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28화 (328/575)

[328] 디 임팩트 14권 3화

도현이 객실 문을 열어 주자 모석청이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원 회장 동생이 주고 간 옷입니다.”

“쳇! 사람 차별하는군.”

씻지 않은 부스스한 모습으로 투덜거리던 모석청은 방 안을 빠르게 훑었다.

“뭘 찾고 있습니까?”

침대 밑을 포함해 객실 옷장 안까지 기웃거리던 모석청은 머리를 긁적이며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원상문이 돈 가방 같은 거 주고 가지 않았나?”

“돈 가방요?”

“빈손으로 왔을 것 같지는 않아서. 솔직히 말해 보게, 얼마를 받았나?”

도현은 낮게 웃으며 의자에 앉아 있는 모석청 앞에 섰다.

“왜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겁니까?”

“아니, 남의 일 이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나? 같은 퇴마사끼리 말이야.”

“전 퇴마사가 아닙니다.”

“퇴마를 했으면 퇴마사지 뭐.”

도현의 눈치를 슬쩍 보며 대꾸한 그는 말을 덧붙였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말게,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니까.”

잠시 모석청을 바라보던 도현은 얼마 전까지 원상문이 앉았던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한 푼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뭐야? 농담이지?”

도현이 대답 없이 바라보고만 있자 모석청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믿을 수 없군. 자네가 없었다면 원 회장 가족은 아주 끔찍한 일을 당했을 거야. 원 회장도 가족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빠졌겠지. 자네가 얼마를 요구하든 원 회장은 그의 명예 때문에라도 지불했을 거네. 그런데 한 푼도 안 받기로 했다니,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저 황푸 강에 내가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네.”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아쉬워하는 모석청이었다.

“이유가 뭔가?”

“돈 때문에 나선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도현은 길게 설명하지 않고 짧게 답했다.

“원 회장 아들을 치료해 주고 사례금을 받기로 했잖은가? 그럼 아예 그것도 받지 말지?”

“그것과 이 문제는 다르죠.”

“어떻게 다른가?”

“제 마음이 정한 기준이 다릅니다.”

도현이 그렇다니 제삼자인 모석청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험, 목이 마르군.”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 그에게 도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모 선생님도 원 회장 동생을 만났지요?”

“만났지.”

“기대한 대로 돈을 주던가요?”

도현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며 대답을 회피하던 그는 시선이 마주치자 결국 사실대로 털어놨다.

“원 회장 아들을 위해 내가 퇴마 의식을 한 사례로 20만 위안을 주더군.”

20만 위안이면 한화로 3천6백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그뿐입니까?”

“뭐 그건 어제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들이 원래 주기로 한 돈이었고…… 별채에서 자네와 함께 습격한 몇 놈을 혼내 줬다는 내 말을 믿었는지 어쨌는지 30만 위안을 더 얹어 주더군.”

모석청은 조금 전 그의 방에 찾아온 원상문에게 50만 위안이 든 돈 가방을 건네받았다. 수중에 돈이 없어서 빈털터리나 다름없었던 그에게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와 같은 돈이었다.

“잘됐군요.”

고개를 끄덕여 보인 도현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모 선생님, 전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벌써? 점심이라도 함께하지. 금방 씻고 나오겠네.”

“아닙니다. 약속이 있어서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모석청에게 짤막한 작별 인사를 한 도현은 몸을 돌려 객실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이, 이보게! 잠시만!”

생수병을 손에 든 모석청은 급히 도현에게 다가갔다.

“냉정한 사람이로군. 안휘성 녀석들에게 가차 없이 칼질을 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말이야. 왜 사람이 그렇게 매정하게 바람처럼 가 버리려고 하나? 한국인들은 원래 정이 많다고 하던데, 자네는 아닌가 보군?”

한국인의 정서까지 끄집어내며 도현의 앞을 가로막은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고맙네. 솔직히 자네가 아니었다면 그런 큰돈은 받지 못했을 걸세. 안휘성 녀석들에게 목숨도 위험해졌을 테고.”

도현은 뒤늦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모석청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맙다면 어제 별채에서 제가 한 말을 잊지 마십시오.”

“어제 한 말 이라면…… 내 퇴마검법?”

“네, 모 선생님의 퇴마검법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그 검법을 손보지 않고 계속 사용한다면 나중에는 몸이 버티지 못할 겁니다.”

“몸이 버티지 못한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모석청은 건강과 관련한 얘기가 도현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흠칫하는 눈치였다.

“어제 퇴마검법을 펼칠 때 숨이 턱턱 막히고 몸이 무거웠지 않습니까?”

“족집게군. 맞네, 그랬지.”

모석청은 숨기지 않고 인정했다. 도현이 간밤에 보인 싸움 실력을 가까이서 목격한 그는 도현의 안목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억지로 꿰어 맞춘 검법의 부작용입니다. 어디서 검을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1년이고 2년이고 조용한 곳에서 심신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검법을 살펴보십시오. 그러지 않고 그 검법을 이대로 계속 사용한다면,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겁니다.”

“후회하다니?”

“죽을 수도 있습니다.”

도현의 말에 겁을 집어먹은 모석청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내가 너무 겁을 줬나?’

모석청의 퇴마검법은 사람의 몸을 축나게 하는 검법이었다. 몇 년이 지나면 팔의 관절이 다 상하고 혈액순환도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를 위해 해 준 말이었지만 도현은 말 수위가 좀 셌나 싶었다.

몸이 굳어 있는 모석청에게 도현이 힘을 내라는 식으로 손을 가볍게 잡고 흔들어 주었다.

“모 선생께서는 의지가 있으시니, 1년이면 검법의 문제점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힘내십시오.”

도현이 몸을 돌려 객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모석청이 잽싸게 문 앞을 가로막았다.

“자네가 내 검법을 봐주면 어떤가? 자넨 검의 고수인 것 같은데?”

“노력 없이는 검의 발전도 없습니다. 스스로 깨쳐 보십시오. 아마 문제점을 해결했을 때는 모 선생님은 검을 훨씬 자유롭게 사용할 수가 있을 겁니다.”

“정말 안 되나? 내 나이 50이 넘었는데 퇴마검법을 들고 산속에서 처박혀 있으라고? 그러지 말고 좀 알려 주게, 왜 이리 냉정한 가.”

모석청이 우는소리를 했다.

“제가 퇴마검법에 손을 대는 순간, 모 선생님은 그 검법을 익히기 위해 아마 2년은 더 산속에서 고된 수련을 해야 할 겁니다. 그걸 원하시는 겁니까?”

“그건 좀……. 난 편히 살고 싶은 사람이야.”

문 앞을 가로막았던 모석청이 슬며시 옆으로 비켜섰다. 한동안 모석청의 얼굴을 말없이 응시하던 도현은 가볍게 묵례를 했다.

“모 선생님, 건강하십시오.”

객실 문을 열고 나온 도현은 엘리베이터로 걸어갔고, 도현의 뒤를 따라 나온 모석청은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복도 건너편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카드 키를 넣고 호텔 객실의 문을 반쯤 연 모석청은 뭔가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가 복도를 냅다 뛰었다.

“백 관장! 백 관장!”

도현은 닫히려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모석청의 목소리가 들리자 버튼을 눌러 문을 열었다.

“백 관장, 자네에게 긴히 할 말이 있네. 약속이 있더라도 잠시만 시간을 내주게. 부탁이네.”

모석청과 시선을 교환하던 도현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모석청의 방으로 들어갔다.

도현이 방 안 의자에 앉기 무섭게 모석청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내 퇴마검법은 산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동굴 속 석실에서 배운 거라네.”

“석실요?”

“그렇다네. 석실 내부의 벽에는 검법이 존재했는데, 그것들 중 내가 따라 할 수 있는 검 동작만 익히고 수련한 것이지.”

모석청은 큰 비밀을 발설하는 사람처럼 둘밖에 없는데도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자네가 지적했듯이 내 퇴마검법이 이상한 건 바로 그 때문이야.”

‘검법이 있는 석실이라고?’

살짝 놀란 도현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모석청을 바라봤다.

“한국에서 검도장을 운영한다고 했지?”

“네.”

“내가 자네를 그곳까지 안내해 주겠네. 내가 배우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지. 그것을 보면 자네에게도 상당한 도움이 될 거야.”

모석청은 턱에 자란 염소수염을 손으로 훑으며 도현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 대신 조건이 있네. 자네가 그곳에서 얻는 것을 내게도 알려 주게.”

석실

홍영의 사촌 결혼식이 작은 호텔 연회장에서 즐거운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

밤늦게까지 지속된 결혼식 피로연 동안 묵묵히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던 도현은 홍영 친척들에게 붙잡혀 결혼 당사자인 신랑보다도 술을 더 많이 마셔야만 했다.

그가 술이 세지 않았다면 골탕을 먹이려는 듯 술을 연신 건네는 홍영의 친척들의 술수에 꼼짝없이 당해 인사불성이 될 뻔했다. 그러나 술에 쓰러진 건 그와 대작했던 홍영의 친척들이었다.

결혼식 이튿날 도현은 홍영의 어머니 집을 찾아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 안을 차지하고 앉아 있던 홍영의 이모들은 아침에 가족들과 그들이 사는 지역으로 모두 떠나서 집 안이 조용했다.

“어제 고생했네. 사람들이 짓궂었지?”

홍영의 어머니는 결혼식에 참석한 집안의 친척들이 도현을 너무 괴롭힌 것 같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어머니. 즐거웠습니다.”

도현은 탁자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듬직했는지 홍영의 어머니는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부드럽게 웃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마저 작년에 잃어 혼자가 된 도현을 그녀는 가족처럼 여기고 있었다.

“난 자네가 남 같지가 않아. 죽은 그이도 자넬 아주 각별하게 생각했어.”

그녀의 말속에는 따스한 감정이 배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가까이 있으면 늘 챙겨 주고 싶지만, 사는 곳이 다르니……. 그나저나 자네도 이제 결혼을 생각할 나이가 됐지.”

도현은 홍영의 어머니가 갑작스레 자신의 결혼을 언급하자 사레라도 걸린 사람처럼 잔기침을 몇 번 했다.

고개를 돌려 기침을 막은 도현은 옆에 앉아서 같이 차를 마시고 있는 홍영을 바라봤다. 그녀는 말없이 차를 마시고만 있었다.

“얘기 들었네. 딸아이와 한집에 살고 있다고.”

도현은 이번엔 더 큰 기침을 하며 콜록거렸다. 검을 수련하며 평정심을 유지해 온 그가 이렇게 당황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홍영 씨가 말을 했구나.’

도현은 홍영의 어머니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긴장이 되었다. 물론 홍영이 좋은 방향으로 말했겠지만, 마치 도둑질하다가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리려 했는데, 말씀드릴 기회를 놓쳤습니다.”

“자넬 탓하려고 말을 꺼낸 게 아니야. 내가 알고 있다고 말한 것뿐이지.”

“네에…….”

도현은 숨죽여 웃고 있는 홍영의 옆모습을 힐끔 쳐다봤다. 당황해하는 그의 모습이 재밌는지 그녀는 계속 웃고 있었다.

“미안해요, 도현 씨. 많이 놀랐죠?”

“별로요.”

도현의 대답에 홍영은 피식 웃으며 도현과 팔짱을 꼈다. 조금 전 집을 나선 그들은 가로수가 많은 거리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날씨는 더웠지만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뜨거운 햇빛을 가려 주었다.

“어쩌다 보니 엄마가 회사 그만둔 걸 알게 되셨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도현 씨 집에 함께 살면서 도장 일을 거들어 주고 있다고 했어요.”

“잘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든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우리끼리 얘기했잖아요.”

도현은 오해 없이 받아 준 홍영의 어머니가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결혼을 빨리하라는 그런 눈치를 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은근히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태선군이 떠오르자 설레던 마음이 차츰 식어 갔다. 홍영의 부친과 그의 아버지를 죽인 태선군이 멀쩡히 살아 있는데, 사랑을 속삭이며 결혼식을 올릴 수는 없었다.

다음 달이면 홍영과 그의 부친이 돌아가신 지 꼬박 1년이 되어 간다.

검으로 태선군을 무릎 꿇리겠다는, 아버지 영정 사진 앞에 한 맹세는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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