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11화 (311/575)

[311] 디 임팩트 13권 11화

“통쾌한 방법요? 설마 죽이려는 건?”

“문제가 벌어졌다고 해서 다 그런 식으로 처리할 수는 없죠. 김탁훈이 날 죽이라고 살인 청부를 한 건 아니니까요. 그랬다면 오히려 별다른 고민 없이 그를 손봤을 겁니다.”

담담히 말하고 있지만 옆에서 듣는 서지철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아마도 그가 살인 청부를 받고 움직였다면 도현의 검에 벌써 목숨이 달아났을 것 같았다.

“김탁훈을 죽이려는 건 아니지만 통쾌한 걸 원하시는군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서지철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관장님, 이만 가 보겠습니다.”

시계를 보는 척한 서지철은 도현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서둘러 지하 도장에서 나가 버렸다.

“서 팀장 왜 저래? 왜 저렇게 도망치듯 가는 거야? 무슨 일 있었냐?”

계단을 내려오다 서지철과 마주친 용주가 도현을 보며 물었다.

“김탁훈이 얘길 했어.”

“김탁훈? 그 자식은 왜?”

“왜 그냥 놔두느냐고.”

도현이 추모 공원을 다녀오느라 입은 정장 상의를 벗으며 대꾸했다.

“그 자식이야 지난번에 손을 보려다가 못 본 거잖아, 미국에 출장 가서 한국에 없는 바람에.”

당시 용주는 그가 운이 좋았다고 불평을 토해 냈었다.

“그런데 서 팀장이 왜 그 녀석 일을 물어보는 거지?”

“아무래도 자신과 관련이 있었던 일이니까 궁금했나 봐.”

도현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딘지 좀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다.

“김탁훈이 얘기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너 몸 나으면 바로 그 자식 사냥 가자.”

“김탁훈이 동물이냐, 사냥 가게.”

“먹잇감이니까. 그 자식은 홍영 씨 옆에 있는 네가 하찮은 쫄로 보였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 줘야지.”

용주는 비명을 지르며 살려 달라고 외치는 김탁훈을 상상하며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홍영 씨는 위에 있냐?”

도현이 관장실 옷걸이에 정장을 걸어 놓으며 물었다.

“어, 위에 철호 형이랑. 관장님께 스케치북은 다 보여 드렸어?”

“응.”

“관장님 좋아하셨을 거다. 이계에서 겪은 경험을 만화로 그린 사람이 세상에 또 누가 있겠냐? 아마 네 만화를 보며 즐거워하셨을 거야.”

“고맙다, 용주야.”

“우리 나중에 모든 게 끝나면 네가 겪은 이계 이야기를 묶어서 만화책으로 내자. 팔리든 안 팔리든 그 만화는 우리가 죽어도 영원히 후세 사람에게 남겨질 거야.”

“통쾌한 걸 원한다고요?”

호태식은 운전을 하며 머리를 갸웃했다.

“정말 백 관장이 김탁훈을 통쾌하게 혼내 주라고 했어요? 죽이지는 말고요?”

“그랬다니까. 뭐, 내가 움직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고 말한 거겠지만, 그게 그거지. 그러니까 우린 일에 집중한다.”

다양한 고문 도구가 든 상자를 열어서 안을 살피던 서지철이 대꾸했다.

“그래도 고문은 좀 아니지 않아요? 중세 시대도 아니고. 어디서 그런 걸 구해 와서는.”

어둠 속 국도를 운전하던 호태식이 괴상하게 생긴 고문 도구가 든 상자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김탁훈이 다양한 고문을 체험케 하고 그 사진을 찍어서 백 관장에게 보여 주는 거야. 좋아하겠지?”

서지철은 희번덕거리는 눈빛으로 낮게 웃음을 흘렸다.

“미쳤네, 미쳤어.”

“뭐 이 자식아? 내가 미쳤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백 관장이 말하는 통쾌하다는 의미가 그런 저질스러운 고문을 뜻하는 거겠냐고요.”

“그럼 또 뭐가 있는데?”

“영화 같은 거 보면 세련된 방법이 잘 나오잖아요.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킨다든가 하는.”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진짜 통쾌한 건 이런 걸로 마구 쑤시면서 고통을 주는 거다.”

서지철이 10센티가 넘어 보이는 긴 바늘을 호태식 눈앞에서 흔들었다. 은색의 바늘은 누가 이미 여러 번 사용했는지 검붉은 빛깔을 띠고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했다.

“그러니까 형님이 2퍼센트 부족하다는 겁니다. 사람을 봐 가면서 판단을 해야죠. 왜 자꾸 형님 기준으로 통쾌하다는 의미를 해석해요?”

“2퍼센트 부족해? 너 자꾸 신경 거슬리는 말 할래?”

서지철이 긴 바늘을 호태식의 코 밑에 가져다 댔다.

“아, 치워요 좀! 더러워 죽겠네. 고문 도구는 어디서 가지고 온 겁니까? 백 관장 만나고서 시간도 없었을 텐데.”

“은퇴한 선배가 있는데, 너 만나러 오는 길에 잠깐 들러서 빌려 왔다. 한 20년 전에는 이런 걸 자주 사용했다고 하더라고.”

서지철은 관리하지 않아 녹이 잔뜩 슨 몇몇 고문 도구들을 불빛에 비춰 보다가 운전하는 호태식을 쳐다봤다.

“야, 진짜 백 관장이 원하는 게 이런 게 아닌 것 같아?”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고문은 형님 취향이고, 너무 단순하잖아요. 백 관장 본인이 고문을 가하는 것도 아닌데, 사진보고 통쾌하다며 웃겠어요? 가까이서 지켜본 백 관장은 그런 쪽은 확실히 아니에요.”

“흠, 그래?”

“형님, 우리가 만족시키려는 사람은 백 관장 아닙니까. 정작 본인이 시큰둥하면 일을 벌인 형님 입장은 어떻게 되겠어요? 서로 곤란해지는 거예요. 우리가 이미 손을 봤는데 뒤늦게 백 관장이 또 나서기도 그렇고, 당한 김탁훈도 이것들이 두 번씩이나? 하면서 머리가 돌 수도 있어요.”

“그러면 안 되겠지.”

“그럼요, 그러면 안 되죠. 그러니까 가서 무작정 폭력만 휘두른다고 능사가 아닌 겁니다. 제가 큰누나 굿판을 가서 봤는데요. 사람들이 다 가지각색이어서 큰누나도 굿을 할 때 변화를 준다고요. 일명 맞춤형 굿판인데, 이번에도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 있냐?”

“글쎄요. 가는 길에 생각 좀 해 보죠.”

“음, 맞춤형이라…….”

서지철은 고문 도구를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차는 양평으로 진입했고, 얼마 뒤 국도에서 샛길로 빠진 호태식은 오가는 사람 없는 인적 없는 야산 근처에 차를 세우고 헤드라이트를 껐다.

여기서부터 김탁훈의 별장까지는 걸어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잠시 의견을 나눈 뒤, 차에서 내려 옷을 갈아입었다.

검은색 복장에 눈과 입만 둥그렇게 뚫린 복면을 한 그들은 야산 너머에 위치한 김탁훈의 별장으로 향했다.

서지철이 빌려 온 고문 도구는 차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산속에 위치한 김탁훈의 별장으로 접근하던 서지철과 호태식은 난데없는 음악 소리에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별장이 있는 방향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이 소리는?”

“그러게요. 클럽도 아니고, 음악 소리가 신나네요.”

밤이 깊어 가고 있는 조용한 산중에 도시에서나 들을 수 있는 클럽 음악이 비트 있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들어 보는 클럽의 댄스음악에 머리를 살짝살짝 흔들던 호태식은 앞서가는 서지철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야산을 힘들게 너머 별장으로 접근한 그들은 공터에 주차된 차를 먼저 확인했다. 김탁훈이 타고 다니는 고급 외제차 외에는 없었다.

“관리인은 오늘도 자리를 비운 것 같습니다.”

김탁훈은 지난 3주간 토요일마다 미모를 갖춘 젊은 여성을 데리고 와 별장에서 밤을 보냈다.

그 시간에는 별장 관리인이 자리를 비켜 줬다.

“아니, 근데 뭘 하기에 이렇게 크게 음악을 틀어 놓고 있는 거야?”

별장의 열린 창문 사이로 흥겨운 클럽 음악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시간에 춤이라도 추나?”

밤 11시가 넘었다. 클럽이라면 한참 분위기가 달아오를 시간이었지만 이곳은 산중의 별장이었다.

그들은 별장 안을 확인하기 위해 열린 창문을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다가 급히 별장 정원수 뒤로 몸을 숨겼다. 알몸 상태의 젊은 여자가 산발이 된 채 별장에서 뛰쳐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고 있어! 난 별에서 온 공주다!”

여자는 실성한 사람처럼 양손을 하늘을 향해 펼치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뒤따라 나온 김탁훈도 옷을 홀딱 벗은 상태였는데, 그는 말을 타고 있는 사람처럼 한 손으로 말의 고삐를 잡는 시늉을 하며 별장 정원을 뛰어다녔다.

“비켜라! 대장군 나가신다, 하하하!”

“오빠 나도 말 태워 줘!”

“뒤에 타!”

김탁훈의 허리를 잡은 여자는 깔깔대며 김탁훈과 함께 별장 앞 정원을 뛰어다녔다.

“제정신이 아니네.”

정원수 뒤에 숨어 김탁훈과 젊은 여자가 벌이는 기이한 행동을 지켜보던 서지철이 혀를 찼다.

“잘됐어. 옷을 벗겨서 회사 앞에 던져 놓을 생각이었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어.”

“그러게요. 알아서들 연출을 잘해 주네요.”

호태식은 등에 멘 배낭에서 디지털 캠코더를 꺼내 촬영을 시작했다.

“오빠! 조금 더 피우고 오자! 별이 더 이상 내 몸으로 안 쏟아지고 있어!”

“오케이!”

그들은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눈빛이 몽롱해진 상태로 다시 뛰어나왔다.

“오빠! 회사 일 때문에 힘들지!”

젊은 여성은 별장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외쳤다.

“아주 돌아 버리겠다! 내가 뭐만 하면 그렇게들 말들이 많아! 열심히 해도 그렇고, 안 해도 그렇고!”

“다 잘라 버려! 오빠 아버지 회사잖아!”

“회사가 구멍가게냐, 내 마음대로 하게!”

“그런가? 호호호!”

여자와 김탁훈은 손에 든 술을 마시며 정원에서 발가벗고 계속 광란의 춤을 추었다.

5월 중순이어도 산중의 밤 날씨는 서늘했지만, 그들은 전혀 추위를 못 느끼는 것 같았다.

호태식은 동영상을 촬영하다가 음 소거를 하고 뒤를 돌아봤다.

“형님, 제 말이 맞죠? 여기서 김탁훈이가 대마를 한다니까요.”

“그래 보인다. 온전한 정신으론 옷 벗고 저 지랄을 못하지. 따라와, 동영상 계속 촬영하고.”

“하고 있어요.”

그들은 대마와 술에 취해 정원에서 춤을 추고 있는 김탁훈과 여자의 눈을 피해 문이 열린 별장 내부로 들어갔다.

2층 구조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별장 거실엔 술병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탁자 위에는 저들이 말아 피운 대마초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명함만 한 비닐 팩도 있었는데, 아직 풀지 않은 대마초가 잔뜩 들어 있었다.

“멋있게 찍어 봐.”

서지철의 손짓에 호태식은 대마초와 술병으로 엉망인 실내를 캠코더로 담은 뒤 멈추지 않고 정원으로 나가 나체로 춤추는 김탁훈과 여자를 담았다.

한 호흡으로 이어진 화면 전환은 누가 봐도 조작 없이 김탁훈이 있는 현장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됐냐?”

“네.”

촬영한 동영상을 모니터로 잠시 확인한 호태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캠코더의 전원을 껐다.

“우리도 좀 쉬자. 산 넘어오느라 힘들어 죽겠다.”

서지철은 푹신한 소파에 앉아 두 다리를 곱게 펴서 대마초가 놓여 있던 탁자에 올려놨다.

“형님, 저 여자는 어떻게 하죠? 아직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요.”

커튼이 쳐진 거실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던 호태식이 물었다.

“건들지 마.”

“동영상은요?”

“너 동영상 편집할 수 있잖아. 여자 얼굴은 가려 줘. 몸도 적당히…… 가려 주고.”

서지철은 말하며 흰 종이에 대마초를 말았다. 거실 창가에서 뒤돌아서던 호태식이 그 모습을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왜 또 손을 대요? 피우시려고요?”

“아니, 옛날 생각이 좀 나서.”

오래전 의뢰를 수행하던 중 불가피하게 대마에 손을 댄 적이 있었다. 그것을 끊기 위해 서지철은 적지 않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서지철은 담배처럼 만 흰 종이 안의 대마초를 장갑 낀 손으로 짓이겨서 바닥에 버렸다.

“형님, 들어오는데요.”

“따뜻하게 맞이해 줘야지.”

소파에서 일어난 서지철은 현관문 옆에 서 있다가 멋모르고 안으로 들어온 김탁훈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얻어맞은 김탁훈은 벽면에 놓인 장식대와 함께 거칠게 쓰러졌다.

“오빠!”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