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 디 임팩트 14권 6화
도현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화들짝 놀란 모석청이 손전등으로 도현의 얼굴을 비췄다.
“볼 것 다 보고 배울 필요가 없다고? 도둑놈 심보 아닌가?”
“석벽이 이렇게 많이 훼손되었다고 미리 말했다면 안 왔겠지요.”
도현은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석실에 흩어져 있던 유골들을 수습해서 밖으로 향했다.
“그건 내가 잘못했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깝지 않나? 저 검법을 배워야지!”
도현이 석실의 검법을 안 배우면 모석청도 빈손으로 산을 내려가야 했다.
“이쪽 건 모 선생님이 책임지십시오.”
도현이 동굴 통로에 있는 세 구의 유골을 손전등으로 가리켰다.
“알겠네. 맡겨 두게.”
모석청은 동굴 통로에 있는 유골들을 잽싸게 수습해 도현을 뒤쫓아 갔다.
동굴 입구에서 멀지 않은 숲에 도착한 도현과 모석청은 야삽으로 땅을 깊게 파서 유골과 부러진 장검을 넣고 땅을 다졌다.
봉분 없이 매장만 한 도현은 야삽을 든 상태로 뒤를 돌아봤다. 땅을 파느라 땀을 쏟은 모석청이 바위에 앉아서 땀을 식히다가 야삽을 들고 쳐다보는 도현과 눈이 마주쳤다. 어딘지 날카로워 보이는 도현의 눈빛에 그는 흠칫했다.
‘설마 저 야삽으로 날 쳐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원 회장 집에서 정글도와 도끼로 수십여 명을 때려잡던 도현의 차가운 모습이 왜 하필 이때 떠올랐는지 모른다.
‘정말 석벽의 상태 때문에 화가 난 건가? 장난이 아니었어?’
엄습하는 불안감과 긴장감에 극도로 초조해진 모석청은 슬그머니 엉덩이를 바위에서 떼어 냈다. 그가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를 하는 그때, 도현이 야삽을 번개처럼 집어 던졌다.
“으아아악!”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던 모석청이 서서히 비명을 줄여 갔다.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던 야삽이 그의 머리를 살짝 스치고 뒤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왜, 왜 이러는가? 자넨 좋은 사람 같았는데?”
도현의 행동에 겁을 집어먹은 모석청이 다가오는 그를 보며 말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몸이 굳어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뒤를 돌아보십시오.”
모석청은 마네킹처럼 굳어진 목을 간신히 움직여 뒤를 확인했다. 오색 빛깔의 커다란 뱀 한 마리가 입을 쫙 벌린 채 몸이 잘려 죽어 있었다. 도현이 집어 던진 야삽에 죽은 것이다.
“위에 있는 나무에서 슬그머니 내려오고 있더군요.”
“뱀 때문에 야삽을 던진 것이로군. 후우, 난 또.”
창백했던 낯빛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온 모석청은 껄껄 웃으며 야삽이 박힌 나무로 걸어갔다.
“난 자네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줄 알았네. 그런데 이 야삽, 왜 이렇게 안 빠지는가?”
나무에 깊숙이 박힌 야삽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얼마나 깊이 박혔는지 꿈쩍도 안 했다.
‘뭐 이런 괴물 같은 인간이 다 있어? 야삽이 도끼도 아니고, 삽자루 부근까지 박혔네?’
속으로 혀를 내두르던 모석청은 한 발로 나무를 밀며 야삽과 한동안 씨름한 끝에 간신히 뽑아낼 수 있었다.
숨을 헐떡이는 그에게 도현이 차분히 말했다.
“모 선생님, 훼손된 그림 때문에 완벽한 검법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약속대로 석실의 검법을 전수해 드리죠.”
“정말인가? 하하하! 고맙네, 정말 고마워!”
그림을 보고도 어떻게 검을 휘둘러야 할지 모르는 동작들이 태반이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알 수 없었고. 그런데 이제 도현이 그것을 알려 준다고 하니 30년간 그를 아쉽게 했던 검법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단번에 모든 걸 전수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응?”
모석청이 웃음기를 거두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어렵다는 건가?”
“검법의 그림들이 수준이 상당히 높아서요. 걸을 준비도 안 된 모 선생님에게 뛰는 법 먼저 가르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냥 뛰는 법 먼저 알려 주면 안 되겠나?”
“몸이 상해 죽고 싶다면 그러십시오. 얼마든지 그림의 동작을 알려 드리죠.”
도현의 냉정한 말에 모석청이 염소수염을 훑으며 능청스럽게 답했다.
“농담이네, 농담. 사람은 기본기가 중요한 법이지.”
“오늘은 제가 저 석실의 검법을 공부하겠습니다. 내일부터 이틀간 서른 가지 검 동작을 알려 드리죠. 그 서른 가지 검 동작 안에는 모 선생님이 퇴마검법에 섞어 잘못 사용하고 있는 동작들도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오, 그거 잘됐군. 내 퇴마검법이 발전하겠어! 그럼 다른 동작들은 언제 배울 수 있나?”
“서른 가지 동작을 완벽히 사용하게 되면 나중에 한국으로 절 찾아오십시오. 그때 나머지 동작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긴 시간이 걸릴 거란 것을 예고하는 말이었다.
모석청은 입맛을 다시며 석실이 있는 동굴로 향하는 도현의 등을 쳐다봤다.
‘어쩔 수 없지. 더 바랐다간 저 냉정한 인간이 안면을 몰수하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있으니까.’
밤이 찾아왔다.
석실에서 머물기로 한 그들은 청동화로에 불을 피웠다.
청동화로 다섯 개에 모두 불을 피우자 석실 안이 아늑한 느낌이 돌며 은은히 밝아졌다.
“유골들을 모두 치우니 이곳도 제법 지낼 만하군.”
노인의 검을 배우기 위해 석벽의 그림을 쳐다보고 있는 도현에게 모석청이 말을 걸었지만, 도현은 그림에 집중해 있었다.
“검을 들고 그림의 동작을 흉내 내야 하지 않나? 그래야 빨리 익힐 텐데.”
“마음속으로 이 노인의 검을 느끼는 게 먼저입니다.”
“좋겠군, 그래도 된다니. 하아, 나는 언제나 그런 멋진 말을 하며 검을 배울까?”
팔베개를 하고 석실 한가운데 누워 있던 모석청은 배가 살살 아파 오자 엉거주춤 일어섰다.
“저녁 먹은 게 잘못됐나 보군. 볼일 좀 보고 오겠네.”
“다녀오십시오.”
도현은 수다스러운 모석청이 사라지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석실에서 쫓아낼 수도 없고, 그림에 집중하는 데 이만저만 방해가 되는 게 아니었다.
그때 한 발 옆으로 움직여 또 다른 그림에 집중하던 도현의 시선에 이상한 점이 포착됐다.
‘지진 때문에 균열이 일어난 건가?’
아까는 무심코 지나가서 몰랐는데, 지금 자세히 보니 석벽에 미세한 틈이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이어져 있었다.
‘여기도 금이 나 있는데?’
2미터 정도 되는 폭 사이로 미세한 틈 두 개가 나란히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지진으로 생긴 균열치고는 자로 잰 듯 틈이 너무도 똑바르게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왔다.
‘수상한데.’
도현은 미세한 틈을 손으로 더듬어 보기도 하고 그림이 그려진 석벽에 귀를 가져다 대고 주먹으로 가볍게 쳐 보기도 했다.
‘울림이 다르다.’
도현은 손에 내공을 실어 다시 한 번 가볍게 석벽을 때렸다.
옆에 석벽이 소리가 흡수된 듯 사라졌다면 틈이 좌우로 있는 석벽은 소리가 오래갔다.
‘혹시 뒤에 공간이 있는 건가?’
눈을 빛낸 도현은 내공을 끌어 올려 미세한 틈이 벌어진 석벽의 한쪽을 밀어 봤다.
구르륵.
둔중한 소리와 함께 그림이 그려진 석벽이 회전문처럼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문이었구나!’
도현은 내공을 유지한 채 계속 문에 힘을 주었다.
석실의 벽으로 위장된 회전문이 조금씩 회전하며 고요한 석실에 맷돌 가는 소리와 유사한 소음을 요란하게 전달했다.
그르르르륵.
‘어지간한 힘으로는 석벽의 문을 열기도 어렵겠어.’
돌의 무게 때문에 일반인들의 힘으로는 꿈쩍도 안 할 회전문이었다.
회전문을 통해 석벽 뒤로 이동한 도현은 앞을 봤다.
무거운 회전문 뒤에는 어둠 속으로 이어진 통로가 있었는데, 석실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존재했던 천연 동굴의 일부인 것 같았다.
“어디로 통하는 길일까?”
비밀스러운 통로를 잠시 바라보던 도현은 석실로 돌아와 손전등을 챙겨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 어디 있지?”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돌아온 모석청은 석실이 텅 비어 있자 이상한 기분이 들어 주변을 빠르게 훑어봤다.
도현이 회전문을 다시 닫아 놨기 때문에 그는 도현이 석벽 안으로 들어간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이 사람도 배가 아팠나?”
모석청은 자신이 없는 사이 도현도 볼일을 보러 간 줄 착각하며 조금 전 도현이 사라진 석벽의 회전문 근처로 다가갔다.
“나이도 어린 사람이 재주도 많아. 퇴마 능력에 무예도 뛰어나고.”
그림을 보며 도현을 부러워하던 그는 누군가 뒤에서 지켜보는 느낌에 오싹한 기분이 들어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눈알을 좌우로 굴린 모석청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젊었을 땐 이곳을 혼자 와도 그럭저럭 견딜 만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백 관장! 백 관장, 어디 있나!”
괜스레 겁이 난 그는 도현을 찾아 밖으로 황급히 뛰어나갔다.
회전문
육중한 회전문 뒤에 숨겨져 있는 동굴을 살피며 안으로 들어간 도현은 얼마 가지 않아 통로 끝에 존재하는 새로운 석실을 발견했다.
‘물소리 같은데?’
적막감이 감도는 석실에 들어선 도현은 그의 귀를 자극하는 작은 소리를 쫓아 손전등으로 왼편을 비췄다.
석실 입구와 가까운 석벽 근처로 작은 실개천 같은 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지하수는 석벽 밑으로 난 작은 구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지하수가 흐르는 짧은 수로 앞엔 깨진 항아리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물과 항아리. 이곳은 수련 장소인가?’
지하 수로와 깨진 항아리 조각들에서 시선을 뗀 그는 석실 전체를 입구에서 훑어봤다.
석실은 모석청이 발견한 석실보다는 작은 규모였지만 그래도 큰 편에 속했다.
“여기도 죽은 자들이 있군.”
안에는 유골이 두 구 존재했는데, 한 사람은 석실 중앙에, 또 다른 사람은 석실 제일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이미 동굴에서 죽은 자들을 여럿 봤기 때문에 도현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는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좌우 석벽을 둘러봤다. 혹시나 했던 노인의 검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어떤 격렬한 흔적이 남아 있어서 도현의 관심을 끌어당겼다.
도현은 유골을 향해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을 깊은 시선으로 응시했다.
손바닥으로 바닥의 돌가루와 먼지들을 옆으로 걷어 내자 폭이 좁고 깊이 파인 길쭉한 홈이 나타났다.
깊게 파인 홈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 보던 도현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이어졌다. 그곳에도 비슷한 흔적들이 존재했다.
‘칼자국 같은데…….’
자리에서 일어선 도현은 석실 오른쪽 바닥과 석벽 일대를 자세히 조사해 봤다.
선명한 칼자국이 석실 내부 바닥과 벽을 가리지 않고 종횡으로 그어져 있었다.
돌에 이런 일정한 깊이의 칼자국을 남길 정도의 고수라면 그 실력이 비범함을 넘어 어떤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검법이나 이런 걸 남기려 한 게 아니야. 싸움의 흔적이다!’
바닥에 새겨진 검의 궤적을 유추하던 도현은 석실에 칼자국을 남긴 검객이 누군가를 상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검객을 상대하던 자는 어떤 수법을 이용한 걸까?’
바닥과 석벽엔 한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검객의 칼자국만 남아 있을 뿐 그를 상대하던 자의 흔적은 아직 찾아낼 수가 없었다.
도현은 검객이 만든 칼자국을 면밀히 살피며 추적했다. 그리고 마침내 움푹 들어간 석벽의 한 곳을 발견했다.
‘이건 손자국.’
톱스타들이 길거리에 핸드 프린팅을 해 놓은 것처럼 석벽에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편 도현은 돌에 생긴 손자국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 봤다. 손등까지 잠길 정도로 깊이 들어갔다.
‘대단한 힘이다. 이 정도 깊이로 석벽에 손자국을 남겨 놓다니.’
보통 내공의 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아니, 내공만 있다고 해서 이런 결과물을 만들기는 어렵다.
‘그에 적합한 기술이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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