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 디 임팩트 14권 19화
“존경까지야…….”
“제 눈에는 존경받을 만합니다. 여러 면에서요. 그런데 재계약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서지철은 도현이 온 게 단순히 병문안 차원이 아니라 재계약 때문이라고 예상했고, 그것은 정확했다.
“생각해 봤는데, 더 이상 도장을 지켜보는 일은 무의미한 것 같아서 재계약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서 팀장에게 도장을 외부에서 감시해 달라고 했던 건 혹시 모를 검선문의 접근 때문이었다. 그런데 섭상을 비롯한 제자들 몇이 죽고, 주성하와 료쿄는 도현의 편으로 확실히 돌아섰다. 태선군은 폐관 수련에 들고.
이런 상황에서 서 팀장과 계약을 연장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지난 몇 개월간의 흐름을 볼 때 도장에 대한 위험이 없다고 판단이 선 것이다.
“아, 감사합니다, 백 관장님.”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도현의 말에 서지철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뻐했다.
“너무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요? 제가 돈을 너무 짜게 드려서 그런가요?”
도현이 농담을 섞어 물었다.
“그게 아니라, 이번 여름방학에 딸과 해외여행을 갈 계획을 세웠거든요.”
“따님과 여행을요?”
“네. 아내가 슬쩍 그런 말을 흘려서요. 올해 가기 전에 재혼을 할까 하는데, 새아빠 생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행이나 한번 다녀오라고요.”
“네에…….”
도현은 잘됐다고 맞장구를 쳐 줄 상황인지 아닌지 판단 내리기 애매했다.
아내 입장에서는 서지철을 배려한 것 같았다. 그러나 또 반대로 삐딱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기분 나쁠 상황이었다.
“제주도를 시작으로 유럽까지 가는 한 달 정도 코스의 여행입니다. 백 관장님과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제가 마음 편하게 딸과 여행을 다녀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좋아하셨군요.”
“제가 프로 해결사 아닙니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일 앞에서 흐지부지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자화자찬을 하는 푼수기를 가진 서지철이 미소를 지었다.
“퇴원하시면 식사나 함께하시죠.”
도현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이죠. 연락하겠습니다.”
저녁 교육 시간엔 원래 세 명이 전부였다. 개근상을 받을 만한 호태식과 회사 일 때문에 드문드문 빠지고 있는 이호선 피디와 김유진 작가.
그러나 최근엔 한 사람이 더 늘었다.
바로 최준영이었다. 도현의 도움으로 제정신을 차린 최준영이 도장에 관원으로 등록한 것이다.
‘으으, 다리가 너무 아파.’
다리에 납덩이를 달고 하체 수련을 하고 있던 그는 땀이 범벅된 얼굴로 앞을 봤다. 세 명의 선배들이 목검을 들고 호검술을 배우고 있었다.
‘난 언제 배우지?’
도장에 등록한 지 일주일 정도 된 그는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선배들의 모습이 부럽기 그지없었다.
“허리 세우고 걸어야지.”
용주가 다가와 목검으로 최준영의 허리를 툭 쳤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호검술의 보법을 배우는 거라고. 하체 수련도 하면서.”
“네!”
“도장 마룻바닥에 표시해 둔 흰 점을 정확히 밟으면서 이동해야 돼.”
“알겠습니다, 사범님!”
스물세 살 최준영은 군기가 잔뜩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쉰다. 대답은 적당히 해.”
“네!”
“또, 또.”
용주는 열심히 배우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최준영이 마음에 들었다.
“하체 수련이 지루하고 힘들지만 저기 앞에 보이는 선배들도 다 거쳤어. 나도 그랬고, 관장님도 그랬지. 너도 할 수 있으니까 버텨라, 응?”
“버티는 건 자신 있습니다!”
“패기가 좋다.”
용주가 최준영과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도복을 입은 도현이 5층 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날 보지 말고 검 끝에 시선을 집중하세요.”
눈동자를 돌려 도현이 지나가는 것을 훔쳐보던 김유진 작가는 뜨끔한 표정으로 얼른 검에 집중을 했다.
도현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네 명의 관원들은 긴장감이 증폭되고 한편으로는 힘도 솟구쳤다.
“그만.”
도현은 검을 휘두르던 호태식과 이호선, 김유진을 제자리에 앉게 했다.
맨 뒤에 있는 최준영도 은근슬쩍 따라서 앉으려다가 옆에 있는 용주에게 목검으로 엉덩이를 한 대 맞았다.
“넌 계속하고.”
“네…….”
최준영은 이를 악물며 무거운 납덩이를 단 다리를 움직였다.
잠시 앞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현은 시선을 돌려 세 명의 관원들을 봤다.
“어제 예고한 대로 오늘 이호선 씨와 김유진 씨의 승급 심사가 있겠습니다. 두 분은 나와서 시작하세요.”
“네!”
긴장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은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호검술 1초식부터 3초식까지 연계해서 펼치기 시작했다.
호태식은 승급 심사에 벌써 통과해 4초식을 배우고 있었고, 그것이 그들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회사 일로 바쁜 와중에도 늘 머릿속으로 검술을 생각하며 틈이 날 때마다 호검술 1초식부터 3초식까지 완벽히 숙련될 때까지 연습해 왔다.
두 사람의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은지 도현은 용주와 몇 마디 상의를 한 후, 시험을 마치고 한쪽에서 발표를 기다리는 그들에게 승급을 허락했다.
“합격.”
“와아아! 만세!”
초조함 속에 도현의 입을 주시하고 있던 이호선과 김유진이 서로 얼싸안으며 눈물을 내비쳤다.
방송국 일을 하며 승급 심사를 준비하느라 그들은 잠을 쪼개며 연습해 왔다.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다.
“축하합니다.”
먼저 승급해서 4초식을 배우고 있는 호태식이 그들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고마워요, 호태식 씨.”
김유진이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도현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두 분 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이곳까지 왔다는 걸 압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고 승급 심사까지 통과하신 두 분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관장님!”
“오늘의 마음가짐으로 계속 정진한다면, 호검술을 모두 배우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도록 지도해 준 우리 조 사범에게도 박수 한번 쳐 줬으면 좋겠습니다.”
몇 안 되는 관원들의 박수 소리에 용주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손짓을 했다.
“됐습니다, 됐어. 뭘 또 박수를. 그렇다고 치던 박수를 멈추면 섭섭하지.”
이호선과 김유진, 호태식이 웃으며 박수를 더 크게 쳤다.
뒤에서 하체 수련을 하던 최준영도 왠지 박수를 쳐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눌려 박수를 쳤다.
“억지로 하는 것과 배우고 싶어서 하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큰 실력의 격차를 만들지.”
도현이 최준영에게 다가와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배우고 싶어서 왔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유가 뭐지? 내가 널 치료해 줘서?”
“아, 아닙니다.”
“그럼?”
최준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제 머릿속에 이상한 게 들어왔다 나간 기분이 생각보다 오래 남아서요……. 집에서는 괜찮은 척하고는 있지만 가끔 무섭습니다, 또다시 그럴까 봐요.”
“음…….”
최준영의 말은 솔직했다.
“그래서 뭔가 몰입할 게 필요했어요. 건강하면서도 제 자신을 강하게 단련시켜 줄 그런 게요.”
“그게 검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관장님. 제가 상상하던 검도장 광경은 아니지만…… 오히려 이런 무식하고 빡 센 훈련이 저는 더 마음에 듭니다.”
“무식한 훈련이 아니야. 호검술을 배울 만한 자세를 다져 가는 과정이지.”
“네! 명심하겠습니다!”
최준영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너 꿀을 또 가지고 왔더라?”
“관장님이 꿀을 좋아하신다고 했더니 할아버지께서 또 보내 주셨어요.”
최준영은 대답하면서도 움직임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도현이 최준영을 따라가며 대화를 나눠야만 했다.
“고맙지만 더 이상은 안 돼. 내가 더 부담돼. 할아버지께는 잘 말씀드려.”
“예, 그럴게요.”
도현은 최준영의 어깨를 따뜻하게 토닥인 후 5층 도장을 내려가려 했다.
“관장님.”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도현이 뒤를 돌아봤다. 납덩이를 단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최준영이 환한 얼굴로 말했다.
“원상에게 얘기 들었습니다. 관장님이 치료해 주셨다고요. 감사합니다.”
중국에서 돌아온 도현은 하루의 대부분을 지하 도장에서 호신강기 만들기에 투자하고 있었다. 얼음 마법을 막기 위한 방어 기술로 시작한 호신강기였지만, 나중에 태선군과 싸울 때 이용할 수도 있는 기술이었다.
손에 강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대력금강수를 참고해, 그는 자신의 몸 주위로 어떻게 하면 대력금강수와 같은 강기를 두를 수 있는지 끊임없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명상이 길어지고 내공 소모를 통한 지속적인 실험이 이어진 가운데, 그는 처음으로 몸 전체를 뒤덮는 아지랑이 같은 투명한 막 하나를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됐다! 기가 흩어지지 않고 막을 형성했어!’
그러나 그것은 찰나간의 성공, 곧 기의 막이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도현은 실망하지 않았다. 호신강기로 칭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단전의 내공을 어떤 식으로 체외로 방출해야 기의 막이 형성되는지 그 일련의 과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는 밤낮으로 기의 막을 만들며 그것의 유지 시간과 강도를 강화하기 위한 연구 단계에 접어들었다.
며칠간 그렇게 하다 보니 단전의 내공이 텅 빌 정도로 내공 소모가 막대했다.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다.’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한 상태로 호신강기 실험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도현은 검을 들고 생사 대결을 벌인 것처럼 심신이 피곤했다.
며칠 사이에 얼굴 살이 많이 빠진 도현은 관장실에 들어가 벽에 걸린 산수화를 감상했다.
산수화 속 흘러가는 강물과 그 위에 뜬 나룻배 한 척. 그 것을 지켜보고 있는 산 하나.
보고 있으면 심신이 안정되고 편안해졌다.
도현은 허허롭게 떠가는 나룻배에 자신의 마음을 투영시키다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조용히 깨어났다.
출입문 비밀번호를 홍영이나 용주, 장철호는 다 알고 있었다.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백 관장, 안녕하셨소.”
문을 열자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원 회장의 동생 원상문이었다.
“들어오시죠.”
도현은 어제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이쪽에 놓고 나가게.”
“예.”
원상문의 수행원으로 보이는 덩치 큰 사내는 들고 온 캐리어를 관장실 안에 위치한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조용히 도장 밖으로 나갔다.
“이게 뭡니까?”
도현이 하늘색 캐리어를 보며 물었다.
“일전에 약속한 한화 10억이오.”
원상문이 캐리어를 열어 보였다. 안에는 5만 원권 돈뭉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수표를 준비할까 하다가, 편하게 사용하시라고 현금으로 가지고 왔소. 사실 난 수표는 돈 같지가 않아서 말이오.”
원상문은 캐리어를 다시 닫고 도현에게 시선을 두었다.
“문제 될 돈은 아니니까, 편하게 사용하시오.”
도현은 다른 말 하지 않고 돈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차 드시겠습니까?”
“아니오. 시원한 물 한 잔 있으면 주시오. 갈증이 나는군.”
도현은 찻잔에 물을 담아서 의자에 앉은 원상문에게 건넸다.
“얼굴에 못 보던 상처가 있군요.”
“형님의 가족을 납치하라고 배후 조종한 자들을 손보다 다친 상처요.”
원상문의 얼굴엔 턱 선을 따라 5센티가량의 칼자국이 나 있었다.
“그렇군요. 그럼 그때 일은 다 마무리가 된 겁니까?”
“물론이오. 조용히 정리가 됐지.”
말을 하는 원상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잠시 흘렀다 사라졌다.
“형님께서는 백 관장의 도움을 잊지 않고 계시오. 어려운 일이 있다면 우리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연락을 주시오. 친구의 마음으로 돕겠소.”
원상문은 친구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물 잘 마셨소. 또 봅시다, 백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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