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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41화 (341/575)

[341] 디 임팩트 14권 16화

경지가 높은 검의 고수일수록 그 종이 한 장 높이만큼 쌓아올리는 게 더욱 어려워진다. 그러니 이미 높은 경지에 오른 태선군의 검을 압도할 만한 검을 익히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릴지 도현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반면에 내공은 이계를 오갈 수 있어서 조금 더 발전이 수월했다. 몬스터를 잡아 내공을 계속해서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도현이 잡으면 잡는 대로 내공이 쌓이는 구조라, 작정하고 몬스터 사냥에 돌입하면 그 시간에 비례해 지금보다 높은 내공을 쌓을 수가 있다. 물론, 내공이 워낙 성장한 상태라 자잘한 몬스터는 잡아 봐야 양에 차지 않았고, 강한 몬스터 위주로 잡아야 한다.

“검과 내공, 둘 다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이계에 돌아가면 내공 쪽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요.”

“이해했어요, 무슨 뜻인지.”

홍영은 도현의 손에 다시 젓가락을 들려 주었다.

“도현 씨와 이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돼 버렸나 봐요.”

“그래도 나와 홍영 씨만큼의 사이는 아니에요.”

“1년 사이에 느끼한 말이 많이 늘었네요?”

홍영은 미소를 지으며 도현이 마저 식사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구사저, 도현이란 자, 참 특이합니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 안에 사부와 맞설 정도로 급성장했을까요?”

선글라스를 낀 주성하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있는 료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을 또 하는구나.”

“믿기지 않으니 하는 말이 아닙니까. 그자가 며칠 전 옥룡산에서 사부와 싸우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 아닙니까?”

“궁금하면 직접 물어봐.”

호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료쿄는 먼저 내렸다.

아늑함이 느껴지는 호텔 복도를 걸으며 주성하가 다시 말을 했다.

“한국에 절세 고수가 있어서 백도현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러지 않고서는 저렇게 빨리 강해질 수가 없죠.”

“절세 고수가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 슬쩍 말을 해 봐야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렇겠죠?”

입맛을 다신 주성하는 복도를 걸으며 호텔 객실 번호를 확인했다. 그들은 도현을 만나기 위해 그가 머물고 있는 호텔에 온 것이다.

“아무튼 백도현은 불가사의한 자입니다. 적으로 삼기 곤란한 자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굳이 그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없잖아.”

도현의 객실 앞에 다 와서 료쿄가 발길을 돌리려 했다.

“구사저,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가시죠. 앞으로 그자와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굴을 맞대는 시간도 필요하잖습니까?”

“네가 하면 되지.”

“아름다운 미모의 구사저가 함께하면 그도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선글라스를 낀 주성하가 씨익 웃으며 하는 말에 료쿄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까불지 마.”

“농담입니다. 어서 가요. 그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료쿄와 주성하는 잠시 후 도현의 객실에 도착했다.

“들어오시죠.”

정장 바지와 흰 와이셔츠를 입은 도현이 문을 열고 그들을 맞이했다. 주성하와는 어젯밤에 연락이 됐는데, 상해에 있다는 도현의 말에 오늘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그들은 객실 안에 있는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도현이 냉장고에서 꺼내 준 음료수를 한 모금 한 주성하가 방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아니, 이런 좁은 곳에서 그동안 머물고 있었던 겁니까? 내가 알았다면 다른 곳을 소개해 줬을 텐데.”

“지내기 불편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중국이나 홍콩에 오면 그 전에 연락을 주시오, 내가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준비해 둘 테니까. 비용은 걱정하지 마시고.”

“호의는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도현은 말을 하다가 주성하의 선글라스 밑으로 보이는 시퍼런 멍 자국에 눈이 갔다.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주성하가 창피한 표정으로 선글라스를 벗었다. 오른쪽 눈 주변 전체가 멍이 들어 있었다.

“날 무지 싫어하는 인간이 있소. 육기천이라고 칠사형인데, 섭 사형의 재산을 정리하는 내게 이 짓거리를 해 놓고는 자신의 몫으로 한몫 떼 오라고 하더이다.”

“며칠 전 그 난리가 났는데 그럴 상황이 되나 보군요.”

“그 개자식은 원래 그런 놈이오. 기회를 봐서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요.”

주성하는 다시 선글라스를 꼈다.

들어와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료쿄가 도현의 몸을 살피며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몸은 괜찮아요? 사부와 싸우느라 몸이 정상이 아닐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도현은 옥룡산의 복면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미 이들은 복면인이 자신이라고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선은 어떻게 됐습니까?”

어제 주성하와 잠깐 통화했을 뿐, 그가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고 해서 청선의 이야기를 아직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다.

“대사형은 찾지 못했소. 감쪽같이 사라져서 우리도 당황스러웠고, 사부는 더욱 화가 나서 우리는 눈치만 봐야 했소.”

“어쩌면 죽었을지도 몰라요.”

료쿄가 끼어들었다.

“절벽 밑으로 깊은 계곡이 흐르는데, 그날 비가 많이 와서 강처럼 불어났어요. 절벽가에 있던 대사형이 그곳으로 잘못해서 떨어졌을 수도 있어요.”

도현도 절벽 아래에 흐르는 거친 계곡물을 봤었다. 설마 했지만 그녀 말대로 청선이 그곳에 빠졌다면 금세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을 것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군.’

도현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청선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근데 백 형, 정말 대단했소. 사부를 그 정도로 몰아붙이다니. 뭐 결국엔 지긴 했지만, 아주 인상적이었소.”

주성하가 도현을 치켜세웠다.

도현은 청선의 생각에서 벗어나 태선군에 관해 질문했다.

“싸움을 지켜봤으니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내게 밀리던 태선군이 갑자기 패도적인 무공을 사용했는데, 검선문에 그런 종류의 무공이 있습니까? 검붉은 기류가 몸을 감싸다가 몸 안으로 흡수되는, 독특한 과정을 거치는 무공이었소.”

“구사저가 대답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주성하가 료쿄를 쳐다봤다. 료쿄는 음료수를 반쯤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검선문의 절기를 우리라고 다 아는 건 아니에요. 우린 사부를 통해 심공과 검법, 그리고 몇 가지 무공을 배웠을 뿐이니까요. 검법도 우리 사형제들이 배운 건 대부분 서로 달라요. 이런 상황에서 사부가 어떤 무공을 사용한들 우리는 그것이 검선문의 무공인지 아닌지는 판단 내릴 수 없어요.”

“음…… 그렇군요.”

“백 형, 어쩌면 사부가 사용한 그 패도적인 무공은 항저우의 어느 별장 지하에서 얻은 것일 수도 있소.”

“별장 지하?”

도현이 관심을 보이자 주성하가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작년에 죽은 오사형과 내가 항저우에 있는 한 별장 지하를 조사해 아주 오래된 지하 통로를 발견했소. 무너진 그곳을 뚫어서 들어가 보니 석문이 앞을 가로막았소. 나는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꽉 막힌 오사형이 사부의 지시를 어길 셈이냐고 윽박지르는 통에 사부가 올 때까지 그 석문을 지키고 있어야만 했지.”

“오사형을 욕하지 마.”

노일문에게 목숨을 빚진 적이 있는 료쿄가 톡 쏘듯 말했다. 그러자 주성하가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웃음을 보였다.

“나도 오사형을 좋아한다니까요. 말을 하다 보니 그렇게 나온 거죠.”

그는 도현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사부가 나중에 왔는데, 석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사부는 한동안 그곳에 있다 나온 뒤 석문을 부수어 버렸소.”

“나중에 들어가 봤습니까?”

도현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성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석문 뒤에 아주 작은 석실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안의 벽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완벽히 훼손되어 있었소. 사부가 뭔가를 얻고 파괴한 게 틀림없었소. 같이 간 섭 사형도 그렇게 판단 내렸고. 혹시나 뭐 다른 게 있을 까 싶어서 섭 사형과 내가 그 전체를 다 파 보고 조사해 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더군.”

“섭 사형도 그곳에 있었어?”

료쿄가 물었다.

“섭 사형도 궁금했겠지요. 그때만 해도 섭 사형은 나를 꽤 신뢰했는데, 언제 무허 사숙한테 내공과 무공을 전수받은 건지…….”

주성하는 죽은 섭상이 생각났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섭상을 속이고 담기량의 은거지를 료쿄와 몰래 찾고 있었던 그였지만, 오랜 시간 섭상과 같이 사업도 하고 돌아다녀서 그의 죽음이 일면 애석하긴 했다.

다시 정신을 차린 주성하는 도현에게 말했다.

“근데 이 이야기가 별 도움은 안 되겠군. 어떤 무공인지 단서도 없고.”

“아니, 흥미로웠습니다.”

주성하가 도현을 바라보며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구사저는 백 형 당신과 이미 한뜻으로 이뤄진 관계요. 시작은 좋지 않았지만 끝은 좋았으면 좋겠소.”

“나를 배신하지 않으면 내가 당신들을 배신할 일은 없을 겁니다.”

도현은 옆에 있던 물을 한 모금 하며 답했다.

“걱정 마시오. 우리 중 사부를 이길 사람은 당신뿐이지 않소. 부디 강해져서 당신 복수도 하고 우리는 자유를 찾고, 상부상조합시다.”

“태선군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사실 그걸 말하려고 오늘 우리가 이렇게 직접 찾아온 거요. 사부는 어제 낮에 우리를 모아 놓고 폐관 수련에 들어간다 말하고 바람처럼 사라졌소.”

폐관 수련이라는 말이 도현의 가슴에 묵직하게 전해져 왔다.

‘나만 강해지는 게 아니라 그도 계속 강해지고 있어.’

아마 폐관 수련을 끝내고 나오면 며칠 전과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까?”

“알 수 없소.”

“기간은?”

“구체적인 말씀은 없었지만 최소 반년은 걸리지 않겠소? 길면 그 이상이고. 그 나이에 무공에 욕심이 얼마나 많은 지……. 아마 백 형에게 당한 몸의 부상이 사부를 자극했던 것 같소.”

도현의 표정을 살피던 주성하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백 형, 사부가 폐관 수련에 들어가서 좋은 점도 있소. 우리가 자유로워졌다는 거요. 그래서 담기량의 은거지를 집중적으로 찾아볼 생각이오.”

“잘됐군요.”

“단서가 빈약해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기분이지만, 사부가 폐관 수련에서 나오기 전에 찾았으면 싶소.”

도현도 마음 같아서는 담기량의 은거지를 찾는 데 함께하고 싶었지만 불확실한 상태에서 수개월 혹은 수년이 될지 모르는 탐사에 목을 맬 수가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절세 고수의 절기는 탐이 났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을 극대화하고 내공을 쌓는 것도 중요했다. 거인 섬에 있는 씨드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었고.

“우리는 그만 가 보겠소. 연락 주시오.”

주성하가 자리에서 일어났자 료쿄도 도현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때 도현이 료쿄에게 말을 걸었다.

“섭상이 태선군을 죽이자고 했을 때 나와 한 약속 때문에 반대를 했다면서요?”

“시늉만 한 것뿐이에요.”

“그래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료쿄는 별말이 없었고 한 발짝 앞에 서 있던 주성하가 되돌아와 웃으며 말했다.

“백 형, 시간도 늦었는데 우리 저녁이나 함께하는 게 어떻겠소? 우리가 서로 목적이 있어서 어울린 사이지만 조금 더 가까워질 수는 있는 게 아닙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만 가.”

료쿄가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죠. 저녁도 함께하고 술도 한잔하죠.”

이번에 료쿄와 주성하의 도움이 없었다면 검선문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이 약속을 지키는 한 이들과 어울리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이날 밤 저녁을 먹고 술을 함께한 도현은 료쿄와 주성하와 헤어진 후, 발걸음을 옮겨 홍영을 찾아갔다.

“왔으면 집으로 올라오지 그랬어요.”

홍영이 아파트 입구에 서 있는 도현을 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시간도 늦었는데, 어머님 주무셔야죠.”

“주성하는 만났어요?”

“네.”

도현은 주성하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해 주었고, 태선군이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는 말에 그녀 역시 살짝 긴장했다.

“걱정 마요, 홍영 씨. 태선군이 발전하는 속도보다 내가 더 빨리 발전해서 그를 따라잡을 테니까.”

말을 하는 도현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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