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 디 임팩트 14권 24화
“조심해서 다녀오게. 슈빅타이런이나 고대 몬스터까지 잡은 자네가 하이드로우에게 당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방심하지 말고.”
어베인의 말에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차례로 눈을 마주친 뒤, 목에 두른 천을 두건처럼 올려서 안면을 가렸다.
“다녀올게.”
“응, 다녀와.”
손을 흔드는 리타를 뒤로한 채, 도현은 숙소 건물을 나와 목표로 한 북서쪽 미개척 지역으로 향했다.
그곳은 아주 광대한 지역으로 브링틱인들이 지도조차 만들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곳엔 망각의 숲이 있었고, 락제프의 나무 집이 있는 협곡도 있었다. 그리고 도현이 주 사냥감으로 계획한 하이드로우가 출몰하는 곳이기도 했다.
고대 도시를 벗어나 신법을 발휘하며 이틀을 이동한 도현은 경사가 심한 언덕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전방에 짙은 수림이 시야가 가는 곳까지 넓게 퍼져 있었다.
“다 왔네.”
그의 가죽 갑옷 곳곳이 오면서 잡은 몬스터의 피로 얼룩 이져 있었다.
“밥은 먹고 시작할까?”
도현은 언덕 밑에 어슬렁거리는 하이드로우를 보며 가방에서 단맛이 나는 둥근 빵을 꺼냈다. 로나와 리타가 만들어 준 빵으로,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남은 식량은 대부분 고기를 말린 육포였다.
하이드로우는 웬 인간이 자신을 보며 앉아 있자, 톱니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땅을 박차고 언덕을 향해 돌진했다.
쿵쿵쿵쿵.
하이드로우의 발에 짓밟힌 언덕의 풀들이 땅과 함께 짓이겨졌고, 먼지가 피어올랐다.
“저런 녀석들을 어떻게 훈련시켜 전투 몬스터로 만든 거지?”
브링틱인들의 재주가 용했다.
경사가 심한 언덕을 빠르게 뛰어 올라온 하이드로우는 빵을 먹고 있는 도현의 몸을 커다란 주먹으로 밑에서 후려쳤다.
5미터나 되는 거대한 몸체에서 뿜어져 나온 육중한 힘이 실린 하이드로우의 주먹에 정통으로 맞으면, 사람 몸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된다. 그런 주먹이 빵을 먹고 있는 도현의 코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그 순간 도현의 몸에서 일렁이는 투명 막이 튀어나와 그의 몸을 감쌌다.
잠시 후 호신강기와 하이드로우의 파괴력 짙은 주먹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쿠웅.
묵직한 충돌음과 함께 하이드로우의 주먹에서 뼈마디가 엇갈리는 소리가 났다.
우드드득.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하이드로우가 뒤로 벌렁 넘어지며 언덕 밑으로 빠르게 굴러 내려갔다. 도현의 호신강기에 주먹이 막히며 그 힘의 반작용으로 하이드로우의 몸 중심이 흐트러진 것이다.
“거의 다 먹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호신강기를 찰나간 펼쳤다가 거둔 도현은 손안에 마지막 빵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한동안은 빵 맛을 보기 어렵기 때문에 도현은 이 빵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언덕 밑으로 굴러 내려간 하이드로우는 성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흉포한 괴성을 지르고 재차 도현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주먹을 펼친 하이드로우의 손끝엔 칼처럼 길고 날카로운 손톱이 삐져나와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몸이 여러 조각 날 것 같았다.
수통의 물을 끝으로 식사를 끝낸 도현은 수통을 든 상태로 옆으로 슬쩍 몸을 이동했다.
하이드로우의 날카로운 손톱이 도현이 있던 공간을 ‘훅’ 하고 쑤시고 지나쳤다.
“시작해 볼까?”
번쩍.
푸른 검광이 하이드로우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목이 반쯤 잘린 몬스터가 도현을 노려보다가 언덕에 쓰러졌다.
쿠웅.
타투를 통해 흡수되는 몬스터의 기운에 온몸이 짜릿해진 도현은 언덕을 올라오는 또 다른 하이드로우를 발견하고는 지체 없이 마주 달려갔다.
불도그를 닮은 녀석의 입이 길게 벌어지며 도현의 머리를 한입에 삼키려 했다.
5미터나 되는 거대한 몬스터였기 때문에 녀석이 무슨 행동을 하든 그 행동은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의 인간에게 압도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현은 이미 수없이 많은 거대 몬스터들과 싸운 전력이 있었다. 6미터, 8미터에 이르는 슈빅타이런, 심지어 지금 상대하는 하이드로우 역시 이미 충분히 경험해 봤다.
하이드로우의 무식하게 벌어진 입을 여유 있게 피한 도현은 내려가던 기세 그대로 녀석을 옆에서 스치고 지나쳤다.
파파팟!
어떻게 도현이 손을 썼는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위치에 있던 하이드로우의 심장에서 동시에 세 줄기나 피가 솟구쳤다.
크르르르.
붉은 눈으로 도현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하이드로우가 언덕에 자빠졌다.
쿠웅.
그 순간 언덕 밑으로 내려가는 도현의 몸으로 몬스터의 기운이 흡수됐다.
‘후우.’
은단을 입에 넣고 심호흡을 할 때나 느껴지는 청량감이 몸 내부를 휘돌다 단전으로 향했다.
‘너무 중독적이야, 몬스터들의 기운은.’
언덕을 내려가 숲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돼서 또 다른 하이드로우가 바위를 집어 던졌다.
도현이 몸을 앞으로 구르며 바위를 피해 냈다.
우저저적.
아름드리나무가 바위에 맞아 박살이 났다.
녀석이 또 바위를 집어 던지려 했다. 도현은 20여 미터 정도 떨어진 녀석을 향해 지그재그로 빠르게 접근해 갔다.
쿠웅.
앞에 떨어진 바위를 뛰어넘은 도현이 허공으로 높게 도약했다.
순식간에 10여 미터 가까이 공중으로 솟구친 도현의 눈과 아래에 있는 몬스터의 눈이 마주쳤다.
몬스터가 주먹으로 허공에서 떨어지는 도현의 몸을 강타하려 했지만, 도현의 손이 더 빨랐다.
푸욱.
도현의 검이 몬스터의 이마에 박혔다.
눈이 풀린 몬스터가 힘없이 주저앉더니 뒤로 넘어갔다.
땅에 착지한 도현은 몬스터의 머리에 박혀 있는 검을 뽑아냈다.
몬스터의 피가 도현의 가죽 갑옷과 얼굴에 튀었다. 넓은 나뭇잎으로 얼굴의 피를 닦아 낸 도현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다가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몸을 날렸다.
샤닐은 고양이처럼 생긴 작은 몬스터로, 머리에 푸른 뿔이 하나 돋아나 있다. 한 뼘이 안 되는 작은 뿔엔 마나의 힘이 결집되어 있어서 마법사들이 여러 용도로 사용했다. 이런 샤닐은 희귀해서 그 뿔의 가치는 대단히 높았다.
“가만있어라, 죽이지 않고 뿔만 따 가마.”
헬구스는 칼을 들고 살금살금 샤닐의 근처로 접근했다. 몬스터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전투력이 약하지만 매우 민첩해서 한번 기회를 놓치면 잡는 데 애를 먹는다.
‘흐흐흐, 다 됐군.’
속으로 음산한 미소를 지은 헬구스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샤닐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두르려 했다. 그 순간 뭔가 낌새를 차린 샤닐이 수풀 속으로 휙 숨어 버렸다.
간발의 차로 샤닐을 놓친 헬구스가 인상을 쓰며 수풀로 뛰어들었다.
“이 망할 놈의 몬스터 새끼! 거기 안 서!”
칼로 수풀을 베어 내며 샤닐을 쫓던 헬구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크샤코 가문의 수색대와 마주친 것이다.
크르르르.
5미터 급 전투 몬스터가 거대한 도끼를 들고 일어났다.
‘빌어먹을…….’
뚱뚱한 헬구스는 계곡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전투 몬스터들을 보며 오금이 저려 왔다. 그들 외에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병사들이 하나둘 일어나 활로 그를 겨눴다.
“넌 누구냐!”
전투 몬스터 다섯 마리와 병사 1백 명을 지휘하는 중년의 지휘관이 벗어 놨던 투구를 머리에 쓰며 큰 소리로 물었다.
“야, 약초꾼입니다.”
“약초꾼?”
지휘관은 계곡물 너머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헬구스의 위아래를 자세히 살폈다. 산을 타는 약초꾼치고는 너무 뚱뚱해 보였다.
“이 위험한 곳에 약초를 캐러 왔다고?”
“호기심에 한번 와 봤습니다. 이제 내려가려고요. 그럼 전 이만.”
헬구스는 천천히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다시 걸어가려 했다.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전투 몬스터가 네놈의 목을 비틀어 버릴 것이다.”
지휘관의 경고에 헬구스는 입술이 타들어 갔다.
“저놈을 끌고 와!”
뒤에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헬구스는 더 이상 길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병사들의 손에 잡히는 순간, 그가 약초꾼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들통이 날 것이다.
‘샤닐을 쫓지 않았어야 했는데.’
헬구스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체구에 맞지 않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번개처럼 수풀 사이로 뛰어들었다.
곧바로 헬구스를 향해 여러 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쉬쉬쉬쉭.
아슬아슬하게 화살을 한 대도 맞지 않은 헬구스는 달리면서 뒤를 돌아봤다.
전투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쫓아오고 있었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가까이 붙은 전투 몬스터 한 마리가 들고 있던 거대한 도끼로 헬구스의 몸을 내려찍었다.
콰아앙.
경사진 산의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뚱뚱한 몸을 옆으로 굴려 간발의 차로 피한 헬구스는 손에 든 칼로 번개처럼 전투 몬스터의 다리를 그었다.
상체와 달리 하체에는 철갑이 없었기 때문에 헬구스의 마나가 실린 칼에 전투 몬스터의 단단한 가죽이 길게 베이며 핏물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 상처는 전투 몬스터를 더욱 난폭하게 만들었다.
쿠오오오!
세상이 떠나가라 괴성을 내지른 전투 몬스터가 헬구스를 향해 빠른 도끼질을 연속해서 해 댔다.
나무가 잘리고 돌이 부서지며 불꽃이 일어났다.
“이런 제기랄!”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과 돌조각을 피해 옆으로 이동하자 이번엔 다른 전투 몬스터가 달려와 도끼를 옆에서 휘둘렀다. 도끼날만 2미터 가까이 되는 거대한 도끼라서 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헬구스는 앞으로 몸을 던지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고, 옆에서 날아오던 도끼는 헬구스의 머리 위를 스치며 인근 나무를 잘라 버렸다.
‘한 마리라면 어떻게 해 보겠는데…… 너무 많잖아.’
피하다 보니 어느새 다섯 마리의 전투 몬스터들이 그를 둥그렇게 포위해 버려서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저쪽 아래서는 뒤늦게 병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칼라치! 좀 도와주게! 칼라치!”
급한 마음에 헬구스는 산이 떠나가라 고함을 내질렀고, 그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나무 위에서 칼라치가 뚝 떨어져 그의 곁에 섰다.
“왜 이쪽까지 왔나.”
“미안하네. 샤닐이 보이기에 그놈을 쫓다가 그만.”
“숙여.”
적발 거한 칼라치는 거대한 강철 방패 두 개를 회전시켜서 포위 공격하는 전투 몬스터들의 도끼질을 모조리 막아 낸 후, 왼쪽에 있는 전투 몬스터를 향해 방패를 집어 던졌다.
퍼억.
머리가 세로로 두 쪽이 난 전투 몬스터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꽝앙! 꽝꽝!
연이어 폭음 소리가 났다.
칼라치가 강철 방패로 전투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뒤로 날려 버린 것이다.
엘바의 힘이 담긴 칼라치의 강철 방패에 정통으로 가격당한 전투 몬스터들은 바닥에 쓰러져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내부를 뒤흔드는 엄청난 충격에 순간적으로 쇼크 상태에 빠진 것이다.
단숨에 전투 몬스터들을 무력화시킨 칼라치는 몬스터들의 목숨을 끊어 버리기 위해 강철 방패를 다시 한 번 위로 들어 올렸다.
“쏴라!”
그 순간, 크샤코 가문의 병사들이 쏜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칼라치! 그만 가세! 전투 몬스터가 이 지경이 됐으니 더는 못 쫓아올 거야!”
나무 뒤에 숨어 화살을 피하던 헬구스가 외쳤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칼라치는 전투 몬스터들의 목숨을 취하고 산 아래서 화살 공격을 퍼붓는 병사들까지 처리하려고 했다.
그때였다. 얼음 화살 여러 개가 측면에서 쏜살같이 날아왔다.
쩌어엉.
강철 방패로 얼음 화살을 막은 칼라치가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음 늑대를 타고 있는 카샨이 보였다.
“또 보는군.”
칼라치가 차가운 살기를 흘리며 카샨을 노려봤다.
“네가 데리고 간 용병은 어디에 있나?”
“어딘가 있겠지. 잘 찾아봐.”
“같이 있는 게 아닌가?”
카샨이 밑에서 화살을 쏘는 병사들에게 손짓해 공격을 멈추게 했다.
조용해진 상황에서 칼라치가 답했다.
“모르겠군 나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
“친구 사이 아닌가?”
“친구?”
칼라치가 강철 방패에 기대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좋을 대로 생각해. 어차피 넌 여기서 내 손에 죽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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