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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01화 (301/575)

[301] 디 임팩트 13권 1화

변수

폭주한 도현에게 일격을 당해 이가 부러지는 수모를 당한 탑주는 분노 가득한 눈빛으로 도현을 노려봤다.

지렁이처럼 올라온 혈관과 울퉁불퉁한 근육으로 뒤덮인 도현이 괴성을 지르며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비록 도현이 맨주먹으로 달려들고 있었지만, 그 기세는 산이라도 한 방에 무너트릴 만큼 대단해 보였다.

‘대체 무엇이 저놈을 저리 만든 게지? 분명 죽어 가던 놈이었는데.’

분노와 혼란이 교차하는 와중에도 탑주는 준비한 마법을 번개처럼 펼쳤다.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몸이 빠른 도현이 이글거리는 눈빛을 토하며 그의 근처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게 해 주마!”

탑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눈부신 은색 광채가 하나로 합쳐지더니 일직선으로 도현에게 날아갔다.

어두운 동굴을 관통하는 한 줄기 빛처럼 은색 광채는 탑주와 도현 사이의 어둠을 환하게 밝혔다.

그러나 그 성질은 지극히 차가워서 은색 광채가 지나가는 공간의 공기들은 펑펑 소리를 내며 희뿌연 안개를 연신 만들어 냈다.

폭주하기 전의 도현이라면 심상치 않은 마법의 빛을 일단 피하려고 했겠지만 지금의 도현은 달랐다. 폭주한 그를 지배하는 건 광기 어린 폭력성이었다.

“죽인다! 부순다!”

도현은 길쭉한 은색 광채를 피하는 대신 주먹으로 묵직하게 후려쳤다.

그 순간 엄청나게 큰 폭발음과 함께 도현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가랑잎처럼 힘없이 날아가던 도현의 신형이 어느 순간 중심을 잡으며 땅에 착지했다.

쩌저저적.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도현의 가죽 장화가 조금 전 탑주가 날린 마법의 빛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서 조각조각 났다. 옷 일부도 마찬가지였다.

맨발이 된 도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코피가 흘러내렸고, 머리카락 일부도 얼어서 불어오는 바람에 부서져 버렸다.

도현은 목을 좌우로 꺾었다. 철갑처럼 단단해진 상체의 피부 근육이 그의 목 방향으로 쏠리며 꿈틀댔다.

“죽여 버리겠다!”

폭주하기 전에 자신을 가장 괴롭힌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살의를 품고 있던 도현은 맨발로 땅을 마구 내려찍었다.

쿵쿵쿵쿵. 쿠웅.

흙과 돌로 된 강가의 들판이 무쇠 같은 도현의 발을 견디지 못해 움푹움푹 들어갔다.

“저런 미친 녀석을 봤나.”

탑주는 다소 기이한 행동을 하는 도현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조금 전 도현이 몸으로 견딘 마법의 빛은 고대의 전설적인 얼음 마법사 ‘라시드비’의 마법으로, 영혼까지 얼려 소멸시켜 버리는 극강의 냉기 마법이었다. 앞선 얼음 구체보다 훨씬 상위 마법인 것이다.

그것을 맞고 겨우 코피나 흘리고 있으니 탑주로서는 가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 잡은 물고기인 줄 알았는데, 물고기가 날카로운 비수를 숨기고 있었군.’

탑주의 몸에서 다시 눈부신 은색 광채가 흘러나왔다. 발을 구르던 도현이 재차 그를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미련한 놈. 네놈 몸뚱이가 어디까지 견디나 두고 보겠다!”

탑주는 마력을 더 끌어올렸다. 몇 번은 견디겠지만 결국엔 마법의 힘 앞에 도현이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콰아앙.

도현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는 공중제비를 돌아 땅에 착지하고서는 쉬지 않고 다시 달려들었다.

쾅쾅쾅.

큰 폭음이 도현과 탑주 사이에 연이어 울려 퍼졌다.

주변의 땅은 이들의 충돌 여파로 인해 멀쩡한 곳이 없었다. 땅이 뒤집어지고 흙과 돌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죽인다!”

몸을 뒤덮은 두꺼운 얼음을 포효와 함께 깨 버린 도현이 맹렬히 달려들었다.

피하지 않고 우직하게 달려드는 도현의 모습이 처음에는 가소로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탑주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녀석보다 내가 먼저 지치겠어.’

바다처럼 깊은 마나가 긴 전투로 인해 서서히 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반면 핏빛 눈동자를 번뜩이고 있는 도현은 흉포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점점 거리를 좁혀 왔다. 힘이 줄지 않는 모습이었다.

‘볼수록 놀라운 자가 아닌가. 이런 자가 한낱 용병으로 떠돌아다니다니.’

탑주는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목숨을 버릴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

‘분하지만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군.’

승부를 보려던 마음을 바꾼 그는 몸을 휘감고 있는 은색 광채로 도현을 뒤로 날려 버린 뒤, 재빨리 갈색 지팡이를 땅에 꽂았다.

땅이 흔들리며 도현과 탑주만 있던 공간에 열두 명의 얼음 기사들이 유령처럼 소리 없이 등장했다.

그들은 일제히 거대한 검을 땅에 꽂으며 탑주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라! 나의 종들이여!”

근엄한 목소리로 탑주가 외치자, 얼음 기사들이 4미터 가까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들이 내뿜는 숨결에 따라 주위 공기가 더욱 싸늘해졌다.

“저놈을 막아라!”

탑주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얼음 기사들이 땅에 꽂힌 검을 뽑아 그를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도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쉬이익.

3미터 가까운 거대한 얼음 검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음산하게 웃던 도현은 몸을 숙여 피한 뒤 앞차기로 얼음 기사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정강이가 박살 나며 얼음 기사가 기우뚱하자, 도현은 점프해 주먹으로 녀석의 목을 강타했다.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 기사 한 명이 안개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옆에서 두 명의 얼음 기사가 공격해 오자 도현은 주먹으로 얼음 검을 깨 버린 뒤 그 조각을 양손에 쥐고 휘둘렀다.

사사사사삭.

도현을 위압적인 눈빛으로 내려다보던 얼음 기사들이 몸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일어나더니 모래처럼 부서져 버렸다.

도현은 사라지는 얼음 기사 너머로 도망치는 탑주의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흥분한 눈빛으로 몸을 날렸다.

“죽인다!”

아직 남아 있는 얼음 기사들이 덤벼들었지만 도현의 발목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몇 번 치고받는가 싶더니 열두 명의 얼음 기사들은 모두 소멸해 버렸다.

도현은 무서운 속도로 탑주를 뒤쫓기 시작했다.

콰앙.

숲으로 들어간 탑주가 마법을 날렸지만 도현은 주먹으로 마법을 깨 버리며 더 빨리 달려갔다.

긴 싸움으로 인해 마나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체력도 부족해진 탑주는 굳어진 얼굴로 가쁜 숨을 토해 냈다.

“하아, 하아.”

아까와 달리 이제는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지독한 놈, 끈질기게 쫓아오는군.”

거리가 좁혀지자 탑주는 없는 힘을 짜내 얼음 늑대를 만들어 올라탔다.

밤하늘을 향해 길게 울부짖은 얼음 늑대는 탑주를 태우고 바람처럼 숲 속을 달렸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도현이 집어 던진 나뭇조각이 얼음 늑대의 엉덩이를 뚫고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얼음 늑대가 산산조각이 나며 위에 타고 있던 탑주가 땅에 처박혔다.

“크윽.”

옷이 엉망이 된 그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찢어진 머리에서는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흐흐흐흐.”

잔혹한 눈빛을 흘리며 다가오는 도현의 모습에 얼음탑주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베일 가문의 땅에서 싸우던 그 용병과 지금의 용병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만 이쯤에서 물러나면 어떻겠나? 오늘 밤의 일은 모두 잊고 말일세.”

“죽인다.”

“용병은 돈에 따라 움직이는 법. 베일 가문이 약속한 것의 열 배를 주겠다.”

얼음탑주는 코앞까지 다가온 도현을 향해 다급히 외쳤지만 도현의 손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도현의 굳은살 박인 손바닥에 얼굴이 잡힌 탑주는 안면이 부서질 것 같은 압력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이놈! 감히 내게!”

탑주는 손에 쥔 지팡이로 도현의 가슴을 두들기고 발끝으로 도현의 정강이를 걷어차 보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발버둥이 즐거운 듯 도현은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죽인다.”

도현의 악마 같은 속삭임에 탑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평생 들어 본 목소리 중 가장 무서운 목소리였다.

그는 얼음탑주가 되기 전까지 적지 않은 위기를 넘겨왔다. 때로는 생명의 위협이 극에 다다른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맹세코 오늘과 같은 괴이한 경험과 함께 찾아온 죽음의 위협은 없었다.

‘내게 죽어 가던 자가 어찌해서 이리 달라졌단 말인가?’

탑주는 마치 속임수에 당한 사람처럼 그 분함과 속상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네놈 정체가 도대체 뭐냐!”

탑주의 노기 어린 외침에 도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죽인다.”

“빌어먹을 놈 같으니!

탑주는 호통을 치다가 비명을 길게 내질렀다. 도현의 손가락이 그의 이마 뼈를 부숴 버릴 듯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끝났군.’

탑주는 잠시 후 끔찍하게 변할 자신의 얼굴을 상상하며 속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이 녀석은 마법에 당해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거늘. 그 모든 게 눈속임은 아니었을 텐데.’

얼굴을 통해 퍼져 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탑주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살려 달라고 매달리고 싶었지만 눈빛이 어딘지 정상이 아닌 도현이 살려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씨드를 앞에 두고 이 모양으로 죽다니, 원통하구나.’

지난 생을 반추해 보던 탑주의 뇌리에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그것은 얼음탑의 서고에서 언젠가 읽었던 고서의 내용이었다.

그 내용이 왜 갑자기 이 순간에 떠올랐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고서의 내용이 떠오른 탑주의 얼굴은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설마 이 녀석이!’

탑주는 혼돈의 마나를 익힌 자가 폭주하면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 정도 식견이 없으면 얼음탑의 탑주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

그런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 죽음을 목전에 둔 이 순간 떠오르다니.

‘허허,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다니. 그저 시간을 두고 몸을 피했다가 폭주가 끝난 이놈을 얼음으로 만들어 버리면 간단했을 것을. 내 스스로 무덤을 팠구나.’

도현이 갑자기 강해진 것을 혼돈의 마나와 연관시켜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됐다.

수려한 외모의 용병이 피에 굶주린 악마처럼 돌변해 음산하게 웃으며 덤벼 오는 것도 폭주의 영향일 것이다.

‘괘씸한 놈, 이런 꼼수로 날 상대하려 하다니!’

탑주는 도현이 오히려 이런 상황을 일부러 만든 건 아닌지 의심이 일어났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넌 영원히 내 상대가 안 되는 녀석이다! 네놈의 실력은 가짜다!”

“죽인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탑주의 분노에 찬 눈동자를 노려보던 도현은 손에 힘을 가득 주려 했다.

그 순간 한 줄기 차가운 바람이 날아와 도현의 손아귀에 얼굴이 붙잡혀 있던 탑주의 몸을 힘껏 때렸다.

“크윽.”

탑주가 신음을 흘리며 멀리 있는 수풀 속으로 튕겨 들어갔다. 얼굴의 피부가 벗겨지며 상처가 나긴 했지만, 한 줄기 바람의 도움으로 도현의 손아귀에서 무사히 벗어난 것이다.

“탑주님! 손을 잡으십시오!”

얼음 늑대를 타고 나타난 제자 카샨이 손을 내뻗었다. 얼굴이 피투성이인 탑주는 제자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카샨!”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탑주를 얼음 늑대 등에 태운 카샨은 뒤를 돌아봤다. 먹이를 놓친 베일 가문의 용병이 앞에 보이는 나무들을 닥치는 대로 부러트리며 그들이 탄 얼음 늑대를 미친 듯이 쫓아오고 있었다.

‘탑주와 저놈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카샨은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대 도시에서는 베일 가문의 용병이 탑주의 마법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는 신세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였다. 조금 전에 그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탑주는 저자의 손에 목숨을 잃을 위급한 상황이었다.

‘탑주의 마법으로도 저 용병 녀석을 감당할 수 없었단 말인가?’

의혹 어린 시선으로 뒤를 쫓아오는 도현을 응시하던 카샨이 급히 얼음 늑대의 방향을 꺾었다.

도현이 집어 던진 나무가 큰 소리를 내며 땅에 박혔다.

쿠웅.

자욱한 먼지바람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카샨, 조금만 시간을 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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