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29화 (329/575)

[329] 디 임팩트 14권 4화

도현은 팔짱을 낀 홍영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수수한 옷차림에도 빛이 나는 외모였지만, 눈 속 깊은 곳에는 자신 못지않게 태선군에 대한 원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와 자신이 진정한 마음으로 맺어지기 위해서는 태선군을 쓰러트려야 한다. 비록 그녀가 자신을 걱정해도 그것은 자신이 가야만 할 길이었다.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요?”

“예뻐서요.”

도현의 말에 홍영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웃는 모습도 예뻐요.”

“왜 그래요, 창피하게. 그만해요.”

홍영은 도현의 입을 막은 후 멀리 보이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아이스크림 먹고 갈 시간은 있죠?”

“그럼요.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요.”

도현은 화조호텔에서 기다리는 모석청과 만나서 검법이 있다는 석실로 가 볼 생각이었다.

호북성 북부의 광수시에 위치한 어느 산이라고 했는데, 정확한 장소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원래는 홍영의 사촌 결혼식이 끝나면 료쿄의 탐사 캠프를 방문하려고 했다. 그래서 주성하에 이어 료쿄와 통화를 했는데, 그녀는 아주 쌀쌀맞은 태도로 올 테면 오라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말하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료쿄의 태도를 볼 때 담기량의 은거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태도와 관계없이 현장을 방문해서 관심을 보일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대신 그는 순서를 바꿔 모석청과 의문의 석실을 다녀온 후, 료쿄의 탐사 캠프로 가기로 했다.

아이스크림 가게는 테이블이 여섯 개밖에 안 되는 작은 규모였지만, 아이스크림 맛은 훌륭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가게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입 떠서 먹던 도현은 턱을 괴고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홍영과 시선이 마주쳤다.

“왜 안 먹어요?”

“도현 씨, 원 회장 말이에요. 힘이 상당한가 봐요. 큰 사건인데 조용하잖아요. 언론에도 안 나오고.”

도현은 원 회장 집에서 벌인 일 때문에 그녀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여전히 그녀는 신경이 쓰이나 보다.

“내가 괜히 그들을 도왔나요?”

“그런 뜻에서 한 말이 아니에요.”

홍영은 턱을 괸 손을 움직여 아이스크림을 입에 조금 넣었다.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좋은 물건을 보면 꼭 자신이 소유하려는 사람들. 원 회장이 도현 씨를 자신의 조직에 끌어들이려고 할까 봐서 그게 신경이 쓰여요.”

“이미 한번 거절했어요. 그리고 내가 원 회장 밑에서 일할 사람처럼 보여요? 이래 봬도 이계에서는 잘나가는 사람이라고요.”

도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도현 씬 이계에서 잘나가는 사람이죠. 얼음탑주만 조심하면.”

“기다려 봐요. 태선군과 얼음탑주 모두 내 앞에서 무릎 꿇을 테니까.”

“믿어요.”

홍영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었다.

모석청과 이틀 만에 다시 만난 도현은 그날 저녁 고속 열차를 이용해 호북성 무한으로 향했다.

6시간 가까이 되는 기차 여행을 하는 동안 모석청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퇴마사였는지 성공한 사례들을 끊임없이 얘기해서 도현을 귀찮게 했다.

자는 척도 해 보고 무시도 해 봤지만 모석청은 그럴수록 고집스럽게 자신의 인생 속 퇴마의 기록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놨다.

“자아, 이제 내 얘기는 충분히 들었겠지? 이제 자네 얘기를 들어 볼까?”

“…….”

“어떻게 원 회장의 아들을 치료했나? 그것만 말해 줘. 그럼 귀찮게 하지 않겠네.”

원 회장 집에서 일당백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던 도현의 무력을 목격한 그는 도현이 어떻게 퇴마 능력까지 가지게 됐는지 궁금증이 컸다.

“곧 무한에 도착하겠군요.”

도현이 내릴 준비를 하자 모석청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

“난 아주 비밀스러운 곳으로 자넬 데리고 가려는데, 자넨 그 정도 사실도 말해 주지 않겠다는 건가? 너무하는군.”

“이거 하나만은 확실히 해 두죠. 제가 원해서 그곳에 가는 게 아닙니다. 모 선생님이 먼저 제게 부탁을 해서 가는 거죠.”

“이거 왜 이래, 자네도 내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가는 거잖아.”

모석청이 다 안다는 식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지만 도현은 그의 행동에 흔들림 없이 대응했다.

“그 정도 호기심을 이겨 내지 못할 정도로 가볍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모 선생님이야말로 저를 통해 석실에 있다는 검법을 배우고 싶은 게 아닙니까?”

도현의 말에 모석청이 움찔했다.

‘이놈이 나중에 딴소리하면 큰일인데.’

모석청은 더 이상 도현을 자극하지 않기로 했다.

“뭘 또 그렇게 정색을 하나. 좀 친해지고 싶어서 이런저런 말을 한 것을 두고 말이야.”

당황하는 그의 모습에 도현이 웃음을 참으며 고속 열차 창밖을 응시했다.

어둠 속을 꿰뚫으며 달리던 기차가 서서히 느려지고 있었다.

밤늦게 무한에 도착한 그들은 그곳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수주 관할 내에 있는 광수시로 향했다.

광수시는 하남성 남부와 인접한 곳인데, 모석청은 광수시 북부에 있는 깊은 산으로 도현을 안내했다.

동백산이라는 곳이었는데, 높고 구불구불 산세가 이어진 곳곳마다 깊은 계곡이 자리 잡아서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30분가량 산을 타고 올라간 모석청은 계곡물에 세수를 하며 땀을 식혔다.

“여전히 이 계곡물은 시원하군.”

모석청은 숨을 돌리며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장을 벗고 가벼운 옷차림을 한 도현이 힘든 기색 없이 수려한 산세를 감상하고 있었다.

‘몸이 기계로 됐나? 체력 하나는 끝내주는군.’

잠시 휴식을 취한 그는 짐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그런데 가방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뒤돌아보니 도현이 어느샌가 다가와 그의 짐 가방을 대신 들어 주고 있었다.

“이젠 제가 메고 가죠.”

“어, 그래 줄 텐가?”

“말씀이 없으시기에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모석청의 가방엔 먹을거리와 술, 야삽, 손전등 외에도 검이 든 길쭉한 통이 매달려 있었다.

“오랜만에 이 길을 오르니까 생각보다 힘이 드는군.”

“얼마 만에 와 보는 겁니까?”

가방을 멘 도현이 앞서 걸어가는 모석청에게 물었다.

“20년 정도 됐지.”

생각보다 긴 시간에 도현은 살짝 놀랐다.

“지금 찾아가는 석실은 30년 전에 발견한 거네. 입구를 숨겨 놨다가 20년 전에 다시 와 보고는 아예 잊어버렸지.”

도현은 나무줄기를 잡고 위로 올라가는 모석청의 등을 바라봤다.

‘앞으로 한참 더 들어가야 한다는 걸 보면 상당히 깊은 산중에 있는 것 같은데, 모 선생은 석실을 어떻게 발견하게 된 걸까?’

도현의 궁금증은 얼마 뒤 풀렸다.

산등성이를 넘어가던 모석청이 툭 튀어나온 널찍한 바위 위에 올라 산 아래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은 수백 미터는 족히 떨어진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작은 절이었다.

“멀어서 잘 안 보이겠지만, 저곳이 내가 있었던 곳이네. 20대를 저곳에서 보냈지.”

“스님이었습니까?”

도현의 물음에 모석청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보니 중이 됐네.”

멀리 떨어진 작은 절을 바라보는 모석청의 눈빛엔 아련함이 섞여 있었다. 옛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그의 모습에 도현은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한동안 조용히 서 있다가 그가 바위 위에 앉자 그때서야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퇴마사가 된 겁니까?”

“산 밑 마을에 예쁘장한 처녀가 있었는데 나를 보고 살랑살랑 꼬리를 치는 거야. 그땐 내가 제법 준수했거든.”

모석청은 바위 위에 벌렁 누워 햇볕이 뜨거운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녀가 유혹해도 난 불경을 외우며 몇 년을 버텼지.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다른 마을로 결혼해서 간다는 말을 듣게 된 거야. 잘됐다 싶었네, 날 번뇌에 빠트리던 그녀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됐으니까.”

“그게 아니었나 보군요.”

도현이 저 멀리 보이는 절에 시선을 두며 물었다.

“아니었지. 안 보이니까 더 생각나는 거야. 그때서야 난 그녀가 이미 내 마음속 깊이 들어와 있다는 걸 깨달았지. 그날로 승복을 벗어 던지고 주지 스님에게 환속하겠다고 말했네.”

“순순히 허락해 주셨습니까?”

모석청은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말도 말게. 주지 스님에게 몽둥이로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으니까. 하아, 그래도 난 좋았네. 한 대 한 대 맞을수록 그녀에게 갈 수 있다는 희망도 더 커졌으니까.”

도현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모석청을 바라봤다. 들을수록 소설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결말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절을 떠난 난, 그녀에게 달려갔네. 이미 결혼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 모습을 보지 못하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만 같았어. 그저 멀리서 얼굴만 한번 봤으면 하는 심정이었지.”

“그래서 보셨습니까?”

“아주 개잡놈이더구먼.”

“예?”

갑자기 상스러운 욕을 하며 모석청이 바위 위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얼굴까지 상기된 그는 주먹으로 바위를 내려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남편이란 자말일세. 그녀를 짐승처럼 학대하고 구타를 일삼았어. 내가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녀 때문에 부처도 버리고 왔는데!”

모석청은 침을 튀기며 열을 냈다.

‘지금도 이렇게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땐 정말 눈에 보이는 게 없었겠군.’

도현은 그 뒤의 일이 자연스레 유추됐다.

“몇 달을 참다 결국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집 안으로 쳐들어가 술에 취해 또 그녀를 구타하는 그놈을 흠씬 두들겨 패 주었네. 그때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있던 그녀가 일어나 집 안에 있던 도자기로 내 머리를 내리쳤네.”

모석청은 그때 입은 상처라며 뒷머리에 길게 찢어진 흉터를 보여 줬다.

“강도인 줄 알았나 보군요.”

“아니, 그녀는 정확히 나인 줄 알았네. 나보다는 때리는 남편이 더 소중했던 것이지.”

모석청은 괴로운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여기서 한잔 마시고 올라가세.”

도현은 가방에서 술병을 꺼내 그에게 건네줬다. 술을 한 모금 한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찢어진 머리를 붙잡고 피를 철철 흘리며 그녀 집을 도망치듯 나올 때야 난 현실을 깨달았네, 더 이상은 내가 그녀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름답지 않은 결말이어서 도현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더운 날씨에 몸을 더 뜨겁게 만들어 주는 술을 한 모금 할 뿐이었다.

“가시죠.”

도현이 가방을 메며 말하자 모석청이 헛기침을 하며 바위 위에서 뛰어내렸다.

사실 모석청은 이렇게까지 과거지사를 세세히 밝히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멀리 그가 살았던 절이 보이자 그만 자신도 모르게 과거 일을 꺼내 놓고 만 것이다.

“뭐 아무튼 그 뒤로 퇴마사가 된 거네.”

“그렇군요. 석실은 그럼 언제 발견한 겁니까?”

산을 타며 도현이 물었다.

“절에 있을 때지. 산 정상 부근에 내다 팔면 푼돈이 좀 되는 버섯들이 자랐거든. 혼자서 버섯을 따러 올라갔다가 큰 지진을 만났어. 진원지는 다른 지역이었는데, 그 여파로 동백산이 은은히 흔들렸지.”

모석청은 말을 하다가 절이 있는 방향을 돌아봤다. 그 당시 지진으로 그가 있던 절도 피해를 입었었다.

“버섯을 따던 나는 산이 흔들리는 느낌에 너무 놀라서 꼼짝할 수가 없었네. 경사가 심한 산 정상 부근이었기 때문에 내려가다가 미끄러져서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었거든.”

이야기를 듣던 도현의 시선이 산등성이 너머 웅장하게 서 있는 산 정상을 바라봤다. 그들이 가는 방향도 그곳이었다.

“버섯 따던 곳이 저곳이었습니까?”

“맞네. 길게만 느껴졌던 지진이 멈추고 산이 진정됐지. 나는 이때다 싶어서 가파른 산 정상 길을 서둘러서 내려가기 시작했네. 그때 그 전에 보지 못했던 작은 동굴 입구를 우연히 발견했네. 지진으로 약간의 산사태가 있었는데, 그로 인해 절벽 한쪽을 막았던 흙더미들이 쓸려 내려가며 동굴 입구가 일부 드러난 거야.”

“그 안에 석실에 있었던 거군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