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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45화 (345/575)

[345] 디 임팩트 14권 20화

원상문은 질질 끄는 성격이 아니었다. 볼일을 다 보자 그는 바로 도장을 나갔다.

그가 나간 자리에는 10억이 든 하늘색 캐리어만 남았다.

사실, 이계에서 보석이나 황금을 챙겨 오면 10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돈이 된다. 하지만 그건 그때 일이고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10억도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도현은 전화기를 들어서 5층 도장에 연락을 했다.

“용주야, 10억 왔다.”

-뭐? 정말? 알았어, 기다려!

잠시 후 문이 벌컥 열리며 용주가 도복 차림으로 뛰어 들어왔다. 격렬한 수련을 했는지 도복 대부분이 땀에 젖어 있었다.

도현은 관장실에 있는 수건을 용주에게 건네며 물었다.

“홍영 씨는?”

“마트에 장 보러 갔어.”

수건으로 땀을 닦은 용주는 하늘색 캐리어를 활짝 열었다. 수북한 현금에 용주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봐라,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냐. 네가 처음에 건물 살 때 가져온 금화 이후로 이런 아름다운 모습은 처음이다.”

용주는 입을 헤벌린 채 조금 전까지 검을 잡았던 손으로 현금 다발을 어루만졌다.

“자, 돈 왔으니까 3억 가지고 가서 차 사.”

“진짜?”

“비싼 외제차 한번 타 보는 게 소원이라며. 가서 사.”

도현은 머뭇거리는 용주에게 돈다발을 직접 챙겨서 건넸다.

탁자 위에 쌓인 돈다발을 잠시 내려다보던 용주는 입맛을 다셨다.

“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3억대 차를 내가 사겠냐? 괜찮은 차 한 대 사면 되지.”

“후회하지 말고 사.”

“됐어, 인마. 이 자식은 농담하고 진담도 구별 못하나.”

“정말이지?”

“그래, 인마. 한 백억 있으면 몰라도 10억만 있는데 어떻게 여기서 3억을 쓰겠냐?”

용주는 은근히 도현에게 돈을 더 벌어 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백억 있으면 산다고?”

“어, 그땐 내가 마음 편하게 네 돈 좀 사용하고 다닐게. 그런데 지금은 좀 그렇잖아. 부탁한다, 친구야. 백억 벌자.”

도현의 손이 돈다발을 스치듯 지나가는가 싶더니, 용주의 어깨를 돈다발로 찰싹 때렸다.

“아! 왜 때려, 자식아!”

“백억 벌어 올 테니까 꼭 3억짜리 차 사라, 꼭 사.”

도현이 돈다발로 또 때리려고 하자 용주는 얼른 뒤로 한 걸음을 물러났다.

“돈 있으면 좋잖아, 자식아! 백억 있어서 나쁠 게 뭐냐고. 열심히 벌자는 뜻이지. 태선군에게 복수한 뒤로 우리 여생을 편하게 살아야지.”

도현은 손에 들고 있던 돈다발을 내려놨다.

“집에 돈 안 필요해?”

“우리 집? 우리 엄마야 돈 가져다주면 좋아하시지.”

“가지고 가, 필요한 만큼.”

“됐어.”

“가지고 가.”

도현이 다시 한 번 말하자 용주는 못 이기는 척 돈다발을 캐리어에서 주섬주섬 꺼냈다.

“그럼 조금만 가지고 간다. 네가 사정해서 가지고 가는 거야.”

“그래.”

용주는 건물과 통장을 관리하고 있지만, 매달 그가 건물 관리인 몫으로 가지고 가는 일정한 월급 외에는 돈에 손을 대지 않았다.

“조 박사님 귀국하셨다고 했지?”

“어, 내일쯤 한번 가 보려고.”

도현은 캐리어 안에서 돈다발을 꺼내 탁자 위에 차곡차곡 쌓았다. 얼추 2억 가까이 되는 돈이었다.

“뭐 하는 거냐?”

“조 박사님 연구 지원비. 내일 갈 때 가지고 가.”

용주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 돈을?”

“이계에 가게 된 건, 조 박사님이 만든 차원 이동 장치 덕분이기도 하잖아. 그분의 도움을 받았으면 돌려 드려야지. 스톤을 찾았는데 내가 매번 에너지를 흡수해서 사용하는 게 죄송스럽기도 하고.”

용주는 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삼촌도 이 돈을 보시면 힘이 나실 거야.”

도현은 관장실에 있는 작은 가방을 꺼내 조 박사의 연구비로 지원될 돈을 담았다.

“철호 형이 문제인데…….”

캐리어 안에 남아 있는 돈을 보며 도현이 팔짱을 끼고 머리 아픈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어떤 금전적인 지원을 하려고 해도 장철호는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한 인생이라며, 조급하게 살 마음도 없고 지금의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살 거라고 했다.

어쩌면 그런 마음이 있어서 어깨 회복이 빨라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도현은 장철호가 고시원 생활에서만이라도 벗어나서 조금 넓은 집에서 생활했으면 했다.

“야, 안 돼. 철호 형 성격 알잖아. 어쩔 텐 꽉 막힐 정도로 고집스럽고 단순하다는 거. 그냥 살고 싶은 대로 놔두는 게 제일 좋은 거야.”

도현의 생각을 읽은 용주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도현아, 그것보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건, 철호 형에게 언제 태선군 얘기를 말하냐 하는 거야.”

장철호는 도현의 아버지인 백남식 관장이 태선군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걸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작년에 장철호를 만났을 때는 그가 거의 폐인처럼 몸이 망가져 있어서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숨겨 왔었던 것인데, 이제는 장철호도 몸이 다 나았다.

도현은 몸을 반쯤 돌려서 벽에 걸린 아버지 사진을 응시했다.

한동안 아버지의 엄한 눈동자를 말없이 바라보던 도현은 결정한 표정으로 용주에게 말했다.

“철호 형이 이제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데, 어두운 이야기로 망가트리기 싫다.”

“그렇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너나 나나 홍영 씨나 웃고는 있지만 잠을 자다가 문득문득 분하고 원통한 마음 때문에 깰 때가 있잖아. 굳이 철호 형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7월이 저물어 가는 마지막 주 수요일은 전국이 태풍으로 강풍과 비에 시달리고 있었다. 도장 밖은 비바람에 소란스러웠지만 지하 도장 내부는 숨 막히는 정적감이 맴돌았다.

“시작한다!”

용주가 검을 뽑으며 도현에게 말했다.

고요한 자세로 도장 중앙에 서 있던 도현이 차분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주는 살짝 긴장된 눈빛으로 한동안 도현을 노려보다가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용주의 검이 섬전 같은 빠르기로 도현의 몸을 찔러 갔다. 그대로 놔두면 도현의 몸에 구멍이 날 것 같았다.

용주의 날카로운 검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그 순간, 도현의 몸에서 일렁이는 투명한 막이 튀어나왔다.

채에엥.

도현의 호신강기에 막힌 용주의 검이 불꽃을 만들며 옆으로 미끄러졌다.

“오!”

도현의 호신강기를 테스트하기 위해 공격했던 용주는 감탄하며 뒤로 물러났다가 연거푸 검을 날렸다.

채에엥. 챙채챙챙.

용주가 어떤 기교를 사용해도 도현의 몸을 둥글게 감싼 강기의 막을 뚫을 수 없었다.

“좋아! 이제 본격적으로 한다! 내공 사용할 거야!”

용주는 호심공을 통해 꾸준히 성장시킨 내공을 검에 주입했다. 흐릿한 검기가 맺힌 검을 든 그는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다 검을 벼락처럼 그었다.

검과 강기막이 부딪친 자리에 푸른 섬광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철벽을 친 것 같아.’

끄떡없는 도현의 호신강기에 살짝 놀란 용주는 도현의 몸을 돌며 전후좌우 전 방향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검으로 공격했다.

이왕 테스트하는 거, 그 한계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도현의 호신강기는 철벽처럼 안에 있는 도현을 보호했다.

“나도 같이해요!”

한쪽에서 이들의 대결을 지켜보던 홍영이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내공을 사용할 줄 아는 용주와 홍영의 검이 소나기처럼 도현의 호신강기를 두드렸다.

그러나 호신강기는 미동도 안 했다.

이때 도현이 한 걸음 움직였고, 그에 따라 호신강기가 그를 따라 같이 움직였다.

“어!”

깜짝 놀란 용주와 홍영이 다가오는 도현을 피해 뒤로 재빨리 물러났다.

“내 주먹으로 한번 해 볼까!”

장철호가 헐크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공중으로 살짝 떠올랐다. 내공은 없지만 기예잡술서상의 외공을 수련하며 형성된 그의 육체적 힘은 무시 못 할 정도였다.

“이얏!”

도장 천장을 스치며 위에서 떨어진 장철호의 주먹이 도현의 호신강기와 충돌했다.

쿵.

묵직한 소리가 났지만 호신강기는 꿈쩍도 안 했다. 오히려 때린 장철호가 인상을 쓰며 물러났다.

“죽여주는군.”

장철호는 주먹에 불이 나는 것 같았다. 화끈한 열기를 털어 낸 그는 감히 다시 덤빌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용주와 홍영은 검을 거두었다.

도현의 호신강기는 그들의 실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철벽이었다.

테스트가 끝나자 도현은 몸에 두른 호신강기를 풀었다. 그리 긴 시간 동안 유지하지도 않았는데 내공 소모가 상당했다.

‘역시 호신강기를 장시간 유지하는 건 어렵겠어. 내공 소모가 너무 많아.’

마법을 막을 때나 긴급할 때 순간순간 사용하는 게 지금으로선 제일 효과적인 호신강기 운용법일 것 같았다.

용주의 검을 막긴 했지만 호신강기는 완성된 게 아니었다. 이제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앞으로 꾸준히 발전시켜야 한다.

“도현아, 수고했다. 정말 호신강기를 만들어 냈구나.”

장철호는 이계에서 마법사와 싸우기 위한 방어 기술로 호신강기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대력금강수라는 무공을 구해 온 도현이 근 한 달여간 매달린 끝에 호신강기를 직접 시연해 보였다. 기특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동생이지만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어째 더 괴물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귀여운 자식!”

장철호가 도현의 목을 팔로 휘감으며 시원하게 웃었고, 옆에 서 있던 홍영과 용주도 결국 해낸 도현에게 축하를 해 줬다.

“이제 이계로 갈 거냐?”

장철호가 물었다.

“그래야 될 것 같아요.”

도현은 대답하며 홍영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계로 가면 한동안 홍영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갈수록 깊어지는 홍영과의 정 때문인지 도현은 그녀와 헤어지는 게 벌써부터 아쉽고 미안했다.

태풍이 통과하는 그날 밤, 도현과 홍영, 용주, 장철호는 술잔을 나눴고, 다음 날 도현은 홍영과 용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계로 다시 넘어갔다.

“조심해요, 도현 씨.”

도현이 사라진 공간을 보며 홍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기다림

도현이 영주 딘을 앞세워 매입한 늪지대는 발굴을 위한 준비가 거의 마무리된 상황이었다.

발굴과 경비에 동원될 7백 명의 용병들이 머물 숙소도 완성됐고, 일꾼용 몬스터들과 그 주인들이 머물, 천장이 높은 건물도 여러 채 지어졌다.

또 늪지대 주변의 숲을 벌목해 방벽을 세우고 있는데, 이것도 내일이면 끝이 난다.

‘론의 지팡이’가 보관되어 있다는 신전 발굴이 곧 시작되는 것이다.

술잔을 내려놓은 어베인은 지대가 낮아 물이 고여 생성된 늪지대의 물을 어떻게 빼낼지 종이에 자세한 그림과 표시를 했다.

“여기서부터 이곳까지 일꾼용 몬스터와 용병들을 동원해 땅을 폭 넓게 파야겠어. 남동쪽 지역을 더 깎고 파내서 늪지대보다 지대를 더 낮게 하면 고인 물들이 그쪽으로 흐르겠지.”

신전 발굴의 첫 단계는 신전 위에 생성된 늪지를 걷어 내는 일이었다.

새로 생길 물길을 여러 개 구상해 그림으로 그리던 어베인에게 리타가 물었다.

“지금 누구에게 설명하는 거예요? 나한테?”

소녀 외모를 한 리타의 깜찍한 물음에 어베인은 담담히 웃으며 그림을 그리던 손을 멈췄다.

“네가 계속 쳐다보기에 말한 거란다.”

“할 말이 있어서 쳐다본 거예요.”

“뭔지 들어 볼까?”

어베인은 탁자 위의 술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오늘 밤에 얼음탑 마법사들을 공격하러 가요.”

“마법사들을 공격하자고?”

늙은 어베인의 이마의 주름 골이 깊어졌다.

“지금 플레온 가문과 얼음탑 마법사들이 베일 가문의 땅을 차지하고 있잖아요. 내가 몰래 가서 비골을 소환할게요. 락제프의 도움으로 내 흑마력이 많이 상승했거든요. 비골도 강해져서 한바탕 휘저을 수 있을 거예요. 도현의 복수를 해요.”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리타의 눈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도현이 얼음탑주에게 쫓겨 사라진 후, 그녀는 얼음탑 마법사들을 비골로 다 쳐 죽이고 싶었다. 카샨에게 붙잡혀 고통을 당할 때보다도 도현의 행방이 묘연한 지금이 더 화가 났다.

어베인은 물끄러미 리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심정으로는 그러고 싶다. 하지만 얼음탑주가 나서면 우리가 몇 명이 가든지 어려운 싸움이 될 거야. 널 무시해서도 아니고 우리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도 아니란다. 도현이 그자에게 쫓겨 몸을 피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는 것이지. 저들을 다 죽여도 정작 얼음탑주를 죽이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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