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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36화 (336/575)

[336] 디 임팩트 14권 11화

“사부가 몸을 회복하면 우린 다 죽은 목숨이네, 젠장.”

오비와 고진영이 힐난하는 시선으로 섭상을 응시했다. 이번 일을 주도한 게 그였으니 책임을 지라는 뜻이었다.

다른 제자들도 말이 없었다.

폭발로 부상을 입은 사부는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끈질긴 생명력을 갖춘 고수였던 것이다.

잠시 말없이 어둠 속을 노려보던 섭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단검이 사부의 단전을 파괴했을 것이라고 난 믿는다.”

“조금 전 비호처럼 움직이던 사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풍선에 구멍이 나도 잠시 동안은 바람이 채워져 있는 법이야. 그러니까 걱정할 거 없다. 사부가 목숨을 건졌어도 다시는 내공을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

섭상의 말에도 검선문의 제자들은 쉽사리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들 수고했다. 부상을 치료하고 등선궁으로 간다. 부상당한 사부가 현재 믿고 의지할 데라곤 대사형밖에 없을 거야.”

“사부가 바보가 아닌 이상 뒤를 쫓을 게 뻔한 우리를 두고 그리로 가겠소?”

“장담할 수 없지. 사부가 오지 않으면 대사형만 제거하면 되고, 기다렸다가 사부가 나타나면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마무리를 하면 돼.”

섭상은 사부를 놓친 아쉬움을 속으로 억누르며 몸에 박힌 검 조각을 빼내 바닥에 거칠게 던졌다.

홍영의 집과 멀지 않은 작은 호텔에서 잠을 잔 도현은 새벽에 일어나 호심공을 수련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신문을 말아 검처럼 잡은 도현은 기본적인 검 동작을 한동안 반복 수련한 후, 대력금강수의 내공 운용법을 연습했다.

좁은 객실 안에서 아침 수련을 하던 그는 주성하의 전화를 받았다.

“네.”

-길게 말할 상황이 아니니 요점만 전하겠소.

심상치 않은 주성하의 말투에 도현은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의자에 앉았다.

-새벽에 섭 사형의 주도로 우리 사형제들이 사부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소.

도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결과는 실패고.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부는 도주했소.

“그걸 왜 지금에야 말하는 겁니까?”

태선군이 종적을 감추면 도현의 입장에서는 찾기가 어려웠다.

-어제 모임에서 섭 사형이 휴대폰을 모두 압수해 연락할 방도가 없었소. 구사저는 당신을 위해서 사부를 공격하는 일에 반대하다가 죽을 뻔했으니, 너무 섭섭하게만 생각하지 마시오.

“태선군이 어디로 도주했는지 정보는 없습니까?”

-섭 사형의 사람들이 찾고는 있지만, 종적을 아예 감춰 버렸소.

“음.”

도현의 입에서 절로 한숨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다만, 확실한 건 아닌데…… 섭 사형은 대사형이 있는 등선궁에 사부가 나타날 거라고 믿는 것 같소. 그래서 우리 사형제들은 모두 그쪽으로 이동하려는 중이오.

“등선궁으로?”

-그렇소.

“그럼, 당신 대사형은?”

-대사형은 섭 사형의 손에 죽을 것이오. 이만 전화를 끊어야겠소. 당분간은 연락할 수 없으니 이해하시오.

“잠시만! 청선에게 연락할 방법은 없는 겁니까?”

-현재로선 없소.

전화가 뚝 끊겼다.

도현은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나 옷을 급히 입고 호텔을 나섰다.

어제 모임이 태선군을 잡기 위한 모임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태선군이 등선궁에 나타날까?’

도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더 이상은 못 들어가겠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앞이 안 보여요.”

요금을 세 배나 받기로 하고 미친 듯이 달려온 택시는 옥룡산 인근의 비포장도로에서 결국 차를 멈췄다.

빗방울이 차 앞 유리를 부술 듯 두드려 대고 있었다. 도현이 봐도 차가 움직이기에는 날씨가 너무 안 좋았다. 좁은 길 옆은 낭떠러지 같은 위험천만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잘못했다간 차가 아래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나마 능숙한 택시 기사라서 비가 오는 날에도 여기까지 빠른 속도로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도현은 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는지 뇌성벽력과 함께 굵은 빗방울이 쉼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따따따따따.

머리와 어깨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꼭 총소리처럼 요란했다.

어제부터 이 지역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는데, 갈수록 비가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우산 좀 드릴까요?”

택시 기사가 비를 맞을 도현이 걱정됐는지 차창을 조금 열어 소리쳤다. 하지만 도현의 몸은 이미 우산이 필요 없을 정도로 흠뻑 젖어 있었다.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상해에서 안휘성까지 급히 온 도현은 지리를 잘 아는 안휘성 택시를 타고 옥룡산으로 달려왔다.

주성하의 연락을 받고 서둘러 오긴 했지만 등선궁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종잡을 수 없었다.

길쭉한 통을 어깨에 멘 도현은 자갈과 진흙물로 범벅이 된 비포장도로 길을 묵묵히 걷는가 싶더니 잠시 뒤에는 놀랄 만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상으로는 오후였지만 짙은 비구름이 해를 가려서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콰앙!

천둥과 번개가 교차하는 와중에 폭우를 뚫고 도현은 마침내 옥룡산으로 진입했다.

‘여기서부터는 복면을 쓰자.’

산에는 검선문의 제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고, 태선군이 와 있을지도 모른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기 때문에 신분을 감출 필요가 있었다.

나뭇잎이 무성한 나무 밑에 선 도현은 길쭉한 통을 열어 안에 밀어 넣었던 검은색 복면을 꺼내 착용했다. 오면서 골동품 상점에 들러 날이 선 검을 한 자루 사고 얼굴을 가려 줄 복면까지 산 것이다.

파앙.

빗물이 흥건한 땅을 박찬 도현은 넓디넓은 옥룡산을 빠르게 오르며 등선궁으로 향했다.

‘하아, 청선이 어떻게 될지…….’

태선군도 태선군이지만 청선의 안위도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노일문의 위패 앞에서 도인 청선은 이제 사라지고 무인 청선만이 남을 것이라고 맹세하듯 말했던 그다.

그러나 짧은 몇 개월 사이에 그가 맹수처럼 달려들고 있는 섭상과 다른 사제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을지 걱정이 되었다.

물론 도현은 언젠가는 청선과 싸워야 할 운명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검선문의 문주인 태선군이 잘못되면 이유야 어쨌든 대제자인 청선은 도현에게 칼을 겨눈다고 경고 아닌 경고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선과의 인연 때문인지, 청선이 죽기를 바라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번쩍.

어두운 하늘을 밝히는 푸른 번개가 옥룡산 일대에 계속 떨어졌고, 도현의 신법은 점점 속도를 더해 갔다.

“허어, 비가 왜 이리 오는 게야?”

청선은 근래에 보기 드문 굵은 빗줄기를 보며 혀를 찼다. 술이 떨어져 산 아래 마을에 다녀와야 하는데, 비가 심하게 와서 움직이기 뭐했다.

창문을 열고 청석이 깔린 넓은 마당에 비가 쏟아지는 모습을 말없이 응시하던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부님에게 가긴 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구나.”

노일문의 장례식을 치른 후, 석 달간 시간을 얻어 산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사부에게 허락받은 석 달은 벌써 훌쩍 지나고 여러 날이 더 지나갔다.

앞으로 검선문의 대제자답게 살겠노라고 사부에게 큰소리치고 올라왔지만, 막상 등선궁에 올라온 그는 도인의 마음을 버리고 무인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노일문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자책하며 검선문의 기강을 바로잡겠다고 맹세했지만, 마음이 통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난 구제 불능의 인간이로다, 허허.”

지난 석 달간 흰머리만 늘어난 그는 마당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귀로 음미하며 손가락으로 창턱을 두드렸다.

상해에 있을 때는 피가 끓어올라 무공으로 모든 이를 단죄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지만, 산으로 들어와 자연과 도경을 벗 삼으니 이 모든 게 흘러가는 인간사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빗소리에 맞춰 말을 흥얼거리던 그는 우산을 펴고 밖으로 나갔다. 청석이 깔린 마당을 지나 오래된 산중의 도관의 문을 연 그는 도관 앞을 흐르는 계곡물을 내려다봤다.

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불어서 강처럼 힘차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릴 때 저기서 섭상과 목욕을 하며 즐겁게 놀았는데 말이야…… 그놈은 왜 그렇게 변했는지.”

죽은 노일문을 포함해 모든 제자들이 저 계곡물에서 목욕을 하며 자랐다.

그 거쳐간 시간이 빠르고 늦을 뿐, 저 계곡은 사형제들의 체취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한동안 비로 불어난 계곡물을 깊은 시선으로 응시하던 청선은 발길을 돌려 왼편의 숲으로 들어갔다.

그가 다가오자 누군가 후다닥 나무 뒤로 몸을 감췄다. 그는 인근 도관에서 수행하는 도인이었다.

“이보게, 게서 뭐 하는 건가?”

“아, 안녕하셨습니까,”

젊은 도인이 어색한 얼굴로 나무 뒤에서 나타났다.

“비 맞으면서 뭐 하는 거야?”

젊은 도인은 우의를 입긴 했지만 전신이 비에 젖어 있었다. 폭우 속에 우의는 그 역할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는 길에…….”

“이보게, 이런 빗속에서는 날 감시하지 않아도 되네. 비 맞기 싫어서라도 도관에서 꼼짝하지 않을 테니까. 청승맞게 이러고 있지 말고 그만 돌아가. 몸 상해, 이 사람아.”

“가, 감시라뇨?”

당황한 그에게 청선이 발길질을 했다.

“얼른 안 가!”

“갑니다. 가겠습니다!”

섭상으로부터 돈을 받고 몇 달 동안 청선의 움직임을 감시하던 젊은 도인은 청선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인 후에야 어쩔 수 없다는 듯 그가 있는 도관을 향해 몸을 돌렸다.

“비가 많이 와 땅이 무르니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게!”

섭상의 감시인을 돌려보내고 껄껄 웃던 청선은 느긋한 발걸음으로 몸을 돌리다가 흠칫했다. 도관 앞에 누군가 비를 맞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선은 황급히 달려가 비를 맞고 서 있는 사부 앞에 허리를 숙였다.

“사부님!”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그의 눈에 빗물과 섞여 흐르는 핏물이 보였다. 피는 사부의 다리에서 흘러내려 땅을 적시고 있었다.

“청선아, 그동안 잘 있었느냐?”

“사부님, 몸에서 피가…….”

“들어가자꾸나.”

태선군은 쿨럭거리며 등선궁으로 향했고, 청선은 얼른 우산을 씌워 주며 그 뒤를 따랐다.

절벽과 한쪽이 붙어 있는 등선궁 안으로 들어간 태선군은 몸을 감싸고 있던 우의를 벗었다.

어두운 색깔의 우의를 벗자, 붕대로 온몸을 감싼 태선군의 모습이 드러났다.

상처가 심한지 붕대 밖으로 핏물이 배어 나왔다. 특히 복부의 상처에서 배어 나온 핏물은 다리를 타고 내려와 바닥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

“아니, 사부님! 이게 대체!”

놀란 청선이 급히 사부의 상처를 살피려고 했다.

“호들갑 떨지 말고 뜨거운 차 한 잔 가지고 오너라.”

“차가 문제입니까? 상처 먼저 치료해야지요!”

“어허!”

벼락같은 호통을 치던 태선군은 입으로 피를 토해 냈다. 수염이 피로 물든 태선군은 놀란 제자를 보며 손짓을 했다.

“끝까지 말을 듣지 않는구나.”

“……차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얼굴이 굳어진 청선이 밖으로 나가자 태선군은 의자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청선이 쟁반에 찻잔을 받쳐 들어왔다. 그의 다른 손에는 외상을 치료하는 약과 내상을 완화시켜 주는 청심단이 든 약상자가 들려 있었다. 단약 제조에도 능한 청선이 만든 약들이었다.

“차를 드시는 동안 상처를 제가 돌보겠습니다.”

“되었다. 이미 그것으로 치료하기는 늦었어.”

태선군은 씁쓸한 표정으로 청선이 가지고 온 차에 입을 댔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청선은 약상자를 손에 든 채 사부를 바라봤다.

“너를 제외한 제자들이 반기를 들었다.”

“예에? 그럴 리가요. 감히 어떻게 그런 일이…….”

충격을 받은 청선의 목소리가 은은히 떨렸고, 손에서 약상자가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무허가 섭상에게 내공과 무공을 전수해 주었다. 독사 같은 녀석이 이빨에 독을 품고 내게 달려들더구나. 내가 자는 틈에 폭탄을 터트리고, 제자들과 연합해 내게 이런 상처를 남겼다.”

“이놈들을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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