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 디 임팩트 14권 17화
“고생했다! 자식!”
용주는 홍영과 함께 도장으로 들어오는 도현의 몸을 얼싸안아 주었다.
“몸은?”
“괜찮아.”
용주는 도현의 살아 있는 눈빛을 보며 자신의 주먹을 힘 있게 꽉 움켜쥐었다. 중국에서의 일은 전화로 이미 상세히 들은 상태였다.
“내가 옆에 있었으면 태선군의 다리 한 짝이라도 날려 버렸을 텐데. 다음엔 내가 더 강해져서 도현이 네 옆에 있을게.”
“그래, 고맙다.”
도현은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용주의 마음이 어떤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근 20일 만에 중국에서 돌아온 도현은 관장실을 둘러보다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커다란 과자 상자를 발견했다.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과자가 잔뜩 들어 있었다. 용주와 얘기를 나누며 한발 늦게 관장실에 들어선 홍영도 그것을 발견했다.
“웬 과자예요?”
홍영이 용주를 보며 물었다.
“아, 이거 전리품이에요.”
“전리품요?”
홍영은 용주의 뜻밖의 대답에 호기심만 더 쌓여 갔다. 도현도 마찬가지였다. 도현은 과자 박스에 손을 올려놓으며 용주를 돌아봤다.
“어디서 얻은 전리품인데?”
“다혜로부터.”
“다혜?”
“어.”
한석호의 조카이자 제자인 다혜가 사 왔다는 말에 도현과 홍영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건 작년 말이었다.
“다혜가 며칠 전에 와서 널 찾더라고, 오랜만에 대련하고 싶다고.”
“그래서?”
용주는 과자 한 봉지를 열어서 과자를 입에 넣었다.
“아니, 그래서 내가 그랬지, 도현이는 중국에 있다고. 그리고 요즘 바쁘니까 내가 상대해 주겠다고. 그랬더니 실실 웃는 거야. 은근히 날 얕잡아 본 거지.”
“네가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몰라서 그랬던 걸 거야.”
“뭐 그랬을 수도 있는데, 아무튼 그냥 넘어갈 수가 없더라고. 해서 내기를 했지. 대련을 해서 지는 사람이 과자를 한 박스 사 오기로.”
전리품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용주 씨가 이겼군요?”
홍영이 웃으며 말했다.
“험, 물론이죠, 도현이에게 가르침을 받은 게 있는데.”
“네가 열심히 한 거지. 근데 다혜 씨는 별말 없이 그날 돌아간 거야?”
“깔끔하게 승복하고 돌아가더라고. 다혜가 그런 거 보면 얘가 시원시원해. 얼굴도 예쁘고…….”
용주의 눈빛이 몽롱하게 변해 있었다.
도현은 피식 웃으며 전리품이 된 과자를 책상에서 바닥 한쪽으로 내려놨다.
“차 마실래요?”
홍영의 물음에 용주가 몽롱한 눈빛에서 깨어나며 고개를 재빨리 끄덕였다. 같은 재료였지만 홍영이 타 주는 차는 특별히 맛이 좋았다.
“이번에 중국에 가서 정말 여러 일을 겪었다. 안 그래?”
차향을 음미하던 용주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도현을 응시했다.
“그렇지.”
도현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중국에서 있었던 여러 일들을 순간 떠올렸다.
원 회장 아들을 치료해 주러 갔다가 원 회장 가족을 구해 주기도 했고, ‘대력금강수’라는 무공도 얻었으며, 태선군과 싸움도 하고 왔다.
“도현아, 그런데 말이야, 태선군이 혹시 오원신공을 사용한 게 아닐까? 네게 밀리던 사람이 그렇게 돌변했다는 건 평소의 실력이라고 볼 수 없는 거잖아. 그렇다고 그 인간이 혼돈의 마나가 있어서 폭주를 했을 리도 없고.”
“글쎄…… 료쿄, 주성하와 술을 마시면서 오원신공에 대해 물어봤어.”
“뭐라고 해?”
“그들도 아는 게 거의 없었어. 그것이 문주 무공이라는 것과 오원신공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에 관한 이야기만 조금 알고 있을 뿐.”
“누가 만들었는데?”
용주가 차를 한 모금 하며 물었다.
“송나라 말기에 검선문 7대 문주 이연백이라는 사람이 활약을 했는데, 검선문 역사상 가장 비범한 기재여서 검을 휘두르면 구름이 갈라지고 십 리 밖에 있던 새들이 날아와 그의 검을 구경했대.”
“그만하면 신선이네, 신선.”
용주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 사람이 바로 오원신공을 만들었고 대대로 구전으로만 문주에게 전해져 왔어. 따라서 오원신공이 어떤 무공인지 구전으로 전수했기에 전수받은 검선문 역대 문주들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거야.”
“와아, 굉장히 비밀스러운 무공이네.”
“그런 셈이지. 근데 오원신공을 익히면 등과 같은 신체에 독특한 문신 같은 게 생기나 봐. 7대 문주 사후로 역대 문주들 등에 기이한 문신 같은 게 공통적으로 생기자, 그런 이야기들이 제자들 사이에 면면히 내려온 것이지.”
도현은 옆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는 홍영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용주에게 시선을 뒀다.
“근데 료쿄나 주성하는 태선군이 오원신공을 사용했을 거라고 보지는 않았어. 전대 문주가 갑작스레 임종했기 때문에 미처 전수를 못 받았다는 거야. 그래서 임종 자리에 유일하게 있었던 청선이 오해를 받았던 거고.”
료쿄와 주성하는 검선문 사람들이 처음에는 청선을 의심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도현과 술을 마시며 설명해 주었다. 오원신공을 전수받은 사람치고는 너무 나약하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런가? 우린 청선이 오원신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잖아.”
“그랬지. 전에 용사 계곡에서 무허도 그렇게 말했었고.”
“누구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네. 뭐 어쨌든 오원신공을 사용해도 ‘저게 오원신공이다.’라고 말해 줄 사람은 현재로선 아무도 없는 거네?”
“그렇다고 봐야 돼.”
도현은 대답을 하며 사라진 청선을 생각했다. 사부를 가장 잘 알고 있을 법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차를 반쯤 비운 용주는 태선군과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한 후 도현에게 대력금강수를 보여 달라고 했다.
도현은 앉은자리에서 양손에 대력금강수를 펼쳤다. 은은한 청색 빛이 그의 손에 맺혔다.
“탐나는데…….”
용주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도현의 손을 뚫어지게 봤다.
“이걸 배워서 철호 형 등짝을 한번 후려치면 어떻게 될까? 철호 형 몸이 단단해졌다고 해도 이건 못 견디겠지?”
장철호는 갈수록 몸이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엔 마음먹은 대로 몸의 단단함을 조종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것은 누가 알려 준 게 아니라, 용주에게 매를 맞으며 어느 순간 저절로 터득하게 된 것이다.
“검이나 더 수련해. 이건 나중에 알려 줄게.”
“아, 자식, 지금 배우고 싶은데.”
아쉬워하는 용주에게 도현이 웃으며 말했다.
“이게 간단한 무공이 아니야. 내공도 수준급이어야 하고 무학에 대한 이치를 어느 정도 꿰뚫고 있어야 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너도 이 무공을 배울 단계에 접어들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아.”
“뭐 그러면 어쩔 수 없고.”
“근데 철호 형은 오늘 안 나온 건가?”
일요일이었다. 여전히 막노동을 하며 고시원 생활을 하는 장철호는 일이 없는 일요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도장에 나와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리고 저녁때는 도현과 홍영, 용주와 모여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도현이 이계로 가서 없을 때도 보통 이 패턴을 유지했다.
당연히 일요일인 오늘도 장철호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가 안 보였다.
“박세중 보러 간다고 갔어. 박세중네 체육관으로.”
장철호의 마지막 격투기 시합 상대가 박세중이었다. 장철호는 그에게 패배했고 어깨가 망가졌다.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았던 둘은 몇 달 전 빌딩 리모델링 현장에서 우연히 만났고 두 차례 저녁을 함께했다.
그러나 그 정도였을 뿐 특별히 장철호가 박세중을 일부러 만나기 위해 그의 체육관으로 가지는 않았다. 케이지 안에서 벌어진 일로 그를 원망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자주 만날 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박세중을 만나러 체육관을 갔다.
“무슨 일 있나?”
“너 아직 모르고 있구나. 한 열흘 넘었지? 박세중이 미국에서 엄청 깨졌어. 케이지 안이 온통 피바다였지. 실신해서 실려 나갔다고.”
목동에 있는 빅토리체육관 건물 앞에 선 장철호는 잠시 그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체육관 안에 박세중 선수 있습니까?”
“아마 있을걸요. 아까 봤거든요.”
“고맙습니다.”
뒤돌아서던 장철호에게 젊은 남성이 물었다.
“저기 장철호 선수 아니세요?”
장철호는 그를 알아보는 남성에게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고등학생 때 장철호 씨 경기 보고 ‘와, 멋있다.’ 했거든요. 그 뒤로 격투기에 재미가 붙어서 아마추어로 조금씩 운동을 하고 있어요. 만나서 영광입니다.”
“별말씀을요.”
장철호는 케이지를 떠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자 마음이 뭉클했다.
“집이 가까워서 이곳에서 운동하는 거지 박세중 선수를 좋아해서 온 게 아닙니다. 오해 마세요.”
“아, 예…….”
박세중에게 패배한 장철호를 의식해서인지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은 일부러 변명 같은 말을 했다.
“어깨를 다쳐서 팔을 사용 못한다고 들었는데요, 힘드시겠어요.”
“아닙니다. 거의 다 나았습니다.”
“예? 정말요?”
장철호는 산적처럼 생긴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움직이지 않았던 오른팔을 가볍게 움직여 보였다.
젊은 남성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잘됐네요. 안타까웠는데.”
“고맙습니다.”
“솔직히 장철호 씨가 교통사고를 당한 몸이 아니었다면 박세중 선수에게 졌겠습니까? 전 이겼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좋아하는 장철호가 몸이 회복됐다는 것에 기뻐하며 큰 소리로 말하다가 이곳이 박세중 선수가 소속된 체육관 앞이라는 것을 뒤늦게 인식하고는 얼른 목소리를 낮췄다.
“그날 경기는 박세중 선수가 잘한 겁니다.”
장철호의 선을 긋는 말에 젊은 남성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장철호 씨는 멋있습니다. 케이지 안의 산적! 장철호!”
젊은 남성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케이지에 복귀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장철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만 가 봐야겠습니다.”
“네! 만나서 영광입니다! 어깨 회복하신 거 축하드려요!”
장철호는 그 자리에 서서 점점 멀어져 가는 젊은 남성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빅토리체육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짓수나 킥복싱을 배우는 일반인들 사이로 체육관에 소속된 전문 격투기 선수들이 보였다.
그들은 체육관 내에 설치된 케이지 안에서 실전 같은 격렬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서 넓은 체육관 안을 둘러보는 그에게 체육관 여직원이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죠?”
“박세중 씨 만나려고 왔는데요.”
여직원은 키가 크고 몸이 탄탄해 보이는 장철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살짝 벌렸다. 낯이 굉장히 익다 했는데, 2년 전 박세중 선수에게 패한 선수였다.
2년 전, 체육관 사무직원으로 막 취직한 그녀는 회사 소속의 박세중이 승리하자 기뻐서 박수를 친 적이 있었다. 그때 패한 선수가 찾아오자 그녀는 살짝 긴장이 됐다. 어깨가 망가질 정도로 박세중이 과하게 손을 썼다고 당시 비난 여론이 살짝 일었기 때문이다.
“박세중 선수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으세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 그냥 한번 와 봤습니다.”
장철호는 며칠 전 박세중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미국 경기에서 실망스러운 경기를 한 박세중이 휴대폰을 꺼 놓은 것이다.
“죄송해요. 그러면 만나실 수 없어요. 얼마 전 미국에 다녀온 이후로 외부 사람은 안 만나시거든요.”
여직원은 미국에서 KO패를 당한 박세중 경기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에둘러서 미국에 다녀왔다고 표현했다.
“네에……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장철호가 체육관을 나가려 할 때였다.
“어이, 장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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