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디 임팩트 14권 1화
새 옷
“그 사람은 우리 편이에요! 우릴 구해 줬다고요!”
원백선은 차에서 내린 아빠의 부하들이 권총으로 도현을 겨누자 놀란 얼굴로 달려 나가며 소리쳤다.
“뒤로 물러나.”
원 회장이 부하들에게 손짓을 하자 권총을 겨눈 사내들이 총구를 밑으로 내렸다.
“아빠!”
원 회장은 달려오는 딸을 품에 안고 등을 다독여 줬다. 어린 딸은 많이 놀랐는지 몸을 계속 떨고 있었다.
“괜찮다. 진정해.”
딸을 다독여 주던 원 회장은 가까이 다가온 아내와 아들을 둘러봤다. 정문에 설치된 여러 개의 가로등 불빛에 멍들고 찢어진 아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어떤 상황이냐?”
원 회장은 아내에게 묻지 않고 아들인 원상에게 다소 냉정한 어투로 물었다. 집안을 이을 사람은 아내도 딸도 아닌 바로 아들인 원상이었다.
류강의 부하들에게 잡히기 직전까지 아버지와 통화를 했던 원상이 굳은 얼굴로 답했다.
“납치당하고 있었는데, 백 관장이 나서서 구해 줬어요.”
원상은 1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도현을 가리켰다.
도현은 여전히 류강의 멱살을 잡고 서 있었다.
“백 관장 손에 잡혀 있는 저자가 오늘 습격을 지휘한 자예요.”
원 회장은 차가운 시선으로 류강을 응시했다.
“수십여 명이 습격해 왔다고 했는데, 다른 자들은?”
“대부분 백 관장에게 부상을 입고 집 앞에 쓰러져 있어요. 몇은 차를 타고 조금 전에 도주했고요.”
“혼자서 수십여 명을 상대했단 말이냐?”
“네, 백 관장은 정말 강했습니다. 총을 든 사내들도 그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어요.”
원 회장은 놀란 기색을 감추며 도현을 잠시 응시했다. 어제 아들의 병을 고쳐 줬을 땐 그저 용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내라고 느꼈는데, 지금 보니 단순히 용한 재주가 아닌 것 같았다.
“집안을 지키다 많은 가족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아버지.”
아들의 눈에 눈물이 비치자 원 회장은 손가락으로 아들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무슨 일이든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들의 가족은 앞으로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늘 그래 왔듯이.”
원 회장은 가족을 지나쳐 도현에게 걸어갔다. 그는 도현의 손에 붙잡혀 있는 류강을 무심한 눈길로 응시했다.
류강은 겁에 질려 낯빛이 창백하게 변해 있는 상태였다.
“가족을 구해 줘서 고맙소. 이제 이놈은 우리에게 넘겨주겠소?”
“아, 안 돼. 날 보내지 마! 부탁이야!”
안휘성에서 조직원들을 이끌고 온 류강이 몸부림을 치며 도현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도현은 말없이 류강의 몸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내가 더 이상 관여할 일이 아니야.’
납치당하던 원 회장의 가족을 구하려던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 이상은 이들의 싸움에 개입할 이유가 없었다.
도현이 물러나자 키가 2미터가 넘어 보이는 거구의 사내 둘이 다가와 류강의 좌우에 서서 그의 팔을 하나씩 붙잡았다. 거구의 사내 둘이 좌우에 서 있자, 류강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왜소해 보였다.
“워, 원 회장님,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시면 누가 시켰는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름이 뭐지?”
“류강입니다. 안휘성에서 작은 조직을 이끌고 있습니다.”
“류강……. 알겠네. 안휘성에 가족은 있나?”
“예?”
류강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우리들에게도 불문율이라는 게 있지. 서로 간에 가족은 해치지 않는 것. 그런데 자네가 그 불문율을 깼군.”
“회, 회장님.”
“며칠 안에 나도 안휘성으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네. 기대해도 좋을 거야. 끌고 가.”
“원 회장! 당신 적은 내가 아니야! 난 청부를 받았을 뿐이라고!”
거구의 사내들에게 끌려 차 안으로 들어가던 류강이 고개를 쳐들고 발악하듯 외쳤다.
“조용해.”
원상의 삼촌 원상문이 구둣발로 류강의 얼굴을 걷어찼다. 이가 부러지고 입안이 피투성이가 된 류강이 차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신음을 흘리는 그를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던 원상문이 차 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납니다! 나예요! 모석청!”
반사적으로 총구를 겨누는 사내들에게 총을 쏘지 말라는 듯 모석청이 밤하늘을 향해 양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는 사내들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도현의 옆에 섰다.
“원 회장님, 별채에도 세 명이 기절해 있습니다. 저와 백 관장이 함께 잡은 녀석들입니다.”
연못에 뛰어들어 도망치려 했던 그는 뻔뻔스럽게도 마치 도현을 도와 싸운 것처럼 자신을 포장했다. 도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그는 슬쩍 눈짓을 하며 봐 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랬군요. 수고하셨소, 모 선생.”
원 회장이 가볍게 고마움을 표하자 모석청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아, 집안의 희생이 너무 큽니다. 이 아름다운 밤에 칼과 도끼를 들고 설치는 미친 녀석들이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희생된 분들의 넋을 위해 제가 부적을 태우며 아침까지 기도를 올리지요.”
“그러실 필요 없소. 그들의 넋은 기도로 위로되지 않을 테니까.”
“예?”
모석청은 원 회장의 서늘한 말투에 머리카락이 위로 삐쭉 솟을 것만 같았다.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둘 테니까, 그쪽에 가셔서 오늘 있었던 일들은 모두 잊고 푹 쉬시오.”
“굳이 그러실 필요는…….”
모석청은 혹시 오늘 밤에 있었던 일들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고 뭔가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닌지 덜컥 의심이 생겼다.
“저는 입이 무척 무거운 사람입니다. 원 회장님에게 해가 되는 말은 조금도 하고 다닐 사람이 아닙니다.”
“곧 공안도 오고 집이 좀 시끄러워질 겁니다. 모두 우리와 관련이 있는 공안들이라 괜찮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현장에 없는 게 좋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백 관장?”
원 회장 대신 원상문이 나서서 말하며 도현을 쳐다봤다. 도현은 피가 적지 않게 묻은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은 그가 어떤 의도로 말하는지 짐작이 됐다. 자신의 존재를 숨겨 주려고 하는 것이다.
“별채의 짐은 아침에 가져다 드리죠.”
원상문은 턱이 뾰족한 사내를 불러 도현과 모석청을 호텔로 안내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나중에 다시 봅시다.”
원 회장은 도현에게 짤막하게 작별 인사를 건넨 뒤, 수십여 명의 사내들을 데리고 격전장이었던 집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어떻게 될까?’
도현은 자신의 손에 부상을 당해 쓰러져 있던 수십여 명의 안휘성 조직원들을 떠올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원 회장과 수십여 명의 사내들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도현에게 원상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당신을 데리고 온 건 정말 천운이었던 것 같소. 뒷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호텔에 가서 쉬시오. 가족을 지켜 줘서 고맙소.”
진심이 느껴지는 말을 한 원상문은 뾰족한 턱 사내에게 손짓을 했다.
“어서 두 분을 호텔로 모시게, 정중히.”
“예!”
뾰족한 턱 사내는 도현과 모석청을 데리고 차로 향했다.
“관장님! 고마워요!”
원백선이 손을 흔들었고 원상은 도현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여 보였다. 원 회장의 아내 역시 도현에게 재차 고맙다는 말을 했다.
묵묵히 그들의 인사를 받은 도현은 뾰족한 사내가 열어 주는 차 문을 통해 뒷좌석에 올라탔다.
“어느 호텔로 가는 거요?”
모석청이 멀어지는 원 회장의 집을 차 안에서 돌아다보며 운전자에게 슬쩍 물었다.
“화조호텔입니다.”
화조호텔은 상해 도심지에 위치한, 제법 이름 있는 고급 호텔이었다. 모석청도 이름만 들었지 가 보지 못한 곳이었다.
“도착해도 잠이 올지 모르겠군. 술을 잔뜩 마셔야겠어.”
모석청은 슬쩍 고개를 돌려 도현을 쳐다봤다. 도현은 창 너머 스쳐 지나가는 여러 대의 공안 차량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싸움에 관여한 게 걱정되는가? 걱정 말게. 원 회장의 힘이라면 자네와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들을 감쪽같이 사라지게 만들 테니까.”
“그것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모 선생님 검을 그곳에서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류강이 타고 있던 승합차를 멈추게 할 때 사용한 모석청의 고풍스러운 검은 나무 밑동에 박혀 있었다.
그것을 가지고 오려 했는데, 도현은 그만 잊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모 선생님.”
“그게 뭐 대순가? 나중에 연락해서 가져다 달라고 하면 되는 건데. 그러고 보니까 자네에게 받은 게 검집뿐이었군.”
모석청은 검 자루가 없는 빈 검집을 보며 낮게 웃음을 흘렸다. 긴장되다 보니 도현에게 빈 검집을 받은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저기 말일세. 그런데 대체 어떻게 그 차를 따라잡은 거야? 시간상으로 자네가 그 차를 따라잡을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도현은 염소수염을 기른 모석청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모석청의 눈동자가 맹렬한 호기심에 불타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제가 원래 잘 달립니다.”
“그래? 그뿐인가?”
모석청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물었다.
“네.”
“좋네. 그럼 그건 지나가지. 하면 어떻게 그놈의 차를 멈추게 한 건가? 응? 내가 지나가면서 그 차를 봤는데 타이어들이 몽땅 망가져 있었다고. 어떻게 한 거야?”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도착해 보니 차바퀴가 그렇게 돼서 멈춰 있더군요.”
“그걸 믿으라고?”
“그럼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되레 질문을 하는 도현에게 모석청이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도현이 어떻게 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 검은 그럼 왜 그곳에 남겨져 있는 거지?”
“급한 마음에 집어 던졌습니다.”
“흠.”
모석청은 도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수십여 명의 안휘성 조직원들 사이를 무인지경으로 다니며 손을 쓴 걸 보면 대단한 자였다. 급한 마음에 자신의 검을 집어 던질 자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믿지 않겠지?’
도현은 모석청이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법을 발휘해 차를 따라잡고 비검술로 타이어들을 망가트렸다는 걸 말할 수는 없었다.
도현은 두 눈을 감으며 열어 놨던 창문을 올렸다.
밤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호텔에서 TV 뉴스를 보고 있던 도현은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객실 창가 너머로 도도하게 흐르는 황푸 강이 보였다. 그가 묵고 있는 화조호텔은 상해를 가로질러 내륙 깊숙이 들어가는 황푸 강 강변에 위치해 있어서 전망이 아주 좋았다.
‘아직 얘기가 없네.’
총성과 살인으로 얼룩진 원 회장 집 습격 사건은 큰 사건임이 분명했지만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는 이 시각까지도 TV 뉴스에서 그에 관한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황토 빛깔의 강을 타고 오가는 여러 배들을 팔짱을 끼고 한동안 응시하던 도현은 몸을 돌려 자신이 벗어 놓은 옷들을 둘러봤다.
정장 바지와 와이셔츠에 피가 이곳저곳 묻어 있었고, 일부는 찢어져 있었다. 간밤의 싸움 흔적이었다.
‘홍영 씨를 만나기 전에 새 옷을 사야겠어.’
원 회장 저택 별채에 놔두고 온 정장 상의는 그나마 입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 회장 측이 그것을 챙겨서 가져다준다고 해도 상하의 한 벌인 정장의 특성상 같은 색상의 바지를 딱 맞춰 구입하지 않는 한, 입기엔 부담이 되었다. 상해에서 정장 상의에 맞는 바지를 구하러 다니느니 정장 한 벌을 새로 구입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도현은 벽시계를 봤다. 정오가 넘은 시각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연락이 없으면 퇴실하자.’
언제까지 호텔 객실에서 원 회장 측의 연락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어쩌면 지금도 간밤의 일을 수습하기 위해 정신이 없을 수도 있었다.
객실에 비치된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던 도현은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모 선생인가?’
모석청은 같은 층 객실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문을 두드린 사람은 모석청이 아니라 원상문이었다.
“잠은 좀 주무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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