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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98화 (298/575)

[298] 디 임팩트 12권 23화

탑주의 질책에 어깨와 옆구리에 부상을 당한 샤비엔다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외쳤다.

“죽여 주십시오, 탑주님! 얼음탑의 명예를 실추시켰습니다!”

“답답한 사람 같으니라고.”

탑주는 얼음 장벽 위에서 샤비엔다를 내려다보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베져스와 후투는 어디 있기에 보이지도 않는가?”

카샨은 대답이 없는 샤비엔다와 드비오를 대신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들은 죽었습니다!”

“죽어?”

탑주의 시선이 얼음 장벽 밑에 서 있는 도현에게 향했다. 조금 전 베일 가문의 땅에 들어왔다가 샤비엔다의 위급함을 보고 그녀를 구해 줬다. 상황을 보니 저 사내의 짓인 것 같았다.

“네놈이 한 짓이냐?”

“그렇소.”

도현은 짧게 대답하고는 장벽 위에 오만하게 서 있는 탑주를 응시했다. 고대 몬스터를 추적하다가 숲에서 본 범상치 않았던 노인이었다. 누군가 했더니 그가 바로 얼음탑주였다.

‘역시 거인의 섬 일에 얼음탑주가 관여되어 있었어.’

딘이 20여 년 전 일을 얘기해 주며 얼음탑주의 무서움을 강조했었다. 수천 명을 얼리고 강에 익사시켜 버린 자.

실력만큼 손 속도 독하기 그지없으니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마주치지 않는 게 제일 좋다고 강조했는데, 결국은 만나 버렸다.

“감히 얼음탑 사람에게 손을 대다니.”

“난 보수를 받은 만큼 일을 할 뿐입니다.”

“네놈이 소문의 그 용병인가 보구나. 하지만 넌 길을 잘못 들었다.”

탑주의 회색빛 눈동자가 점점 투명하게 변해 갔다.

“드비오, 카샨, 너희들은 샤비엔다를 돌봐라.”

“알겠습니다.”

탑주는 도현에게 다시 시선을 뒀다.

“이곳이 너의 무덤이 될 것이다.”

“나는 이곳에 무덤을 세울 수 없소. 다른 사람의 무덤이라면 모를까.”

도현이 검 손잡이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 예상됐지만 진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싸움은 기세. 내가 움츠려들면 가진 힘도 다 발휘하지 못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냉정하게 검을 써야 한다.’

겪어 보지도 않고 탑주의 명성에 눌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륙에서 수위로 꼽힌다는 대마법사인 얼음탑주가 갖는 무게감이 적지 않아서 도현은 긴장감을 아예 없앨 수는 없었다.

도현은 베져스나 후투, 샤비엔다와 싸울 때와는 또 다른 자세로, 임박한 탑주와의 싸움을 준비했다.

얼음 장벽에 막혀 튕겨져 나온 검은 이미 그의 수중에 들어와 있었다.

두 자루 검을 들고 투지를 일으키는 도현을 내려다보던 탑주가 싸늘하게 미소를 지었다.

“진정한 얼음탑의 힘을 보여 주마.”

탑주의 모습이 얼음 장벽 위에서 사라졌다. 도현은 고요한 눈빛으로 주변에 흐르는 공기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모습을 감춘 탑주의 기습 공격에 대비하던 도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땅이 진동하고 있었다.

도현은 전면을 응시했다. 진동의 근원지는 얼음 장벽이었다.

‘얼음 장벽이…… 커지고 있다.’

얼음 장벽의 길이와 높이가 끝없이 커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점차 두께도 두꺼워졌다.

구구구구궁.

처음 20미터 정도 되어 보이던 얼음 장벽의 높이가 어느새 그 두 배는 되어 버렸다. 그러고도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도현의 뇌리에 강을 얼려 버렸다는 딘의 말이 떠올랐다.

밤하늘의 달빛을 가릴 정도로 커진 얼음의 장벽이었지만 그것도 성에 차지 않은 듯 멈출 기색이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 가로로 수백 미터는 커진 얼음 장벽은 급기야 베일 가문의 울타리라 말할 수 있는 나무 방벽까지 도달했고, 그것을 가볍게 부수며 뻗어 나갔다.

쿠쿠쿠쿵쿵.

방벽을 부수며 뻗어 나가던 얼음 장벽이 서서히 확장을 멈췄다.

도현은 얼음 장벽의 꼭대기를 볼 수 없었다. 그 높이가 수백 미터는 되어서 아무리 고개를 젖히고 보아도 확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체 어쩌자는 거지? 설마?’

도현은 손에 든 검을 거두고 즉시 멀리 떨어져 있던 케일 경과 반돌로를 향해 뛰어갔다. 신법을 발휘했기 때문에 그 빠르기가 전광석화 같았다.

“반돌로 경!”

엎어져 있는 반돌로를 뒤집었지만 그의 심장은 커다랗게 구멍이 나 있었다. 눈을 부릅뜬 그는 호흡이 끊겨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딸을 소개시켜 주겠다며 사적인 관심을 보였던 반돌로는 끝내 죽음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편히 잠드시길.”

도현은 반돌로의 뜬 눈을 감겨 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쓰러져 있던 케일 경을 향해 가려 했다.

그때 고막을 자극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다.

우저저저적. 파지직.

급히 고개를 돌린 도현의 눈에 보인 것은 거대한 얼음 장벽 하단부를 따라 빠르게 퍼져 가는 균열이었다.

“빌어먹을!”

도현은 케일 경에게 다급히 달려갔다.

혹시나 했는데 그의 예상이 맞았다. 얼음탑주는 긴 강을 얼렸다가 수천 명을 익사시켰다고 했다. 지금은 산처럼 거대해진 얼음 장벽을 이용해 그를 산 채로 매장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 조금 더 일찍 탑주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도현은 아쉬움이 남았다.

콰콰쾅쾅쾅.

얼음 장벽 하단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이제는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비슷하게 변해 갔다.

‘이쪽으로 곧 기울어진다.’

도현은 케일 경의 생사를 확인하지도 안고 품에 안아서 놀랄 만한 빠르기로 내달렸다.

“도현.”

“케일 경.”

“나…… 날 두고 가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케일 경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시야에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있는 얼음 장벽이 가득 들어왔다. 자신이 아니면 도현이 더욱 빨리 달려서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계십시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일세.”

“살아서 얼음탑에 원한을 갚아야지요.”

도현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얼음 장벽이 밤하늘을 덮으며 그를 향해 넘어지고 있었다.

“아직 거리가 충분합니다.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도현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담할 수는 없었다. 신법을 발휘해 바람처럼 빠르게 달리고는 있지만, 얼음 장벽이 무너지는 속도도 굉장했다.

콰쾅쾅쾅. 쿠우웅. 쿵쿵쿵.

얼음 장벽이 무너지며 만든 흙먼지가 ‘훅’ 하고 밀려 나와 달리는 도현의 몸을 감쌌다.

도현은 이미 방향을 정해 놨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고 그 방향으로만 직진했다.

케일 경이 숨을 쉬기 곤란했는지 몇 차례 기침을 했다.

“도현. 반돌로는 죽었지?”

“네.”

“그 사람 보기 부끄러워서…… 이대로 달아날 수가 없네.”

“달아나는 게 아닙니다. 얼음 장벽을 피한 후, 얼음탑주에게 이 빚을 받아 낼 겁니다.”

“피하게…… 자넨 할 만큼 했어.”

케일 경의 입에서는 피가 연신 흘러나왔다.

“위험하면 제가 알아서 먼저 도망갑니다. 전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케일 경도 베일 가문의 명예를 지킬 만큼 지켰으니, 살 생각을 하십시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군……. 먼지가 짙어 지고 있어. 자네, 그만 날 놓아주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내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 주게.”

도현은 기침을 몇 번 한 후 답했다.

“다 왔습니다.”

“고집불통이군.”

케일 경은 더 이상 말할 힘도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조금만 더!’

도현은 단전의 막대한 내공을 발끝에 모아 먼지바람을 뚫으며 질주했다.

어느새 머리 몇 미터 위까지 얼음 장벽이 도달해 있었다. 호흡 한 번이면 얼음 장벽과 그의 몸이 충돌할 만큼 가까웠다.

‘보인다. 끝이 보여!’

케일 경을 몸에 안고 있던 도현이 멀리 시선을 두고 몸을 날렸다.

땅을 몇 번 구른 도현은 뒤를 돌아봤다. 그가 나온 길이 얼음 장벽과 하나가 되고 있었다.

쿠우웅. 콰쾅쾅쾅.

조금만 늦었다면 저 안에 갇힐 뻔했다.

도현은 검을 휘둘러 얼음 장벽의 파편들을 모두 쳐 내 버렸다.

먼지구름이 일대를 완전히 뒤덮었다.

“보십시오. 충분히 벗어났잖습니까?”

바닥에 누워 있는 케일 경을 보며 일부러 미소를 보이던 도현의 몸이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진짜 위험은 위기를 벗어났다고 생각할 때 오지.”

얼음탑주가 마법으로 도현을 날려 버리며 말했다.

탑주

‘당했군.’

허공으로 날아가며 도현은 쓴웃음을 흘렸다. 얼음 장벽을 벗어나면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도 제대로 방비하지 못했다.

도현은 땅에 처박히기 직전 손바닥으로 땅을 가볍게 치며 허공으로 재빨리 솟아올랐다.

파지지직.

그가 추락할 지점에 얼음 구체가 충돌해 땅이 쩍쩍 갈라지며 얼어붙었다. 기습을 허용한 그가 넋을 잃고 땅에 처박혔다면 이어지는 마법에 또 당했을 것이다.

척.

가볍게 두 발로 땅에 착지한 도현은 상체의 가죽 갑옷을 살폈다.

여신의 형상을 한 얼음과 상대하며 약간 손상됐던 가죽 갑옷이 지금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그 안으로 보이는 맨살은 시퍼렇게 얼어 있었다.

‘한기가 몸에 침투했다.’

카샨에게 얼음 화살을 맞고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공으로 한기를 막다가 결국엔 몸이 마비가 되는 경험을 했었다. 얼음 마법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던 그는 아까 마법사와 싸움을 벌일 때도 한기가 몸에 들어오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했다.

그런데 얼음 장벽을 나오자마자 얼음탑주에게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

북극에 발가벗겨 던져진 듯 금세 몸이 차가워졌다.

도현은 내공을 이용해 몸으로 퍼져 가는 한기를 잡아 갔다. 얼음 마법에 담긴 한기는 내공처럼 기가 흐르는 길을 통해 움직였는데, 그 부분을 내공으로 억제하면 한동안 막을 수 있다.

도현은 고개를 들었다.

얼음 구체들이 수없이 날아오고 있었다. 조금 전은 그저 맛보기에 불과한 것 같았다.

‘접근해서 잡는다.’

피하기만 해서는 얼음탑주의 마법에 계속 농락당할 것만 같았다.

도현은 날아오는 얼음 구체 사이를 유연한 몸놀림으로 통과하며 조금씩 전진해 갔다.

종이 한 장 차이로 농구공만 한 얼음 구체들이 빠르게 그의 곁을 스치며 뒤로 날아갔다.

도현이 피한 얼음 구체들은 인근 땅을 초토화로 만들며 얼려 갔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얼음탑주가 손을 크게 휘젓자 얼음 구체들 사이에 수십여 개의 얼음 창이 나타나 도현이 피할 공간을 없앴다.

도현은 눈을 빛내며 얼음 구체와 창을 노려봤다.

전방은 회피할 공간이 없다. 피하려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탑주와 다시 거리를 좁히는 게 훨씬 더 어려워진다. 돌파한다.’

물 찬 제비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얼음탑주를 향해 달려가던 도현은 호검술을 발휘해 앞을 가로막는 얼음 구체와 창을 베어 버렸다

‘강한 힘이 서려 있다. 검이 흔들리고 있어.’

검에 베인 얼음 구체와 창이 연속해서 폭발을 일으켰지만 도현의 움직임이 원체 빨라서 그가 지나친 후에야 그것들이 사방으로 영향을 미쳤다.

도현은 등 뒤에서 몰아쳐 오는 냉기 폭풍 범위를 벗어나며 계속 돌진해 갔다.

저만치 누워 있는 케일 경이 보였지만 그쪽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 그가 그쪽으로 가는 순간, 얼음탑주의 공격은 케일 경까지 뒤덮을 것이다.

서너 차례 더 앞을 가로막는 얼음 구체와 창 들을 격파한 도현의 앞에 마침내 여유로운 모습으로 서 있는 얼음탑주가 나타났다.

“이얏!”

빠르게 달리던 도현이 허공으로 살짝 몸을 띄웠다가 아래로 떨어지며 양손의 검을 동시에 땅에 꽂았다.

거대한 황금 검이 나타나 지면에 긴 자국을 남기며 빠르게 얼음탑주를 향해 날아갔다.

탑주는 표정 없는 얼굴로 지팡이를 들어 바닥을 때렸다. 차가운 은색 빛을 내뿜는 얼음 방패가 나타나 황금 검을 막았다.

그러나 얼음 방패는 단번에 두 동강이 났고 황금 검은 탑주를 덮쳤다. 생각지도 못한 강한 위력에 탑주가 놀라며 급히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다른 때보다 훨씬 많은 내공을 주입한 황금 검은 겉모습은 같았지만 그 위력은 평소의 서너 배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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