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 디 임팩트 13권 22화
원진이 굵은 목소리로 정중히 말하자 도현도 예의에 맞게 행동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도현은 자신의 차례가 올지 어떨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귀밑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퇴마사가 나름 열심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현을 비롯한 원진과 그의 아내, 딸, 원상문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퇴마사 모석청이 태운 부적의 양은 수백 장이 넘어갔고 그의 얼굴은 땀과 부적의 재가 뒤엉켜 안쓰러울 정도였다.
“아빠, 저 사람도 사기꾼인가 봐. 오빠를 치료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잖아.”
열다섯 살인 원상의 여동생 원백선이 팔짱을 끼며 뾰족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퇴마사 모석청이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어린게 싸가지없게 말하는군.’
그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를 자극하는 말이 다시 이어졌다.
“아빠, 시간 낭비하지 말고 한국에서 온 저분에게 맡겨요.”
최준영과 통화하기도 한 원상의 여동생은 얼굴이 수려한 도현의 옆모습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5백만 위안을 포기할 수는 없지.’
원상을 치료했을 때 큰돈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 온 퇴마사 모석청은 마음이 급해졌다.
“악귀가 요동치는 게 보인다! 끝이 머지않았어!”
원상의 여동생 말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전에 모석청은 목청을 높여 외쳤다. 이어서 그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고풍스러운 검을 뽑은 뒤 손에 살짝 상처를 내서 그 피를 발랐다.
근엄과 비장함에 휩싸인 그의 모습에 그를 욕하던 원상의 여동생도 기가 죽어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천지간에 모든 것들은 그 위치가 있는 법! 썩 나오지 못할까!”
모석청은 피를 묻힌 고풍스러운 검을 기둥에 몸이 묶인 원상의 앞에서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효과가 있는지 원상이 괴로운 표정으로 기둥에 묶인 몸을 비틀며 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나오지 않으면 지옥 18층 중 가장 고통스러운 곳으로 보내 주마!”
모석청의 검이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
악귀가 있다면 단번에 두 동강이 날 만큼 서릿발 같은 기세가 검에서 충천해 원상을 뒤덮었다. 퇴마사 모석청을 유명하게끔 만든 퇴마검법이었다.
흥미로운 눈빛으로 퇴마사의 검술을 감상하던 도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검의 고수인 도현이 보기에 모석청의 검은 많이 어색했다.
‘검이 뚝뚝 끊어지고 있다, 마치 짜깁기한 것처럼. 저 사람은 대체 어디서 검을 배운 거지?’
그렇다고 형편없는 검술도 아니었다. 모석청의 퇴마검법 중에는 도현도 관심이 갈 만한 깊이 있는 검의 변화가 서너 개 정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이 어색한 검법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훌륭한 모습으로 탈바꿈시켜 놓은 것이다.
‘신기하군. 검술은 미완성인데, 원상이 반응을 보이다니. 정말 퇴마의 기운이 저 검법에 서려 있는 건가?’
도현뿐만 아니라 실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퇴마검법의 결과에 궁금해했고, 그런 상태에서 10여 분이 넘게 흘러갔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심력을 다해 퇴마검법을 펼친 모석청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쉬지 않고 10여 분 넘게 검을 휘두르는 건 확실히 무리였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검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헛구역질이 몇 번이나 나오는 것을 체면 때문에 억지로 참았다.
‘빌어먹을, 안 통하는군. 가끔 통할 때가 있었는데.’
결국 그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그의 퇴마검법에 발버둥 치던 원상은 음산한 표정으로 그를 비웃고 있었다.
“원 회장님, 내일 다시 한 번 퇴마 의식을 치르겠습니다. 원래 이런 악귀들은 하루로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수고하셨소. 여기 다른 분이 오셨으니 일단 그분의 결과를 보고 얘기 나눕시다.”
“예? 아, 예. 그러시지요.”
원 회장의 대답에 숨을 헐떡이던 모석청이 도현을 힐끔 쳐다봤다.
‘네놈이라고 별수 있으려고.’
모석청이 뒤로 물러나자 원상문이 도현을 봤다.
“백 관장, 이제 믿을 건 당신뿐이오. 우연이든 뭐든 내 조카를 좀 고쳐 주시오.”
“해 보죠.”
도현은 입고 있던 정장 상의를 벗어서 한쪽에 있는 의자에 걸쳐 놨다.
돌아선 그는 원상의 가족들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치료에 집중할 수 있게 밖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조용히 할게요.”
원상의 여동생이 말했다.
“환자와 나만이 있었으면 합니다.”
도현이 재차 말하자 원 회장은 잠시 도현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다 나와.”
원 회장의 지시에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석청은 꿈쩍도 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
“퇴마사께서도 나가 주시죠.”
도현의 말에 모석청이 코웃음을 쳤다.
“난 퇴마사야. 당신을 방해할 존재가 아니지.”
“그래도 나가 주십시오.”
도현은 타투를 이용하는 모습을 될 수 있으면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라도 난 나가지 않아.”
“아빠, 저 아저씨 안에서 안 나와요!”
주근깨가 많은 원백선이 고자질처럼 아빠에게 말했다. 그러자 원 회장이 뒤를 돌아봤고, 모석청은 할 수 없이 퇴마 의식을 위해 준비한 물건들과 검을 챙겨 들었다.
“흥!”
도현을 노려보던 모석청이 밖으로 나가고 잠시 후, 문이 닫혔다. 넓은 실내에는 도현과 기둥에 묶인 원상만이 남았다.
“많은 놈들이 왔지만 나를 이길 순 없었다! 너도 마찬가지야! 크하하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좌우로 흔들며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원상을 향해 도현이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걸어갔다.
모석청이 태운 수많은 부적들의 재를 밟고 선 도현은 원상의 눈을 깊게 들여다봤다. 광기에 물든 눈 너머로 고통에 찬 맑은 눈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원상의 원래 눈빛일 것이다.
‘됐으면 좋겠다.’
정신병원에 있던 아버지가 제정신이 아닐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는 머리 부상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들어간 거지만, 원상은 그것과는 좀 다르다. 아직 원인이 불분명하지만 나쁜 기운이 원상의 몸속에 들어가 있는 게 확실했다.
그것이 퇴마사들이 부르는 악령이나 악귀든, 아니면 또 다른 기운이든.
“흐흐흐.”
도현은 음산하게 웃는 원상의 두 눈을 손으로 가렸다.
“뭐 하는 거야!”
“잠시면 돼.”
오른손으로 원상의 눈을 가린 도현은 왼팔의 타투를 그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크아아아아!”
원상의 입에서 괴로움에 찬 거대한 비명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방 밖에 기다리던 사람들은 안에서 들리는 원상의 비명 소리에 놀라 얼굴이 굳어졌다.
“아빠, 나 들어가 볼래.”
원백선이 문손잡이를 잡자 원 회장이 딸의 팔을 붙잡았다.
“들어가지 마.”
“하지만 아빠, 오빠가 비명을 지르잖아.”
“기다려.”
원 회장은 아내에게도 눈짓을 주고는 아무도 못 들어가게 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지?’
퇴마사 모석청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설마 녀석이 덜컥 치료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모석청은 갑자기 들리는 문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말끔한 표정의 도현이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됐소?”
원 회장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도현의 입에 집중됐다.
“괜찮아진 것 같은데, 들어가셔서 확인해 보시죠.”
“오빠!”
도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원백선이 문을 활짝 밀치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서둘러 원상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들어갔다.
기둥에 묶여 있던 원상이 바닥에 눕혀져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굉장히 평화로워 보였다.
원백선이 급히 몸을 흔들자 원상이 서서히 깨어났다.
“오, 오빠! 정신이 들어? 나 누구야?”
원상은 울먹이는 여동생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백선아.”
“오빠!”
원백선은 누워 있는 오빠의 목을 끌어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한 달 넘게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며 가족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던 오빠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원상의 가족이 기뻐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모석청은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도현이 문가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저놈은. 진짜 퇴마사야?’
유럽식으로 지어진 대저택 뒤에는 중국식으로 조성된 넓은 후원이 있었다. 그 후원에서 도현은 원상의 가족과 어울려 저녁을 먹고 있었다. 모석청도 있었는데, 모두의 관심은 도현에게 쏠려 있었다.
‘이럴 거면 아예 부르지 말든가. 가겠다는 사람을 왜 붙들어서.’
모석청은 장장 6시간 넘게 퇴마 의식을 한 자신보다 막판에 한 수를 보여 준 도현에게 모든 관심이 쏠리자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좋겠군, 큰돈도 벌고. 빌어먹을.’
모석청은 도현이 받게 될 사례금에 배가 아파서 더 이상 음식이 목구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왜 더 드시지 않습니까?”
옆에 앉아 있던 도현의 말에 모석청이 헛기침을 하며 답했다.
“난 많이 먹었소. 당신이나 많이 드시오.”
도현은 모석청이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백선에게 들어 보니 그는 아침부터 찾아와 자신이 도착한 오후까지 무려 6시간 넘게 퇴마 의식을 했다고 했다. 바닥에 수북했던 부적의 잔해들만 봐도 그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훌륭한 퇴마검법이었습니다.”
“그러면 뭐하오, 공은 당신이 가로챘는데.”
모석청의 말은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원 회장에게도 똑똑히 들릴 만큼 컸다.
원 회장이 술잔을 내려놓고 말없이 바라보자 모석청은 딴청을 부리며 잔에 채워진 술을 홀짝였다.
“바람 같은 인생, 또 내일이면 어디로 떠나야 할꼬.”
모석청의 한탄 어린 신세타령이 이어지자 원상문이 술병을 들어 모석청의 빈 잔에 따라 주었다.
“원상이를 치료해 준 건 백 관장이지만, 당신의 공이 작지 않다는 걸 우리가 모를 리 있겠소? 다 생각하고 있으니까 뜻깊은 이 저녁 식사 자리에 함께 어울려 주시오.”
“아, 그래요?”
모석청은 자신에게도 사례를 할 거라는 암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물론이오.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당신을 이런 자리에 앉게 하겠소?”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모석청은 염소수염을 가볍게 훑어 내리며 맞은편 방향에 앉아 있는 원 회장을 응시했다.
“아드님이 악귀로 인해 원기가 크게 상했을 터이니, 제가 원기를 보충할 수 있는 보약을 처방해 드리지요. 고가의 약재들이 필요하지만 원 회장님이라면 어렵지 않게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맙소. 자, 다시 돌아온 아들을 위해 잔을 듭시다.”
원 회장은 자리에 없는 원상을 위해 잔을 높게 들었다.
원상은 도현의 도움으로 제정신을 차렸지만 한 달 넘게 지속된 광기 어린 행동으로 인해 몸이 많이 약해져 있어서 이 자리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방 안에서 쉬고 있었다.
원탁에 둘러앉아 있던 원 회장의 가족과 삼촌인 원상문 그리고 도현과 모석청이 잔을 높이 들었다.
“백 관장님 고맙습니다!”
술을 먹기에 어린 나이인 원백선은 음료수가 담긴 잔을 비우고는 도현에게 귀여운 미소를 보냈다. 도현이 보기에 철없이 행동하는 경향은 있지만 근본은 착해 보였다.
밤늦게까지 갈 것 같던, 술을 겸한 저녁 자리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원 회장이 어떤 연락을 받고 원상문과 집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별채에 잠자리를 준비해 뒀으니 편하게 쉬시고 내일 아침에 봅시다.”
도현은 저녁만 먹고 가려고 했지만 지금 가도 호텔에서 잠을 자야만 했다. 이모들이 기다리고 있는 홍영의 집으로는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을 한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그럼 나는 일이 있어서 그만 가 봐야겠습니다.”
원 회장과 원상문이 차에 오르자 줄지어 서 있던 세 대의 차량이 빠르게 출발해 저택을 빠져나갔다.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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