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19화 (319/575)

[319] 디 임팩트 13권 19화

고함을 지른 청년은 들고 있던 야구방망이로 도현을 공격하는 대신 자신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자해를 하려는 것이다.

야구방망이에 머리가 부서질 찰나, 공간을 단축해 청년의 옆에 재빨리 도착한 도현이 팔을 쭉 뻗어 손날을 횡으로 그었다.

쩌억.

야구방망이 윗부분이 통째로 부러져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손잡이 부분만 들고 멍하니 서 있던 청년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부러진 야구방망이 끝으로 도현의 얼굴을 내려찍었다.

“죽어!”

도현은 상체를 움직여 청년의 공격을 가볍게 피한 뒤, 발끝에 걸리는 침대보를 차올려 손에 들었다.

길쭉하게 찢어진 침대보를 이용해 청년의 오른 손목을 휘감은 도현은 청년의 등 뒤로 이동해 무릎 뒷부분을 발끝으로 눌러 강제로 무릎을 꿇렸다.

바둥거리는 청년의 왼 손목도 침대보를 이용해 휘감은 도현은 청년의 등 뒤에서 양 손목을 교차해 묶어 버렸다.

마치 수갑이 채워진 것처럼 꼼짝 못하게 된 청년은 괴성을 지르며 일어서려 했지만, 도현은 다리도 침대보를 이용해 꽁꽁 묶어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미줄에 묶인 하루살이 신세가 된 청년은 씩씩대며 도현을 쳐다봤다.

“잘 봤나? 넌 나약한 존재다.”

“혀를 깨물고 죽겠다!”

청년이 입을 벌리는 순간, 도현은 미리 손에 들고 있던 침대보 일부를 이용해 청년의 입에 재갈을 물려 버렸다. 빈틈없는 행동이었다.

“으으으으!”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청년이 침대 위에 엎어져 몸부림쳤다.

그 모습을 냉정히 내려다보던 도현은 몸을 돌려 창가로 다가갔다. 커튼을 젖히자 밝은 햇살이 방 안을 환하게 비췄다.

“햇빛 좋잖아. 안 그래?”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자 아파트 단지 내를 돌아다니던 공기들이 바람이 되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골이 띵할 정도로 독했던 방 안의 악취가 어느 정도 가시는 것 같아 도현은 돌아서서 침대로 걸어갔다.

침대보에 몸이 일자 형태로 묶인 청년이 고개를 쳐들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어쩌지?’

팔짱을 낀 도현은 청년을 내려다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압하는 거야 일도 아니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청년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무당인 호영순의 말처럼 요사스러운 기운이 청년을 움직였는지는 몰라도 조금 전에 겪어 본 청년의 행동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언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위험한 단계였다.

‘예전으로 돌려놓긴 해야 하는데 말이야…….’

도현이 고민하는 가운데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갔고, 해가 많이 기울었다.

도현에게 제압당해 침대에 누워 있는 청년은 긴장감이 사라졌는지 눈가에 비웃음을 담고 있었다. 그것이 묘하게 도현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너, 내가 우습지?”

“으으으.”

“그래, 이제 보니 호영순 씨의 말이 왠지 마음에 와 닿아. 넌 준영이가 아니야, 알 수 없는 요사스러운 기운일 뿐이지.”

도현은 몸을 구부려 청년의 눈을 가까이서 내려다봤다.

“사악한 존재를 지옥으로 보낸 적이 있지. 그 녀석도 너처럼 자신만만하게 나를 비웃었어. 끝이 어떻게 됐는지 아나?”

도현은 스므차 성의 지하 유적에 존재하던 거대 석상 안에서 영주 딘과 함께 사악한 존재를 없앤 적이 있었다. 그것을 언급한 것이다.

“결국엔 내 밥이 되었지.”

말을 하며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도현은 황금색으로 물든 타투를 청년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그 순간 도현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던 청년이 몸을 부르르 떨며 고통스러워했다.

‘설마 이게 효과가 있는 건가?’

타투는 이계에서 몬스터의 기운만 흡수한 게 아니라 사악한 존재의 힘도 흡수했다. 그 점에 착안해 혹시 타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나 싶은 마음에 분위기를 잡고 행동한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청년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청년이 재갈이 물린 상태로 비명 같은 큰 소리를 내는 가 싶더니 잠시 후 몸이 축 늘어졌다. 그와 동시에 타투를 통해 미미한 기운이 흡수돼 도현의 단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계에서 하급 몬스터 한 마리 정도 잡을 때 얻을 수 있는 아주 적은 기운이었다.

‘이곳에서도 타투를 통해 흡수되는 기운이 존재하다니.’

도현은 정신을 잃은 청년과 왼팔에 새겨진 타투를 번갈아 보다가 천천히 와이셔츠 소매를 내려 타투를 가렸다.

타투를 통해 청년의 몸속에 있는 기운을 뽑아낸 뒤로 청년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밝아지고 있었다.

평화롭게 잠든 청년의 모습을 한동안 내려다보던 도현은 청년의 몸을 구속하던 침대보와 재갈을 풀어 줬다. 호영순이 말한 요사스러운 기운이 타투를 통해 해결된 것 같았다.

“타투가 여러모로 나를 돕는구나.”

작게 혼잣말로 중얼거린 도현은 몇 시간 동안 닫혀 있던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도현이 문을 열고 나타나자 긴장 속에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에게 몰려들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호영순의 물음에 도현은 담담히 미소를 지으며 침대를 가리켰다.

“글쎄요, 한번 가서 보시죠. 제 생각엔 괜찮아진 것 같은데요.”

“네? 그럼 요사스러운 기운을 없애 주신 거군요!”

호영순이 기쁜 얼굴로 말하는 동안 최규원과 그 아내가 참지 못하고 먼저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을 잘 때도 인상을 잔뜩 쓰며 몸을 뒤척였던 지난 한 달 과는 다르게 아들이 너무도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최규원의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여, 여보, 우리 아들 맞죠? 그렇죠?”

“그래, 그놈이 돌아왔어. 밝고 씩씩했던 그놈이 돌아왔다고.”

그들 옆에서 청년을 살피던 호영순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사스러운 기운이 더 이상 청년의 몸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영애야, 뭐 하는 거니, 귀인에게 감사드리지 않고.”

호영순의 눈짓에 최규원의 아내가 정신을 차리며 남편과 함께 서둘러 방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도현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분은 가셨습니까?”

최규원이 거실에 서 있는 호태식에게 물었다.

“네.”

“벌써요? 이렇게 그냥 가시면 안 되는데.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요.”

최규원과 김영애는 아파트 베란다로 급히 나갔다. 저 밑에 도현이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최규원이 물기 젖은 목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는지 도현이 뒤를 돌아보며 한 차례 손을 가볍게 흔들어 줬다.

그러곤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

“어이, 퇴마사.”

용주의 농담에 피식 웃은 도현은 손에 든 검을 회수해 부드럽게 검집에 밀어 넣었다.

며칠 전 호영순의 부탁을 받고 도와준 일을 두고 용주는 볼 때마다 퇴마사라며 놀리고 있었다.

“이참에 너도 그 길로 나가는 게 어떠냐?”

“운이 좋았다니까 그러네. 타투가 아니었으면 곤란할 뻔했어.”

“하긴, 타투에 그런 효과가 있다니, 나도 놀랐다야. 타투가 흡수하는 기운이 지구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용주는 관장실로 들어가는 도현을 따라가며 계속 말을 걸었다.

“기분 좋지 않냐?”

“뭐가?”

도현이 수련용 진검을 거치대에 올려놓으며 용주를 돌아봤다.

“그제 널 찾아온 사람들 말이야, 그 대학생 부모.”

최규식과 김영애는 이틀 전 도현의 도장을 찾아와 큰절을 하며 고마워했다.

“널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내가 다 뿌듯하더라.”

도현은 잠시 그들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기분은 좋았어. 그들 가정이 다시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야, 근데 사례금은 웬만하면 받지 그랬냐? 네가 이계에서 황금을 가지고 오지 않는 바람에 우리 재정이 바닥나게 생겼다고.”

“과장하지 말자. 빌딩 세입자들이 꼬박꼬박 임대료 내고 있잖아.”

“그걸로 지금까지 먹고살고 있어, 자식아. 너 다음 주에 홍영 씨하고 상해 가기로 했지? 그 돈도 다 거기서 나왔어. 빌딩 유지비는 뭐 한두 푼 들어가는 줄 아냐? 건물이 오래돼서 네가 없는 사이에 들어간 돈이 어마어마해.”

용주는 입에 거품을 물며 말했다.

“알았다. 다음에 이계에 가면 황금 상자 바로 챙겨 가지고 올게. 나도 빈손으로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고.”

“내가 전에도 옥상에서 말했지만, 돈 좀 신경 쓰자. 빌딩 임대로 수익이 적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여기에 딸린 입이 몇 개냐? 풍요롭게 살자, 빌딩 담보로 대출받아서 홍영 씨랑 살 집 마련하기 싫으면, 자식아. 그리고 나 아직 차 못 사고 있다, 알지?”

도현은 미안한 마음에 물을 마시며 말했다.

“차 사라고 했잖아.”

“3억짜리 차 아니면 안 산다니까!”

“후우, 알았어. 다음에 꼭 사게 만들어 줄게. 됐냐? 독한 놈.”

“험. 야, 그리고 4층 피아노 학원, 임대료 넉 달 치나 밀렸다. 어쩔래?”

“음…….”

도현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젊은 피아노 학원 원장을 생각했다. 그녀가 지도를 잘해서 한때 원생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무슨 일인지 많이 줄어서 형편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시간을 주자.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알았어. 나 올라간다.”

한바탕 폭풍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은 용주가 사라지자, 도현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뒤돌아서서 달력을 보았다.

이계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얼추 한 달 가까이 되었지만 폭주의 후유증으로 생긴 내상은 아직 완벽히 낫지 않았다. 내공의 수발이 자유롭긴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지속하려 하면 몸에 무리가 왔다.

“태선군의 실력을 확인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

다음 주에 홍영의 사촌 결혼식이 있었다. 그곳에 참석 후 시간을 내 섭상이 지은 궁궐 같은 대저택에 머물고 있는 태선군과 직접 부딪쳐 볼 생각을 했었다.

청선의 암시처럼 태선군에게 숨겨진 진짜 실력이 따로 있다면 싸우는 도중 감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몸 회복 상태로 봐서는 다음 주 사이에 내상이 완전히 나을 것 같지는 않았다.

완벽하지 않은 몸 상태로 태선군과 부딪칠 수는 없다. 시간이 더 필요했다.

홍영이 달력에 표시해 둔 사촌 결혼식 날짜를 응시하던 도현은 몸을 돌려 서랍 안에 넣어 둔 지도를 꺼내 들었다. 중국 전역이 지역별로 크게 확대된 지도로, 모두 일곱 곳이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었다.

담기량의 은거지가 있을 만한 곳으로 추정되는, 동그라미 안의 지역은 험산과 절벽 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기예잡술서에서 찾아낸 단서를 바탕으로 주성하가 학자들에게 의뢰해 추려 낸 장소들이다.

주성하는 얼마 전 통화에서 현재 세 번째 장소를 료쿄가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료쿄가 좋아하진 않겠지만 또 가 보긴 해야겠지.’

한 시대를 풍미한 절세 고수의 유산을 쉽게 치부하기도 뭐했다. 실제 그것들이 존재한다면 3분지 1은 그의 몫이었다.

용주의 말처럼 자신이 이 일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주지시킬 필요는 있었다.

도현은 홍영의 사촌 결혼식에 참석한 후 세 번째 장소에서 탐사하고 있다는 료쿄의 캠프를 방문할 생각이었다.

지도를 접어 서랍에 넣은 도현은 관장실에서 도장으로 나와 마룻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의 전신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것들은 미묘한 공기의 흐름에 휩쓸려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정신을 집중해 몸 전체로 진기를 방출하던 도현은 두 눈을 떴다.

“쉽지 않네.”

호신강기를 만들기 위한 첫 단계는 전신으로 기를 뿜어내는 것이다.

손과 발처럼 신체의 한 부위에서 기를 분출하는 건 그의 무공 수준에서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장풍과 비검술 모두 그의 손을 통해 발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한 몸의 한 부위가 아니라 전신을 통해 고르게 기를 방출하는 건 생각보다 더 난해하고 심력도 많이 소모됐다.

그렇게 전신으로 기를 뿜어내도 조금 전처럼 스르륵 사라지고 만다. 어렵게 전신으로 뿜어낸 기운들이 그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실 끊어진 연처럼 제각각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역시 이론과 실제는 다르군. 될 것 같았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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