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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39화 (339/575)

[339] 디 임팩트 14권 14화

몸을 낮춘 오비와 고진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복면인과 생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부를 노려봤다.

분명히 사부가 맞았다.

“섭 사형,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보시오! 저게 단전을 다친 사람이 펼칠 수 있는 무위요?”

오비가 강하게 섭상을 비난했다.

굳은 표정으로 사부와 복면인의 싸움을 지켜보던 섭상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사제들을 불러 모았다.

“상해에서 분명히 난 사부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혔다. 단전에 영향을 줄 정도로.”

“그런데 아니지 않소?”

“아닌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예?”

오비는 섭상의 당당한 태도에 일순 말문이 막혔다.

“중요한 건, 지금 사부가 저기에서 싸우고 있다는 거야. 아직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는 뜻이지.”

섭상은 사제들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춰 계속 말을 이었다.

“사부와 싸우고 있는 저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사부와 필적할 만큼 강해 보인다. 서로 치명적인 살수를 계속 쓰는 걸로 보아 사부가 죽을 수도 있고, 저자가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콰아앙.

큰 소리와 함께 돌 조각과 나무 파편 들이 그들이 있는 곳까지 튀었다.

후두두둑.

머리에 이물질들을 잔뜩 뒤집어쓴 그들은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져 대화를 잠시 멈추고 싸움을 지켜봤다.

놀랍게도 조금 전까지 팽팽한 싸움을 유지하던 사부가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나고 있었다. 방금 전에 복면인에게 한 수를 허용한 것 같았다.

“복면인의 무공이 놀라운데? 사부가 밀리다니…….”

고진영이 혀를 내둘렀다.

다시 몸을 숙인 섭상은 사제들에게 하던 말을 계속했다.

“지금은 복면인이 약간 우세해 보인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저자의 힘을 빌려 사부를 죽일 수 있다.”

“잘됐군요.”

일곱째 육기천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복면인이 어떤 이유로 사부와 싸우고 있는지 모르나, 지금은 그가 이기길 바라야 한다.”

“사형이 도우면 저자가 사부를 더 수월하게 이길 것 같지 않습니까?”

“아마 내가 나가면 사부는 나를 먼저 죽이려고 할 것 같은데…… 그걸 바라는 거냐?”

섭상의 차가운 눈길에 오비가 낮게 헛기침을 했다.

“무슨 소리요, 그게. 사부를 죽이는 데 우리의 온 힘을 집중하자는 뜻이지.”

“필요할 때, 그때 나선다.”

도현은 등과 허리, 팔에 검상을 입었다.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일었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태선군과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었다.

콰앙.

태선군의 변화가 심한 검을 번개처럼 후려친 도현은 왼손으로 대력금강수를 펼쳤다.

흐릿한 강기에 휩싸인 도현의 왼손과 태선군의 절기 중 하나인 천옥수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바위도 부수는 태선군의 천옥수였지만 도현이 익힌 대력금강수 역시 그 못지않은 절기였다. 다만 그 화후가 낮아 도현은 약간의 손해를 봤다.

그렇지만 태선군이 검을 사용하며 기습적으로 사용한 천옥수를 번번이 막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도현은 싸우면 싸울수록 자신감이 상승했다. 태선군의 검술은 실로 놀라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검이 눌릴 정도는 아니었다.

도현의 눈빛은 더욱 예리해졌고, 검은 더욱 정교해져만 갔다.

검술이 높은 경지에 이른 태선군과의 실전은 도현의 검을 더욱 다듬어 주고 완성도를 높여 주는 계기가 되고 있을 뿐이었다. 도현은 싸우면서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긴 전투로 내공은 물론 체력과 심력이 상당히 소모된 태선군은 괴물처럼 다가오는 도현의 검을 막아 냈다. 조금도 힘이 줄지 않는 도현의 검에 그는 놀라움을 넘어 경악했다.

‘내공이 바다처럼 넓은 자구나. 어디서 이런 내공을…….’

검술도 자신에 비해 그리 뒤처지지 않아 어떤 수법을 사용해도 무난히 막아 내며 지구전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그리고 상처를 입히면 반드시 그 상처를 되돌려줘서 태선군은 도현 못지않은 부상을 입고 몸 곳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호흡이 달릴 정도로 생사가 오가는 격렬한 공방전을 벌이던 태선군의 머리가 갑자기 뒤로 휙 꺾였다. 도현이 이마로 그의 얼굴을 기습적으로 들이박은 것이다.

코피가 나고 코와 광대뼈 부근이 금세 부풀어 올랐다.

“이런 천박한 놈!”

수준 높은 검술로 도현을 상대하던 태선군은 생각지도 못한 도현의 이마 공격에 어이가 없었다.

‘시정잡배 싸움도 아니고, 이마로 얼굴을 들이박다니.’

태선군은 도현에게 입은 그 어떤 부상보다도 방금 전의 일격이 기분 나쁘고 화가 났다.

“이놈!”

놀림을 당하는 것 같아 태선군은 참을 수가 없었다. 흥분한 태선군의 검이 더욱 맹렬해졌고, 도현은 잠시 태선군의 검을 받아 주며 그의 기세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콰콰쾅!

땅이 쑥대밭이 되고 검에 잘려 땅에 누워 있던 나무들이 폭탄을 맞은 것처럼 잘게 부서져 사방으로 튀었다.

아수라장이 된 숲 일대를 빠르게 이동하며 태선군의 검을 좌우로 튕겨 내던 도현은 태선군의 검이 잠시 끊어진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절정의 신법을 발휘해 그의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도현의 눈동자는 더없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번쩍.

새파랗게 빛나는 검광이 태선군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태선군은 다급히 검을 내려 도현의 검을 막긴 했지만, 온전히 그 힘을 다 해소하지 못해 상반신이 마비될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극심한 흉통을 겪은 태선군은 이를 악물며 도현의 검을 연거푸 막아 냈다. 그러나 그는 수세에 처했고, 도현의 검은 갈수록 힘이 더해져 태선군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채채채챙채챙.

귀청을 울리는 두 자루 검 소리가 쉬지 않고 수 분간 지속됐고, 태선군의 검이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힘과 스피드에 변화가 없는 도현의 검은 그런 태선군의 검을 교묘히 비집고 들어가 그의 옆구리를 베어 버렸다.

지금까지 태선군이 입은 부상이 경상이었다면 지금 입은 검상은 살이 쩍 벌어질 정도로 깊은 중상에 속했다.

수 분간 숨도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른 도현은 휘청거리는 태선군의 앞에 서서 낮게 숨을 몰아쉬었다.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도현 역시 긴 전투로 인해 내공이 적지 않게 소모됐다. 또한 한 치의 실수도 용납이 안 되는 태선군과의 싸움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력을 발휘했기에 심신의 피로가 상당했다.

‘아직 끝이 아니야. 이제 겨우 태선군 몸에 제대로 된 상처 하나를 남겼을 뿐.’

도현은 숨을 가다듬고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옆구리에 중상을 입고 크게 한번 휘청거리며 물러난 태선군은 다가오는 도현을 말없이 응시했다.

놀라움과 당혹스러움, 분노가 교차하는 복잡한 심정이 된 태선군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평소에 보였던 오만함과 검에 대한 자부심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결국 내 속에 마귀를 꺼내게 만드는구나.”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그는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하늘로 솟구쳤다. 조금 전 중상을 입고 휘청거리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현은 흠칫하며 하늘로 솟구친 태선군을 밑에서 올려다봤다.

올라갔으면 내려올 것이다. 어디로 떨어질지 낙하지점을 예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도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비가 내리는 하늘로 솟구친 태선군의 몸을 검붉은 기류가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르르르.

검붉은 기류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태선군의 다리부터 시작해 머리끝까지 감싸며 휘돌다 그의 몸으로 순식간에 흡수됐다.

‘뭐지?’

심상치 않은 조짐이었다.

“사지를 찢어 주마!”

천둥 같은 목소리로 고함을 지른 태선군의 몸이 쏜살처럼 밑으로 떨어지며 도현을 공격했다.

태선군의 검은 새하얗게 빛이 나고 있었다. 마치 태양을 검 안에 가둬 놓은 것처럼 너무도 눈부신 새하얀 광채와 도현의 새파랗게 빛나는 검이 충돌하자, 둘 사이에 진공이 잠시 생긴 후 곧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쾅쾅!

그 폭발에 휘말려 도현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엄청난 힘이다!’

도현은 손안에 검을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파지지지직!

도현의 검에서 쉴 새 없이 스파크가 일어났다. 태선군의 검에 실린 힘이 도현의 검에 머물며 기이한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중심을 잡으며 땅에 선 도현은 검을 한 차례 휘둘러 스파크를 없애 버렸다.

‘또 온다.’

눈부신 백광이 일렁이는 검을 든 태선군이 사방을 압도하는 기세로 도현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백만 대군이 달려오는 것처럼 용맹하고 패도적인 모습이었다.

홀로 산을 부숴 버릴 것 같은 가공할 기세로 달려온 태선군이 두 눈에 맺힌 혈광을 번뜩이며 검을 휘둘렀다.

도현은 피하지 않고 맞섰다. 태선군의 돌변한 기세가 워낙 패도적이라서 지금 피하면 갈수록 수세에 몰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현은 오늘 밤 그가 사용했던 그 어떤 검보다 강력한 내공이 깃든 검으로 백광이 일렁이는 태선군의 검과 맞섰다.

콰콰쾅. 쾅콰쾅.

검이 부딪칠 때마다 화산이 폭발할 때나 날 법한 소름 돋는 굉음이 났고, 도현과 태선군의 주변엔 돌풍이 쉼 없이 몰아쳤다.

둘은 이미 검술의 깊이로 싸우는 단계를 벗어났다. 검술로 백중세를 이루는 까닭에 검에 실리는 힘으로 상대방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 흉험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땅이 뒤집어지고 멀쩡히 서 있던 숲의 나무들은 장작으로 써도 될 만큼 잘게 잘려 부서지고 있었다.

나무들이 없는 빈 공간이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커져만 갔다.

바다처럼 넓었던 도현의 내공은 급속도로 소모됐고, 검을 잡은 손은 손바닥이 갈라져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태선군은 여전히 힘이 넘치고 눈빛이 살아 있었다.

‘힘에서…… 밀리고 있다.’

도현의 얼굴이 시간이 갈수록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이계에서 흡수한 그 많은 내공으로도 돌변한 태선군의 힘을 감당하기 벅찼다.

‘어떤 무공을 사용한 걸까?’

태선군의 급작스러운 힘의 상승에는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도현이 경험한 폭주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힘을 급상승시키는 특별한 무공이 그에게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청선이 암시한 태선군의 진짜 실력이 이것을 뜻한 것이었을까?’

도현의 시선이 멀리 쓰러져 있는 청선에게로 향했다. 그는 중간에 싸움을 잠시 지켜보던 것 같더니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안 되겠어.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면 태선군의 일 검도 받아 내기 어려울 거야.’

싸우면서 조심스럽게 승리를 점치기도 했던 도현은 아쉽지만 이쯤에서 몸을 피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 내렸다. 더 미적거리다가는 여기서 천추의 한을 남길 수도 있었다.

그때 태선군의 검을 막던 도현의 검이 균열을 일으켰다. 오랜 시간 강한 내공이 주입된 상태로 태선군의 검을 계속 막았더니 무리가 간 것 같았다.

쩌어엉!

‘빌어먹을!’

도현이 든 검이 박살이 나며 그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도현은 급히 손에 든 검 손잡이를 집어 던져 태선군의 접근을 막았다.

“흥!”

코웃음을 친 태선군의 검이 번쩍이는 순간, 도현이 던진 검 손잡이가 가루처럼 변해 버렸다.

그사이 도현은 청선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대로 두고 가면 태선군의 손에 죽을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청선으로부터 태선군이 사용하는 무공에 관해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청선도 사람인 이상 사부가 죽이려고 한 상황에서 끝까지 사부를 옹호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꼭 태선군에 관한 정보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와 맺은 인연 때문이라도 여기서 살려 내려가고 싶었다.

‘가능할까…….’

어느새 지척까지 쫓아온 태선군을 힐끔 쳐다본 도현은 청선에게 향하던 몸을 돌려 나무가 무성한 숲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숲으로 그를 유인해 잠시 시간을 번 뒤, 돌아와서 청선을 데리고 가자.’

도현은 바위를 뛰어넘어 몸을 급히 숙였다.

태선군이 날린 장풍에 나무 한 그루가 폭발하듯 부서졌다.

‘어?’

바위를 뛰어넘은 도현의 눈이 커졌다. 검선문의 제자들이 당황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하필 이쪽으로 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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