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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50화 (350/575)

[350] 디 임팩트 14권 25화

“꼭 싸울 필요가 있을까? 나는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카샨은 얼음 늑대를 천천히 움직여 칼라치에게 다가갔다.

“무슨 수작이냐?”

칼라치가 묵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당신에게 좋은 제안거리가 하나 있어서 말이야.”

“제안을 한다, 뭘?”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어.”

카샨은 수색대 지휘관을 불렀다.

“계곡에서 대기해.”

“예!”

칼라치는 카샨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헬구스와 함께 조금 떨어진 공터로 이동했다. 공터 바위에 걸터앉은 칼라치는 병력을 물리고 다가오는 카샨에게 물었다.

“제안이라는 게 뭐냐?”

“단둘만 있었으면 좋겠는데…….”

카샨이 헬구스를 힐끔 쳐다봤고, 헬구스는 입맛을 다시며 자리를 피해 줬다.

“이제 말해 봐.”

“그 전에 물어볼 게 있다. 당신이 구해 간 그 용병, 당신이 원하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인가?”

“무슨 의도로 그걸 묻는 거지?”

“그가 도와주면 좋을 것 같아서.”

칼라치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렇다면 사람 잘못 찾아왔군. 그의 도움이 필요하면 그를 찾아가. 나는 그자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입장이니까.”

칼라치의 대답에 카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용병과 친구 사이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그럼 그를 왜 구한 거지?”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으니까.”

“납득하기 어려운데.”

“이해할 필요 없다. 이해를 바라지도 않고.”

칼라치는 공터 바위에서 일어났다.

“할 말 없으면 그냥 가겠다.”

“잠시만 기다려.”

카샨은 얼음 늑대를 없애 버리고 칼라치 앞에 섰다.

“먼저 내 소개를 하지. 난 얼음탑주의 제자 카샨이다.”

“그의 제자라고?”

칼라치가 살짝 놀라며 새삼스러운 눈길로 카샨을 응시했다. 얼음탑에서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마법사라고 느꼈지만, 탑주의 제자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크샤코 가문의 차남이기도 하고.”

“크샤코 가문의 차남이라……. 수색대를 움직인 건 당신의 힘이었군.”

칼라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탑주의 지시를 무시할 수는 없는 입장이니까.”

카샨은 대답하며 호전적인 기세로 뒤덮여 있는 칼라치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봤다.

“난 칼라치다.”

“알고 있다. 고대 도시 발굴지에서 베일 가문과 뤼호른 가문이 싸웠을 때, 베일 가문의 칼이 되어 용맹함을 보였지. 스므차 성주의 친위대장을 죽였다는 소문도 있고.”

“소문이 아니다.”

칼라치가 카샨의 말을 정확히 바로잡아 주었다.

“그래, 탑주의 제자이자 크샤코 가문의 차남 카샨.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카샨은 떨어져 있는 헬구스 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본론을 꺼냈다.

“씨드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 우리 힘을 합해 그것을 차지해 보는 게 어떻겠나?”

칼라치의 하나 남은 눈이 크게 흔들렸다. 뜻밖의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베일 가문의 땅에 있나 보군. 고대 왕궁에 말이야.”

“천만에. 씨드는 거기에 있지 않아. 전혀 다른 곳에 있지. 당신이 나와 함께하겠다면 정보를 공유하지.”

칼라치는 카샨의 얼굴을 깊게 들여다봤다.

“이해가 안 되는군. 당신은 얼음탑주의 사람 아닌가? 심지어 제자이기도 하고. 지금 말하는 것을 보면 탑주가 아닌 당신의 개인 의견 같은데?”

“잘 봤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탑주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당신 앞에 사람은 크샤코 가문의 차남 카샨일 뿐이다.”

“얼음탑주를 배신한다?”

“배신이 아니라 강함을 동경한다고 말해 두지.”

카샨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왜 이런 제안을 내게 하는 건가?”

“난 지금 당신같이 강한 조력자가 필요한 입장이니까. 경쟁자들이 너무 쟁쟁해서 말이야. 그 용병이란 사람이 함께한다면 좋겠지만…… 보아하니 둘 다는 불가능할 거 같고. 그렇다면 당장 손을 잡을 수 있는 당신을 선택하는 게 현명하겠지.”

“경쟁자가 설마 얼음탑주인가?”

칼라치의 물음에 카샨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탑주의 친구들이 있지. 내가 왜 강한 조력자가 필요한지는 더 말을 보태지 않아도 이해했을 거야.”

칼라치는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씨드가 확실히 존재하긴 하는 건가?”

“있는 곳을 직접 다녀왔지, 탑주와 함께.”

“그럼 말해 봐, 그곳이 어디인지. 듣고서 너와 손을 잡을지 판단하겠다.”

카샨은 잠시 생각하다가 거인의 섬에 관해 얘기해 주었다. 이미 자신의 속내를 거의 다 드러낸 이상, 장소에 대한 비밀을 숨긴다는 게 의미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호전적이고 투지가 있어 보이는 칼라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툭 까놓고 끌어들이는 게 나아 보였다.

“거인들이라…….”

씨드를 불사의 거인들이 보호하고 있다는 말에 칼라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은데.”

“내 대답은…… 미안하지만 조금 기다려 줘야겠어. 나와 함께 다니는 마법사가 있어서. 그녀와 상의를 해 봐야겠군.”

“좋아, 그럼 여기서 기다리지.”

칼라치는 잠시 카샨을 응시하다가 몸을 돌려 산 위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헬구스에게 걸어갔다.

헬구스는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궁금해 몸이 달아 있었다.

“저자가 뭐라고 하던가?”

“함께 씨드를 찾자고 하더군.”

“씨드!”

깜짝 놀란 헬구스는 고개를 돌려 아래를 봤다. 산 중턱의 공터에 은발의 얼음탑 마법사가 이쪽을 응시하며 서 있었다.

“씨드가 어디 있는데?”

“망각의 숲 안에 있는 거인의 섬에.”

“숲 안에 섬이 있어?”

“호수가 있고, 그 안에 있다더군.”

얼마 후, 그들은 산 정상 부근에 있는 동굴에 도착했다. 동굴 입구는 무성한 나무와 수풀로 가려져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이디언은 동굴 바닥에 동물 피로 마법진을 그리며 뭔가 연구를 하고 있었다.

“밑에서 크샤코 가문의 수색대와 만났소.”

칼라치의 말에 연구하던 이디언이 헬구스를 사납게 노려봤다.

칼라치는 어수룩하게 수색대에 발견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럴 가능성 있는 사람은 아까부터 안 보이던 헬구스였다.

“차라리 그냥 혼자 떠나요, 따라다니면서 우릴 곤경에 빠트리지 말고.”

이디언의 목소리엔 한기가 가득했다. 헬구스는 이디언의 시선을 슬쩍 회피했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 왕의 피를 이어받은 내가 언젠가 왕위를 이어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때가 되면 내가 당신들을 잊지 않지.”

“필요 없으니까, 일이나 만들지 말아요.”

“샤닐을 잡아서 그 뿔을 당신에게 주려다가 수색대를 만난 건데, 섭섭하군.”

헬구스는 입맛을 다셨다.

칼라치는 헬구스를 노려보는 이디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씨드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됐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칼라치는 카샨과 나눈 대화를 설명해 주었고, 이디언은 고대 도시가 아닌 어느 섬 안에 씨드가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당신 생각은 어떻소? 내가 카샨과 손을 잡는 게 좋을 것 같소?”

이디언은 한동안 깊게 생각을 하다가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 위에 동물 피를 가득 쏟아 그 흔적을 없애 버렸다.

“얼음탑주도 그렇고, 거인 섬의 거인도 그렇고, 당신 힘만으로는 그 모든 걸 감당할 수 없어요. 카샨과 손을 잡아요.”

“그를 믿을 수 있을까?”

옆에서 헬구스가 한마디 했다.

“씨드 이야기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해 줬다는 건, 그도 상당한 모험을 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만큼 칼라치, 당신이 필요하다는 뜻이고. 적어도 지금 당장은 배신할 것 같지 않아요. 나중이면 모를까…….”

“기대와 달리 씨드가 단 한 개만 존재한다면, 서로 차지하기 위해 피 터지게 싸우겠군.”

헬구스 말은 충분히 현실성이 있었다.

“그 씨드는 칼라치의 몫이 될 거예요. 내가 꼭 그렇게 만들 테니까.”

“좋겠군. 그 전에 불사의 거인이나 얼음탑주 먼저 상대해야겠지만.”

헬구스와 이디언이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칼라치는 이디언의 눈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씨드 때문에 당신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소. 카샨과 함께 움직이는 건 나 혼자로 족할 것 같소.”

“당신 옆에 없는 게 나를 더 힘들게 할 거예요. 같이 가요.”

“이디언…….”

칼라치는 고개를 숙여 이디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붙였다. 격렬한 키스를 나누던 그들은 헬구스가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로의 몸을 탐했다.

그 대담한 모습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닌 헬구스는 인상을 쓰며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에이, 짐승 같은 것들.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한참 뒤, 땀에 전 칼라치와 이디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동굴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은 산을 내려가 산 중턱에서 기다리고 있던 카샨 앞에 섰다.

“카샨,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현명한 결정이군.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하겠지만, 그 결과는 우리 모두를 만족시켜 줄 거야.”

카샨이 기뻐하며 말했다.

“이쪽은 내 동료들이다.”

“반갑소, 카샨이오.”

“이디언이에요.”

“헬구스요.”

카샨은 요염함이 풍겨 나는 중년의 여마법사 이디언을 잠시 눈여겨보다가 산 아래를 가리켰다.

“수색대는 모두 다 내 사람이니 신경 쓰지 말고 산을 내려가지. 당분간 내가 당신들이 머물 거처를 마련해 주겠어.”

타닥타닥.

깊은 밤 숲 안의 작은 공터에 도현이 피운 모닥불이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다가 잡은 작은 멧돼지가 그 모닥불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어 갔다.

‘내일은 이곳을 벗어나 서쪽으로 이동해야겠어.’

광활한 숲에서 하이드로우 위주로 사냥을 하며 지낸 도현은 어느덧 숲의 가장자리라 할 수 있는 넓은 강 근처까지 진출했다.

4일을 이곳에서 사냥한 도현은 그 결과에 적지 않게 만족하고 있었다.

5미터 급 하이드로우를 백 마리 넘게 잡았고 그 와중에 3, 4미터 급 몬스터들도 많이 잡았다. 한 달 반 정도를 이런 식으로 이동하며 사냥한다면, 고대 도시로 복귀할 쯤에는 내공이 상당히 증가할 것 같았다.

도현은 발밑에 내려놓은 가방을 열어 리타가 챙겨 준 향신료 가루를 멧돼지 고기에 살짝 뿌렸다. 그러자 식욕을 자극하는 향긋한 고기 향이 더욱 진하게 올라왔다.

‘리타 덕분에 맛있게 먹겠네.’

도현은 향신료 통을 가방에 다시 넣다가 가방 한편에 있는 가죽 주머니에 시선이 갔다.

그는 가죽 주머니를 가방에서 빼내 안을 봤다. 그 안에는 한 뼘이 안 되어 보이는 푸른 빛깔의 원통형 뿔이 서너 개 들어 있었다.

‘샤닐을 잡다니, 운이 좋았어.’

다크캐슬의 몬스터 재료 상점에 부착되어 있는 고가의 몬스터 재료 목록 중 수위를 차지하는 게 바로 이것이었다.

마나가 응집되어 있다는 몬스터의 뿔.

도현은 이것을 지난 며칠간 광활한 숲을 돌아다니며 얻었다. 일부러 찾아다닌 건 아닌데, 운이 좋았는지 하루에 하나꼴로 발견한 것이다.

혹시 이것도 타투에 흡수되는 건 아닌지, 실험 삼아 샤닐의 뿔을 타투에 가져다 대 봤지만 변화가 없었다. 나름의 사용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리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어.’

도현은 샤닐의 뿔을 다시 가방에 넣고, 멧돼지 고기로 배를 채워 갔다. 리타의 향신료로 인해 고기 노린내도 안 나고 맛있었다.

배불리 먹은 도현은 모닥불이 비추는 작은 공터와 그 너머 숲 주위를 둘러봤다.

지난 며칠간 마주치는 사람도 없었고, 사람이 지나간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철저히 고립된 지역에 홀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다크캐슬에서도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는데, 이곳은 정말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기분이 들게 만들어.’

약간의 고독함을 느끼며 도현은 모닥불 곁에 드러누웠다.

공터 하늘에 이름 모를 별들이 수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름답네.”

도현은 이 순간을 홍영과 함께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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