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51화 (351/575)

[351] 디 임팩트 15권 1화

늑대산

고대 도시의 땅을 살 때 들어간 돈은 도현의 것이다. 그러나 표면상으로는 영주 딘이 발굴지 주인이었다. 그는 뒷짐 진 자세로 발굴지를 천천히 돌아다니며 일꾼용 몬스터들과 용병들이 한데 어우러져 일하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영주님, 기분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강한 햇빛이 눈부셨는지 손으로 빛을 가린 리드만이 딘을 바라봤다.

“좋고말고. 이유야 어찌 됐든 난 여기서 7백 명의 용병들을 움직이는 최종 결정권자가 아닌가?”

딘은 양쪽으로 기른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대꾸했다.

영주 시절을 제외하곤 이렇게 많은 인원들을 자신의 말 한마디로 움직인 일은 없었다.

“영주는 다스려야 제맛이지.”

“도현의 돈으로 고용한 용병들을 두고 너무 재미 들린 거 아니오?”

뒤에서 들리는 짐브리오의 목소리에 딘이 헛기침을 나직하게 하며 뒤돌아섰다.

“예를 갖추게, 난 자네들이 추대한 이곳의 얼굴이야.”

“별 이상한 소리 다 듣겠군.”

매부리코 중년인으로 변장한 짐브리오가 딘의 옆에 섰다.

“빼앗긴 영지를 찾을 생각을 해야지, 발굴지 용병들 보고 만족할 생각이오?”

“내 영지는 더 이상 없네. 내 영지민들이 날 원하지 않는데 그 땅을 되찾을 이유가 없지.”

씁쓸한 음성으로 말하는 그에게 짐브리오가 속 뒤집어 놓는 소리를 했다.

“그럴 힘도 애초에 없으면서 핑계는…….”

“이 사람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군. 내가 힘이 없긴 왜 없어!”

딘의 부드러운 눈매가 대번에 차가워졌다. 그 날카로운 기세에 짐브리오가 움찔하며 웃음을 흘렸다.

“화내지 마시오, 영주. 날이 더워서 웃자고 한 소리니까.”

“하나도 안 웃기네. 가지, 리드만.”

딘이 기분 상한 얼굴로 리드만을 데리고 숙소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자 짐브리오가 냉큼 곁으로 달려왔다.

“영주, 그럼 새 영지를 찾을 거요?”

“당연하지, 내가 언제까지 이 모습으로 떠돌아다닐 줄 아는가?”

“어떤 영지를 찾을 거요?”

“그건 왜 묻나?”

딘이 짐브리오를 힐끔 쳐다봤다.

“남부 대륙이 아니라 북부 대륙에서 영지를 찾을 거면 내가 추천할 만한 곳이 있어서 그러오.”

“추천을 한다고?”

짐브리오의 대답에 딘은 호기심이 생겨 절로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곳이 어딘가?”

“모두 두 곳인데, 한 곳은 커딜의 영지고 다른 한 곳은 이안의 영지요. 두 놈 다 영주로서 자격이 없는 악랄한 놈들이고, 영지민들의 원성도 자자하오.”

“커딜과 이안이라……. 가만, 그들은 자네와 로나, 어베인을 죽이라고 추적대를 보낸 자들이 아닌가?”

“맞소.”

짐브리오가 히죽 웃으며 답하자, 딘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손을 빌려서 자네들 적을 제거하려고?”

“반대로 생각하시오. 우리의 도움을 받아서 영지를 차지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게.”

딘이 다시 리드만과 함께 숙소로 향하자 짐브리오가 넌지시 한마디 했다.

“커딜과 이안을 죽이는 걸 도현이 도와주기로 전에 약속을 했소.”

“도현이?”

“당장은 거인의 섬 일 때문에 우리가 모두 묶여 있지만, 그 이후에 우리가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요. 잘 생각해 보시오. 두 놈을 죽이면 그 영지를 누가 다스리겠소?”

“흠…….”

뒷짐을 진 딘은 더운 날씨 때문에 온몸으로 땀을 흘리고 있는 리드만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문을 열었다.

“누가 더 나쁜 놈인가?”

“둘 다 똑같은 놈이오.”

“영주 한 명을 죽인다고 해서 그 영지를 차지할 수는 없네, 그놈을 추종하는 자들이 영지에 만만치 않게 도사리고 있을 테니까. 영지 밖에 응원군이 있을 수도 있고.”

“영지 안에서 핍박받던 사람들을 끌어모아 세력을 만들면 되지 않소. 물론 쉽지 않겠지만. 그런데 그럴 능력도 없으면 영주가 되려고 해선 안 되지. 아무튼 잘 생각해 보시오.”

짐브리오는 할 말 다 했다는 듯 뒤돌아섰다.

“변장하고 어디 가는가?”

딘의 물음에 짐브리오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고대 왕궁 발굴지에 가는 거요. 녀석들 동향을 좀 파악하려고.”

어베인의 지시로 짐브리오와 로나는 얼음탑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거인의 섬에 씨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얼음탑주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해 두는 게 좋았다.

“다녀오겠소.”

암살자 집안에서 태어나 도둑이자 모험가가 된 짐브리오는 어슬렁거리는 듯하면서도 빠른 발걸음으로 딘과 리드만의 시야에서 금세 멀어져 갔다.

“영주님, 짐브리오가 영주님을 많이 위하는 듯합니다.”

“그렇게 느꼈나?”

“그럼요. 기회가 된다면 그 두 영지 중 한 곳에 영주님 가문의 깃발을 세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넨 전쟁을 싫어하잖은가?”

딘이 숙소로 다시 걸어가며 말했다.

“필요하면 전쟁도 해야죠. 일곱 신 중 한 분은 전쟁의 신이 아닙니까?”

“일곱 신은 서로 싸우기도 하나?”

“가끔은…… 그러지 않을까요?”

“신이 싸워서 인간들도 싸우는 거야. 왜 싸우나 신이? 뭐가 부족해서.”

딘의 말에 리드만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도현은 잘 있는지 모르겠군.”

도현이 북서쪽 미개척 지역 깊숙한 곳에서 수련을 한다고 떠난 지 얼추 20일 가까이 지난 상태였다.

“몬스터를 잡아서 마나를 키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생각할수록 놀라워.”

“부러우십니까?”

“부럽긴, 난 몬스터와 싸우는 게 싫어.”

카아아아!

열대우림 같은 울창한 숲 속에서 몬스터들의 흉포한 괴성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쿵쿵.

몬스터들의 괴성이 커질수록 멀쩡했던 나무들이 부러지거나 거칠게 흔들리는 빈도가 증가했다.

한동안 지속되던 몬스터의 괴성과 나무들의 흔들림은 얼마 후 잠잠해졌고, 그곳에서 한 사내가 검을 들고 걸어 나왔다.

5미터 급 하이드로우보다 한 단계 위인 블루 하이드로우를 잡고 나온 도현이었다.

블루 하이드로우는 도현이 3일 전에 처음 마주친 몬스터로, 외형은 5미터 급 하이드로우와 비슷했지만 전투력은 일반 하이드로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스피드와 파워, 영리함까지 갖춘 블루 하이드로우는 전투력만으로는 6미터 급 슈빅타이런과 견줄 만한 녀석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전투력만큼 내공을 상승시켜 주기 때문에 도현에겐 좋은 사냥감이었다.

지금 그는 숲 안에서 블루 하이드로우 다섯 마리를 잡고 나오는 길이었다.

“다 좋은데, 이 녀석 피 냄새는 너무 독해.”

울창한 숲을 나와 폭이 좁은 강으로 들어간 도현은 방금 전 전투로 몸에 묻은 몬스터들의 피를 씻어 냈다.

투명한 물이 붉은 물감을 풀어 놓은 것처럼 붉어졌지만, 금세 다시 원래의 투명한 물 색깔을 회복했다.

“후우.”

차가운 강물 속에 얼굴과 몸을 담그던 도현은 시원한 표정으로 일어나다가 뒤를 급히 돌아봤다. 그가 걸어 나왔던 숲 속에서 블루 하이드로우 한 마리가 기습적으로 튀어나와 그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또 있었나? 이 숲에선 다 잡은 줄 알았는데.”

숲과 강의 거리는 불과 30여 미터도 안 돼서 블루 하이드로우에게는 한걸음에 달려올 만큼 짧은 거리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블루 하이드로우는 손에 든 기다란 물체를 도현에게 휘둘렀다. 살점과 핏덩이 들이 뒤엉킨 흰색 물체는 도현의 손에 죽은 블루 하이드로우의 척추뼈였다.

‘죽은 동료의 몸을 가르고 뼈를 빼냈구나.’

도현으로서도 처음 보는 잔인한 무기였다.

콰아앙.

도현이 서 있던, 폭이 좁은 강바닥의 자갈들이 물과 함께 허공으로 솟구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도현을 놓친 블루 하이드로우는 분했는지 송곳니를 드러내며 하늘을 향해 울부짖다가 강 밖으로 몸을 날린 도현을 쫓아가며 척추뼈를 마구 내리쳤다.

강변이 움푹움푹 파이며 흙먼지와 부서진 돌들이 난무했고, 그때마다 척추뼈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어 갔다. 격렬한 충격을 견디지 못한 척추뼈들이 하나둘 이탈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휘두를 척추뼈가 없자 블루 하이드로우는 동료의 척추뼈를 집어 던졌다. 도현은 몸을 숙여 그 뼈를 피한 다음 몬스터의 턱 밑까지 번개처럼 접근했다.

콰앙!

대력금강수로 인해 강철처럼 단단해진 도현의 주먹에 턱뼈의 일부가 으스러진 블루 하이드로우가 침을 질질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도현은 뒤로 휘청거리며 물러나는 녀석의 몸통을 가볍게 타고 올라가 정수리 부근에 연속으로 대력금강수를 펼쳤다.

쩌어엉.

두개골이 부서진 블루 하이드로우는 땅으로 내려온 도현을 죽일 듯 노려보다가 서서히 앞으로 고꾸라졌다.

쿠웅.

“경지가 더 높아졌어.”

몬스터의 기운을 흡수한 도현은 손에 두른 대력금강수의 강기를 풀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력금강수의 강기 색은 은은한 푸른빛이었는데, 내공이 상승하고 숙련도가 올라감에 따라 점차 그 색이 또렷해져서 지금은 선명한 푸른빛을 띠었다. 그에 따라 파괴력도 증가해서 검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 대력금강수 하나만으로 블루 하이드로우를 잡을 정도가 되었다.

죽은 몬스터를 지나쳐 폭이 좁은 강을 건너간 도현은 주변을 길게 둘러봤다.

작은 강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던 숲이 다시금 이어지고 있었다.

“그냥 가, 덤비지 말고.”

도현의 차갑고 가라앉은 눈빛이 어딘가로 향했다.

황소만 한 늑대 몇 마리가 나무 그늘에 숨어 그를 노려보다가 슬그머니 몸을 돌려 사라져 갔다. 숲에서 왕 노릇하던 몬스터들을 죽이는 도현의 활약을 어디선가 지켜본 모양이다.

도현은 주변을 한번 둘러본 뒤, 늑대가 숨어 있던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름다운 숲이지만 몬스터와 늑대와 같은 맹수들이 들끓는 곳이다. 도현이 아닌 일반인들이 들어왔다면 숲 입구에서 벌써 잡아먹혔을 것이다.

가방에서 말라비틀어진 육포 몇 조각과 어제 숲에서 구한 주먹만 한 과일을 꺼낸 도현은 그것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오늘 밤엔 사슴이나 멧돼지라도 한 마리 잡아야겠어.”

지난 며칠간 사냥에 집중하다 보니 불 맛이 느껴지는 따뜻하고 익은 고기를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

간단히 허기를 채운 그는 신법을 발휘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빠르게 통과하며 하이드로우를 찾아 나섰다.

‘이쪽으로 갔군. 두 마리가 함께 움직이고 있어.’

도현은 숲에 있는 묵직한 큰 발자국과 나뭇가지들이 꺾인 방향을 통해 하이드로우의 존재와 그 이동 경로를 유추해 냈다.

그는 지난 20여 일간 하이드로우 위주로 사냥을 하며 브링틱의 북부 미개척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런 경험이 축적되다 보니 하이드로우의 발자국이나 움직임을 어느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블루 하이드로우일까, 아니면 일반 하이드로우일까?’

도현은 슈빅타이런 급의 내공을 선사하는 블루 하이드로우 이기를 바라면서 추적의 속도를 높였다.

키 높이까지 자란 수풀들을 헤치며 바람처럼 질주하던 도현의 귀에 익숙한 괴성이 들렸다.

‘가까운 곳에 있군.’

도현은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빠르게 사냥하고 또 다른 몬스터를 찾아 나설 생각이었다. 땅이 방대해서 몬스터 한두 마리에 시간을 질질 끌 수가 없었다.

“어!”

몬스터 괴성이 들리는 현장에 도착한 도현은 뜻밖의 광경에 저도 모르게 나지막한 탄성을 뱉어 냈다.

황소만 한 덩치의 갈색 늑대 떼가 털을 빳빳하게 세운 채 블루 하이드로우 두 마리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늑대들은 움직임이 재빨랐다. 발톱과 이빨도 날카로워서 질긴 블루 하이드로우의 가죽을 뚫고 들어갈 정도였다.

5미터 급 몬스터가 주는 거대한 중압감에도 불구하고 약 스무 마리 정도 되는 갈색 늑대들은 두 마리 몬스터 주변을 맴돌며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다.

‘이길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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