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 디 임팩트 14권 18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운동을 가르치던 30대 후반의 사내가 장철호를 알아보고 급히 달려왔다. 그는 격투기 현역에서 은퇴한 사람으로, 현재는 체육관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주짓수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오래전 현역으로 활동할 때 장철호에게 패한 적이 있었다. 콧수염을 기른 그는 실제 나이보다 대여섯 살은 많아 보였다.
“황 선배, 오랜만입니다.”
장철호가 황기태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했다. 황기태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흘렸다.
“이야, 여기서 장철호를 다시 보게 되다니, 반가워!”
철썩.
황기태가 손바닥으로 장철호의 부상당했던 어깨를 소리 나게 때렸다. 가볍게 친 듯했지만 장철호의 어깨가 살짝 움직일 정도로 세게 쳤다.
“아, 이런. 미안하네. 자네 박세중하고 싸우다 어깨를 크게 다쳤었지? 재활이 어려울 정도로. 아아, 미안. 정말 미안해. 많이 아프지?”
황기태는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표정에선 미안한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가시 돋친 손을 날린 황기태를 지그시 응시하던 장철호가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기서 일하고 있군요.”
“뭐 그렇지. 작년에 이 체육관으로 왔어. 근데 자넨 여긴 왜 왔나?”
“박세중을 만나려고요.”
“박세중은 왜? 자넨 그를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어깨가 그 꼴이 된 게 박세중 때문이잖아.”
장철호는 어깨가 정상이 된 걸 굳이 말하지 않았다.
“케이지 안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걸 각오해야죠. 그를 탓할 이유는 없습니다.”
“에이, 그런 게 어딨나? 격투 선수도 사람인데.”
“그만 가 보겠습니다.”
장철호가 가려고 하자 황기태가 말렸다.
“왔으면 박세중을 만나고 가야지. 박세중은 안쪽 사무실에서 관장과 얘기하고 있으니까, 조금 있으면 나올 거네. 기다렸다가 만나고 가. 내가 자네 왔다고 전해 줄 테니까.”
장철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보자, 그럼 잠시 저쪽에서 구경이나 하며 기다릴까?”
황기태는 장철호를 데리고 체육관 소속 격투 선수들이 훈련하는 케이지로 향했다.
가까이 가자 후끈한 땀 냄새와 열기가 케이지에서 풍겨 왔다.
안에는 두 명의 신인 선수가 실전 같은 연습 경기를 하고 있었는데, 한 선수가 상대방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후 재빠른 동작으로 몸을 타고 올라가 밑에 깔린 선수의 안면과 복부를 때리는 파운딩을 걸었다. 피가 튈 만큼의 가격은 아니지만, 실전과 같은 훈련이라서 파운딩을 당하는 선수의 상체와 안면은 빨갛게 변해 갔다.
‘밑에 선수에게 당하겠군.’
케이지 밖에서 지켜보던 장철호의 예상대로 아래에 깔린 선수가 이내 두 다리로 위에 올라탄 선수의 공격을 방어하더니, 어정쩡하게 파운딩을 시도하던 선수의 양팔 사이로 두 손을 밀어 넣어서는 번개처럼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곧장 암바를 걸었다.
“그만!”
프로 무대에 데뷔하기 직전인 20대 중반의 신인 선수들은 케이지 안에 쓰러져 숨을 헐떡였다.
“어때 장철호? 케이지 보니까 다시 막 가슴이 뛰지 않나? 난 은퇴하고서도 자주 그러던데.”
황기태는 웃으며 말을 하다가 근처에 서 있던 헤비급 신인 선수를 불렀다.
“야, 인사해. 장철호 선수라고 한때 날리던 선수야. 내가 전에 얘기했었지? 1라운드에 TKO패 당해서 망신을 당했었다고. 그때 날 TKO 시킨 선수야.”
188센티의 육중한 사내가 다가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안녕하세요. 황현준입니다.”
“장철호입니다.”
“현준이는 내 조카야. 국내가 아니라 박세중처럼 세계에서 놀 인물이지.”
황기태는 조카를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장철호에게 넌지시 말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자네가 몸이 성해도 현준이에게는 안 될 거야. 천부적인 싸움꾼이거든. 강철 체력에 파워도 엄청나고. 유망주야.”
장철호는 도전적인 시선으로 노려보는 황현준에게 관심을 끊고 체육관 안쪽에 있는 사무실에 시선을 뒀다.
황현준이 옆으로 걸음을 옮겨 장철호의 시선을 스윽 가렸다. 장철호는 시야가 가리자 앞에 선 황현준을 쳐다봤다.
“장 선배님, 저랑 연습 경기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난 그러려고 온 게 아니야.”
“겁나세요? 아직 나이도 한창이신데?”
껄렁해 보이는 그의 말투에 장철호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황기태를 봤다. 조카를 단속하라는 의미였다.
“아, 미안하네. 현준이가 성격이 좀 거칠어. 내가 TKO패를 당했다고 하니까 욱한 모양이야.”
“경기는 경기일 뿐입니다.”
“그렇지. 경기는 경기일 뿐이지.”
황기태는 조카를 쳐다봤다.
“어디서 버릇없게. 가서 연습이나 해!”
“삼촌, 별거 아니네요.”
코를 한번 훌쩍인 황현준은 장철호를 힘주어 한번 노려본 후 어깨를 으쓱했다.
“너 이리 와 봐.”
장철호가 뒤돌아선 황현준을 불러 세웠다.
“왜요?”
“몇 살이냐, 너?”
“스물두 살요.”
“나도 네 나이 비슷할 때 격투계에 입문했다. 그때 한 선배가 내게 이런 말을 해 줬지. 케이지는 맹수 두 마리가 싸우는 곳이라고.”
장철호는 한 걸음 걸어서 황현준의 눈을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넌 맹수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지금은 그저 힘자랑하는 싸움꾼일 뿐.”
“뭐요?”
황현준의 두 눈이 사나워졌다.
“격투가가 되기 전에 마음 먼저 다스려라. 맹수가 될 공간을 구별하란 말이야.”
“아저씨, 그럼 한번 해보자니까! 그 잘난 말만 하지 말고! 케이지 안에 들어가서!”
“야, 황현준!”
황기태가 황현준의 복부를 주먹으로 때리는 시늉을 했다.
“이 자식이 정말 버릇없게. 어른에게 무슨 말버릇이야. 장철호는 다쳐서 한 팔을 사용 못한다고. 그런데 너하고 상대가 되겠어? 자꾸 억지 부리지 말고 가서 연습해.”
“아우, 별 병신 같은 게, 정말.”
황현준이 장철호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장철호의 인상은 원래 험악하다. 그런 험악한 인상이 점점 더 험악해졌다.
“황 선배, 당신 조카 데뷔전 잡혔습니까?”
“아직.”
“글러브 좀 빌립시다.”
장철호의 말에 황기태가 슬쩍 말리는 척을 했다.
“왜? 케이지 안에서 내 조카랑 한판해 보려고? 그러지 마. 몸도 성하지 않은 사람이.”
체크무늬 반팔 셔츠를 입고 있었던 장철호는 양손으로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팔 다 나았습니다.”
“뭐, 뭐라고?”
황기태가 깜짝 놀라며 장철호의 어깨와 팔을 살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오른팔과 어깨가 움직이고 있었다.
상의를 벗은 장철호의 몸은 완벽한 역삼각형으로 같은 남자가 봐도 반할 만큼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황기태가 놀라서 글러브를 줄 생각을 못 하고 있자 장철호가 앞서서 케이지 안에서 경기를 벌였던 선수의 글러브를 빌려서 손에 꼈다. 좀 작았지만 손을 움직이기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올라와, 버릇장머리 없는 새끼야.”
케이지 안에 들어간 장철호의 입담이 순식간에 거칠어졌다.
“삼촌, 올라가서 진짜 팔 병신을 만들어 버릴게요.”
황현준은 성난 황소처럼 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체육관 소속 격투 선수들과 황기태가 긴장감 속에 지켜보는 가운데 바로 경기가 시작됐다.
심판은 코치였다.
그는 내심 황기태의 조카인 황현준이 졌으면 했다. 두 달 전 들어온 그는 너무 거칠고 말도 잘 듣지 않았다. 한 번쯤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했는데, 마침 체육관과 별 상관이 없는 장철호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예전 기량이 나올까? 어깨를 어떻게 회복했는지 모르지만, 격투는 연습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운동인데…….’
코치가 생각을 하며 막 시작된 경기를 바라본 순간, 장철호의 킥이 허공을 우아하게 날더니 장신의 황현준의 옆머리에 그대로 꽂혔다.
쩌어엉.
머릿속에서 수만 개의 종이 한꺼번에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황현준은 사고가 마비돼 비틀거렸다.
왼쪽으로 비틀거리는 황현준의 복부에 장철호의 주먹이 다시 꽂혔다.
“우엑!”
1시간 전 먹은 컵라면이 면발과 함께 케이지 바닥에 쏟아졌다.
“케이지 안에서는 맹수가 되고! 밖에서는 사람이 되자! 알았냐!”
황현준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은 장철호는 황현준의 머리를 아래로 끌어 내리며 무릎으로 안면을 가격했다.
고목이 쓰러지듯 황현준은 그대로 정신을 잃은 채 뒤로 넘어갔다.
쿠우웅.
장철호는 황현준의 배 위에 글러브를 던져 놓고 케이지를 내려왔다.
황기태는 기절한 조카를 보며 놀라서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불과 10초도 안 돼서 모든 게 끝이 났다. 그가 보기에 장철호는 현역 시절보다 파워와 스피드가 훨씬 좋아진 것 같았다.
“황 선배, 잰 격투 선수감이 아니오. 정신 차리면 집에 보내세요.”
황기태는 장철호의 말에 끽소리도 못 했다.
케이지 밖에서 지켜보던 체육관 소속 격투 선수들은 안쪽 사무실로 걸어가는 장철호의 뒷모습을 그저 놀란 얼굴로 계속 쳐다만 볼 뿐이었다.
걸어가며 반팔 셔츠를 다 입은 장철호는 사무실 앞에서 노크를 했다. 아무 대답이 없자 그는 옆에 블라인드 쳐진 틈 사이로 안을 살폈다.
박세중이 소파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안에는 관장도 없었고 그 혼자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자고 있는 박세중을 위에서 내려다봤다.
미국에서 패한 경기의 흔적이 얼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는 박세중을 잠시 내려다보던 장철호는 손바닥으로 그의 이마를 내리쳤다. 차진 소리가 울렸다.
짜악.
잠을 자던 박세중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눈앞에 장철호가 서 있자 깜짝 놀란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니, 니가 왜 여기에?”
“똑바로 해 자식아. 미국 경기 보니까 아주 형편없었어. 경기 준비 안 한 티가 너무 났다고, 알았어!”
박세중을 노려보던 장철호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하던 박세중은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는 황급히 장철호를 쫓아갔다.
“야! 야! 장철호!”
철벽
차에서 내린 도현은 병원 5층 입원실로 향했다. 서지철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서지철은 도현이 중국에서 귀국하기 이틀 전,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고 이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도현은 4인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에는 서지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던 사람들은 검사를 받으러 갔거나 화장실에 간 것 같았다.
침상에 누워 딸의 사진을 보고 있던 서지철은 도현이 나타나자 살짝 놀라며 상체를 세웠다.
“어, 백 관장님.”
“몸은 어떠세요.”
도현이 다가와 물었다. 서지철은 별거 아니라는 듯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가벼운 수술이었으니까요. 며칠 더 입원했다가 퇴원하면 됩니다.”
“다행입니다.”
“여기 앉으십시오.”
서지철은 몸을 뻗어 침상 옆에 있는 의자를 손으로 당기려 했다.
“그냥 있으세요. 제가 하죠.”
도현은 의자를 당겨 서지철의 침상 옆에 앉았다.
“중국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생각보다 중국에 오래 있다 오셨네요? 좋은 일 좀 있었습니까?”
서지철이 딸의 사진을 지갑에 넣으며 웃는 얼굴로 물었다.
도현이 홍영의 사촌 결혼식에 다녀온다는 얘기만 들은 터라 길어야 일주일이면 도장에 다시 나타나겠거니 추측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거의 3주나 중국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는 홍영과 함께 갔으니 좋은 추억을 만들고 온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웃는 낯으로 얘기한 것이다.
도현은 담담히 웃어넘기며 환자복을 입고 있는 서지철을 바라봤다.
도현이 중국에 있는 사이 서지철과 맺은 3개월 계약 기간이 다 됐다. 계약을 연장할지 안 할지 결정해 줘야만 했다.
“서 팀장님, 3개월 계약이 다 됐네요.”
“네, 벌써 그렇게 됐군요.”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돈 받고 하는 일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물론, 아주 저렴한 가격에 일을 맡긴 했지만요.”
서지철은 프로 해결사로서 자부심이 높은 인물이었다. 그것은 보수 금액과도 직결되어서 그는 낮은 금액으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제가 불만이 없는 거 아시죠? 백 관장님께 지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존경스럽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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