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14화 (314/575)

[314] 디 임팩트 13권 14화

도현은 말을 하다가 몸을 돌렸다.

“내려가자. 보여 줄 게 있어.”

“잠시만.”

피우던 담배를 급히 마무리한 용주는 서둘러 도현의 뒤를 따라갔다.

지하 도장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홍영을 의식해 조용히 관장실로 들어간 도현은 스케치북을 펼쳐 그림을 그려 갔다.

마법사가 마법 보호막을 펼쳐 외부의 공격을 일시적으로 막는 장면이었다.

“전에 내가 그린 만화에서도 봤을 거야. 이런 식으로 병사들의 화살 공격을 막았거든. 그때 네가 그런 말을 했었지, 마법사들의 마법이 꼭 소설 속 호신강기 같다고.”

“기억나.”

용주가 그림을 보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용주야, 내가 만약 호신강기를 만든다면 어떨까?”

“뭐? 호신강기를?”

용주가 놀란 얼굴로 도현을 쳐다봤다.

“그게 가능하겠어?”

“장풍은 몸속의 기를 체외로 방출하며 강하게 상대방을 향해 날리는 거야. 비검술은 검과 내 손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기의 끈을 연결시켜 계속 조종하는 거고. 대신 막대한 내공이 소모되지. 물론, 이런 수법들은 무리에 대한 깨달음이 받쳐 주지 않으면 안 돼. 특히 비검술 같은 경우는 내공만 강하다고 해서 사용할 수 없는 수법이고.”

말을 길게 한 도현은 물을 한 잔 마시고 말을 이었다.

“철호 형이 익히고 있는 기예잡술서상의 외공은 타고난 선천지기를 지속적으로 자극해 근골을 강화시키지. 다시 말하자면 선천지기를 몸 전체에 코팅하듯 바르는 거야.”

“그런 거였어?”

도현은 실력이 높아질수록 무공을 보는 안목도 점점 높아져 자신만의 체계를 갖춰 나가고 있었다. 그것이 옳다, 틀리다를 옆에서 조언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없었지만, 도현은 그렇게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내가 앞서 말한 장풍, 비검술, 선천지기를 이용한 외공 등은 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모습들이야. 결국 무공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의 기운을 몸속에 저장한 후, 그 기운들을 알맞은 형태로 이용하려다가 생긴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말이지.”

“그래…….”

용주는 아직 무리에 대한 수준이 높지 않아 도현이 보는 만큼 볼 수가 없었다. 말뜻은 이해했어도 도현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긴말을 늘어놓는지 그 의도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난 체내의 기운을 검에 주입하거나 아니면 장풍이나 황금 검처럼 기의 덩어리를 뭉쳐 세차게 날리는 것에 치중해 왔어. 그러면서 난 ‘기는 강하다.’라는 성질에 눈을 떴지. 검술이 부드럽더라도 그 안에 담긴 기의 성질은 아주 강맹했거든. 하지만 비검술을 사용하면서 조금씩 기의 성질을 달리 생각하게 됐어.”

“어떻게요?”

명상을 하다 중간에 깨어난 홍영이 관장실 입구에서 물었다. 그녀는 얘기에 열중하는 도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관장실 입구에서 그가 하는 말을 조용히 귀담아듣다가 이야기에 빠져 자기도 모르게 질문을 한 것이다.

도현은 입구에 서 있는 홍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는 강할 뿐만 아니라 유하다.”

“유하다고요?”

“네. 내가 날린 검과 내 손 사이에 연결된 기가 강한 성질만 띠었다면 난 멀리 떨어진 검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었을 거예요. 기가 중간에 뚝 부러져서 검이 추락했겠죠. 비검술은 기의 부드러운 성질을 이해 못 하면 그 경지가 발전할 수 없는 독특한 검술의 수법이에요.”

아직 도현의 내상이 다 낫지 않아 비검술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용주와 홍영은 도현의 설명에 비검술이 더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호신강기는 어떻게 만들려고?”

용주는 다시 호신강기 얘기로 돌아왔다.

도현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홍영과 앞에 앉은 용주를 둘러보다가 탁자 위에 놓아둔 스케치북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는 그곳에 그림을 그리며 머릿속 생각을 이야기했다.

“장풍처럼 체내의 기운을 외부로 뿜어내고 그 기운들이 흩어지지 않게 순간적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내 몸을 감싸게 한다. 그것들이 한 겹 한 겹 쌓이다 보면 강하고 부드러운 기의 막이 생기겠지, 소설 속 호신강기처럼.”

“오, 그럴듯한데!”

용주가 사람의 몸을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 스케치북 안의 그림을 보고는 박수를 쳤다.

“정말 이대로만 된다면 좋겠다.”

용주는 자신은 꿈도 못 꾸는 환상 속 이야기를 도현이 현실로 끄집어내고 있었지만, 시샘 어린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친구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게 뿌듯하고 기뻤다.

“홍영 씨, 도현이가 호신강기를 만들 수 있게 되면 마법사의 공격으로부터 훨씬 더 안전해질 거예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한 거군요.”

도현은 홍영이 너무 기대할까 봐 미리 말했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실제 결과는 다를 수도 있어요.”

폭주의 후유증이 다 나아 내공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때만이 상상 속의 생각을 현실로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홍영은 스케치북의 그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디든 시행착오라는 게 있잖아요. 큰 기대하지 않고 있을 테니까, 부담 갖지 말아요.”

홍영의 차분한 말에 도현은 담담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복을 벗고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는 서지철을 만나기 위해 도장을 나섰다. 그와 저녁을 함께 하기로 약속이 된 상태였다.

호검술 도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아담한 일식집 다다미방에서 도현을 기다리던 서지철은 이혼한 아내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좋은 말이 오가지 않았는지 그의 인상은 잔뜩 굳어 있었다.

“재혼하는 걸 두고 내가 뭐라 하는 게 아니잖아. 아라에게 좋은 새아빠가 될 사람인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지.”

-그걸 왜 당신이 신경 써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당신하고 이혼했지만 아라는 여전히 내 딸이야!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어!”

서지철은 도현에게 받아 놓았던 뮤직 박스 선물을 곱게 포장해서 얼마 전, 딸을 만나러 갔다.

냉랭한 아내의 시선을 받으며 열한 살 아라에게 도현이 준 선물을 주던 그는 때마침 찾아온 아내의 남자를 목격하고야 말았다.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딸을 가볍게 안아 준 그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혼한 사이에 그녀의 사생활을 간섭할 권리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빠 없이 지내는 어린 딸을 위해서 든든한 새아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재혼할지도 모른다는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조금 전 전화로 조심스럽게 몇 가지 물었는데, 그걸 이혼한 아내가 안 좋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서지철은 따라 놓은 물컵의 물을 마시며 흥분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나 당신하고 싸우려고 전화한 게 아니야. 재혼을 방해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단지 내가 걱정하는 건, 아라의 미래야. 제발 부탁이니까, 재혼하려는 상대방이 새아빠로서 제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남자인지 깊이 생각해 봐.”

한동안 대답이 없던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요.

“그래, 고마워. 그 뮤직 박스는 잘 가지고 노나?”

-좋아해요. 잠자기 전에도 몇 번씩 뮤직 박스를 돌려 멜로디를 들을 정도니까요.

딸이 좋아하는 것 같아 서지철은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한다니 다행이야.”

-돈만 주면 다 끝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그런 선물도 살 줄 알고, 많이 변했네요?

“험, 나라고 뭐 그런 감성적인 면이 없는 줄 아나?”

서지철은 도현이 준 선물을 자신이 산 선물로 둔갑시켰다. 상황상 어쩔 수가 없었다.

“다 먹고살려고 뛰어다니다 보니 무뚝뚝하게 변한 거지. 그리고 돈 밝히던 사람은 당신이었어.”

-지금 또 싸우자는 거예요?

“아니, 미안해. 아무튼 또 통화하자고.”

서지철은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전화를 끊었다. 작은 다다미방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내심 백도현일 거라고 예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서지철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너 뭐야, 니가 왜 여기에 와?”

뜻밖에도 들어온 사람은 백도현이 아니라 호태식이었다.

“형님, 오늘 여기서 백 관장 만난다면서요. 그래서 왔죠.”

호태식은 문을 닫고 자리에 앉았다. 그의 표정은 사뭇 비장했다.

“너 약 먹었냐? 너 여기 있으면 우리 둘의 관계가 들통 나잖아.”

“그래서 왔어요. 언제까지 숨길 수도 없고, 호검술 4초식을 배우고 있는 마당에 정식 제자로서 부끄러움이 없어야죠.”

호태식은 서지철이 도현과 가까운 사이가 된 이후로 자신의 신분도 밝혀야겠다고 줄곧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검을 배우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내부를 살피려고 투입된 서지철의 파트너였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동안 가까웠던 도장 사람들이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지금껏 망설이고만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는 말해야겠습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좋을 때도 있어.”

다다미방 문을 열어 도현이 오는지 잠시 밖을 살펴보던 서지철이 뒤돌아섰다.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호태식 앞에 섰다.

“굳이 잘 지내고 있는데 지금에 와서 이럴 필요 없잖아. 그리고 전에 내가 말했지, 백 관장은 그렇다 쳐도 조 사범이 널 가만둘 것 같아?”

호태식은 용주 얘기가 서지철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지금도 그 녀석은 날 보고 반가운 척하지 않는다고. 아주 뒤끝이 상당한 녀석이야. 그런데 네가 순수한 마음으로 온 관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봐. 실망한 그가 지금처럼 관원으로 널 인정하려고 하겠냐?”

“인정할 겁니다. 조 사범은 나를 좋아하니까요.”

“그건 네 생각이고.”

서지철은 답답하다는 시선으로 호태식을 내려다봤다.

“태식아, 나도 백 관장 속이기 싫다. 그런데 이 경우엔 달라. 도장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있는데 왜 매 맞겠다고 머리를 들이미는 거냐고. 그들에게 네가 못된 짓을 한 것도 없잖아. 솔직히, 오히려 그들 편에 서서 나를 말리려고 했지. 넌 처음부터 그들 편이었어.”

“그렇지만…….”

“분위기 좋을 때는 깨지 말고 그냥 가자. 응?”

호태식은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이 없었다.

도현이 올 시간이 가까워지자 서지철은 다다미방 문을 응시했다. 둘이 말없는 가운데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곧이라도 방문을 열고 도현이 등장할 것만 같았다.

“형님, 내가 형님의 파트너였다고 말하면 형님에게도 불이익이 있겠죠? 그동안 형님이 백 관장을 계속 속인 게 되니까요.”

“그게 무서워서 내가 널 만류하는 게 아니야, 자식아. 애초에 네 이야기를 백 관장에게 하지 않은 건, 네가 호검술 도장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였어. 그 안에서 잘 지내보라고.”

“형님…….”

호태식이 고개를 들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서지철을 쳐다봤다.

서지철은 변장한 일자 콧수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오늘 여기서 김탁훈이 얘기 할 거죠?”

“그래야지. 그러려고 만나는 거니까.”

잠시 턱을 쓰다듬던 호태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 볼게요.”

“간다고?”

“네, 조금 있으면 저녁 수련 시간이에요.”

호태식은 서지철의 물컵에 물을 한 잔 따라 마신 후 방문으로 향했다.

서지철은 단단히 마음먹고 온 것 같은 호태식이 마음을 바꾼 이유가 궁금했다. 꼭 자신의 말 때문에 마음이 바뀐 것 같지는 않았다.

“왜 그냥 가는 거야?”

“생각해 보니까 김탁훈이 혼내 준 일을 말하는데 내 얘기가 나오면 형님이 고생해서 한 일이 빛이 바래잖아요. 선물을 받은 보답으로 야심 차게 준비한 이벤트였는데.”

“고생은 네가 했지. 뒷조사에 동영상 올리는 것까지.”

“뭐 아무튼요. 형님, 나중에 전화할게요.”

호태식이 방문을 반쯤 열었을 때, 서지철이 다소 무거운 음성으로 물었다.

“태식아. 백 관장에게 말할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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