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 디 임팩트 12권 24화
아무리 내공이 심후한 도현이라 해도 연속해서 사용할 수 없을 만큼의 강력한 황금 검이었다. 그랬으니 탑주가 믿던 얼음 방패도 종이처럼 잘린 것이다.
도현은 기회를 잡았다 여기고 옆으로 피한 탑주를 향해 몸을 날렸다.
“얼음 장벽은 잘 봤으니, 이제 내 검을 겪어 보시오.”
섬전과 같은 극쾌의 검술이 도현의 검에서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도현은 사라지고 수백 개의 검이 비처럼 날아오는 모습은 아무리 얼음탑주라 하더라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장면이었다.
‘검으로 마법을 만드는 놈이라니!’
탑주는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다. 순간 그의 몸이 수십 개로 늘어나며 어떤 게 그의 진짜 몸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도현의 쾌검이 눈 깜짝할 사이에 환영들을 제거해버리며 진짜 탑주를 쫓아갔다.
‘검술이 정말 대단한 녀석이군.’
눈빛이 깊어진 탑주가 슬쩍 손을 휘젓자 그의 몸이 하늘로 빠르게 떠올랐다. 얼음 기둥이 그의 발밑에 나타나 그를 위로 밀어 올린 것이다.
도현은 양 검을 교차하며 얼음 기둥을 잘라 버렸다.
기우뚱하며 기울어지는 얼음 기둥을 타고 도현이 맹렬한 속도로 탑주를 쫓아갔다.
“제법 집요하구나.”
탑주는 땅으로 기울어지는 얼음 기둥 위에서 차갑게 웃더니 훌쩍 땅으로 뛰어내렸다.
도현은 뒤따라 뛰어내리며 쏜살같이 검을 날렸다. 탑주는 등 뒤로 날아오는 검을 보고는 손짓을 했다.
콰아앙.
탑주의 손에서 흘러나온 차가운 빛과 충돌한 검이 땅으로 떨어졌다.
“실력은 괜찮다만 네 죽음은 정해져 있는 운명이다.”
탑주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얼음 구체들이 사방에서 생기며 도현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몸을 굴려 땅에 떨어진 검을 주워 든 도현은 강렬한 눈빛을 발산하며 얼음 구체들을 베어 버리고 탑주를 향해 달려갔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가까이 가면 내게 기회가 생긴다.’
그는 한 자루 검이 되어 일직선으로 탑주를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탑주는 도현에게 거리를 좁힐 기회를 더 이상 주지 않았다. 검술이 이제껏 만나 본 검사들 중에서도 최고로 꼽을 정도로 높았다. 젊고 힘이 넘치는 도현의 기세를 경계한 탑주는 안전하게 그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초대 얼음탑주가 남긴 고대 마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고대 마법어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그의 전신으로 세상의 찬 기운들이 회오리치며 흡수됐다.
밤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땅에선 광풍이 일어나 베일 가문의 땅 일대를 뒤흔들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탑주가 손에 든 갈색 지팡이를 하늘을 향해 집어 던졌다.
하늘 높이 떠오른 지팡이가 공중에서 멈추더니 밝은 빛을 뿜어내며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에 달처럼 커진 빛무리가 한순간 폭발하듯 비산했다. 그리고 그 빛이 사그라지자 몸체 길이만 20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빙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캬아아아!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에서 울부짖는 빙룡의 울음소리가 세상을 진동시키는 듯했다.
얼음 구체를 통과해 달려가던 도현은 그 광경을 보고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용이다. 책에서나 나오는 신화 속 용이 나타났어.’
빙룡이 날갯짓할 때마다 살을 에는 찬 바람이 지상으로 몰아쳐 왔다.
얼음 비늘이 몸을 덮고 있는 빙룡은 공중에서 크게 한번 선회하다가 탑주를 향해 달려가는 도현을 노리고 땅으로 하강했다.
콰아앙.
빙룡의 육중한 힘이 담긴 발톱이 땅을 깊숙이 뚫고 들어갔다.
우두두둑.
수 미터 깊이로 파고든 발톱을 꺼낸 빙룡은 날개를 접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공격을 피한 도현이 막 땅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빙룡은 목을 약간 뒤로 뺐다가 앞으로 내밀며 입으로 시퍼런 냉기를 뿜어냈다.
도현은 위험을 직감하고는 멀리 몸을 던졌다.
쩌저저적.
푸르스름한 냉기 덩어리에 맞은 땅들이 얼어붙으며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도현은 반경 10여 미터 정도 되는 공간이 빙룡의 냉기 공격 한 번에 얼어붙자 손에 땀이 배어 나왔다.
‘굉장한 위력이다. 멀리 이동하지 않았다면 내 두 다리도 얼어붙었을지 몰라.’
도현은 탑주를 쳐다봤다. 그는 빙룡의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빙룡을 넘지 않고는 그를 상대하기 곤란할 것 같았다.
캬아아아.
빙룡이 다시 냉기를 입으로 뿜어내며 도현을 압박했다. 냉기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10여 미터 이상 순간 이동을 하듯이 발 빠르게 움직여 피한 그는 기회를 잡아 황금 검을 만들어 날렸다.
황금 검에 발등을 맞은 빙룡이 충격을 받은 듯 뒤로 주춤 거렸지만 큰 타격은 아니었는지 성난 눈빛으로 도현을 더욱 거세게 공격했다.
‘몸이 강철보다도 더 단단한 것 같다.’
이를 악문 도현은 빙룡의 발톱 공격을 피하는 척하다 빙룡의 다리를 디딤돌 삼아 훌쩍 뛰어올랐다.
빙룡의 목에 착지한 도현은 검에 막대한 내공을 실어 목 부분을 길게 베어 버렸다.
상대적으로 약한 부위가 아닐까 싶어 노린 것인데, 제법 효과가 있었는지 빙룡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도현을 몸에서 떼어 내려고 했다.
‘이대로 하늘로 올라가면 내가 위험해지겠지.’
도현은 빙룡이 날개를 펴자 재빨리 아래로 뛰어내렸다.
바닥을 몇 차례 구른 도현은 분노한 빙룡이 하늘로 떠오른 사이, 뒤에 보이는 탑주를 향해 몸을 날렸다.
빙룡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던 도현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자 탑주는 즉시 지팡이를 휘둘렀다. 눈을 뜨기 어려운 회오리바람이 순간적으로 생성돼 도현의 눈앞을 가렸다.
‘앞이 안 보여도 검은 제 갈 길을 간다.’
도현은 두 손에 들고 있던 검을 공중으로 집어 던졌다. 검기를 품고 하늘로 올라간 두 자루 검은 도현이 감지한 탑주의 위치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탑주는 회오리바람에 앞이 가려진 상태에서도 검을 정확하게 날린 도현의 능력에 당황하며 급히 몸을 움직였다.
그가 있던 자리를 두 자루 검이 좌우로 번개처럼 훑고 지나갔다.
간발의 차로 목표물을 놓친 검들은 그사이 빙룡에게 쫓기는 도현의 품 안으로 되돌아갔다.
캬아아아아.
빙룡이 입으로 냉기를 뿜어내며 도현을 얼음으로 만들어 버리려 했다. 하지만 도현은 빙룡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해 내며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위험하지만 한번 시도해 보자.’
도현은 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가깝게 다가온 빙룡이 입을 쫙 벌려 푸르스름한 냉기를 뿜어냈다.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한 도현이 벌떡 일어나며 수중의 검 한 자루를 비검술로 경쾌하게 날렸다.
도현의 검은 냉기를 연속해서 뿜어내려던 빙룡의 입안으로 빨려 들듯이 들어갔다.
잠시 후, 빙룡의 목을 뚫고 검이 튀어나왔다.
캬아아아.
빙룡이 비틀거리는 모습에 쾌재를 부르던 도현은 다급히 옆을 봤다.
탑주가 날린 얼음 구체들이 그에게 빗발치듯 날아오고 있었다. 피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
‘굉장한 힘이다. 아까와는 다른 힘이야.’
검막을 이용해 막아 내고는 있지만 얼음 구체들에 실린 힘이 아까보다 몇 배는 증가한 것 같았다.
탑주가 전력을 드러낸 것 같았다.
그때 목에 치명상을 입고 비틀거리던 빙룡이 분노한 눈빛으로 도현에게 달려들었다.
탑주의 공격에 신경 쓰고 있던 도현은 다급히 빙룡의 공격권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 와중에 막지 못한 얼음 구체 하나가 도현의 등을 강타했다.
“크윽.”
억눌린 신음을 터트린 도현은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통증을 겪으며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얼음 구체에 실린 힘은 그만큼 강력했던 것이다.
통증으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도현은 탑주와 빙룡이 함께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목격했다.
‘빌어먹을.’
땅을 데구루루 구른 도현은 정신을 차리며 이를 악물었다.
조금 전 맞은 얼음 구체에는 엄청난 한기가 담겨 있었다. 그것이 체내에 들어와 순간적으로 그의 온몸을 얼려 가고 있었다. 내공으로 재빨리 막았지만 앞서 침투해 있던 한기도 있어서 얼마나 버틸지 미지수였다.
‘안 되겠어, 일단 빠져나가자.’
벌써부터 몸이 무거워지려 하고 있었다. 그는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으며 벌떡 일어났다.
콰아앙.
그가 있던 자리에 빙룡이 날아와 긴 발톱으로 땅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까보다는 그 힘이 많이 약화되어 있었다. 도현의 검에 치명적인 목 부상을 입은 이후로 빙룡은 갈수록 크기가 작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끝장을 내 주지.”
도현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탑주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얼음 구체를 계속 만들어 날렸다.
한 손으로는 검을 휘두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장풍을 사용해 탑주의 마법에 대항하던 도현은 케일 경이 쓰러진 곳으로 향했다.
사막에서는 적으로 만났지만 브링틱에서는 술잔을 기울일 만큼 가까워진 사이다. 가능하다면 그를 살려서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
“용과 싸우다니…… 좋은 구경이야, 쿨럭쿨럭.”
반쯤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던 케일 경은 뒤를 쫓고 있는 탑주와 빙룡을 보며 낮게 웃었다.
“여기는 저들에게 넘겨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만 가시죠.”
도현은 케일 경을 한 손으로 안아 들으려 했다.
그 순간,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케일 경이 도현을 밀치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케일 경!”
“그만 떠나게! 자넨 충분히 할 만큼 했어, 크하하하!”
케일 경은 손에서 끝까지 놓고 있지 않았던 검을 치켜들고 코앞으로 다가온 얼음탑주에게 돌진했다.
“버러지 같은 마법사 녀석아!”
케일 경의 욕설에 눈빛이 차가워진 얼음탑주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순식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어 버린 케일 경이 힘없이 쓰러지며 산산조각 났다.
“케일 경!”
눈이 붉어진 도현은 크게 그의 이름을 외쳤다.
자신에게 짐이 될까 봐 죽음을 선택했을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주어진 임무를 끝까지 수행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그런 인물이었다.
도현은 굳어진 얼굴로 재빨리 신법을 발휘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공으로 막아 둔 한기가 그의 몸을 장악할 것이다. 마비가 오기 전에 뒤를 쫓아오는 탑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탑주는 베일 가문의 땅을 벗어나 도주하고 있는 도현을 결코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오늘 반드시 죽여야 한다. 큰 후환이 될 거야.’
빙룡은 이미 사라지고 그의 갈색 지팡이만 남았다.
지팡이를 쥔 탑주는 도주하는 도현을 쫓으며 벼락같은 호통을 내질렀다.
“넌 내 손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
도현은 뒤를 힐끔 살폈다. 얼음탑주가 얼음 늑대를 타고 맹렬히 쫓아오고 있었다.
고대 도시의 복잡한 구조를 이용해 그를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오히려 거리가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팔다리가 무거워지고 있다. 내공으로 막아 두었던 한기가 빠르게 퍼지고 있어.’
한기를 억제하려 신경 쓰다 보니 내공의 흐름도 이상해지고 있었다.
도현은 고대 도시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계속 달렸다. 동료들이 있는 동쪽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동료들이 합세한다 해도 얼음탑주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괜히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동료들까지 개입하면 상황이 더 난감해진다. 그래서 일부러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길이 막혔다.’
방벽 사이의 길을 잘못 들어간 도현은 별수 없이 방벽을 타고 올라갔다. 몸이 정상이 아니라 해도 그쯤은 문제가 안 됐다.
“누구냐!”
방벽 위에서 경비를 서던 병사가 불쑥 솟아오른 도현의 얼굴을 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
“검 좀 빌립시다.”
“뭐?”
병사가 황당해하는 사이 도현은 병사를 바람처럼 스쳐 가며 그의 허리에 매달려 있던 검을 뽑아 자신의 허리에 꽂았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그의 검은 얼음탑주와 싸우느라 망가진 상태였다.
손에 맞는 외날 검이 아닌 양날 검이었지만, 그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병사는 멍하니 멀어져 가는 도현을 바라보다 뒤에서 들리는 호통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비켜라, 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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