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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52화 (352/575)

[352] 디 임팩트 15권 2화

도현의 시선이 혈전이 벌어지는 늑대와 몬스터 주변의 땅바닥으로 향했다.

주변엔 늑대들의 시신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스무 마리 정도가 싸우고 있었지만, 그만한 숫자들이 이미 죽어서 바닥에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갈색 늑대들은 용감했지만 하이드로우도 아니고 그보다 훨씬 강한 블루 하이드로우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왜 도망가지 않고 싸우는 거지?’

생존 본능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똑같이 존재한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을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맞서 싸우는 게 이상했다.

도현은 길게 생각하지 않고 늑대와 몬스터의 싸움에 개입했다.

깃털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허공으로 점프한 도현은 늑대의 몸을 갈가리 찢고 있는 블루 하이드로우의 눈높이까지 이른 후, 검광이 번뜩이는 검을 횡으로 그었다.

서걱.

늑대의 조각난 시체를 손에 움켜쥐고 있던 블루 하이드로우는 온몸을 비틀며 몸부림치다가 옆으로 서서히 기울어졌다.

쿠우웅.

묵직한 땅의 울림이 전달됐고, 녀석의 목에서 뒤늦게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캬아아아!

같이 싸우던 동료가 죽자 홀로 남은 블루 하이드로우는 등에 달라붙은 늑대들을 거칠게 떼어 놓으며 도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붉은 눈을 번뜩이며 휘두른 강력한 주먹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도현에게 닥쳐왔다. 순간적으로 전력을 다한, 파워 넘치는 공격이었다.

도현의 몸이 흐릿해졌다.

콰앙.

도현이 피한 자리에 있던 우람한 나무 밑동이 몬스터의 주먹에 맞아 반쯤 박살 나며 기우뚱했다.

도현을 놓친 블루 하이드로우는 흉악한 눈빛으로 괴성을 지르며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푸른 검광이 몬스터의 미간에 번쩍이며 꽂혔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던 블루 하이드로우의 온몸 근육들이 일순 쪼그라들며 그 움직임이 멈췄다.

눈을 부릅뜬 블루 하이드로우의 눈동자에서 서서히 생기가 빠져나갔다.

쿠웅.

블루 하이드로우는 죽은 늑대들의 시체 위에 거칠게 쓰러졌다.

강력한 몬스터의 기운을 연이어 흡수한 도현은 차분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살아남은 갈색 늑대 무리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도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몬스터와 싸울 때 엿보였던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너희와 싸울 생각 없어.”

잠시 늑대들과 눈싸움하듯 시선을 마주친 도현은 들고 있던 검의 피를 닦아 낸 뒤 검집에 넣었다.

도현이 무기를 거두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나자, 살아남은 늑대들은 몇 번 으르렁거리다가 두 줄로 갈라졌다.

온몸에 피 칠을 한 늑대 한 마리가 그 사이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주변 늑대들은 어두운 갈색인 반면 그 늑대는 눈처럼 하얬다.

‘대장인가?’

다리와 몸통에서 피를 흘리며 다가오던 흰 늑대는 도현과 죽은 몬스터를 번갈아 보다가 살아남은 늑대들을 데리고 숲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흰 늑대의 입에는 작은 체구의 어린 흰 늑대 한 마리가 물려 있었는데, 죽었는지 미동도 안 하고 있었다.

“새끼 때문에 그렇게 싸운 건가?”

도현은 죽은 새끼를 물고 가는 흰 늑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늑대가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불침번도 세우지 않고 몬스터가 출몰하는 지역에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공터에서 잠을 자고 있던 도현은 깊어 가는 새벽 무렵 평소보다 조금 일찍 눈을 떴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 소리와는 전혀 다른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그의 뒤편 수풀에서 들리고 있었다. 기척을 죽인 소리였지만, 고요한 새벽의 공기를 타고 접근해 오는 그 미세한 소리를 도현은 놓치지 않았다.

‘이번엔 어떤 몬스터지?’

잠을 자는 도중 몇 번 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이드로우도 있었고, 체구가 작은 하급 몬스터도 있었다.

덩치 큰 거대 몬스터는 아닐 것이다. 아무리 소리를 죽인다고 해도 저런 미약한 소리를 만들 정도로 몸이 가볍지는 않기 때문이다.

소리를 만드는 존재가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기다린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불이 거의 사그라진 모닥불 너머를 응시했다. 뒤쪽으로 다가오던 존재가 공터를 반 바퀴 돌아 모닥불 너머에 등장한 것이다.

“어떤 녀석인가 했는데 바로 너였군.”

뜻밖에도 몬스터가 아니라 낮에 보았던 흰 늑대였다.

무슨 일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현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먹잇감이 없어서 그를 공격하러 온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혼자가 아니라 같이 다니던 늑대 무리를 대동했을 것이다.

“무슨 일로 온 거지?”

흰 늑대는 다가오는 도현의 행동을 주시하다가 뒤로 주춤 물러났다.

경계하는 늑대의 태도에 도현은 발걸음을 멈추고 지난밤에 잡은 사슴 고기를 던져 주었다.

그가 구워 먹은 사슴 고기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굽지 않은 사슴 고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흰 늑대는 앞에 있는 사슴 고기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앞발로 쳐서 공터 끝 쪽으로 날려 버렸다.

그 모습에 도현은 어이가 없어 가볍게 헛웃음이 나왔다.

“어렵게 잡은 건데, 그러면 안 되지. 몬스터보다 사슴 찾기가 더 힘들었다고.”

늑대가 알아듣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너스레를 떤 도현은 허리를 약간 구부려 늑대와 눈높이를 같게 했다.

“뭐냐, 왜 날 찾아온 거야?”

어둠 속에서 파랗게 빛이 나는 눈동자로 도현을 응시하던 흰 늑대는 도현의 주위를 조심스럽게 몇 번 돌더니 공터 서쪽으로 이동했다.

도현이 가만히 서 있자 흰 늑대는 고개를 돌려 낮게 울었다.

아우우우우.

“따라오라고?”

도현은 확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모닥불을 끄고 짐을 챙겼다.

도현이 따라오는 것을 확인한 흰 늑대는 낮에 입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숲을 내달렸다.

‘어디로 가는 거지?’

흰 늑대를 따라 숲을 한참 달린 도현은 동틀 무렵 숲의 끝에 해당하는 널찍한 공터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수백 마리의 갈색 늑대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도현이 나타나자 적의를 드러내며 몰려들다가 흰 늑대의 묵직한 울음소리에 몸을 낮추고 뒤로 물러났다.

‘서열이 뚜렷한 집단이군.’

흰 늑대가 갈색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날 왜 데려온 거지?’

파도처럼 갈라지는 갈색 늑대들 사이를 걷던 도현은 위풍당당한 자세로 앞서가는 흰 늑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숲에서 그와 달릴 때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늑대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한 이후로는 일부러 몸에 힘을 주고 있었다. 동료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엄을 보이는 것 같았다.

흰 늑대는 공터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바위 위에 훌쩍 뛰어오르더니 아래에 서 있는 도현을 쳐다봤다.

‘올라오라는 건가?’

도현은 영리해 보이는 흰 늑대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바위 위로 올라갔다.

‘정말 많이도 모였군.’

숲이 넓긴 해도 늑대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다닐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어쩌면 이들은 숲뿐만 아니라 근방에서 다 몰려온 늑대일지도 모른다.

‘조용하군.’

수백 마리의 늑대들이 모여 있었지만 넓은 공터는 별다른 소란 없이 고요했다.

흰 늑대는 사자처럼 자란 목 주변의 흰 갈기를 세우며 주변을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도현의 다리에 살짝 오줌을 갈겼다.

“이 녀석 뭐 하는 거야?”

뜻밖의 행동에 당황한 도현은 독특한 오줌 냄새가 올라오는 바지를 내려다봤다. 인상이 써질 만큼 시큼하고 독한 냄새였다.

대소변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동물들이 있긴 해도, 사람 몸에 오줌을 싸다니.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게 이러기 위해선 아닐 테고…… 혹시 친근함의 표시인가?’

오줌으로 젖은 바지에서 시선을 뗀 도현은 넓은 공터에 몰려 있는 늑대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흰 늑대만 아니면 잡아먹을 기세였는데, 지금은 그런 눈빛이 거의 수그러들었다.

‘우두머리 늑대의 오줌 효과가 대단하군.’

도현은 피식 웃으며 옆에 굳건한 모습으로 서 있는 흰 늑대를 봤다.

“이번엔 봐주지. 다음엔 내 다리에 오줌 싸지 마.”

도현이 화를 내지 않고 바라보자, 흰 늑대는 하늘을 보며 길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공터에 모인 수백 마리의 늑대들이 일제히 따라서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

밝아 오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수백 마리의 늑대들이 울부짖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 녀석들.’

흰 늑대의 의도가 뭔지 이제는 알아야겠다 싶었다.

“내게 뭘 바라는 거지? 빨리 보여 주는 게 좋을 거야.”

도현은 흰 늑대가 자신의 말을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해도 분위기는 감지할 거라고 예상했다. 잠자는 그를 데리고 온 늑대의 범상치 않은 행동을 보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도현은 생각했다.

커헝!

흰 늑대는 도현을 향해 낮게 한번 운 뒤, 바위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양쪽으로 갈라져 길을 만든 늑대들 사이를 맹렬히 달리기 시작했다.

수백 마리의 늑대들이 송곳니를 보이는 무서운 얼굴로 그 뒤를 따라 달려갔다. 마치 싸움을 하러 가는 것처럼 늑대들의 기세가 매섭고 사나웠다.

“흠.”

바위 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을 하던 도현은 고개를 숙여 오줌에 젖은 바지 자락을 내려다봤다.

“그래, 한번 가 보자. 왜 내 바지에 오줌을 싸면서 친한 척했는지 알아는 봐야지.”

가볍게 바위를 박차고 허공으로 몸을 날린 도현은 공중제비를 돌며 땅에 착지했다.

공터는 수백 마리의 늑대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며 만든 흙먼지로 인해 사방이 뿌옇게 보였다. 신법을 발휘한 도현은 얼마 후 숲을 벗어나 초록빛이 가득한 들판을 내달리는 흰 늑대를 따라잡았다.

수백 마리의 늑대들이 들판을 달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늑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니……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야.’

도현의 시선이 왼편으로 향했다.

들판 저쪽에 모여 있던 수십 마리의 들소들이 갑자기 출몰한 많은 늑대들의 모습에 놀라 황급히 도망치기도 했고 몇몇 하급 몬스터들 역시 멀리서 지켜보다가 늑대들을 피해 뿔뿔이 흩어졌다.

‘사나운 늑대 수백 마리를 보고 겁을 먹지 않을 동물들은 그리 많지 않겠지…….’

두두두두두.

황소만 한 늑대 수백 마리가 들판을 가로질러 가자, 대지가 아침부터 진동했다. 그 소리에 놀라 도망치는 동물과 몬스터도 있었지만 오히려 흥분해서 접근하는 몬스터도 있었다.

‘블루 하이드로우다.’

들판에 누워 아침까지 잠을 자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 오른쪽 측면에서 빠르게 달려왔다.

늑대 무리의 후미를 공격하려 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선두에서 달리던 흰 늑대가 방향을 바꿔 원을 그리며 블루 하이드로우를 감싸 버렸다.

블루 하이드로우는 먼지를 일으키며 주변을 도는 수백의 늑대들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입을 벌리며 위협적으로 소리를 질러 댔다.

아우우우우!

흰 늑대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자, 블루 하이드로우와 신경전을 벌이며 공격할 기회를 포착하던 수백 마리의 늑대들이 몬스터를 향해 새까맣게 달려들었다.

캬아아아!

분노의 괴성을 지른 블루 하이드로우는 겁 없이 달려드는 늑대들을 갈가리 찢어 죽이기 위해 칼날처럼 날카롭고 긴 손톱을 펼쳐 풍차처럼 제자리에서 회전하려 했다.

그대로 놔두면 많은 늑대들이 희생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허공에서 뚝 떨어진 검이 몬스터의 의지를 꺾어 버렸다.

‘늑대와 싸우다 죽게 둘 수는 없지.’

도현이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비검술을 이용해 몬스터를 공격한 것이다.

검기로 무장한 도현의 검은 몬스터의 가슴을 뚫고 들어가 심장까지 파괴한 이후에야 그 힘이 서서히 약화됐다.

수많은 늑대들이 쓰러진 블루 하이드로우를 공격했지만, 그때는 이미 도현의 검에 생명이 다한 후였다.

타투를 통해 흡수되는 몬스터의 기운을 잠시 음미하던 도현은 옆을 바라봤다.

흰 늑대가 쳐다보고 있었다.

“너희들이 예뻐서 도와준 게 아니야, 내 나름의 이유가 있어 서지.”

도현은 죽은 블루 하이드로우의 곁으로 다가가 심장에 박힌 자신의 검을 회수했다.

“너희들, 누구와 싸우러 가는 길 같은데, 설마 나보고 도와 달라고 이러는 건 아니겠지? 형은 안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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