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 디 임팩트 14권 10화
그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태선군의 침소가 있는 3층 꼭대기 층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앙!
폭발의 불길이 밤하늘 높이 치솟았고 불타오르는 목조건물의 잔해는 인근으로 날아가며 폭죽처럼 밤하늘을 수놓았다.
피이이잉.
불붙은 건물 파편이 날아오는 걸 손으로 가볍게 쳐 낸 섭상은 폭발이 일어난 3층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건 일대를 포위하고 있는 일곱 명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활활 타오르는 3층의 불길 속에서 사부가 모습을 드러낼지 안 드러낼지 그들의 모든 신경은 그곳으로 집중된 상태였다.
5초, 10초, 15초. 모두들 마음속으로 자신의 시계를 가동시키며 사부의 생사 여부를 판단 내렸다.
마침내 30초 정도 지났을 무렵, 제자들은 하나둘 손에 든 검 손잡이를 놓기 시작했다. 사부의 죽음이 피부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때 태선군이 불길을 뚫고 3층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이 제자들의 눈에 포착됐다.
“빌어먹을!”
셋째 오비와 여섯째 화지약은 그들이 숨어 있는 방향으로 무섭게 날아오는 사부의 모습에 검을 뽑으며 그를 기다렸다.
척.
땅에 착지한 태선군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옷은 태반이 탔고, 전신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쿨럭거리며 기침을 하던 태선군은 비틀거리는 몸의 중심을 잡으려다 벼락처럼 왼쪽으로 장풍을 날렸다.
사부를 노리고 달려들던 오비가 헛바람을 삼키며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발밑을 지나간 사부의 장풍에 정원의 석등이 박살 났다. 실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네놈이 감히!”
3층의 폭발을 견디고 불길까지 뚫고 나온 태선군은 제자의 암습에 분노를 터트리며 오비를 쏘아봤다.
그 순간, 나무 그늘에 숨어 있던 화지약이 뛰쳐나와 쾌검을 날렸다. 검기가 충만한 그녀의 검은 얼음처럼 싸늘해서 살기가 넘실거렸다.
태선군은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며 오른손을 내뻗었다.
팅팅팅팅팅.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화지약의 쾌검들이 태선군의 한 손에 모두 가로막혀 번번이 허공만 찔러 됐다.
“가소로운 것.”
어느새 화지약의 옆구리까지 파고든 태선군이 부드럽게 손을 날렸다.
화지약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사부의 장력에 옆구리가 통째로 뜯겨 나갈 것 같았다.
그때 오비가 빠르게 다가와 검으로 태선군의 목을 베려 했고, 태선군은 별수 없이 장력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두 제자와 대치한 태선군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오비와 화지약에게도 사부의 몸이 정상이 아닌 게 눈에 뻔히 보였다. 폭발로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내 눈을 이대로 뽑아 버리고 싶구나. 너희들이 날 배신하다니.”
“우리만이 아닙니다, 사부.”
오비의 차가운 대꾸에 태선군의 반쯤 타 버린 흰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그럼 또 누가?”
“저도 있습니다.”
넷째 고진영이 옆에서 걸어 나왔다. 그를 시작으로 육기천과 주성하, 료쿄, 방상, 마지막으로 섭상이 등장했다.
태선군은 이토록 많은 제자들이 자신을 향해 검을 거꾸로 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지 표정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청선은 가담하지 않았느냐?”
“그가 이 일에 가담했겠습니까?”
섭상이 태선군의 전면에 서며 말했다.
“섭상, 네 녀석이 오늘 일을 주도했구나.”
“바로 보셨습니다, 사부.”
“이유가 무엇이냐?”
태선군은 자신을 포위한 채 서 있는 제자들을 향해 다시 한 번 크게 물었다.
“대체 날 배신한 이유가 무엇이냐!”
그의 호통 소리에는 실망과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사부님의 오랜 군림이 싫었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아주 답답하더군요. 진즉에 저희들 중 한 명을 뽑아 문주직을 넘겨주시고 뒤로 물러나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매일 아침마다 찾아와 문안 인사를 하게 만들지 않았더니 헛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구나. 역시 내가 너무 풀어 줬어.”
태선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또 한 가지는, 사부님이 점점 미쳐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사 도중 여자의 목을 분질러 죽이고,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죽이시더군요. 그 일을 숨기느라 돈을 많이 썼습니다.”
“그런 녀석들 좀 죽였다 하여 뭐가 잘못됐느냐?”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부님의 살심이 언제 저희들에게 향할지 그게 신경 쓰이는 것이죠.”
“그래?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태선군은 포위한 제자들을 길게 둘러봤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 주지.”
태선군의 눈가에 살기가 진하게 맺혔다.
“몸이 정상이 아니신 것 같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이놈!”
태선군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어느 순간 섭상의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절정의 신법을 발휘한 태선군을 기다리는 건 섭상의 검이었다.
스르릉.
검집에서 뽑힌 섭상의 검이 해일처럼 거센 기세로 태선군의 전신을 휘감았다.
불에 탄 옷들이 섭상의 검풍에 휘말려 사방으로 날렸고, 태선군의 몸은 섭상의 검에 금방이라도 여러 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작 태선군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갑게 빛나고만 있었다.
그는 빈틈이 없어 보이는 섭상의 거센 공격을 순간적으로 돌파해 매서운 조법으로 그의 목덜미를 뜯어 버리려고 했다.
피 묻은 태선군의 손가락에 목이 닿았다가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섭상은 당황하지 않고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태선군이 간발의 차로 허공을 움켜쥔 그 순간, 좌우에 서 있던 오비와 고진영의 검이 기다렸다는 듯 태선군의 몸을 스치듯 지나쳤다.
태선군의 등과 허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상처는 작았지만 태선군의 자존심은 뭉개질 대로 뭉개진 상태였다.
“찢어 죽여 주마!”
허리에 작은 검상을 남기고 물 흐르듯 옆으로 교차해 가던 넷째 고진영은 악귀와 같은 얼굴로 쫓아오는 사부의 모습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허리가 잘릴 정도로 검을 깊게 베었는데, 사부가 입은 검상은 미미했던 것이다.
고진영은 몸을 돌려 왼손을 쭉 내뻗었다. 검술은 떨어지지만 내공이 정순한 그의 손에서 우레 소리가 나며 장풍이 날아갔다.
퍼엉.
고진영의 장풍은 태선군의 장풍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태선군이 독수리처럼 빠르게 날아와 덩치 큰 고진영의 가슴에 일 장을 내리쳤다.
콰앙.
“크흑.”
고진영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정원수에 처박힌 그는 벌떡 일어나 입안의 핏물을 뱉어 냈다.
“사부의 손에 힘이 없다!”
고진영은 사부가 자신의 장풍을 가볍게 없앴을 때 그의 몸이 혹시 정상이 아닌지 덜컥 의심이 났다. 그런데 조금 전 가슴에 일 장을 맞았을 때, 그는 확연히 깨달았다.
‘사부는 지금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게 틀림없어.’
가슴이 은은히 아프긴 했지만 치명상은 면한 것이다. 사부의 몸이 정상이었다면 아마 가슴이 짓뭉개졌을 것이다.
고진영의 외침에 주위를 둘러싼 제자들의 기세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 몸이 평소와 다르다 하여 네 녀석들을 처리하지 못할 성싶으냐?”
태선군의 몸이 번쩍인다 싶더니 사형제들 중 가장 약한 주성하 앞에 나타났다.
“검을 빼앗기지 마라!”
섭상의 고함 소리에 경각심을 품은 주성하는 검을 휘두르다가 흠칫했다. 어느새 사부가 그의 손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사부가 그의 손목을 잡고 있는지는 몰랐다. 사형제들 중 무위가 가장 약한 탓도 있었지만, 태선군의 무공이 이미 경지에 이른 까닭이었다.
옆에 있던 료쿄가 급히 검을 휘둘러 주성하를 도우려 했지만, 태선군은 주성하의 손목을 꺾어 검을 빼앗은 뒤, 료쿄를 향해 횡으로 검을 그었다.
채앵!
불꽃이 사방으로 튀더니 료쿄가 검을 들고 뒤로 튕겨져 나갔다.
“자, 다들 덤벼라. 진짜 검이 뭔지 보여 주지.”
주성하의 검을 들고 선 태선군은 부상을 입은 사람답지 않은 강인한 힘이 느껴졌다.
“허세 부리지 마시오, 사부.”
검을 든 사부를 노려보던 섭상은 검에 내공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검이 부르르 떨리며 눈부신 빛이 토해졌고, 그의 옷자락이 바람도 없는데 사방팔방으로 휘날렸다.
“무허 사숙이 지옥에서 기다린다고 전해 달라고 하더이다.”
“뭐라?”
“사부, 사부가 그토록 아끼며 전수해 주지 않았던 검선문의 양대 검법 중 하나를, 무허 사숙이 죽기 전 내게 전수해 주었습니다. 이제 그 검을 보시고 평가를 좀 해 주십시오.”
섭상의 말에 주위에 서 있던 여러 제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내가 무허 사숙의 무공을 이어받았다 하여 너희들을 핍박할 일은 없다. 사부가 죽으면 검선문도 사라진다.”
사제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재차 약속을 한 섭상은 표정 없이 서 있는 사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챙엥!챙채챙챙!
찰나간에 수십 번의 검을 겨룬 태선군과 섭상의 주위의 땅이 파이고 인근 정원수가 잘려 나갔다.
“무허의 내공도 이어받았구나!”
태선군이 섭상의 검에 실린 막강한 힘에 놀라 외쳤다.
“죽음을 각오한 모험을 했지요.”
섭상의 검과 태선군의 검이 부딪칠 때마다 천둥 치는 소리가 나며 사방으로 눈부신 섬광이 뻗어 갔다.
콰쾅. 쾅쾅.
격렬한 싸움의 영향으로 인해 건물이 폭발할 때 입은 태선군의 상처에서 붉은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시간이 갈수록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가던 태선군은 섭상의 검을 교묘히 옆으로 밀어내며 부드러운 동작으로 섭상의 가슴을 검으로 찔렀다.
평범한 동작이었지만 그 안에는 태선군이 깨달은 검의 정수가 일부 들어가 있었다.
‘숨이 막힌다!’
기세 좋게 사부를 몰아붙이던 섭상의 눈이 일순 커졌다.
잠시 후, 섭상의 검이 박살이 나며 그 파편이 섭상의 몸을 뒤덮었다.
“섭 사형을 도와라!”
주위에서 섭상과 사부의 싸움을 관전하던 오비가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몸 이곳저곳에 검 조각을 매단 섭상을 노려보던 태선군은 무리해서 힘을 쏟았는지 몸을 비틀거리다가 다시금 검을 눈높이로 들었다.
일곱 명의 제자들이 승냥이처럼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차차창창. 채챙챙챙. 콰앙.
태선군 주위로 수없이 많은 금속성이 터졌고, 중간중간에 억눌린 신음 소리도 흘러나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일곱 명의 제자들은 몸 곳곳에 부상을 당한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고, 태선군만이 홀로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약해 빠진 것들.”
차가운 눈빛으로 부상당한 제자들을 둘러보던 태선군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섭상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단검을 들고 말없이 서 있었다. 태선군이 일곱 명의 제자들을 상대하는 순간에 소리 없이 다가온 섭상이 단검으로 태선군의 허점을 파고들어 배에 검을 찔러 넣은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섭상 역시 태선군의 검에 어깨가 깊이 베였다.
“커헉.”
태선군이 비틀거리며 피를 토해 냈다. 선홍색 피를 토해 내는 사부에게 섭상이 말했다.
“사부, 이제 끝이오.”
“끝이라고?”
태선군이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천만에. 내가 끝이라고 말하는 순간이 진정한 끝이다.”
말을 하며 연신 피를 토해 내던 태선군이 뒤로 몸을 날렸다.
“깨끗하게 죽으시오!”
섭상이 태선군의 뒤를 쫓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일곱 명의 제자들도 바닥의 검을 다시 쥐고 도망치는 사부를 쫓기 시작했다.
태선군은 몸에 여러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경공 하나만큼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저러다 놓치겠소!”
오비가 앞서가는 섭상을 보며 소리쳤다.
태선군이 막 담을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 밤 그는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거다.”
섭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담장 밖에서 총성이 서너 발 울려 퍼졌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사격 솜씨가 뛰어난 저격수들을 담장 밖 곳곳에 배치해 두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담장을 넘어 바깥으로 나온 섭상과 일곱 명의 제자들은 논밭에 죽어 있는 저격수들의 시체를 곳곳에서 발견했다. 태선군이 그들을 죽이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제 어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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