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 디 임팩트 14권 9화
방상은 섭상의 차가운 시선에 움찔하며 그의 시선을 슬며시 피했다.
“노일문이 용사 계곡에서 무허에게 죽은 이후, 사부의 행동이 많이 이상해졌다. 얼마 전엔 침소에 드나들던 젊은 여자들의 목을 분질러 죽이고, 음식이 이상하다며 주방에 들어가 주방 일을 보던 여러 사람들을 칼로 목을 베어 죽였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행동이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이 사실을 미처 전해 듣지 못했던 제자들이 이곳저곳에서 신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무공을 익히다 머리를 다치셨거나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문제가 그분에게 발생한 것 같다. 지금은 아랫것들에게 손을 쓰지만, 그 손이 언제 우리들에게 향할지 모른다.”
방 안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사실, 사부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엔 자유란 의미 외에도 이렇듯 감정이 주체할 수 없게 변해 버린 사부로부터 목숨을 방어한다는 뜻도 있다.”
섭상은 이야기를 마치고 방상을 쳐다봤다.
“방 사제, 사부는 늙는 게 아니야. 점점 괴물로 변해 가는 것이지.”
방상도 더는 섭상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고, 제자들은 제각각 상념에 빠진 모습이었다.
“좋소, 사형의 말대로 우리가 합심해 사부를 상대한다고 합시다. 그럼 사부가 죽으면 문주는 누가 되는 거요?”
고진영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모두들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아무도 문주가 될 수 없다. 검선문은 사부의 죽음과 함께 해체될 테니까.”
섭상의 말에 모두들 충격을 받았는지 멍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검선문이 사라진다고?”
“그렇다. 사부가 죽고 누군가 문주가 된다면, 그 문주로 인해 남은 사형제들이 다시 그의 지시를 받아야겠지. 그럴 거면 사부를 힘들여 죽일 필요가 있을까? 지금과 다를 바 없다면 말이야.”
섭상은 문주직에 욕심을 내고 있는 사제들을 통합하기 위해서 초강수를 뒀다.
“그게 진심이에요? 사부님이 죽으면 검선문을 없애자는 게?”
쾌검이 특기인 여고수 여섯째 화지약이 확인하듯 물었다.
“내 목숨을 걸고 약속한다. 절대 다른 말을 하지 않겠다.”
“흠.”
셋째 오비와 넷째 고진영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후 다른 제자들과도 시선을 주고받았다.
섭상은 말없이 사제들이 무언의 눈빛을 교환하는 걸 지켜만 봤다.
“좋아, 각자 자기 사업을 하면 되는 것이지. 검선문의 그림자는 완전히 걷어 냅시다. 난 동참하겠소.”
셋째 오비가 손을 들어 섭상의 의견에 동조하자, 넷째 고진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거수했다.
“동의하오.”
“저도요.”
여섯째 화지약이 손을 들었고, 키가 작은 일곱째 육기천과 뚱뚱한 여덟째 방상도 뒤이어 손을 들어 동의를 했다.
남은 건 아홉째 료쿄와 막내인 주성하였다.
모두의 시선이 쏟아지자 주성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찬성을 표시했다.
“구사저, 뭐 하십니까?”
굳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료코에게 주성하가 눈짓을 했다.
하지만 료쿄는 손을 들어 찬성하지 않았다.
“구사저!”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에 주성하가 낮은 목소리로 재촉했다. 여기서 찬성하지 않으면 분위기상 죽음을 면치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료쿄는 끝내 입을 다물고 고집스럽게 앉아 있기만 했다.
지켜보던 섭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탁자 끝에 앉아 있는 료쿄에게 다가갔다.
“료쿄.”
“네, 사형.”
“나는 네가 빠지면 무척 서운할 것이다. 한 사람의 힘이라도 더 필요한 시점이 바로 오늘이다. 이번 일에 너도 동참했으면 한다.”
천장에서 내려온 불빛에 음영이 진 섭상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워 보였다.
료쿄는 앉은 상태에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섭상의 얼굴을 한동안 올려보다가 꼭 다문 붉은 입술을 열었다.
“동참할게요.”
“고맙다. 오늘 밤이 지나면 우리는 사부로부터 자유로워질 거야.”
료쿄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준 그는 방 안에 있는 사제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녁을 준비해 놨으니, 여기서 먹고 몇 시간 뒤 사부의 집으로 향한다. 그동안 사제들이 가지고 있는 휴대폰은 모두 여기 이 탁자 위에 올려놓는 게 좋겠어. 사제들을 믿지만, 만일을 위해서 말이야.”
누군가 오늘 벌어질 일을 사부에게 말한다면 사부에게 거꾸로 당할 수가 있었기에, 모두들 섭상의 말을 군소리 없이 따랐다. 그만큼 오늘 일은 모두에게 중요했다.
“아, 그런데 대사형은 어쩔 겁니까?”
고진영의 물음에 섭상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사부를 따라가는 게 대사형의 도리겠지. 사부를 죽인 후, 등선궁에 있는 그도 제거한다.”
제자들은 청선을 없앤다는 말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사부를 죽이려고 하는 판에 대사형의 존재는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기 때문이다.
료쿄는 휴대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농가 밖으로 나가 바람을 깊게 흡입했다.
뒤따라 나온 주성하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 내며 료쿄에게 다가갔다.
“구사저, 조금 전엔 왜 그런 겁니까? 어차피 사부에게 마음이 떠난 게 아니었어요?”
“떠났지.”
료쿄는 담담히 말했다.
“그런데요? 왜 그렇게 사람 초조하게 만듭니까?”
주성하는 섭상의 부하들이 쫙 깔려 있는 농가 주변을 훑어보며 물었다.
“백도현하고 약속을 했잖아. 그가 아버지의 복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그는 직접 사부를 상대하고 싶어 했어. 그런데 이렇게 일이 진행되면, 그는 영영 사부와 검을 겨룰 수 없게 되잖아.”
“겨우 그것 때문이었습니까? 미쳤어요? 상황이 저런데 어떻게 그 녀석 사정만 생각합니까,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백도현을 만났을 때 뭐라고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
주성하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 우리가 일부러 그랬습니까? 상황이 그렇게 된 걸…….”
“나중에 그를 만나게 되면 잘 이야기해, 오해 없도록.”
료쿄가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 하자 주성하가 서둘러 말했다.
“구사저, 그건 그거고. 오늘 밤 사부와의 싸움, 몸 사리면서 하십시오. 폭탄에 죽으면 다행이지만, 느낌에 사부가 그렇게 호락호락당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만약 우리가 지면?”
“예?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주성하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모석청과 헤어져 상해로 돌아온 도현은 홍영과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하고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있었다.
“앞일이라는 건 정말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도현 씨가 석실에서 기연을 얻고…….”
“기연요?”
도현은 옆에서 나란히 걷는 홍영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럼 기연이지 아니에요?”
저녁을 먹으며 석실에서의 일을 자세히 설명해 준 도현은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 말대로 대력금강수를 얻은 건 기연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기연이죠.”
“양피지 비급을 없애 버리다니, 너무해요. 보고 싶었는데.”
살짝 토라진 그녀의 음성에 도현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어요.”
당황하는 도현의 모습에 홍영이 따뜻한 눈빛으로 조용히 말했다.
“장난이에요. 도현 씨가 호신강기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아서 한 말이에요.”
“보여 줄까요?”
“뭘요? 대력금강수요? 여기서?”
홍영이 걸음을 늦추며 주위를 돌아봤다. 집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엔 가로수와 가로등이 드문드문 서 있었고, 오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도현은 주변에 보는 사람이 없자 홍영을 가로수 옆에 서게 한 후 순간적으로 대력금강수를 펼쳤다.
어둠 속에 은은히 빛이 나는 청색 기운이 도현의 손에 맺혔다. 대력금강수의 경지가 높아지면 은은한 빛이 아닌 눈부신 청색 강기가 도현의 손을 휘감을 것이다.
“이게 대력금강수예요?”
홍영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 도현은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손에 맺힌 기운을 풀어 버렸다.
“무예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종류도 다양하고.”
감탄한 그녀는 도현과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도현과 손을 잡고 말없이 걷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상이 다 나았다고 했죠?”
“네, 한동안은 더 갈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몸이 일찍 회복됐어요.”
산에서 모석청에게 검법을 전수해 주면서 도현은 대력금강수를 수련했다. 그 며칠 사이에 약간 남아 있던 내상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다.
“그럼 태선군을 곧 만나러 가겠네요…….”
도현은 태선군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볼 생각이라고 홍영에게 이미 말한 적이 있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됐으니 그때가 가까워진 것이다.
“언제 갈 거예요?”
“며칠 내로요.”
도현의 대답에 홍영의 눈동자가 파도처럼 흔들리다가 점차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숨을 건 싸움이 아니라 그의 실력만 확인하러 가는 거죠?”
“걱정 말아요.”
도현은 걱정을 애써 감추고 있는 홍영의 손을 부드럽지만 힘 있게 감싸 쥐었다.
비는 내리고
깊은 밤, 담의 높이만 해도 10미터가량이나 되는 궁궐처럼 거대한 집에서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줄줄이 걸어서 나왔다.
그들은 성문 같은 정문을 통과해 앞에서 대기 중이던 여러 대의 차에 올라탔다. 이들은 태선군이 사는 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로, 요리사부터 정원사까지 그 신분이 가지각색이었다.
차에 올라탄 그들의 손에는 짐 가방과 별도로 거액이 든 돈 가방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모두 차에 탔습니다. 인원은 빠짐없이 확인했습니다.”
태선군의 집 경비를 책임지는 경비팀장이 섭상에게 보고했다. 그 역시 섭상의 부하 중 하나였다.
“수고했다. 조용히 출발시키고, 경비 인원들도 철수해.”
“네!”
모자를 쓴 경비팀장은 저택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태운 차량을 출발시킨 뒤, 그 자신도 경비 인원들을 데리고 별도의 차량을 이용해 떠났다.
몇 분 사이에 태선군의 집은 침소에서 자고 있는 태선군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빈집이 돼 버렸다.
적막감이 감도는 정문 앞으로 섭상과 일곱 명의 제자들이 섰다. 허리에 검을 찬 그들의 표정은 이무기를 잡으러 가는 사냥꾼들처럼 긴장과 비장함이 뒤섞여 있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사부도 인간일 뿐이야. 가자.”
섭상이 경공을 발휘해 앞으로 치고 나가자, 일곱 명의 사제들이 두 줄로 열을 맞춰 그의 뒤를 빠르게 쫓아갔다.
골프장을 들여놓은 것처럼 넓은 집 안의 숲과 정원을 빠르게 돌파한 섭상은 3층 목조건물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휘휘휙.
작은 연못을 바람처럼 뛰어넘은 여덟 명의 사형제들은 잠시 뒤, 사부의 침소가 있는 3층 목조건물 근처에 도착했다.
불이 꺼진 전각 형태의 3층 목조건물 꼭대기 층이 바로 태선군의 침소였다.
“차라리 사부가 폭탄과 함께 사라졌으면 좋겠군.”
셋째 오비가 무거운 눈빛으로 말했다. 사부와 검을 섞는 게 두렵지 않은 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서 있는 섭상 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부가 잠을 깨고 나오기 전에 어서 시작합시다.”
넷째 고진영이 검 손잡이를 움켜쥔 채 말없이 서 있는 섭상을 재촉했다.
“1분 후, 폭탄을 터트리겠다. 건물을 포위해.”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 두 명씩 짝을 이뤄 세 방향으로 검선문의 제자들이 흩어졌다.
섭상이 있는 남쪽은 여덟째 방상이 함께했다.
“방 사제.”
“예.”
“그러고 보니 앞니를 새로 했군.”
긴장한 얼굴로 서 있던 방상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앞니를 만졌다. 일전에 도현에게 당해 부러진 이를 새로 해 넣은 것이다.
“보기 흉해서…….”
섭상은 사부와의 싸움을 앞두고 있는 와중에도 머리 한편에는 고진영과 화지약, 료쿄, 방상에게 부상을 입히고 사라진 정체불명의 고수가 신경 쓰였다. 네 명을 동시에 상대할 만한 고수라면 무시하기 곤란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사부와 한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적어도 그날 밤에 네 명의 제자들과 싸울 일은 없었을 테니까.
섭상은 품속에서 작은 버튼이 달린 은색 장치를 꺼내 들었다.
버튼을 감싸고 있는 캡을 연 그는 엄지손가락을 버튼 위에 올려놓고 불이 꺼진 전각의 3층을 지그시 노려봤다.
버튼을 누르면 되돌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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