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 디 임팩트 15권 3화
그러나 도현은 얼마 후 그 말을 스스로 거두어야 했다. 들판이 끝나는 곳에 많은 동굴을 품은 바위산이 존재했는데, 그 일대에 블루 하이드로우가 집단으로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싸우려고 한 대상이 저놈들이었구나.”
도현은 저희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고 있는 스무 마리 정도 되는 블루 하이드로우들을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블루 하이드로우 한 마리를 잡으면 5미터 급 일반 하이드로우 네 마리를 잡은 정도의 내공이 한꺼번에 상승한다.
‘스무 마리면 괜찮지.’
도현은 흰 늑대를 돌아봤다.
흰 늑대는 동굴이 뚫려 있는 바위산 부근을 차지한 블루 하이드로우를 향해 끊임없는 적의를 내비치고 있었다.
‘저 동굴들이 늑대들의 보금자리였던 건가?’
바위산 하단에 여기저기 뚫려 있는 많은 동굴들을 훑어보던 도현은 수통을 꺼내 물을 마신 후 흰 늑대에게 말했다.
“영리하구나, 너. 내가 몬스터들을 잡고 돌아다니는 걸 눈치챈 거냐? 뭐, 아무튼 네 의도는 알겠다. 함께 힘을 합해서 저 몬스터들을 물리치자는 거지?”
도현은 흰 늑대 뒤로 보이는 수백 마리의 늑대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내게 맡겨 둬. 몬스터는 내가 잡겠다. 너희들은 저 녀석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아마 그래서 보금자리를 빼앗겼겠지만. 여기 있어.”
높이 자란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도현은 여러 짐승들과 몬스터들의 뼈가 쌓여 있는 바위산 아래 지역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아직 거리가 있어서인지 몬스터들은 도현의 등장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몬스터들에게 접근하던 도현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땅이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아우우우우!
수백 마리의 늑대들이 울부짖으며 수풀 속에서 일제히 튀어나와 몬스터들을 향해 짓쳐 들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건가.’
흰 늑대와 어느 정도 교감이 된다고 생각하고 홀로 몬스터들을 상대하려고 했는데, 늑대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허리에 찬 두 자루 검을 모두 뽑은 도현은 그를 추월해 앞서가는 늑대들의 몸을 살짝살짝 밟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선두를 탈환했다.
늑대들의 공격을 알아챈 스무 마리나 되는 블루 하이드로우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던 행동을 멈추고 거의 한동작으로 괴성을 질러 댔다.
캬아아아아!
스무 마리나 되는 거대 몬스터가 동시에 외치는 고함 소리는 천둥처럼 커서 늑대들의 사기를 단번에 죽여 버리는 효과가 있었다.
주춤거리는 늑대들을 향해 몬스터들이 소름 끼치는 살기를 뿜어내며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늑대들의 희생이 클 거야.’
도현이 아무리 강해도 몸은 하나였다. 그가 블루 하이드로우 무리 속으로 파고들어 빠르게 숫자를 줄이고 있었지만, 곳곳에서 늑대들이 죽어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바위산 아래는 늑대들의 사체와 붉은 피로 뒤덮였다.
콰아앙.
호신강기로 양쪽에서 덤비는 블루 하이드로우의 강력한 공격을 막은 도현은 호신강기를 거두며 검을 빛살처럼 빠르게 날렸다.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두 마리의 블루 하이드로우를 뛰어 넘은 도현은 날아오는 거대한 바위를 피하지 않고 호신강기로 튕겨 버렸다.
콰앙.
큰 충돌음과 함께 거대한 바위는 근처에서 늑대들을 학살하던 블루 하이드로우의 발등으로 떨어졌다.
우저저적.
발등의 뼈가 으스러진 블루 하이드로우는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다가 도현의 검에 목이 베였다.
크르르르.
자신의 목을 베고 지나친 도현을 쫓으려 양손을 허우적대던 블루 하이드로우는 한 걸음도 걷지 못하고 곧 숨이 끊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몬스터의 목을 베고 바람처럼 달리던 도현은 흰 늑대의 머리를 입으로 삼키려는 몬스터의 눈을 향해 장풍을 날렸다.
섬전처럼 빠르게 날아간 장풍이 고리눈을 한 블루 하이드로우의 눈동자에 꽂혔다.
퍼억.
캬아아아!
눈동자가 터진 블루 하이드로는 몸부림쳤고, 그 틈에 흰 늑대는 녀석의 손아귀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조심해.”
흰 늑대를 스쳐 지나간 도현은 눈동자를 다친 블루 하이드로우의 가슴에 삼각형 모양의 구멍을 내 준 뒤, 또 다른 몬스터를 찾아 비호처럼 몸을 날렸다.
쿠우웅.
마지막 몬스터를 제거한 도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바위산 아래 지역에 늑대들의 피가 강을 이루고 있었다. 살아남은 늑대들은 불과 수십여 마리밖에 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블루 하이드로우의 목숨을 끊은 건 도현, 그 혼자뿐이었다. 늑대들은 어떻게 보면 헛된 희생을 한 거나 다름없었다.
스무 마리나 되는 블루 하이드로우의 기운을 흡수해 단전의 내공이 적지 않게 상승한 도현은 기쁜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전투 도중 한 차례 살려 준 흰 늑대가 숨을 헐떡이며 늑대들의 시체 사이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배가 터져 내장이 반 이상 외부로 삐져나와 있었다. 흰 늑대는 죽어 가고 있었다.
“말이라도 제대로 통했다면 좋았을 텐데……. 나 혼자 잡는다니까.”
도현은 무거운 시선으로 흰 늑대의 상처를 살펴보다 천천히 흰 늑대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었다.
혀를 길게 내밀고 숨을 헐떡이던 흰 늑대는 도현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편안히 잠들어라. 네 보금자리를 빼앗은 몬스터들은 다 죽었으니까.”
흰 늑대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서서히 숨을 멈췄다.
대장 늑대의 죽음에 살아남은 늑대들이 슬픈 음색으로 울기 시작했다.
죽은 흰 늑대를 잠시 내려다보다던 도현은 몸 밖으로 나온 내장을 안으로 밀어 넣고, 양손으로 흰 늑대를 들어 올렸다.
황소만 한 크기의 흰 늑대라서 그 무게가 상당했다.
“이곳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전망이 좋은 곳에 묻어 주마.”
도현은 흰 늑대를 들고 바위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냥 두고 갈 수도 있었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했던 사이다. 사람 한 명 마주칠 수 없는 외로운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눈빛을 교환한 동물이었다.
수백 미터 높이의 바위산 정상에 오른 도현은 흙이 보이는 곳을 찾아서 땅을 파고 그 안에 흰 늑대를 묻어 주었다.
커다란 돌을 늑대 무덤 위에 올려놓은 도현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지도에 이곳을 추가해야겠어. 늑대산으로 하면 되겠지.”
가방에서 둘둘 말린 질긴 종이를 꺼낸 도현은 연필처럼 생긴 필기도구로 그동안 직접 거쳐 오며 스스로 제작한 지도에 바위산을 기록했다. 이름은 늑대산이었다.
물기에도 잘 지워지지 않는 필기도구로 이곳의 위치를 기록한 도현은 지도를 든 상태로 사방을 둘러봤다.
이 일대는 산이 거의 없어 늑대산이 그나마 근방을 가장 정확히 살펴볼 수 있는 위치였다.
“저건 뭐지?”
도현은 지도를 든 상태로 늑대산 뒤로 펼쳐진 한 지역에 시선을 집중했다.
늑대의 무덤을 만들어 줄 때는 신경을 그리 쓰지 못해 발견하지 못했지만, 지금 자세히 보니 아주 먼 곳에 성처럼 보이는 건축물이 존재했다.
회색빛 대지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나?”
사형 집행 감독관의 질문에 사로잡힌 세 명의 도둑들은 굳은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이들은 얼음탑과 플레온 가문이 빼앗은 베일 가문의 땅에 몰래 숨어 들어가 고대 왕궁 발굴지를 염탐하다가 잡힌 도둑들이었다.
베일 가문의 첩자가 아닌지 혹독한 고문을 받은 그들의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할 말이 없다면 바로 사형을 집행하겠다.”
사형 집행 감독관의 눈짓에 병사들이 도둑들의 목에 굵은 밧줄을 걸었다.
“이거 놔, 이 새끼들아! 그냥 목을 쳐 죽여!”
세 명 중 한 사내가 거칠게 반항하다 병사가 휘두른 메이스에 무릎 관절이 부서졌다.
“크으윽.”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를 질질 끌어서 방벽 끝으로 데리고 간 병사들은 뒤에서 지켜보는 사형 집행 감독관의 최후 명령을 기다렸다.
“플레온 가문의 브링틱 책임자 로스 경의 이름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는 세 명의 도둑들에게 교수형을 명한다. 시행하라!”
지시가 떨어지자 플레온 가문의 병사들은 세 명의 도둑들을 방벽 아래로 밀어 버렸다.
목에 밧줄이 걸린 그들은 양손이 뒤로 묶인 상태에서 추락하다가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커헉!”
목뼈가 부러져 고통 없이 바로 죽은 도둑도 있었고, 목이 조여 오는 극심한 통증과 숨을 쉴 수 없다는 공포감에 몸부림치다 서서히 숨을 거둔 도둑도 있었다.
방벽에 매달린 도둑들의 시신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짐브리오는 방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형 집행 감독관과 우연히 시선이 마주치자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이쪽은 피가 마를 날이 없군.”
마차에 같이 탄 어느 일꾼의 말에 짐브리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20여 대의 마차에 실린 곡물과 도축한 고기들을 플레온 가문에 납품하는 브링틱 상인의 일꾼으로 위장한 상태였다.
도둑의 시체가 매달린 방벽을 지나친 마차 행렬은 얼마 후 경비가 삼엄한 발굴지 정문에 도착했다.
“모두 다 마차에서 내리시오!”
정문의 병사들은 마차의 일꾼들을 모두 내리게 한 후, 싣고 온 짐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한두 번 온 것도 아닌데, 매번 불편하군.”
브링틱 상인이 더운 날씨에 짜증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
“내릴 짐도 많은데 서둘러 주시오.”
“잠자코 기다리시오. 어제도 도둑놈들이 물품 마차에 숨어들어 온 적이 있었으니까.”
20여 대의 마차에 실린 짐을 꼼꼼히 확인한 후에야, 정문 지휘관이 납품하러 온 상인의 마차를 통과시켜 줬다.
마차를 타고 방벽 안으로 들어온 짐브리오는 주변을 힐끔힐끔 곁눈질했다.
‘얼음탑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군. 발굴장에 있나?’
보이는 건 플레온 가문의 복장을 한 병사들뿐이었다.
마차는 길을 따라가다가 고대 왕궁 발굴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여러 건물들 앞에 멈춰 섰다. 얼음탑 마법사의 공격으로 파괴된 옛 베일 가문의 건물 대신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었다.
창고 건물 앞에 마차가 서자 기다리고 있던 플레온 가문의 보급품 담당자가 다가왔다.
“왜 이리 늦게 온 거요?”
“정문에서 마차를 수색한다고 시간을 끄는 바람에 지체됐소.”
“경비가 심해지고 있으니까, 다음엔 감안해서 오시오.”
“알겠소. 자, 어서 창고로 짐을 나르게!”
상인이 손짓을 하며 소리치자, 브링틱에서 함께 온 일꾼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마차의 짐들을 창고로 옮기기 시작했다.
짐브리오도 눈치를 보며 창고로 자루에 든 곡물들을 옮겼다.
“이봐, 자네!”
상인이 부르는 소리에 창고에서 나오던 짐브리오가 움찔했다.
“저 말입니까?”
“자네, 누구 소개로 왔다고 그랬지?”
“씨토라입니다.”
“그래, 그 녀석이었지.”
상인은 변장한 짐브리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힘이 좋아 보이는데, 앞으로 그 녀석 대신 자네가 우리 상단으로 나오게.”
“예? 제가요?”
짐브리오는 금화를 주고 매수한 씨토라를 떠올렸다. 녀석은 지금쯤 그가 준 금화를 도박장에서 탕진하고 있을 것이다. 짐브리오는 그를 도박장에서 매수했었다.
“싫은가?”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변장을 했지만 우람한 덩치까지 감출 수 없었던 짐브리오는 어수룩한 말투로 꾸벅 인사를 했다.
마차의 짐들이 거의 다 창고로 옮겨질 때쯤, 열심히 일을 하던 짐브리오가 배를 부여잡고 상인에게 뛰어왔다.
“저기 배가 너무 아픕니다. 볼일을 좀…….”
“참게.”
“하지만 쌀 것 같습니다요.”
짐브리오가 방귀를 뀌자 독한 냄새가 일대에 퍼졌다. 뒤로 한 발짝 물러난 상인과 플레온 가문의 보급품 담당자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독해도 너무 독했다.
“급한 것 같은데, 양해 좀 해 주시오.”
상인의 말에 플레온 가문의 보급품 담당자는 경비를 서던 병사를 불렀다.
“볼일을 볼 수 있게 뒤편 건물에 데려다 줘.”
“예!”
짐브리오는 병사를 따라 창고 뒤에 늘어서 있는 건물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깊은 웅덩이가 파인 여러 개의 방이 존재했는데, 병사들이 용변을 보는 장소였다.
짐브리오는 그중 한 곳으로 급히 들어갔다.
“볼일 보고 빨리 나오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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