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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30화 (330/575)

[330] 디 임팩트 14권 5화

“그렇지. 그날은 아니고 며칠 뒤에 손전등을 챙겨서 안으로 들어가 봤네.”

모석청은 말을 멈추고 석실이 있는 산 정상 부근을 지그시 올려다봤다.

“곧 자네도 보게 될 거야, 내가 본 것을.”

30년이나 지났지만 모석청이 말한 산 정상 부근의 산사태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흔적은 새로 자라나는 나무들이 조금씩 감추고 있었고, 모석청이 가려 놓은 동굴 입구 역시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길이 아예 없는 이쪽으로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나무 판을 만들어서 입구를 막고, 그 위를 진흙으로 덧발랐네. 고생 좀 했지.”

20년 만에 석실을 찾아온 그는 기억을 더듬어 잡풀이 우거진 한 곳을 가방에 있던 접이식 야삽으로 파내려 했다.

“주시죠. 제가 하겠습니다.”

야삽을 건네받은 도현은 힘 있는 삽질로 빠르게 잡풀과 흙들을 걷어 냈다.

쿠웅.

흙과 한 몸이 된 썩은 나무 판이 도현의 삽질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도현이 손을 몇 번 움직이자 모석청이 가려 놨던 동굴 입구가 완전히 햇빛에 노출됐다.

입구는 사람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비좁았다.

“드디어 다시 왔군.”

모석청이 흥분된 눈빛으로 말했다.

그는 30년 전 이곳을 처음 발견하고 석실의 검법을 익히려고 부단히 노력했었다. 하지만 운동신경도 별로고 검에 대한 자질도 부족했던 그가 석실에 그려진 그림을 독학해서 검법을 익히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무료한 절 생활에 하나의 활력소는 됐다.

그러다가 그녀 때문에 절을 떠나게 된 그는 몇 년 후인 20년 전 다시 이곳을 찾아왔다. 퇴마사로 돈을 벌기 위해선 남보다 그럴듯한 뭔가가 필요했고, 그는 이 석실에서 퇴마검법을 만든 것이다.

물론 도현이 지적한 대로 부자연스러운 검법일망정 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감탄할 정도의 힘과 화려함을 갖췄다.

‘이제 백 관장이 석실의 검법을 내게 가르쳐 준다면, 내 퇴마검법은 한 단계 더 상승하는 거야.’

산을 올라오며 아련했던 그녀와의 추억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나이 더 들기 전에 퇴마검법을 완성해서 퇴마사로 한몫 단단히 잡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신기하게 정말 이 검법을 펼치면 퇴마 효과가 있단 말이야.’

그도 어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이름 붙인 퇴마검법이 가뭄에 콩 나듯이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는 게 신기했다. 도현에게 이 비밀스러운 공간을 공개하는 데 망설임도 있었지만 놔둬 봐야 어차피 먼지만 쌓일 곳이었다.

‘게다가 이 사람 때문에 돈도 좀 벌었으니까…….’

막혔던 동굴의 탁한 기운이 빠져나오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 도현의 넓은 등을 바라보던 모석청은 염소수염을 훑어 내렸다.

“이제 그만 들어가 볼까?”

손전등을 비추며 도현과 모석청은 비좁은 동굴로 진입했다. 동굴은 밑으로 약간의 경사를 이루며 이어져 있었다.

“조금만 들어가면 동굴이 넓어지네.”

모석청의 말대로 몇 미터 들어가지 않아 세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도 될 만큼 동굴의 폭이 확 넓어졌다.

지진의 여파인지 동굴 일부가 무너져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혼자 들어올 땐 두려웠는데, 자네가 있으니 좀 낫군.”

모석청은 손전등으로 동굴 천장과 벽을 비추었다. 동굴이 무너질까 봐 은근히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해골?’

안으로 들어가던 도현은 동굴 바닥에 있는 죽은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곤 의아한 눈빛으로 모석청을 돌아봤다.

“안 놀라는군. 깜짝 놀라라고 일부러 말을 안 했는데.”

세 구의 유골을 발견하고도 감정의 동요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도현의 태도에 모석청이 오히려 당황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나도 모르겠네. 30년 전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부터 지금 자네가 보는 그대로였으니까. 유골들을 수습해서 묻어 줄까 하다가 뭔가 사연이 있겠다 싶어서 그대로 놔뒀지.”

도현은 허리를 굽혀 손전등으로 유골과 그 일대를 자세히 비췄다.

세 구의 유골들 곁에는 녹이 잔뜩 슬어서 볼품없게 돼 버린 검들이 이곳저곳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검들은 하나같이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싸우다 검이 부러진 것 같군.’

도현은 검 손잡이를 꽉 움켜쥔 자세로 죽어 있는 유골들의 자세를 토대로 이들이 싸우다 죽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 냈다.

‘두개골 뼈가 완전히 박살이 나 있어.’

쇠망치로 힘껏 얻어맞은 것처럼 유골의 두개골 뼈는 주먹 크기로 뻥 뚫려 있었다.

두 번째 유골에서도 두개골이 뚫려 있는 것을 확인한 도현은 세 번째 유골을 살펴봤다. 썩은 옷 사이로 심장을 감싸는 늑골들이 여러 조각이 나 있었다.

‘이 사람은 가슴에 치명상을 입었군.’

유골과 그들이 입었던 옷들을 살펴본 도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뭣 좀 알아냈나?”

도현이 유골을 살필 동안 어깨 너머로 구경하고 있던 모석청이 물었다.

“세 사람 모두 같은 형태의 겉옷을 걸치고 있는 걸로 봐서는, 한집단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썩고 삭은 오래된 옷이었지만 그 형태는 아직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머리에, 한 사람은 가슴에 치명상을 입었군요. 아마 세 명이 공격하다가 되레 당한 것 같습니다. 상대는 한 사람인지 여러 사람인지 알 길이 없지만, 검이 모두 부러진 것과 유골에 남아 있는 상처를 봤을 땐…… 상대방은 어렵지 않게 이들을 죽인 것 같습니다.”

“그런가?”

모석청은 유골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유골의 특징과 무기 상태를 보고서 어떤 싸움이 벌어졌는지 유추해 내는 도현의 능력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반신반의한 것이다.

“그런데 소지품이 하나도 없군요. 이들이 옷만 입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 어, 그게 말일세.”

모석청이 말을 더듬었다.

“모 선생님, 30년 전 따로 발견한 게 있었습니까?”

“아, 이제 생각나네.”

말을 더듬던 모석청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들이 누군지 알아보려고 썩은 옷가지를 뒤적이다가 지갑처럼 가지고 다니는 주머니를 발견했었네.”

“안에 뭐가 들어 있었습니까?”

“뭐 별거 없었네. 손톱만 한 은 조각 몇 개가 전부였지. 신분을 알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당시 승려였던 모석청은 유골을 수습하지 않고 돈이 될 만한 것만 챙겼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는지 도현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설명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계속 들어가죠.”

도현은 유골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잠깐만.”

모석청이 도현을 불러 세웠다.

“실은 말일세, 석실에도 죽은 자들이 여럿 있어.”

“석실에도요?”

“그렇다네. 그들도 저기 죽은 자들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네. 자네 말대로 한집단에 속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겠지.”

도현은 턱을 매만졌다.

“다른 복장을 한 사람은요?”

“내 기억으론 없었네. 모두 저것과 같은 형태의 장삼을 걸쳤어.”

도현은 석실이 있는 동굴 안쪽을 응시했다. 이들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서 싸우게 됐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석실의 검법 때문인가?’

도현은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석실로 향했다.

10미터 정도 더 들어가서 동굴 모퉁이를 돌자 인공으로 다듬어진 석실이 나타났다. 천연 동굴을 다듬어 만든 석실의 분위기는 어딘지 음산했다.

“혼자 들어왔을 땐 오줌을 지릴 뻔했네, 분위기에 압도당해서 말이야.”

나이가 들며 겁이 더 많아진 모석청은 처음 방문하는 도현의 등 뒤에 서서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에 귀신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농담하지 말게.”

밖은 더웠지만 석실 입구에 한 발을 디디자 서늘한 기운이 둘의 몸을 감쌌다.

손전등 없이도 어둠 속을 어느 정도 꿰뚫어 볼 수 있는 도현은 한눈에 석실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상당한 규모인데?’

육각형 모양으로 다듬어진 석실은 일반 학교의 교실 두어 개는 붙여 놓은 것만큼 컸고, 천장도 높았다. 30년 전 지진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게 놀라울 정도였다.

도현은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손전등을 비추며 석실 안으로 들어갔다.

모석청의 말대로 석실 바닥 곳곳에는 여러 구의 유골이 흩어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청동화로도 군데군데 존재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을 먼저 잡아끄는 건 석실 벽면에 채색되어 그려진 그림들이었다.

‘이것이구나, 모 선생이 말한 검법이.’

실제 사람 크기로 그려진 노인 그림이 갖가지 검 동작을 해 보이며 석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마치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고 있어서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손전등을 비추며 그림을 살펴보던 도현은 넓은 석벽에 그려진 검과 노인을 따라 석실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누가 그렸는지 몰라도 진짜 검을 사용하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잘 그렸어.’

고분의 벽화처럼 색이 많이 바래긴 했지만, 본래의 형태를 잃어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도현은 노인과 검의 움직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하필 이곳에서 끊기는군.’

노인의 검 동작을 보며 마음속으로 따라서 해 보던 도현은 무너진 석벽에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다.

지진으로 인해 석벽 일부가 무너져 검을 든 노인을 통째로 집어삼킨 것이다.

고조되어 가던 노인의 검이 무너진 석벽과 함께 뚝 끊어져 버렸다.

“내가 30년 전 흙과 돌들을 뒤적여 봤는데, 그림은 흔적도 없이 망가져 있더군.”

말없이 도현이 하는 행동을 뒤에서 관찰하던 모석청은 도현의 시선이 지진으로 무너진 석벽에 가 있자 과거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너진 석벽을 지나쳐 다시 이어지는 노인 그림에 집중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이번에도 그는 아쉬운 마음을 가져야만 했다.

‘누군가 그림을 망가트렸다.’

석벽의 그림이 대패로 민듯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석벽 밑에 수북이 쌓여 있는 돌가루들을 볼 때, 누군가 인위적으로 그림을 없앤 것이다.

도현이 돌아보자 모석청이 자신이 왔을 때부터 그런 것이라고 얘기했다.

“처음부터 이랬네. 한두 군데가 아니야. 수십 군데가 넘어.”

그의 말이 맞았다.

노인의 검이 절정으로 향할 때마다 석벽의 그림이 완벽히 훼손되어 있었다.

‘기가 막히는군. 중요한 지점마다 검을 든 노인의 그림을 몽땅 지워 버렸어. 이래서는 검법을 복원하기가 어려워.’

석실을 한 바퀴 돌며 그림을 모두 확인한 도현은 쓴 입맛을 다셨다.

석실의 그림은 두 가지 검법을 표현하고 있었다.

가볍고 빠른 검과 무거운 가운데 변화가 심한 검.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검의 깊이를 봤을 때 그림이 훼손되지 않았다면 꽤 위력적인 검법을 배울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지?’

도현의 시선이 석실에 있는 여러 유골로 향했다. 그는 가까운 곳에 있는 유골을 시작으로 죽은 자들의 사인을 확인해 봤다.

‘모두 머리가 아니면 가슴에 타격을 입고 죽었어.’

앞선 동굴의 유골처럼 두개골이 부서지고 늑골이 조각조각 나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던 검도 두 동강이 나 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이들이 검법을 훼손시킨 걸까? 아니면 이들을 죽인 자들이 훼손시킨 걸까…….’

수백 년도 더 지나 보이는 과거의 일을 도현이라고 밝혀 낼 수는 없었다.

조금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일어서는 도현의 눈치를 보며 모석청이 다가왔다.

“어떤가?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놀랍지?”

“네, 하지만 아쉽군요. 훼손된 그림이 많아서…….”

도현이 생각보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하자 모석청이 당황하며 서둘러 말했다.

“그래도 멀쩡한 게 더 많잖은가? 그 정도면 검을 수련하는 자네에게도 분명히 도움이 되겠지. 적어도 수백 년은 넘어 보이는 검법인데.”

모석청이 훼손된 그림이 석벽에 그려진 검법의 정수라는 걸 알 리 없었다. 도현도 굳이 검을 잘 모르는 그를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다.

“약속을 잊지 말게. 자네가 이곳에서 배운 검법을 내게도 전수해 줘야 하네.”

“글쎄요…… 제 생각과는 다른 검법이라서. 꼭 배울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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