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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12화 (312/575)

[312] 디 임팩트 13권 12화

뒤따라 들어온 젊은 여자가 놀란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쉿! 조용하고 저기에 들어가 있어.”

“난 별에서 온 공주다! 죽여 버리겠다!”

여자는 허공으로 붕 떠올라 멋진 발차기로 복면을 쓴 호태식의 안면을 가격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상상 속 모습이었고, 현실은 호태식의 손에 뺨을 얻어맞고서 바닥을 뒹굴었다.

“살살 다루라니까.”

서지철이 신음을 흘리며 쓰러져 있는 김탁훈에게 걸어가며 호태식에게 한 소리 했다.

“별나라 공주라는데 그럼 어떡합니까? 일단 정신 차리게 해 줘야죠. 야! 얼른 안 일어나!”

복면을 쓴 호태식이 크게 소리를 쳤지만 여자는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내가 일어나서 널 죽일 거야!”

“까분다.”

호태식은 살쾡이처럼 달려드는 여자의 손톱을 피해 수도로 그녀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귀찮은 일이 벌어지기 전에 이러는 게 최선이었다.

기절한 그녀를 방 안에 던져 놓고 나온 호태식은 물소리가 들리는 욕실로 향했다. 서지철이 술과 대마초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김탁훈에게 차가운 물세례를 퍼붓고 있었다.

한동안 저항하는 김탁훈을 때리며 물세례를 퍼부은 끝에 눈이 시퍼렇게 멍든 그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다, 당신들 누구야?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정신이 좀 들었냐? 대마초를 정도껏 피우셨어야지.”

“누, 누가 대마초를 피웠다고.”

“밖에 있는 건 그럼 잡초냐? 이 자식 이거 좋게 말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서지철은 물에 적신 수건을 길게 만들어서 김탁훈을 내리쳤다.

물기가 있는 수건에 맞은 김탁훈이 비명을 내질렀다. 벌거벗은 몸에 붉은 자국이 여러 개 생겼다.

“다시 물을게. 저게 대마야, 아니야?”

“대, 대마입니다.”

30대 초반인 김탁훈은 어려움 없이 자라 남에게 맞는 고통을 알지 못했다. 그나마 작년에 홍영에게 수작을 부리다 도현에게 걸려 차 안에서 당한 일이 최초이자 마지막 육체적 고통이었다. 그렇기에 피부에 차지게 달라붙는 젖은 수건 구타에 견딜 수가 없었다.

“너, 희연이 알지?”

“예? 희, 희연이요?”

“그래, 희연이.”

욕조에서 자신의 중요 부위를 손으로 감추고 앉아 있던 김탁훈은 자신을 거쳐 간 수많은 여자들을 떠올려 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희연이라는 여자가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몰라?”

“잘…….”

“내 동생이야, 이 개새끼야!”

서지철이 다시 물에 젖은 수건으로 욕조에 앉아 있는 김탁훈의 전신을 사정없이 때렸다.

“아아! 아!”

김탁훈은 얼굴을 감싸며 몸을 숙였다. 술과 대마초에 취해 있을 때는 별로 아프지 않았는데, 정신이 점점 명료해질수록 매 맞는 아픔이 비약적으로 급상승하고 있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생각나 안 나!”

“나, 납니다! 나요!”

“뭐, 이제 와서 생각이 나? 야, 수건 한 장 더 가지고 와. 이거 악질이네.”

서지철이 호태식에게 말했다.

수건 두 장이 몽둥이처럼 서지철의 손안에 쥐이자 욕조 안에 있던 김탁훈이 기겁하며 외쳤다.

“대,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외국 유학 시절에 맛을 들였던 대마초를 최근에 다시 피우게 된 그는 주말이면 여자와 함께 별장에 들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오늘은 지옥이었다.

“희연이 오빠가 왜 왔겠어? 응?”

“아아! 아! 제, 제발 말로 하십시오. 말로요! 전 희연이가 누군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탁훈은 매를 맞는 아픔도 아픔이었지만 속이 뒤집어질 만큼 억울하고 분했다.

‘이 미친 자식! 희연이가 도대체 누구야! 내가 나중에 그년하고 네놈을 찾아내서 지금의 아픔을 백 배로 돌려주겠다!’

속으로 이를 갈던 김탁훈은 살가죽이 벗겨지는 수건 채찍질의 고통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대체 너희들 뭐 하는 놈들이야!”

용기 있게 욕조에서 일어나던 그는 하체 급소에 수건 채찍질을 당하고 고꾸라졌다.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극심한 고통이 하체 급소에서 전해져 왔다.

“너, 너희들, 후회할 거야.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짓거리를…….”

“희연이 알지?”

“모, 모른다고 했잖아!”

“희연이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

서지철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어떻게 됐는데?”

“그 애는…… 궁금하면 희연이를 찾아가서 물어봐.”

서지철은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던져 주고는 다시 수건 채찍질을 했다.

“도, 돈을 줄게. 어, 얼마를 원하는 거야. 돈 때문에 이러는 거지?”

매질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던 김탁훈은 애원하는 눈빛으로 복면을 쓴 서지철을 올려다봤다.

“얼마를 줄 건데?”

서지철이 매질을 중단하고 물었다.

“5천만 원?”

“후우, 너 내 동생 희연이 알지?”

“모른다고요.”

“왜 몰라 이 개자식아! 갠 너를 알고 있는데!”

“진짜 모른다고, 이 병신들아! 사람 잘못 찾아왔어!”

“주세요. 제가 칠게요.”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호태식이 나섰다. 수건을 받은 그는 세면대에 담아 둔 물에 수건을 적신 후 물기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난 희연이 오빠처럼 손에 사정을 두는 사람이 아니야. 병신 될 준비해.”

무시무시한 으름장을 놓은 호태식이 세면대 위의 유리잔을 발로 밟아 깨트린 후 그 유리 조각 몇 개를 수건 안에 넣고 반으로 접었다.

“살점이 찢어지고 뼛속까지 유리 조각이 들어가게 해 주지.”

차가운 호태식의 눈빛에 김탁훈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이, 이봐요, 왜들 이러시는 겁니까?”

“마지막으로 묻겠다. 희연이 알아, 몰라?”

호태식의 건조한 물음에 김탁훈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제 생각해 보니 확실히 기억이 납니다. 희연이 압니다. 네, 아주 잘 알아요. 아름답고 얼굴이 흰 여자였죠.”

“그래, 희연이는 그렇게 생겼지. 그런데 넌 너무 심하게 그 애를 대했어.”

“제가요?”

“대화를 할 준비가 아직 덜됐군. 아무래도 이걸로 맞아야겠어.”

호태식이 유리 조각이 든 수건을 휘두르려 하자 김탁훈이 욕조 안에서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희연이에게 못되게 굴었습니다.”

호태식은 들었던 수건을 다시 내려놓으며 한동안 그를 노려봤다.

질식할 것 같은 침묵에 김탁훈은 긴장이 돼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오랜 침묵 끝에 호태식이 입을 열었다.

“부모 잘 만나 편한 인생 살고 있으면 그냥 그렇게 쭉 살아,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말고. 알았냐?”

“네! 알겠습니다!”

호태식이 뒤로 물러나자 좌변기에 걸터앉아 있던 서지철이 일어나서 다가왔다.

“밖에 차 얼마짜리냐?”

“네?”

“얼마짜리 차냐고!”

“2억 원대입니다.”

회사 전략기획실 실장인 그는 이사 직급에 맞게 국산 중형차를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밖에 있는 차는 출퇴근용 차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타고 다니는 고가의 외제차였다.

“따라 나와.”

온몸이 붉고 푸르게 멍이 든 김탁훈은 절뚝거리며 서지철과 호태식의 뒤를 따라갔다.

“부숴.”

서지철의 턱짓에 호태식이 정원수 옆에 관상용으로 놔둔 볼링공 크기의 수석 하나를 집어 들었다.

쿠웅.

자동차 보닛이 움푹 찌그러 들어갔다. 무거운 돌을 다시 집어 든 호태식은 외관이 성한 곳이 없게 한 바퀴 빙 돌며 자동차를 철저히 망가트렸다.

폐차장으로 직행해도 될 만큼 자동차를 손상시킨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는 김탁훈 발밑에 수석을 떨어트렸다.

“오늘은 저 차 한 대로 끝낸다. 희연이 다시 만나지 마. 알았어?”

호태식의 경고에 김탁훈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며 무거운 고갯짓을 했다.

“아, 그리고 네가 대마초를 피우고 발가벗은 몸으로 미친놈처럼 뛰어다니던 영상이 곧 인터넷에 퍼질 거야. 걱정 마, 중요한 부위는 가려 줄 테니까.”

김탁훈은 정체불명의 두 사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질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들이 마지막에 남겨 두고 간 말이 무슨 의미인지 여러 번 곱씹으며 생각했다.

“이 또라이 새끼들.”

정신이 번쩍 든 김탁훈은 헐레벌떡 별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때마침 기절했다가 깨어난 젊은 여자가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오빠, 내가 꿈을 꾼 거 같아. 꿈에서 어떤 사람들이…….”

“저리 비켜!”

앞을 가리는 여자를 옆으로 밀친 그는 방에 들어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버지의 경호팀장인 최태진에게 도움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휴대폰은 부서져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부서진 휴대폰을 집어 던진 그는 안방과 거실에 있는 두 대의 전화기를 번갈아 확인했다. 전화선이 모두 끊겨 있었다.

“야! 네 휴대폰 어디 있어?”

여자의 핸드백을 거꾸로 흔들어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던 김탁훈이 물었다.

“오빠, 사람을 그렇게 밀치는 게 어디 있어?”

“휴대폰 어디 있냐고!”

어깨를 잡아 미친 듯이 흔드는 김탁훈의 행동에 겁을 먹은 여자가 소파 한쪽에 떨어진 재킷을 가리켰다.

“이런 썅!”

여자의 휴대폰도 부서져 있긴 마찬가지였다. 호태식이 외부와의 연락 수단을 모두 차단한 것이다.

연락을 하려면 산을 내려가야만 했다. 차도 망가졌고,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틀렸어.”

김탁훈은 허탈한 마음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만큼 치밀하게 준비한 자들이라면 국가기관에서 정보 요원으로 활약했다던 최태진 팀장이라 해도 단시간 내에 그들을 잡긴 어려울 것 같았다.

“하긴 뭐 단서라도 있어야지. 대체 희연이란 년이 누구야?”

김탁훈은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했다.

대체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 가명을 사용한 여자의 진짜 이름이 희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빠, 우리 한 대 더 피울까?”

상황을 모르는 젊은 여자가 대마초를 조심스럽게 가리켰다.

속이 끓어오른 김탁훈은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치며 벌떡 일어섰다.

“옷 입어! 서울 올라가게!”

그림

수련용 진검을 들고 부드럽게 몸을 움직이던 도현은 한없이 느린 동작으로 검을 거두며 호흡을 갈무리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아침 수련이었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그에겐 매우 짧게 느껴졌다.

이마에 맺힌 땀을 도복 소매로 가볍게 훔친 도현은 조금 전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검에 너무 빠져 자신도 모르게 단전의 내공을 끌어 올렸다가 극심한 고통에 주저앉을 뻔했다.

폭주의 후유증으로 인해 기가 흐르는 곳들이 손상되어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내공을 사용하려 했다면 몸이 크게 상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

‘검에 너무 몰입했어. 내상이 완전히 치유될 때까지는 조심해야 돼.’

폭주의 영향으로 아프고 무거웠던 몸이 호심공을 통해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육체의 회복을 의미했다. 내공을 사용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였다.

“차 한잔해요.”

도현보다 10분 정도 일찍 아침 수련을 마친 홍영이 관장실에서 손짓했다.

“도현 씨, 얼굴이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요?”

도현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벽에 걸린 거울을 응시했다. 생기 없이 돌아왔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 모습이 확실히 좋아 보이긴 했다.

“홍영 씨가 옆에 있어 주니까 그런가 봐요.”

“듣기는 좋네요.”

홍영은 고개를 살포시 숙이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도현과 아무 생각 없이 차 한잔 마시는 시간이 아주 값지고 소중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시간들.

도현과 누리고 싶은 건 이런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태선군에 대한 복수가 마무리되어야 한다. 이계에 대한 것들도.

홍영은 고개를 들어 차를 음미하는 도현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다 지하 도장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출근한 용주가 신발을 벗고 있었다.

“좋은 아침!”

용주가 밝은 표정으로 도장 실내를 가로질러 왔다.

“어서 와요, 용주 씨. 차 한잔해요.”

“좋죠. 난 늘 홍영 씨가 만들어 주는 차를 기대하며 온다고요. 내가 우려낸 찻물은 영 맛이 없어서.”

가방을 한쪽에 내려놓은 용주는 접혀져 있는 철제 의자를 펼쳐 도현 옆에 앉았다.

“살다 보니까 별일이 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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