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18화 (318/575)

[318] 디 임팩트 13권 18화

호태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누나에게 눈짓을 했다.

“누나, 그만 가.”

“아직 관장님 대답을 못 들었어.”

“누나!”

“왜 이래 얘가!”

억지로 팔을 잡아끄는 동생의 행동에 눈썹이 위로 올라간 그녀는 벌떡 일어나 커다란 발로 동생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누나의 발길질에 당해 관장실 밖으로 튕겨져 나간 호태식은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벌떡 일어났다.

“누나, 정말! 장군신이 이런 일을 하게 했어! 대체 왜 이래!”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장군신을 언급해! 벼락 맞아 급사하고 싶어!”

“그게 동생에게 할 소리야? 아무리 누나 친구의 아들이 힘들다고 해도 동생이 열심히 다니는 도장에 찾아와 이게 뭐 하는 거야? 하늘의 기운을 타고났으니 알아서 해결 좀 해 달라고? 이런 계통의 일은 전문가들이 하는 거지, 관련 없는 관장님에게 부탁할 게 아니라고.”

“왜 관련이 없어! 하늘의 기운을 타고났는데!”

호영순의 날 선 목소리가 도장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목청이 이만저만 좋은 게 아니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동생을 노려보던 그녀는 몸을 돌려 도현을 향해 절을 하듯 엎드렸다.

“귀인께서는 제발 도와주세요.”

그녀의 돌연한 행동에 놀란 도현이 급히 그녀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왜 이러십니까.”

“일을 떠넘기는 게 아니에요. 그저 불쌍히 여기셔서 가서 한 번만 만나 봐 주세요. 그 뒤의 일은 책임지시지 않아도 됩니다. 부탁입니다.”

그녀의 간곡한 어조에 도현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관장실 입구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호태식과 무당으로 연륜이 쌓인 호영순을 번갈아 보다가 얼마 뒤,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천천히 열었다.

“내일 가는 걸로 약속을 잡죠.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도현의 승낙이 떨어지자 호영순의 얼굴이 환해졌다.

“고맙습니다. 내일 모시러 올게요.”

“아닙니다, 주소만 알려 주세요. 제가 찾아가도록 하죠.”

도현은 그녀가 메모지에 주소를 남기는 것을 잠시 쳐다보다가 미안한 표정으로 서 있는 호태식에게 다가갔다.

“호검술 4초식은 배울 만합니까?”

“예? 아, 아직요. 열심히는 하고 있습니다.”

“얼마 안 됐으니 조급해하지 마시고 천천히 한 동작 한 동작을 자기 것으로 만드세요.”

“네, 관장님. 저어, 그리고 고맙습니다, 관장님. 불쑥 찾아와 어려운 부탁을 드렸는데 들어주셔서요.”

진심이 담긴 호태식의 말에 도현이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태식과 호영순을 도장 밖으로 배웅한 도현은 관장실로 돌아와 벽에 걸린 산수화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결국 승낙하긴 했지만 적지 않게 부담이 되었다. 요사스러운 기운 때문에 괴로워하며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이 자신이 가서 치료가 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기대한 사람들이 실망할 수도 있다.

“내일 가서 내가 도움이 되면 좋겠는데…….”

심란한 얼굴로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거실로 들어온 최규원은 한 달 사이에 부쩍 늘어난 흰 머리카락을 이마 위로 쓸어 올리며 아내에게 다가갔다.

건강했던 아내의 얼굴은 잔뜩 주름이 생기고 볼살이 쑥 들어가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말라비틀어져 가는 나무처럼 보여 마음이 아팠다.

초조하게 거실을 서성이는 그녀의 팔을 붙잡은 최규원은 그녀를 억지로 소파에 앉혔다.

“뭐라도 좀 먹어야지. 이러다 애보다 당신이 먼저 쓰러지겠어.”

“밥이 넘어가야지 먹죠. 그 밝고 건강하던 아이가 어쩌다가 저렇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아내가 흐느껴 울자 최규원은 아내를 안아 주며 위로했다.

“너무 걱정 말라고. 준영이는 그렇게 약한 애가 아니야. 반드시 예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올 거야.”

“열심히 살려는 우리에게 왜 이런 불행이 찾아올까요? 우리, 나쁘게 살지 않았잖아요?”

억울했는지 그녀는 뾰족한 목소리로 하늘을 원망했다.

한 달 전부터 뚜렷한 이유 없이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던 외아들이 나중에는 부모도 못 알아보고 공격적인 행동을 했다.

밤에는 몸이 너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며 침대보를 손톱으로 다 찢어 놓고, 낮에는 방 안 구석에 등을 붙이고 쪼그리고 앉아서 키득거리며 혼잣말을 계속했다.

눈빛이 정상이 아니어서 엄마인 그녀조차도 아들을 혼자 보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종합병원에선 아픈 곳이 없다고 했고, 정신과 의사는 정신병원에 장기간 입원시켜 약물 치료를 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조차도 왜 아이가 이렇게 됐는지는 명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저 정상이 아닌 행동을 반복하니 사회로부터 격리해 보호하며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미가 더 강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가끔 연락을 주고받던 고등학교 동창인 무당 호영순의 도움을 청했다.

무속 신앙을 믿지는 않지만 기댈 곳은 다 기대 보고 싶은 게 그녀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굿도 효험이 없어서 절망해 빠져 있었는데, 어제 호영순에게 연락이 와 귀인이 방문해 치료해 줄지도 모른다고 했다.

친구의 말에 희망을 가진 그녀는 아침부터 기대와 긴장감 속에 거실을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던 것이다.

“영순이가 말한 그 귀인이 우리 애를 치료해 줄 수 있을 까요?”

“기다려 봅시다.”

작년에 금융권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한 최규원은 무거운 얼굴로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오기로 한 시간이 거의 가까워졌다.

벽시계에서 시선을 뗀 그는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일전에 상담을 한 정신과 전문의의 명함이었다. 명함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여보, 오늘 귀인이란 사람도 준영이를 치료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병원에 보냅시다.”

“정신병원을 말하는 거예요? 안 돼요!”

최규원의 아내가 몸을 떨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런 곳은 정신이 멀쩡한 사람도 이상해지는 곳이에요. 뉴스도 안 봐요?”

“다 그런 곳이 아니야. 관리가 안 되는 곳이나 그렇지. 우리보다는 전문적인 의사와 간호사들이 준영이에게 필요할 수도 있다고.”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큰 게 어디 있어요?”

“여보, 현실을 직시해. 당신 혼자서는 무서워서 아들 방에도 못 들어가잖아.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최규원의 아내는 울먹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남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이 집에 준영이가 없다는 게 상상이 안 돼요.”

“여보, 나도 보내기 싫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하지만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우리가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저 아이를 책임질 수 있는 거라고. 당장은 힘들겠지만, 우리 가족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는 결단을 내려야 해.”

올 초에 군대에서 제대한 아들을 데리고 사우나를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어른이 된 아들과 웃고 즐거워했던 기억이 떠올라 최규원은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알았어요. 당신 말대로 할게요. 오늘 귀인이 와도 소용이 없다면 준영이를 병원에 입원시켜요.”

최규원은 큰 결심을 한 아내를 말없이 안아 주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인사하세요. 어려운 발걸음을 해 주신 귀인이세요.”

아파트 입구에서 도현을 기다린 호영순은 그를 최규원과 김영애에게 소개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들이 치료만 된다면, 그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최규원과 김영애는 귀인이라고 해서 나이 지긋한 노인을 예상했다. 젊은 도현의 등장은 약간 의외였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도현은 말을 하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호태식의 얼굴을 봐서 오긴 왔지만 여전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 사람인가 보군.’

거실 벽 한쪽에 걸려 있는 커다란 가족사진 속에는 웃고 있는 청년이 있었다.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도현은 입고 온 정장 상의를 벗었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던 호태식이 얼른 그의 옷을 받았다.

“관장님, 제가 들고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옷을 호태식에게 건넨 도현은 와이셔츠 차림으로 최규원과 김영애가 서 있는 아들의 방으로 걸어갔다.

안은 조용해서 마치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부탁드립니다.”

호영순의 정중한 말에 도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호영순이 방문을 닫았다.

“열어 두시지 않고요.”

도현이 어떻게 치료를 하는지 보고 싶었던 최규원이 문을 다시 열려고 했다.

“안 됩니다. 귀인이 집중할 수 있게 내버려 두세요.”

호영순의 강한 눈빛에 최규원은 별수 없이 한발 뒤로 물러났다.

꿀단지

방 안의 불은 꺼져 있었고, 창문은 짙은 색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도현이 스위치를 올려 불을 켰지만, 천장의 등은 들어오지 않았다.

‘등이 깨져 있군.’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웬만큼 잘 볼 수 있는 도현에게 사실 이 정도 어둠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현은 어두운 방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창가 쪽에 책상과 책장이 있고, 반대편에 침대와 장롱이 있었다. 장롱 옆은 방의 모서리 공간이었는데, 그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그는 도현을 짐승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방문 앞에 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도현은 일단 청년과 부딪쳐 보기로 했다.

방바닥에는 찢어진 책들이 굴러다녔고, 배설이라도 했는지 고약한 구린내가 후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진동했다.

하지만 도현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과 시선을 주고받는 청년에게만 집중했다.

방 안이 그리 넓지 않았기 때문에 도현이 몇 걸음 걸어가자 청년과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졌다. 두세 걸음만 더 걸으면 청년의 앞에 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조용히 노려만 보던 청년이 그때부터 몸을 덜덜 떨며 괴로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오, 오지 마! 오지 마!”

“준영이라고 했지? 난 백도현이야. 잠시 얘기 좀 하고 싶어서 왔다.”

“머리가 깨져 버릴 것 같아! 다가오지 마, 이 개새끼야!”

청년이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주변에 굴러다니던 백과사전을 집어 던졌다.

가까운 거리에서 빠르게 날아오는, 위협적인 백과사전을 가볍게 한 손으로 낚아챈 도현은 한쪽에 던져 놓고는 다시 한 걸음 내디뎠다.

“으으으. 개자식, 날 죽이려고 왔지?”

“아니, 널 살리려고 온 거야. 이 어두운 방에서 나가자. 저 밖에 너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셔.”

“닥쳐!”

청년은 도현이 두려운지 몸을 잔뜩 움츠린 상태에서 노려보다가 침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찢어지고 더럽혀진 침대 위에 놓인 오래된 야구방망이를 손에 든 청년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사납게 외쳤다.

“대갈통을 부숴 버리기 전에 나가!”

도현은 침대 위에 서 있는 청년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버지도 머리를 다치셨다. 그 후유증인지 몰라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내 목을 조르곤 하셨지. 너의 이런 모습은 익숙해.”

“히히, 익숙하다고?”

청년의 목소리가 갈대를 스치는 바람 소리처럼 스산하게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도현을 향해 말하던 겁에 질린 청년의 목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내가 누군데? 난 누구지? 크크크.”

눈동자가 사라지고 청년의 눈은 흰자만이 가득했다. 어둠 속에서 낄낄대던 청년을 향해 도현이 표정 없이 말했다.

“넌 나약한 존재다.”

“나는 나약하지 않아.”

청년의 입에서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약하지 않다면 청년의 몸에서 나와라.”

“내가 이 몸의 주인인데 어떻게 나가라는 거지?”

“넌 그 몸의 주인이 아니다.”

“내가 주인이야!”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