 있다는 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다.

그 이유가 뭐든 그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샤비엔다를 상대하고 저들을 구하러 가야 하니까.

수십 개의 얼음 사슬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지만 도현의 검 앞에서는 맥없이 사라져 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얼음 사슬의 벽을 통과한 도현은 눈앞에 보이는 샤비엔다를 향해 검을 부드럽게 휘둘렀다.

까아앙!

‘막혔다.’

도현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허공에 거꾸로 서 있는 얼음 여신이 푸른색 검을 들고 도현의 검을 막고 있었다.

그 틈에 샤비엔다는 발밑에 생성된 얼음 사슬을 타고 허공으로 둥둥 떠올랐다.

“베져스와 후투가 만든 얼음 여신은 그저 흉내만 낸 것일 뿐이다. 하지만 내 마법은 완벽한 것. 널 완벽한 얼음의 여신으로 죽여 주겠다.”

허공에 거꾸로 서 있던 얼음의 여신이 땅에 착지하자 육중한 울림이 퍼졌다.

‘크다. 족히 5미터는 넘어 보인다.’

베져스와 후투가 만든 얼음 여신은 3미터 정도였지만, 샤비엔다의 것은 거의 두 배나 더 컸다.

게다가 긴 팔이 네 개나 됐고, 그 손에는 도현의 내공이 실린 검에도 부서지지 않았던 검이 들려 있었다.

시리도록 투명한 눈동자를 가진 얼음 여신을 마주한 도현은 그 너머에 보이는 샤비엔다에게 말했다.

“허공에 있다 해서 안전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시오.”

도현의 손을 떠난 검 한 자루가 얼음 사슬을 타고 공중에 떠 있는 샤비엔다에게 쾌속하게 날아갔다.

그녀가 얼음 사슬을 조종해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비검술은 끈질기게 그녀의 뒤를 쫓아가며 위협을 가했다.

“흥!”

샤비엔다는 지팡이를 흔들었다.

휘리리릭.

얼음 여신이 네 개의 검을 동시에 휘두르며 도현을 압박했다.

쿠우웅.

도현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나며 얼음 여신의 검이 박혔다. 검이 박힌 자리가 새하얗게 얼어 버렸다.

콰콰콰콰.

4개의 검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가며 도현이 피하는 자리마다 꽂혔다.

도현은 샤비엔다를 향해 날려 보낸 검을 회수했다. 얼음 여신을 상대하며 비검술을 원활하게 펼칠 수는 없었다.

“네놈의 검은 마법을 절대 이길 수 없다!”

도현이 피하기만 하자 샤비엔다가 산발이 된 얼굴로 미친 듯이 웃으며 외쳤다. 그녀가 평소에 보이던 말수 적고 진중했던 모습은 친구를 잃고 손과 어깨에 부상을 입으며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장담하지 마시오.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도현은 5미터 급 전투 몬스터를 비롯해 6미터, 8미터 급 슈빅타이런도 다수 상대해 봤다. 그래서 적의 크기가 어떻다 해서 겁을 먹거나 위축되지는 않았다.

‘팔이 많으면 다리를 상대해 주지.’

몇 번 회피하며 얼음 여신을 상대할 방법을 궁리하던 도현은 검에 내공을 더욱 주입시켰다.

거인의 섬에서 거인을 상대할 때만큼의 내공이 주입되자 그의 검이 파랗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내공의 힘을 견디지 못해 부르르 떨리는 검신이 검명을 토해 냈다.

어둠을 밀어내는 검을 양손에 하나씩 든 도현은 얼음 여신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쾅. 쾅쾅.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도현의 몸을 스치듯 지나가며 네 개의 검들이 연속해서 꽂혔다.

‘차갑다.’

얼음의 여신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의 영향으로 가죽 갑옷이 쩌적 소리를 내며 얼어붙었다. 도현의 움직임이 조금만 늦었다면 그 냉기가 피부 깊숙이 타고 들어왔을 것이다.

“그만 돌아가라!”

파랗게 불타오르는 도현의 검이 얼음의 여신 다리 사이를 스치듯 통과했다.

우저저적.

단단하기 이를 데 없었던 얼음 여신의 다리에 균열이 일어났다. 도현이 다리 사이를 통과하며 내공이 집약된 검으로 무려 마흔여덟 번이나 가격한 것이다.

균열이 일어나던 다리가 잠시 뒤 조각조각 부서졌고, 한쪽 다리를 잃은 얼음 여신은 기우뚱하며 땅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샤비엔다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거의 모든 공격을 견뎌 낼 만큼 단단한 얼음 여신이 도현의 검을 견디지 못한 게 믿기질 않았다.

얼음의 여신을 다시 만들기에는 마력이 부족했다.

“마법이…… 검에 눌리다니.”

그녀는 평생 처음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콰아아앙!

도현이 동시에 집어 던진 두 자루 검이 기우뚱하게 주저앉은 얼음 여신의 미간에 박혔다.

챙그랑.

거대한 얼음의 여신이 사라지며 그 자리에 도현의 검이 떨어졌다.

“이제 당신과 나 사이를 가로막을 존재는 없군요.”

도현의 말이 샤비엔다는 그렇게 차갑게 들릴 수가 없었다.

“끝을 봅시다.”

허리를 굽혀 검을 집어 든 도현이 얼음 사슬을 타고 허공에 떠 있는 샤비엔다를 올려다봤다.

그가 비검술을 발휘해 공중에 있는 샤비엔다를 공격하려는 찰나, 뒤에서 돌연 음습하고 차가운 기운이 덮쳐왔다.

옆으로 순간 이동을 하듯 몸을 뺀 도현이 뒤를 돌아봤다.

그가 있던 자리가 빙판처럼 얼어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카샨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마법사가 서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됐지?’

도현은 급히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들은 조금 전까지 반돌로와 케일 경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저들이 여기로 왔다는 건 그들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케일 경과 반돌로 둘 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죽었나?’

반돌로는 쓰러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케일 경만은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도현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손에 쥔 검을 허공으로 날렸다.

도현의 검이 얼음 사슬을 타고 하늘에 떠 있는 샤비엔다를 노리고 날아가자 드비오가 크게 외쳤다.

“이쪽으로 오시오, 샤비엔다!”

“지금까지 시간을 질질 끌다가 이제야 날 도우려고 왔나! 이 한심한 작자들아!”

샤비엔다는 카샨과 드비오가 오늘 싸움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을 감지한 지 오래였다.

베져스와 후투의 죽음이 꼭 그들 책임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갈수록 최선을 다하지 않은 그들에게 화가 쌓여 갔다.

하늘에서 그들에게 화를 내며 얼음 사슬을 조종하던 그녀는 도현의 검을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놓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어디로 갔지?’

그녀가 위기감에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던 순간, 멀리 거리를 두고 선회하던 검이 도현의 손짓에 따라 그녀의 등을 향해 바람처럼 날아갔다.

“피하시오!”

드비오가 고함을 치며 지팡이를 바닥에 꽂았다. 그의 전신에서 눈부신 빛이 흘러나와 지팡이를 감싸더니 지팡이가 거대한 얼음 뱀으로 화해 도현을 향해 쏜살처럼 기어갔다.

뱀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서리가 내린 듯 하얗게 변해 버렸다.

카샨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주문을 외우며 손바닥으로 바닥을 내려치자 날개폭이 5미터 가까이 되는 투명한 얼음 독수리가 나타나 도현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갔다.

드비오와 카샨은 강한 용병으로 소문난 도현이지만 베져스와 후투를 그렇게 단번에 죽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들이 나서기도 전에 그냥 허무하게 죽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쁘긴 했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었다. 어찌 됐든 이번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샤비엔다가 나섰기에 그들은 그녀를 믿었다. 그녀의 마법은 높은 경지에 이르렀고, 용병이 베져스와 후투는 죽였다 하더라도 몸이 멀쩡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용병은 자유롭게 움직였고, 그의 검은 거칠 게 없었다.

샤비엔다의 얼음 여신이 부서지는 것을 본 그들은 지체 없이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섰다. 그녀가 죽으면 용병의 칼이 어디로 향할지 너무도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여기서 죽으면 탑주의 진노가 살아남은 그들에게 집중될 것이다. 드비오나 카샨은 어떡하든 그런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도현은 커다란 얼음 뱀과 독수리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목표로 한 샤비엔다를 포기하지 않았다.

‘세 명보다는 두 명과 싸우는 게 낫겠지.’

이 마법사들은 결코 약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힘을 합할 기회를 주면 그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다.

샤비엔다가 허공에서 그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도현은 한 손으로는 비검술을 계속 펼치며, 다른 한 손으로는 강력한 장풍을 만들어 연속해서 날려 보냈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며 얼음 뱀과 독수리가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샤비엔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현의 비검술에 당한 그녀의 옆구리에서 피가 비처럼 땅으로 떨어졌다.

창에 당한 부상으로도 힘겨웠던 그녀는 옆구리마저 검에 당해 쩍 벌어지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법의 힘이 약화되자 그녀를 하늘에서 떠받치고 있던 얼음 사슬도 그녀의 몸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치명상은 아니야.’

냉정한 눈으로 땅을 구르는 샤비엔다를 응시하던 도현이 비검술을 한 번 더 발휘했다.

비틀거리며 땅에 떨어진 지팡이를 손으로 움켜쥐던 샤비엔다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도현의 검에 몸이 굳어졌다. 마나의 흐름이 이어지지 않아 마법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내가 죽어도 탑주가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저주 서린 외침을 한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가까워지는 검을 노려봤다.

뒤에서 지켜보던 드비오와 카샨은 다급해졌다. 도현이 그들이 만든 얼음 뱀과 독수리를 회피하며 끝까지 샤비엔다를 노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샤비엔다의 앞에 얼음벽을 겹겹이 세워 도현의 검을 막으려고 했지만, 작정을 한 도현의 비검은 그 모두를 부수고 샤비엔다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샤비엔다가 죽음을 목전에 둔 절체절명의 그 순간, 갑자기 땅속에서 거대한 얼음 장벽이 솟구쳤다.

콰아앙.

도현의 비검은 가로세로 수십 미터 높이로 솟구친 거대한 얼음 장벽에 힘없이 튕겨져 나갔다.

달빛에 고고하게 서 있는 얼음 장벽은 베일 가문의 방벽보다 더 높아서 마주 보고 있는 도현을 아주 초라하게 만들어 버렸다.

웅장하고 힘이 느껴지는 수십 미터 길이의 높은 얼음 장벽은 짙은 푸른색이어서 그 뒤에 있는 샤비엔다의 존재를 완전히 가려 버리는 효과도 있었다.

‘누가 이런 마법을?’

범상치 않은 마법에 도현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아무리 마법이라지만 이처럼 거대한 얼음 장벽을 단숨에 만들어 버리다니, 누군지 몰라도 대단한 마법사임에 틀림없었다.

‘얼음 장벽 꼭대기에 누군가 서 있다.’

도현이 그 사실을 파악했을 때 수십 미터 높이의 얼음 장벽 위에서 낮게 깔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이 무슨 황당한 일이지? 부끄럽지도 않나!”

“죄송합니다, 탑주님!”

드비오와 카샨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샤비엔다, 고작 이런 곳에서 그런 부상을 입어서야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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