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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47화 (347/575)

[347] 디 임팩트 14권 22화

리드만의 대답에 깡마른 용병은 새까맣게 탄 얼굴로 같이 걱정을 해 줬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일곱 신의 도움으로 무사히 오실 거라고 믿습니다.”

일곱 신의 이름으로 사제를 위로하는 용병의 행동에 리드만은 기분이 묘해졌다.

“고맙네. 한데 자네 아버님은 어떻게 되셨나?”

“아쉽게도 전쟁터에서 전사하셨습니다. 몇 년간 소식이 없다가 아버지의 친구분이 아버지가 사용하셨던 검을 유품이라고 주고 갔습니다. 그때 소식을 들었지요.”

“저런…… 어머님이 많이 힘드셨겠어.”

“아닙니다. 어머니는 그 전에 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깡마른 용병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슬픔이 배어 있었다.

“자네의 부모님은 일곱 신이 마련한 좋은 곳에서 만나고 계실 걸세.”

“고맙습니다, 사제님. 그리고 여기.”

용병은 품에서 금화 한 개를 꺼내 내밀었다.

“헌금을 하고 싶습니다. 받아 주십시오.”

그의 손은 고된 용병 생활로 상처투성이였다.

“너무 큰돈이야.”

“일곱 신께 저희 부모님 기도를 한번 해 주십시오. 행복하시라고…….”

리드만은 가난한 용병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금화 한 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마음을 거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 그들이 서 있는 방벽 위에 불쑥 나타났다.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였다. 외부에서 방벽을 넘어온 것이다.

깜짝 놀란 용병이 다급히 검을 뽑으려고 했다. 그러나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의 손이 어찌나 쾌속하던지 용병은 검을 뽑지도 못하고 손을 사내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리드만 사제님.”

도현의 목소리에 리드만의 눈이 커졌다.

“자네, 돌아왔군!”

리드만은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방벽 밑을 지나다가 사제님 목소리가 들려서요.”

“아시는 분입니까?”

깡마른 용병의 물음에 리드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일세.”

“네에…….”

도현은 용병의 손을 풀어 주고 좌우를 봤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던 용병 몇이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아니야, 우리 편이야!”

용병의 손짓에 달려오던 용병들은 발걸음을 늦췄다. 발굴지에서 생활하는 사제가 방벽을 넘어온 사내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적은 아닌 것 같았다.

“자네, 또 보세.”

“네, 사제님.”

리드만은 깡마른 용병에게 일곱 신의 축복을 내려 주고는 도현과 함께 방벽 계단을 내려갔다.

방벽 안 드문드문 놓인 화로의 불빛이 어둠 일부를 밝혀 줬다.

“다친 곳은 없나?”

“괜찮습니다.”

“일곱 신이 도우셨군.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야.”

리드만은 동료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로 향하며 도현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우리 영주님은 못 만났나? 짐브리오와 함께 자넬 찾으러 가셨는데?”

도현은 두건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리드만 사제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구나.’

그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사제님. 영주님과 벌써 만났습니다.”

“정말인가? 다행이로군.”

리드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영주가 쉽게 위험에 빠질 사람은 아니었지만, 얼음탑 마법사들과 싸우게 되면 예기치 않은 위기가 닥칠까 봐 상당히 신경이 쓰였었다. 크샤코 가문의 전투 몬스터들이 북쪽 산으로 이동했다는 점도 걱정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고.

“한데 왜 같이 오지 않은 건가?”

“고대 도시에 들어오면서 헤어졌습니다. 제가 모습을 드러내 놓고 다닐 입장이아니라서요. 영주님과 짐브리오는 좀 있으면 도착할 겁니다.”

도현은 그들과 헤어져 어둠을 틈타 은밀히 이곳까지 먼저 온 것이다.

“사제님, 살이 좀 빠지신 것 같습니다.”

“어두운데 잘도 보는군. 맞네, 자네가 걱정되어 아침을 굶고 영주님이 걱정돼 점심을 굶었네.”

“그럼 저녁은요?”

“나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 저녁은 먹었지.”

리드만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둘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얼마 전 새로 지은 숙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도현의 방을 비롯한 동료들의 숙소가 1층과 2층에 걸쳐 배치되어 있었다.

함께 모여 회의를 하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방도 존재했다. 한 달 반에서 두 달을 예상하는 늪지 발굴 기간 동안 불편함 없이 지낼 공간이었던 것이다.

기름 램프가 걸린 복도를 걸으며 리드만이 말했다.

“자네를 보면 다들 기뻐할 거네. 어베인 그 사람은 감정을 억누르고 있지만 밤마다 술을 늦게까지 마셨고, 로나 그 아가씨 역시 수심이 가득했지. 그리고 리타는 밤마다 날 찾아와 얼음탑주 욕을 하고 돌아갔네.”

도현은 자신의 부재가 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리드만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욱 실감이 났다.

도현은 어베인의 방문을 열었다.

어베인은 등을 돌린 채로 말없이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대장.”

도현의 부름에 어베인이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기다렸던 그의 귀에 도현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도현은 얼굴을 가린 두건을 밑으로 내렸다.

“며칠 자리를 비웠는데, 분위기가 영 이상해졌군요.”

“자네가 왔으니 분위기가 좋아지겠지. 잘 왔네.”

어베인이 다가와 절제된 큰 동작으로 도현의 어깨와 등을 손바닥을 이용해 가볍게 두드렸다.

“딘과 짐브리오는?”

“오고 있습니다. 전 얼굴을 숨기고 먼저 왔거든요.”

“얼굴이 좋아 보이는군. 어떻게 된 건가? 얼음탑주에게 다쳐서 도망친 게 아니었나?”

“얼음탑주가 그리워서 저도 모르게 몸이 금방 회복되더군요.”

어베인은 피식 웃으며 도현에게 청동 술잔을 내밀었다.

“고생했네.”

둘은 술잔을 부딪치고는 술을 단번에 비웠다.

도현이 막 탁자에 술잔을 내려놓을 때였다. 뒤에서 달려온 리타가 훌쩍 몸을 날려 도현의 등에 업혔다.

“호호호!”

그녀는 방 안이 떠나가라 웃으며 도현의 목을 뒤에서 꽉 끌어안고 매달렸다.

“걱정했다고. 알아?”

“숨 막힌다. 그만 내려와.”

“싫어, 조금만 더.”

도현은 자신을 보고 반가워하는 그녀를 억지로 떼어 놓기도 뭐해서 포기하고 그녀를 업은 상태로 뒤를 돌아봤다.

문가에는 리드만에게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로나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표정을 밝게 하며 도현에게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한 걱정을 했네, 이렇게 멀쩡히 돌아올 줄 알았다면.”

“맞아! 그렇지?”

도현의 등에 매달려 있던 리타가 맞장구를 쳤다.

방 안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도현의 생환을 축하하는 축하주가 계속 이어졌다.

“아참, 대장, 도현이가 말입니다, 그 빌어먹을 얼음탑주의 이빨을 몇 개 부러트렸답니다. 고소하지 않습니까?”

짐브리오가 웃으며 하는 말에 탁자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이 다 같이 웃었다. 짐브리오는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계속했다.

“도현이 얼음탑주에게 부상을 입고 패하긴 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멀쩡하잖아요. 그런데 그 인간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부러진 이 때문에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어쩌면 지금도 부러진 이 때문에 고기를 제대로 뜯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요, 크하하하!”

사람들이 웃고 있지만 도현은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그런 농담거리보다도 더 의미 있는 결과를 내는 것이었다.

얼음탑주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는 것.

그것은 패배에 대한 설욕이자, 죽어 간 케일 경과 반돌로에 대한 예의였다.

“대장, 신전 발굴에 얼마나 걸린다고 하셨죠?”

도현의 물음에 어베인이 답했다.

“두 달 정도 예상하면 될 것 같네. 조금 더 단축될 수도 있고. 그동안 자네는 사람들 앞에 되도록 나서지 말고, 숙소에서 머물게. 얼음탑주나 크샤코 가문이 자네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도 있으니까.”

“대장, 갑갑하게 어떻게 숙소에만 있습니까? 변장을 하면 되지. 그리고 그놈들이 여기에 도현이 있다고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멀리 도망갔다고 생각하겠지.”

짐브리오가 걱정 말라는 식으로 손짓하며 말했다.

“조심해서 나쁠 게 없으니까, 신경 쓰자는 거야. 도현, 자네 생각은 어떤가?”

어베인는 짐브리오가 따라 주는 술을 받으며 시선을 도현에게 돌렸다.

잠시 생각하던 도현이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답했다.

“신전 발굴을 위해 제가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다면, 발굴 기간 동안 굳이 제가 숙소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두 달이면 굉장히 긴 시간이고, 제게는 그냥 낭비하며 보낼 수 없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도현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하나 마주 보며 말을 이어 갔다.

“다들 아시겠지만 전 몬스터를 잡아서 마나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 두 달간 몬스터 사냥에 집중하며 수련하면, 두 달 뒤에 제 모습은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 겁니다.”

북서쪽 지역으로 계속 가다 보면 나오는 먼 곳엔 전투 몬스터로 사용되는 5미터 급 하이드로우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과거 도현이 고대 몬스터를 쫓으며 지나쳐 간 곳이다.

그곳을 통과할 때 언제고 돌아와서 이곳에서 내공을 쌓으며 수련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가 이제 온 것이다.

“신전 발굴을 하는 동안 저는 강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

“음, 그러는 게 좋겠군. 자네에겐 그런 수련이 절실한 상황이지.”

어베인을 비롯한 방 안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굳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지. 여기에 누가 쳐들어올 것도 아니고. 도현아, 몬스터 기운 쪽쪽 빨아서 마나 키우고 와라. 그래야 얼음탑주와 다시 붙어 볼 수 있지.”

짐브리오는 말을 하고는 도현과 잔을 부딪쳤다.

“그래도 오자마자 가는 건 섭섭해. 이틀은 있다 가야지. 나랑 놀아 주고.”

술이 오른 리타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도현을 응시했다.

“알았어, 그럴게. 나도 준비할 것도 있고.”

도현의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짐브리오가 탁자를 손가락으로 치며 화제를 돌렸다.

“아니, 근데 얼음탑주 녀석은 왜 베일 가문의 땅을 차지하려고 이 사달을 만든 거지? 고대 왕궁이 탐이 나서? 그놈들도 우리처럼 거인 섬의 씨드를 노리고 있잖아. 그럼 그쪽 일에 집중을 해야지.”

“론의 지팡이가 그곳에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딘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지팡이가 그곳에 있다고 오해한다고?”

“그게 아니고는 탑주가 직접 나서서 저런 일을 벌일 이유가 없지. 베일 가문과의 충돌도 무시한 채 말이야. 뱃길이 열렸으니 베일 가문이 보복전에 임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점인데도 말일세.”

“일리 있는 말이에요.”

로나가 딘의 의견에 동조했다.

“우리가 신전에서 론의 지팡이를 찾으려 하는 것처럼, 탑주는 고대 왕궁에서 론의 지팡이를 찾으려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거인 섬의 결계를 푸는 데 론의 지팡이가 필요하니까요.”

“흐흐, 그럼 그놈들은 헛수고만 하고 있는 거로군.”

짐브리오가 소리 내어 웃었다.

“고대 왕궁에서 론의 지팡이를 발견하지 못하면 얼음탑주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도현의 물음에 어베인이 답했다.

“그는 마법사가 아닌가? 아마 그 자신이나 다른 마법사들과 연계해 론의 지팡이 없이 결계를 풀려고 하겠지. 그 전에 거인들을 상대해야겠지만.”

얼음탑주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았다.

“자, 우리 모두 건배 한 번 더 합시다! 도현도 왔고 론의 지팡이를 찾는 신전 발굴도 내일부터 시작되니, 오늘은 기념할 만한 날입니다.”

술이 적당히 오른 짐브리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들자 방 안의 사람들이 모두 따라 일어나 건배를 했다.

“난 네가 무사할 줄 알았다고!”

술에 취한 리타가 비틀거리며 로나와 얘기하고 있는 도현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도현은 로나와 하던 말을 중단하고 어깨에 기댄 리타의 몸을 바로 세워 주었다.

그녀의 눈가는 술에 취해 불그스레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리타.”

“널 위해 내가 악마가 되어 저 얼음탑을 없애 버리려고 했어!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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