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13화 (313/575)

[313] 디 임팩트 13권 13화

“무슨 일 있었어?”

도현은 혼자서 피식피식 웃고 있는 용주를 보며 물었다.

“황당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서. 오다가 그거 보고서 깜짝 놀랐다.”

“네가 놀라는 거 보면 어지간한 건가 보다. 대체 어떤 동영상인데 그래?”

도현이 차를 마시며 물었다.

“김탁훈 동영상.”

“김탁훈? 우리가 아는 그 사람?”

“그래, 그 자식 아주 좆 됐어.”

용주는 욕을 섞어 거칠게 말하다가 홍영이 의식됐는지 뒤이어 나오려는 거친 말들을 입안으로 삼켰다.

“홍영 씨, 차 잘 마실게요.”

차를 건네주는 홍영에게 씨익 웃어 보인 용주는 옷 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아니다. 큰 화면으로 보자. 실감 나게.”

용주는 관장실 책상 위에 있는 노트북을 들고 와 다탁처럼 쓰이는 작은 원형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도현과 홍영은 대체 무슨 동영상이기에 용주가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머리를 맞대고 노트북 속에 보이는 인터넷 동영상에 시선을 집중했다.

“어머!”

홍영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라워했다. 한때 직장 상사였던 김탁훈이 정원에서 소리를 지르며 벌거벗은 채 춤을 추고 있었다. 여자도 있었지만 그녀는 누군지 알아보기 어렵게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고, 음성도 변조된 채 나왔다.

동영상을 올린 사람은 김탁훈의 중요 부위만 가려 준 채 얼굴과 음성을 모두 공개한 것이다.

화면은 별장 실내로 바뀌었고,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술병과 테이블 위에 대마초로 의심되는 것들을 클로즈업했다.

그 상태로 잠시 유지되던 장면은 옆으로 흔들리며 별장 밖 정원을 비췄다.

정원에선 여전히 김탁훈과 여자가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었다.

영상은 영화의 롱 테이크 장면처럼 끊어지지 않아서, 보는 사람의 몰입감을 극대화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편집이나 조작도 들어가지 않았음을 입증해 보였다.

잠시 후 화면이 어두워지며 자막이 한 줄 떴다.

-이 모든 것을 희연에게 바칩니다.

“어때, 죽이지? 망신도 저런 개망신이 어디 있냐?”

용주는 흐뭇한 시선으로 홍영이 만든 차를 마셨다.

“도현아, 대마초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둘째치고라도 옷 벗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여자와 저런 행동을 벌인 김탁훈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거야.”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용주 말이 틀리지 않았다. 김탁훈은 이 동영상 때문에 큰 시련을 겪을 것 같았다.

‘그런데 희연이가 누구지? 여자 이름 같은데.’

도현은 이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이 김탁훈과 갈등 관계라고 짐작했다. 그렇다면 희연이란 사람은 김탁훈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홍영 씨, 한 번 더 볼래요?”

용주가 노트북에 손을 가져갔다.

“아, 아니에요. 됐어요.”

홍영은 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사실 사람을 시켜 도현을 손보려한 김탁훈을 벼르고 있었다. 다만 도현이 있었기에 나서지 않고 꾹 참고 있었던 것이다.

“서림의 오너인 김탁훈의 부친은 꽤나 냉정한 사람이에요. 아마 이 동영상을 보게 된다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아들이라 해도요.”

“그래요? 홍영 씨가 그건 어떻게 알아요?”

용주가 차를 한 모금 하며 홍영을 쳐다봤다. 도현도 궁금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한국에 와 서림의 본사에서 잠시 근무하며 다른 직원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피도 눈물도 없는 성과주의자에다 작은 잘못에도 가차 없이 문책하는 인물. 백화점을 소유한 대형 유통 업체의 사장인 김탁훈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래요. 아들이라고 해도 그는 회사를 먼저 생각할걸요.”

서림의 오너 김성국은 집무실로 들어오는 아들을 지그시 응시하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김탁훈도 별달리 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죄인처럼 집무실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전략기획실 자리가 그렇게 가볍더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고개 들어!”

김성국이 책상 위의 서류철을 집어 던지자 김탁훈이 놀라 재빨리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아버지를 응시했다.

“상해 지사장으로 가서 차분히 일 좀 한다 싶어 주위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본사 전략기획실을 맡겼다. 그런데 이따위로 날 실망시켜!”

오전에 아들의 해괴한 동영상을 본 김성국은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 동영상,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해 봐.”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는 아버지에게 김탁훈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날의 일을 설명했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널 폭행하고, 차를 망가트리고, 동영상을 촬영해 유포했다고?”

“그렇습니다, 아버지. 정신병자 같은 놈들이었습니다. 모르는 여자 이름을 들먹이면서 말입니다.”

김탁훈은 억울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김성국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상에 어느 미친놈들이 이유 없이 별장까지 따라와 네게 그 짓거리를 한단 말이냐.”

“저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버지.”

“희연이는 누구냐?”

“정말 모르는 여자입니다.”

“네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

아버지의 서슬 퍼런 눈빛에 주눅이 든 김탁훈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답했다.

“예전에 클럽에서 가볍게 만난 여자들이 몇 있었는데…… 어쩌면 그녀들 중에 한 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벌써 몇 년 전 이야기고 지금에 와서 이런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그녀들에게 크게 잘못한 일도 없고요.”

입술이 찢어지고 눈두덩에 퍼렇게 멍이 든 아들의 주장에 김성국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마초는?”

“그건…….”

김탁훈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쓸모없는 녀석 같으니. 주는 떡도 못 먹고 헛짓거리나 하고 다니다니. 실망이다.”

의자에서 일어난 김성국은 생각 깊은 얼굴로 창가로 걸어갔다. 한동안 사옥 창밖을 응시하던 그는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뒤돌아서서 인터폰을 눌렀다.

“법무팀장 내 방으로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사장님.

회사 법무팀장을 부른 김성국은 아들의 앞에 섰다.

“남자라면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겠지. 사표 수리하마.”

“예? 아니, 아버지! 사표라뇨?”

김탁훈은 놀란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봤다. 문책은 각오했지만 회사에서 아예 떠나라는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전 피해자입니다, 아버지! 개처럼 두들겨 맞고, 제 인격이 무시된 동영상이 떠돌고 있다고요.”

언성을 높이는 아들의 행동에 김성국의 눈썹이 위로 솟구쳤다.

“이놈의 자식이!”

김성국이 아들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네놈이 처신을 똑바로 하고 다녔으면 그런 동영상이 왜 돌아다녀!”

뺨을 맞고 비틀거리던 김탁훈은 아버지를 쳐다봤다. 이렇게까지 화난 아버지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 아버지.”

“네놈이 생각이 있는 녀석이라면 그런 일이 벌어지자마자 내게 연락을 취했어야 했다. 동영상이 올라오기 전에 대응이라도 할 수 있게. 그런데 이제 와서 네놈 목소리를 높이는 거냐?”

김탁훈은 고개를 푹 숙였다. 고민은 됐지만 그래도 그들이 동영상을 안 올릴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졌기에 그는 별장의 사건을 혼자 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들을 질책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일이 터지고 보니, 자신의 결정이 후회스러웠다. 별장에서 서울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경호팀장인 최태진에게 처음 생각처럼 도움을 청했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최태진이 아버지에게 자연스레 별장에서의 일을 귀띔이라도 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저녁쯤이면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이 문제를 다룰 거다. 그들에게 아주 좋은 기삿거리니까. 문제가 더 커지면 경찰이 나설 수도 있고.”

“회사에 누가 되지 않도록 바로 사표를 내겠습니다.”

김탁훈은 굳어진 음성으로 말했다.

“법무팀장 오면 별장에서 벌어진 일을 숨김없이 말하고 오늘 중으로 한국을 떠나, 준비는 해 줄 테니까. 한 2년간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말고.”

“2년이나요?”

김탁훈은 숙였던 머리를 쳐들다가 차가운 아버지의 눈빛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서림이라는 회사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매년 들어가는 홍보비가 얼마인지 너도 알 거다. 네가 그 막대한 돈들을 헛것으로 만들었어. 못난 놈.”

“죄송합니다, 아버지. 그런데 2년 뒤에는 제가 다시 회사로 돌아올 수 있는 거죠?”

김성국은 아들을 노려보다가 말없이 뒤돌아서서 의자에 앉았다. 대답 없는 아버지의 모습에 불안해진 김탁훈이 책상 가까이 다가가 재차 물었다.

“아버지, 전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이 회사, 물려받게 해 주세요. 경기 북부 프리미엄 아울렛 준비도 제가 차질 없이 잘해 오고 있었잖아요.”

“생각해 보자.”

“아버지!”

“회사를 세운 건 나지만, 이 회사 하나에 여러 사람 목숨이 달려 있다. 내 인생의 결정체이기도 하고. 불안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내겐 더 이상 없어.”

이번 일로 크게 실망한 김성국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충격! 모 기업 대표 아들 한밤 알몸 추태! 대마초 흡연 가능성도 제기.

-당사자 모든 연락 끊고 해외로 급히 출국. 수사를 의식한 도피성 출국이라는 의혹 제기도.

-국내 굴지의 대형 유통 업체 서림의 고문 변호사는 ‘사람의 시선이 차단된 산속 별장 사유지에서 알몸으로 춤을 추는 게 과연 범법 행위인가?’라며 동영상 촬영자야말로 악랄한 범법자라면서 강도 높게 비난.

-알몸 추태 주인공 김 씨, 해외에서 언론사와 인터뷰를 통해 항간에 떠도는 대마초 흡연 사실을 완강히 부인. 단순히 술에 취해 음악에 맞춰 춤을 춘 것이라고 주장.

김탁훈의 알몸 추태 동영상은 대마초 흡연 사실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워 여러 날 동안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고, 그와 관련된 기사들도 적지 않게 쏟아졌다.

특히 동영상 말미에 등장하는 ‘희연에게 바친다.’라는 자막을 두고도, 그 이름에 대한 정체를 둘러싸고 온갖 소문이 떠돌아다녔다.

“재밌네, 재밌어.”

용주는 김탁훈의 추락이 아주 고소했다. 도현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홍영에게 흑심을 품은 김탁훈의 손에 벌써 해를 입었을 것이다.

옥상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통쾌하게 웃던 용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현에게 걸어갔다. 도현은 옥상 난간에 한 손을 걸치고 저 멀리 시선을 두고 있었다.

“무슨 생각 하냐?”

“마법에 저항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어.”

“마법? 아, 그 얼음탑주.”

김탁훈의 일로 즐거워하던 용주의 얼굴에 살짝 긴장감이 서렸다. 얼음탑주는 이계에서 도현을 폭주시킨 자였다.

“가끔 멍 때리고 생각에 잠겼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냐?”

“멍 때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도현은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 웃었다. 용주는 담배를 피우며 도현이 그린 만화를 생각했다. 그것에 얼음탑주가 어떤 마법을 발휘해 도현과 싸웠는지 제법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 마법을 돌파하고 마법사와 싸웠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지난번에 내가 얼음탑주를 따돌리지 못하고 폭주까지 하게 된 배경은, 체내에 스며든 냉기가 내 육체에 영향을 끼쳐서야. 그걸 내공으로 억제하느라 전력을 다할 수도 없었고. 그러다 결국 죽음의 끝에서 폭주하게 된 거지. 나중에 이계에 가서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안 되잖아.”

“그렇긴 하지. 생각해 보니 어때, 방법이 떠올라?”

“제일 좋은 건 마법을 한 대도 맞지 않고 내가 먼저 그를 제거하는 건데, 현재 실력으로는 부족해. 그래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건 내 몸을 마법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어 기술을 개발하는 거야.”

“방어 기술……. 얼음탑주가 창으로 공격하면 넌 방패로 막는다는 거지? 말 되네.”

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술로 그자의 마법을 쳐 내거나 빠른 신법으로 회피했는데, 그걸로는 부족했어. 결정적인 순간에도 내 몸을 마법으로부터 구해 줄 기술이 있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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