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54화 (354/575)

[354] 디 임팩트 15권 4화

“거기 서 계실 겁니까? 냄새가 많이 날 텐데요.”

“닥치고 똥이나 싸!”

병사가 코를 막고 소리를 질렀다.

“알겠습니다. 똥이나 싸죠.”

질퍽한 소리와 함께 구린내가 건물 안에 진동했다.

“뭘 처먹어서 이리 냄새가 독해!”

“몸에 좋은 약초를 먹어서 그렇습니다요.”

짐브리오의 대답에 병사는 호기심이 일어났다.

“약초 때문이라고?”

“네, 체내에 있는 나쁜 것들이 똥에 섞여서 배출되는 거거든요. 건강에 아주 좋은 약초입니다. 근력도 강해지고, 특히 남자의 정력에도 참 좋습니다요.”

“그런 약초를 난 왜 못 들어 봤지?”

의심을 하는 그에게 짐브리오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병사님은 남부 대륙에서 오셨죠?”

“맞다.”

“외지인들은 브링틱에 대해 잘 모를 겁니다. 약초를 이용해 몬스터도 길들이는데, 그깟 사람 몸 좀 다스리지 못하겠습니까? 브링틱엔 은밀히 내려오는 그런 약초들이 꽤 됩니다. 소문나지 않는 것들이요.”

“흠, 네 말대로라면 상당히 비싼 약재 같은데, 너 같은 일꾼이 어떻게 그런 약초를 먹었지?”

병사는 여전히 반신반의했다.

“우연히 산에서 구한 겁니다. 팔기보다는 내 몸이 소중한 것 같아서 그냥 제가 먹었지요. 건강을 해치면 돈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렇지, 건강이 중요하지.”

“약초가 조금 남았는데 드릴까요?”

짐브리오의 은근한 말에 병사가 코웃음을 쳤다.

“얼마냐? 약초를 내게 팔려는 수작이지?”

“수작은 아니고 은화 한 개만 주십시오.”

“은화 한 개?”

짐브리오는 천으로 가린 좁은 방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은화 한 개면 거저나 다름없습니다. 제가 수작을 부리려면 기껏 은화 한 개라고 말하겠습니까? 금화를 달라고 하지.”

병사는 짐브리오가 내미는 조그마한 가죽 주머니를 보며 망설였다.

“네가 계속 먹지 왜 싸게 팔지?”

“똥 냄새 견디면서 말을 하는 당신이 대단해서 그러오. 더럽게 의심 많네.”

“뭐야? 이 자식이!”

“관두시오. 좋은 마음으로 말했더니, 그놈의 의심은.”

짐브리오가 터벅터벅 건물 밖으로 나가자 뒤따라 나온 병사가 재빨리 그를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여기 은화 한 개다. 어서 약초 내놔.”

짐브리오는 못 이기는 척하며 돈을 받고 손가락 길이의 약초를 건넸다.

“지금 씹어서 복용하시오. 이건 오늘이 지나면 뿌리가 다 말라서 약효가 사라지니까.”

“지금 먹으면 똥이 나오지 않을까? 난 아직 근무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걱정 마시오. 복용하면 내일 밤 늦게 효과가 나타날 테니까.”

짐브리오의 장담에 병사는 의심하지 않고 약초를 꼭꼭 씹어 삼켰다.

“굉장히 쓰군.”

“몸에 좋은 게 원래 쓴 법이오.”

“그래도 두 번은 못 먹겠어. 너무 써.”

혀에 감각이 사라진 병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 드셨소?”

병사가 약초를 다 먹은 걸 확인 한 짐브리오는 주변을 살피며 품 안에서 작은 보석 하나를 꺼냈다.

금화로 스무 개 가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보석이었다.

“당신은 운이 좋은 거요, 만약 약초를 먹지 않았다면 내가 죽여 버렸을 테니까.”

“뭐, 뭐라고?”

깜짝 놀란 병사가 검을 뽑으려 했다.

“내 얘기 끝까지 들어.”

짐브리오가 병사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차가운 비수의 감촉에 병사는 검 손잡이를 놓으며 두 손을 어깨높이로 올렸다.

“왜, 왜 이러는 거야.”

“네겐 두 가지 길이 있다. 소리를 치다가 내 칼에 죽거나, 아니면 조금 전 네가 삼킨 독초에 고통스럽게 죽어 가거나.”

독초라는 말에 병사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어쩐지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너무 썼다.

“모, 모두 죽는 길이잖아, 칼에 죽거나 독초에 죽거나. 살길을 알려 줘야지.”

병사가 더듬거리며 항변을 했다.

“살고 싶으면 내 손을 잡아.”

“뭐?”

병사는 고개를 살짝 숙여 짐브리오의 손을 봤다. 그의 커다란 손바닥 위에는 반짝이는 작은 보석이 놓여 있었다.

“네가 삼킨 독초는 나 아니면 해독할 사람이 없어. 몸속에 뱀이 돌아다니는 고통을 느끼며 서서히 말라 죽지. 플레온 가문의 치료사도, 얼음탑 마법사들도 당신을 구할 수가 없어. 오직, 나만이 네 생명을 구할 수 있지.”

“어, 어쩌란 말이야?”

“내 손을 잡아.”

병사는 침을 꿀꺽 삼키며 짐브리오와 악수하듯 손을 잡았다. 병사에게 보석을 넘겨준 짐브리오는 칼을 거두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계약금이다. 이곳의 정보를 모아서 내게 꾸준히 알려 준다면, 금화 백 개를 주도록 하지. 해독약도 주고.”

“배신자가 되라는 말인가!”

분노한 병사가 보석을 바닥에 팽개치려 했다.

“그 보석을 버려도 좋다. 또 다른 병사를 찾아 같은 제안을 하면 되니까. 그에게는 금화 2백 개를 제안하지, 그도 아니면 금화 3백 개를 제안하고. 누군가는 내 제안을 결국 받아들일 거야. 넌 무엇을 위해 희생할 텐가? 플레온 가문의 영광을 위해?”

냉정한 짐브리오의 시선에 병사는 보석을 던지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개인적으로 난 너처럼 충성심이 높은 자를 존경한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충성심이 높은 자를 죽일 수도 있어, 거리낌 없이.”

짐브리오는 말을 하며 뒤돌아섰다.

순찰을 도는 일단의 병사들이 골목에 서 있는 그들을 수상히 여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거기 뭔가?”

중무장한 병사들이 다가오자 독초를 삼킨 병사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에 반해 짐브리오의 눈동자는 바위처럼 묵직하게 자리를 잡고 흔들림이 없었다.

“묻지 않나?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순찰을 도는 병사들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짐브리오의 손이 허리춤에 감춰 둔 작은 비수들로 향하는 순간, 독초를 삼킨 병사가 웃으며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조장님.”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가까이 다가온 순찰조장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병사와 짐브리오를 쏘아봤다. 순찰조장은 보급품 창고를 지키는 병사를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은 상인과 함께 들어온 일꾼인데, 배가 아프다고 해서 그곳에 같이 다녀오는 길입니다.”

“그런데 왜 이 골목에 있지? 볼일을 봤으면 바로 가야지.”

“브링틱 여자에 관해 궁금한 게 있어서요. 몇 가지 물어보고 있었습니다, 헤헤.”

독초를 삼킨 병사의 대답에 순찰조 병사들이 저마다 낮게 웃음을 흘렸다.

“브링틱 여자들이 몸매가 좋긴 하지.”

“그녀들이 또 언제 오지?”

“올 때가 되지 않았나?”

고대 도시에 들어와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술과 웃음을 파는 여자들이 있었다. 그녀들 이야기에 병사들의 정신이 팔려 있자, 순찰조장은 잠시 인상을 쓰다가 짐브리오의 위아래를 살폈다.

“상인을 따라온 일꾼이라고?”

“예, 갑자기 똥이 마려워서요.”

어깨를 잔뜩 움츠린 짐브리오가 어수룩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한동안 짐브리오를 노려보던 순찰조장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부하들을 이끌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보이지 않자 독을 삼킨 병사가 짐브리오에게 말했다.

“내게 배신의 대가로 금화 1백 개는 적소. 금화 2백 개를 주시오. 그럼 당신 말대로 이곳의 정보를 빼서 당신에게 넘겨주겠소.”

“뭘 좀 아는 친구군.”

짐브리오가 씨익 웃으며 병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왜 이리 늦게 오는 거야!”

짐브리오 때문에 기다리고 있던 상인이 화를 냈다.

“죄송합니다. 배가 계속 아파서요.”

“어서 마차에 타!”

“예.”

짐브리오는 창고 앞에 늘어선 마차들 중 맨 뒤의 마차에 올라탔다. 점점 멀어지는 보급품 창고와 그에게 매수된 병사를 지그시 바라보던 짐브리오는 가볍게 콧노래를 불렀다.

‘이제 세 명째인가?’

지난 며칠간 로나가 한 명을 매수했고, 그가 두 명을 매수했다. 이 정도면 얼음탑과 플레온 가문이 점령한 고대 왕궁 발굴지 정보가 제법 정확하게 들어올 것이다.

‘얼음탑주가 플레온 가문에 거인의 섬 이야기를 했을까?’

덜컹거리는 마차에서 짐브리오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얼음탑을 도와 발굴을 대신 하는 플레온 가문의 행동을 봤을 때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단순히 고대 왕궁의 권리를 반씩 나누는 선에서 얼음탑주가 그들을 끌어들였을지도 몰라.’

아직 확실한 건 없었다.

그 정도 정보를 확인하려면 플레온 가문의 브링틱 책임자 로스를 통해야 될 것 같았다.

‘얼음탑 놈들도 문제지만, 거인들도 문제야. 론의 지팡이를 찾는다고 해서 우리의 힘으로 과연 불사의 거인들을 처리할 수 있을까?’

동료들 앞에서는 걱정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지만, 사실 두려웠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끝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게 두려웠다.

그로 인해 마주칠 로나의 죽음이 두려웠고, 최선을 다해 준 도현에게 미안해서 두려웠다.

‘한 번만 도와주쇼. 씨드 좀 찾읍시다.’

쨍쨍 내려쬐는 태양을 보며 일곱 신에게 기도를 하던 그는 마차에서 내렸다.

들어올 때처럼 밖으로 나가는 마차 안을 정문의 병사들이 수색하고 있었다.

일꾼들 틈에 서서 병사들의 수색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짐브리오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정문을 통해 몇 필의 말이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는데, 그 위에 탄 사람 중 한 명은 크샤코 가문의 차남이자 얼음탑의 마법사 카샨이었다.

그러나 변장까지 한 짐브리오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여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 한 이유는 카샨 때문이 아니었다.

카샨의 뒤에서 여유로운 얼굴로 말을 모는 두 명의 쌍둥이 노인들 때문이었다.

‘저들이 왜 여기에!’

숙였던 고개를 올려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짐브리오의 얼굴은 딱딱하게 변해 있었다.

“뭐 하는가? 안 탈 거야?”

동료 일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짐브리오는 수색이 끝난 마차에 올라탔고, 마차들은 꼬리를 물며 정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난 여기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만나 보고 가야겠소.”

마차가 방벽에서 제법 멀어지자 짐브리오는 동료 일꾼에게 말을 하고는 마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뒤를 한번 살핀 짐브리오는 고대 도시 동쪽을 향해 바삐 걸어갔다.

신전 발굴지는 동쪽 끝에 있었다.

“짐브리오!”

로나가 짐브리오를 알아보고는 낮게 불렀다.

“왜 그리 급하게 가요?”

“큰일 났다.”

“무슨 일인데요?”

역시 변장을 하고 있는 로나가 짐브리오 곁에 서서 조용히 물었다.

“얼음탑주만큼 무서운 자들이 나타났어.”

‘여긴 몬스터가 없군.’

원시림을 통과하며 사냥할 만한 몬스터들을 찾던 도현은 쥐 죽은 듯 고요한 원시림의 상황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이드로우는커녕 자잘한 하급 몬스터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어제 늑대산 정상에서 성의 형태를 띤 건축물을 목격한 도현은 몬스터 사냥을 하며 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몬스터들이 자취를 감춰 버린 것이다.

발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갈까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그가 투자한 시간이 적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곳은 확인해 봐야겠지.’

미개척 지역에서 사냥을 하며 처음으로 발견한 건축물이었다. 고대 유적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늘의 해가 많이 기울었을 무렵, 도현은 원시림에서 벗어나 황무지 같은 회색빛 대지에 도착했다.

“땅에 문제가 있는 건가?”

등 뒤로는 수풀이 우거졌는데, 바로 앞에서부터는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황량한 모습이었다.

휘이이잉.

바람에 실려 온 회색빛 대지의 먼지들이 도현을 향해 날아왔다.

‘원시림 속에 마치 사막이 들어와 있는 것 같아.’

목에 두르고 있던 천으로 코와 입을 가린 도현은 회색빛 대지에 발을 디뎠다.

땅은 단단하지 않고 푸석푸석했다. 그가 걸을 때마다 화산재 같은 먼지들이 바람을 타고 허공 높이 떠올랐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자연환경이 바뀌다니…….’

먼지바람을 뚫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던 도현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많은 뼈들을 발견했다.

‘이상하군. 이것들은 몬스터 뼈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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