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23화 (323/575)

[323] 디 임팩트 13권 23화

도현은 원상문의 얼굴에서 서두르는 기색을 읽었다.

“두 분, 이쪽으로 오시죠. 별채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원 회장의 집 안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이 도현과 모석청에게 말했다.

별채는 넓은 후원의 끝에 있는 누각 형식의 건물이었다.

2층으로 된 그곳은 아담했는데,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마치 숲 속의 별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안에 다과와 술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불편하신 게 있으면 벨을 눌러서 불러 주세요.”

“험, 고맙소.”

모석청은 중년 여성이 후원을 지나 사라지자 도현을 돌아봤다.

“정식으로 인사나 하세. 난 모석청이네. 퇴마 일로 먹고살지.”

“한국에서 온 백도현입니다. 작은 검술 도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노는 사람이 왜 중국까지 넘어와서 남의 밥그릇을 빼앗는 건가? 자넨 양심도 없나?”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자마자 모석청이 톡 쏘는 말을 하자 도현은 어이가 없었다.

“누구 밥그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야 내 밥그릇이지!”

모석청이 불쾌한 표정으로 주장했다.

“내가 차려 놓은 밥상에 자네가 턱 하니 앉아 수저를 든 셈이라고. 내가 공들여 퇴마 의식을 해 놓지 않았다면 자네가 그 청년을 그렇게 쉽게 치료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보다 앞서 거쳐 간 퇴마사가 여럿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럼 그들도 모두 다 공이 있는 것이겠군요.”

“경우가 다르지.”

“어떻게 다릅니까? 그들 역시 자신들이 공을 들인 결과라고 주장한다면 무슨 말로 반박하겠습니까?”

모석청은 볼멘소리로 답했다.

“그들과 난 다르니까! 나처럼 공을 들인 녀석이 누가 있겠나?”

“그 공을 감안해서 원 회장이 적절한 사례를 한다고 했으니 그만 트집 잡으시고 안으로 들어가시죠.”

도현이 누각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가 버리자 뒤에 홀로 남은 모석청이 손가락질을 하며 흥분했다.

“저, 저 근본 없는 자 같으니! 어디서 얄팍한 퇴마 기술을 배워 와서는! 당장 이리 나오지 못해! 끝까지 따져 보자!”

도현은 밖에서 모석청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못 들은 척하며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네 개의 방이 있었는데, 도현은 그중 한 방으로 들어섰다. 방 안엔 도자기와 오래된 그림들이 기품 있게 장식되어 있었다.

정장 상의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 놓은 도현은 테라스처럼 꾸며진 방 바깥 공간으로 걸어 나갔다.

시원한 바람이 후원의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그의 몸을 감쌌다.

‘넓은 집이야.’

섭상이 지어 바친 태선군의 대저택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 규모의 집에서 산다면 그 재력이 상당한 집안일 것이다.

‘원 회장이 풍기는 분위기, 일반 사업가 같지는 않았어. 이 집안을 경비하는 정장 차림의 사람들의 분위기도 그렇고. 마치 암흑가 조직의 보스 집에 와 있는 것 같았어.’

도현은 말수가 적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원 회장이란 인물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모석청이 그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정말 끈질긴 사람이군.’

도현은 난간에 기댄 팔을 내리며 말했다.

“퇴마 의식을 하느라 피곤할 텐데 쉬시지 않고요.”

“자네 같으면 쉴 마음이 생기겠나? 다른 말 하지 않겠네. 백만 위안만 내놓게. 내가 그 정도 선에서 양보하지.”

백만 위안이면 한화로 1억 7천이 넘는 금액이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밑에서 얘기했지만 오늘의 좋은 결과는 자네 혼자만의 힘이 아니야. 내가 악귀의 힘을 많이 약화시킨 덕택이지.”

“같은 얘기를 또 하게 하는군요. 원 회장이 따로 사례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도현은 돈 욕심에 찌든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수중에 들어온 것을 말도 안 되는 요구에 굴복해 나눠 줄 만큼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도 아니었다.

“원 회장이 사례를 해도 얼마나 많이 할 것 같은가? 자네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거야.”

모석청은 들고 온 고풍스러운 검을 시위하듯 흔들며 도현을 노려봤다.

“같이 먹고사세. 자네 혼자 먹고 배 터지지 말고.”

“그 검으로 지금 날 위협하는 겁니까?”

도현이 팔짱을 끼며 염소수염을 길러 약간 간사해 보이는 모석청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 시선이 은근히 차가워서 모석청은 흠칫했다.

‘아차, 이놈이 한국에서 검도장을 운영한다고 했지.’

검 앞에 태연한 도현의 모습에 모석청은 시위하듯 흔들던 검을 얌전히 내려놨다.

“내가 강도인가, 검으로 자넬 위협하게.”

도현은 잠시 모석청을 바라보다가 방 안으로 향했다. 그 뒤를 모석청이 따라가며 물었다.

“돈을 줄 건가, 안 줄 건가? 말을 해 보게.”

“안 줍니다.”

도현의 단호한 대답에 모석청의 안색이 울긋불긋한 단풍처럼 변했다.

“흥! 몹쓸 사람이로군.”

“누가 몹쓸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하시고 그쪽에 앉아서 술이나 하시죠.”

도현은 탁자 위에 준비된 술을 보며 말했다.

“됐네. 술 생각 없어.”

모석청은 밖으로 나가다 탁자 옆에 서 있는 도현을 힐끔 돌아봤다.

도현이 어떤 방법으로 퇴마에 성공했는지 아직 모르고 있다. 그걸 알아내면 앞으로 그의 일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는 마음을 바꿔 슬그머니 탁자 앞에 있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돈은 서운하지만 같은 퇴마사끼리 술을 못할 것도 없겠지.”

그들은 탁자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무리해서 긴 퇴마 의식을 펼치느라 체력이 방전된 모석청은 얼마 되지 않아 술기운이 올라왔지만 도현은 물을 마시는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원 회장이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나?”

“네.”

모석청은 도현의 질문이 다소 어이가 없어서인지 껄껄 웃어 댔다.

“이상한 친구로군. 원 회장 집에 있는 사람이 그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다니.”

“모 선생과 달리 전 한국에서 왔지 않습니까?”

“모른다면 잘 듣게, 그는 상해에서 영향력이 큰 암흑가 조직의 두목일세.”

모석청의 대답에 도현은 술을 묵묵히 비웠다. 혹시나 했는데, 그의 예상처럼 원 회장은 조직의 보스였다.

“그의 집안이 원래 그래. 듣기론 백 년이 넘게 이쪽 상해에서 터를 잡고 살면서 관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일들을 해결해 주었다는군. 그러다 일본의 침략에 맞서 전쟁에도 참여하고. 원 회장은 몇 대를 이어 내려온 집안의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지.”

“그렇군요. 대명이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도현은 원상문의 명함에 쓰인 글자를 떠올리며 물었다.

“그의 집안이 처음 조직을 만들 때 건 조직의 이름이네. 사실 상해에 사는 사람들도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대부분일 걸세. 드러난 암흑가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술이 얼큰하게 오른 모석청은 자신이 아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홍영 씨가 원 회장에 대해 모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군.’

도현은 모석청의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그런데 모 선생께서는 어떻게 이런 사실을 자세히 아십니까?”

“퇴마 일을 하며 떠돌다 보니 내 귀에 이런저런 것들이 많이 쌓이게 되더군.”

술잔을 비운 모석청은 은근한 시선으로 도현을 응시했다.

“이제 내가 묻지. 자네, 어떻게 원상을 치료했나?”

오랜 시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도현과 술을 대작해 준 모석청이 침을 삼키며 도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특별한 건 없습니다. 진심으로 그가 낫기를 기원하면서 그의 머리를 만져 준 것밖에는요.”

“허허! 참, 쉽게 얘기하는군. 관두게, 그 말을 내가 믿을 성싶은가?”

모석청이 서운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도현은 타투 얘기를 깊게 할 수는 없었다.

도현이 더 이상 말이 없자 모석청은 의자에 기대어 놨던 고풍스러운 검을 손에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잇! 그만 가서 자야지.”

“모 선생님.”

도현이 방 밖으로 나가려는 모석청 앞에 섰다.

“뭔가?”

“이런 말 드리기 죄송하지만, 낮에 본 퇴마검법은 흐름이 부자연스러웠습니다. 그것은 서로 맞지 않는 검식을 억지로 꿰어서 펼쳤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자가 어떻게 그걸 눈치챘지?’

모석청은 술이 확 달아날 정도로 놀랐지만 억지로 표정을 관리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네가 뭘 안다고 감히 퇴마검법에 대해 이러쿵저렁쿵 말을 늘어놓는 건가?

“검을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차분히 시간을 가지고 검법을 살펴보십시오.”

도현은 검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퇴마사 모석청이 낮에 보여 준 퇴마검법 속에 드문드문 보인 깊이 있는 현묘한 초식들이 어울리지 않는 검 동작 속에 묻혀 있는 게 안타까워서 말을 꺼낸 것이었다.

“내 검법은 내가 알아서 하네.”

모석청은 큰 소리로 말하고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괜히 말을 꺼냈나?”

도현은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뒤돌아섰다.

샤워를 하고 나온 도현은 침대에 누워 홍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요?

-아니요. 이모들과 얘기하고 있어요.

-늦었는데…….

-원 회장 집에서는 나왔어요?

-아직요. 오늘 하룻밤 여기서 자고 갈 거예요.

-그래요, 오늘 수고했어요. 원상을 치료해 주는 좋은 일도 하고. 그쪽 집안은 웃음꽃이 폈겠네요. 아, 그런데 원상의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는 분이에요? 아직도 몰라요?

도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문자를 보냈다.

-상해 암흑가 두목이래요.

-네에? 농담이죠?

-사실이에요.

-그곳에서 잠을 자도 되는 거예요?

-걱정 말아요. 괜찮을 것 같아요.

-재밌네요. 암흑가 두목 아들이 한국인 청년과 배낭여행 도중 만나서 나란히 병에 걸리다니.

-부모가 뭘 하든 자식들과는 별개의 문제죠.

-그건 그래요. 참, 사례금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받기로 한 거예요?

-잘사는 집안 같아서 굳이 주는 걸 못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용주 차도 사 줘야 하고.

-용주 씨 차요? 무슨 차요?

-아, 아니에요, 홍영 씨. 아무튼 사례금 10억은 받기로 했어요.

-암흑가 두목의 돈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어요.

-안 받으면 그들이 오해할 수도 있어요.

-알았어요. 잘 자고 내일 봐요.

-네, 홍영 씨도 잘 자요.

도현은 마지막 문자를 보내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빠가 치료되자 기뻐하던 원백선의 얼굴과 그 외 다른 가족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잘됐어.’

원 회장이 누구든 도현은 아픈 사람을 치료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불청객들

깊은 밤, 원 회장의 집을 향해 승합차 일곱 대와 승용차 두 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차 안의 인원을 합하면 60여 명이 넘었다.

그들은 칼과 도끼로 무장한 안휘성 출신 조직원들이었다.

“차 세워.”

원 회장의 집과 멀지 않은 곳에서 아홉 대의 차량들이 줄줄이 섰다.

“후우, 긴장되네, 씨발.”

안휘성에서 조직원들을 이끌고 온 류강은 차에서 내려 오줌을 갈겼다.

상해의 밤을 지배하는 여러 조직들 중 그 전통이 깊은 대명의 보스 집을 털러 가는 건 흉악한 그조차도 긴장되는 일이었다.

자신의 조직이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며 안휘성 주요 도시에서 악명을 높이고는 있지만, 상해 정계와 뿌리 깊게 유착된 대명의 원 회장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몸이 분쇄기에 갈려 개밥이 될 수도 있었다.

‘돈을 받았으니 물릴 수도 없고. 또 물리면 내게 돈을 준 상해 조직 새끼들이 거꾸로 날 잡으려고 할 거야.'

대명과 경쟁 상대인 상해의 다른 조직으로부터 청부를 받은 류강은 머리가 아팠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요?”

류강의 참모 역할을 하는 자가 물었다.

“닥쳐, 이 새끼야! 내가 겁쟁이로 보이냐!”

오줌을 다 싼 류강이 입가에 물고 있던 담뱃불로 참모의 얼굴을 지졌다.

“다 내려, 이 새끼들아!”

류강의 지시에 차량에 타고 있던 수십여 명의 사내들이 도로 옆 공터에 모였다.

“잘 들어,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다. 안에 들어가서 원 회장의 아내와 아들, 딸년을 깡그리 잡아서 납치한다. 중간에 거치적거리는 새끼들은 인정사정 보지 말고 다 죽여 버리고.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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