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56화 (356/575)

[356] 디 임팩트 15권 6화

도현의 머릿속으로 온갖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만, 단 한 가지도 명쾌한 답을 낼 수가 없었다. 그저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몬스터로 변한 인간을 죽음의 공간으로 보내 주는 것뿐이었다.

도현은 끝까지 죽이지 못하고 살려 두었던 작은 어린아이 몬스터를 향해 눈을 질끈 감고 검을 날렸다.

도현의 다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던 어린아이 몬스터가 불길에 휩싸여 사라져 갔다.

얼마나 많이 베었는지 셀 수도 없었다. 어느덧 새벽이 지나고 날이 새려 했다.

밤새워 휘두른 그의 검 손잡이는 땀과 피로 젖어 있었다. 강철처럼 단련된 도현의 손바닥이 터져서 피가 배어 나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만큼 인간 몬스터들과의 긴 싸움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후우, 후우.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자. 아직도 많이 남았고, 저 뒤에 내성 쪽 녀석들까지 상대하려면 체력 관리를 잘해야 돼.’

저 멀리 회색빛 대지 위에 해가 뜨자, 도현은 호신강기를 펼친 상태에서 앞으로 치고 나갔다.

콰콰쾅쾅.

앞을 가로막는 인간 몬스터들은 팔다리가 꺾인 채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새카맣게 몰려 있군.’

도현의 생각보다도 더 많은 인간 몬스터들이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다.

몬스터 사냥을 통해 내공을 상승시킨 도현의 호신강기는 한층 강화된 상태였지만, 그만큼 내공 소모가 많아서 여전히 오래 지속시킬 수는 없었다. 더욱이 신법을 발휘하며 호신강기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약간의 집중력만 흐트러져도 호신강기가 풀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 몬스터들의 포위를 거의 뚫었을 무렵, 도현은 호신강기를 풀고 양손의 검을 벼락처럼 사방으로 휘둘렀다.

수십 마리의 인간 몬스터들이 팔다리를 잃거나 목이 베여 잠시 동안 앞에 빈 공간이 생겼다. 도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람처럼 이동해 마침내 인간 몬스터의 포위망을 뚫고 나왔다.

뒤에 인간 몬스터들이 계속 쫓아오고 있었지만, 도현을 따라잡을 정도로 빠르진 못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몸을 피하던 도현은 얼마 후 회색빛 대지가 끝나고 다시 원시림이 시작되는 지점에 도착했다.

‘따라오지 않는데?’

원시림 안으로 들어간 도현은 인간 몬스터들이 원시림과 회색빛 대지 경계에서 머뭇거리다가 되돌아가는 모습에 저들의 특성을 파악했다.

‘회색빛 대지 밖으로는 못 나오나 보군. 왜 그런 거지?’

도현은 의문을 품었지만 그 이유는 쉽게 짐작하기 어려웠다.

“후우, 쉽지 않은 싸움이었어.”

어제 원시림을 통과하다가 발견한 작은 샘에서 목을 축인 도현은 등에 멘 가방을 내려놓았다.

가방 이곳저곳이 구멍 나고 약간 찢겨져 있었다. 인간 몬스터의 솜씨였다.

“끄응.”

가죽 갑옷을 벗은 도현은 가방에서 흰 천을 꺼내 물에 적신 후 어깨와 옆구리에 난 상처를 깨끗이 씻어 냈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격렬한 싸움을 밤새도록 하다 보니 그도 약간의 빈틈을 보였었고, 그때 부상을 입었다.

깊지는 않았지만 상처가 매우 아리고 퉁퉁 부어 있었다.

가방에서 외상에 좋은 약을 꺼낸 도현은 몸에 바른 후 천으로 휘감았다.

“하아.”

긴 심호흡을 하며 도현은 샘 옆에 큰대자로 드러누웠다.

밤새 얼마나 많은 인간 몬스터를 잡았는지 단전의 내공이 눈에 띄게 상승해 있었다. 이대로 잠을 자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지만,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심공으로 몸을 풀어 주고 체력을 보충했다.

단순히 잠을 몇 시간 잔다고 해서 간밤에 엄청나게 쏟아부은 체력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건 어려웠다. 이럴 땐 호심공이 필요했다.

네 시간 정도 호심공을 펼친 도현은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자리에 앉았다.

가방에서 육포를 꺼내 먹은 그는 나무 그늘에 누워 두 눈을 감았다. 수면을 취한 뒤 인간 몬스터들과 다시 싸우러 갈 생각이었다.

‘저 내성엔 뭐가 있는 걸까? 그 안에도 몬스터가 있는 걸까?’

호기심에 성을 찾아온 도현은 뜻밖에 마주한 수많은 인간 몬스터들의 존재가 석연치 않았다.

‘회색빛 대지에서 나오지 못하는 인간 몬스터라……. 단순한 몬스터 같지는 않아.’

돈조르니

“마무리하자.”

도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마리의 인간 몬스터들이 날렵한 움직임으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허공에 한 줄기 검광이 번뜩이자 이들의 목이 동시에 허공으로 솟구쳤다.

화르르르.

목이 베인 인간 몬스터들은 불길에 휩싸여 재로 변해 사라졌다.

“이쪽은 이제 끝난 건가?”

폐허가 된 성벽 일대에서 인간 몬스터들을 상대한 도현은 땅에 검을 꽂고 수통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지난 3일간 인간 몬스터들을 베고 또 베었다. 몸에 상처가 하나둘 늘어 갔고, 손바닥은 갈라져 휘감은 천에선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죽인 인간 몬스터 수가 4천일지 5천일지 세어 보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단전의 내공은 만족할 만큼 상승해 있었다.

“술이 없는 게 아쉽군.”

땅에 꽂아 둔 검을 다시 뽑은 도현은 천천히 몸을 돌려 폐허가 된 성벽을 지나쳤다.

이제 1막이 끝났을 뿐이다.

내성으로 가는 길 주변에 포진한 수천 마리의 인간 몬스터들이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현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인간 몬스터들을 깊이 응시하다가 검을 거두고 뒷걸음질 쳤다.

“내일 다시 보도록 하지.”

무리할 필요는 없다. 오늘은 싸울 만큼 싸웠다. 몸이 회복할 시간을 줘야 했다.

원시림으로 돌아온 도현은 가방에서 작은 숫돌을 꺼내 날이 많이 무뎌진 검날을 정성스레 세웠다.

짐브리오가 용병 시장에서 꽤 고가의 돈을 주고 구입해 온 두 자루의 외날 검은, 도현이 이제껏 이계에서 사용한 검보다 탄성과 강도가 더 뛰어났다. 아마 그저 그런 검이었다면 수천 마리의 인간 몬스터를 잡으면서 부러지거나 검날이 크게 손상됐을 것이다.

스으윽. 스으윽.

숫돌과 검날 사이에 물을 조금씩 끼얹으며 고요한 눈빛으로 날을 세운 도현은 손바닥만 한 나뭇잎을 검날 위에 떨어트렸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떨어지던 나뭇잎은 예리하게 날이 선 검날 위에서 소리 없이 잘렸다.

“이만하면 됐어.”

두 자루 검을 모두 손본 도현은 원시림을 뒤져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오랜만에 리타의 향신료를 이용해 맛있는 고기로 배를 채운 도현은 하루를 푹 쉰 뒤, 성으로 향했다.

콰앙!

도현의 대력금강수에 얼굴이 박살 난 인간 몬스터가 뒤로 튕겨져 나가며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도현은 인간 몬스터가 떨어트린 자신의 검을 재빨리 회수해 옆으로 휘둘렀다.

서너 마리의 몬스터들이 불길에 휩싸이며 재로 변해 갔다.

‘혀가 채찍처럼 늘어나다니.’

내성으로 가는 길에 몰려 있는 수천 마리의 인간 몬스터들 중 일부는 혀를 무기처럼 사용했다. 이를 전혀 예상치 못한 도현은 혼전을 벌이던 중 검 한 자루를 빼앗기고 말았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 대력금강수로 검을 빼앗아간 녀석의 얼굴을 날려 버린 것이다.

쇄애애액.

암기처럼 접근하는 혀를 손으로 휘감은 도현이 안으로 끌어당겼다. 동료 몬스터의 뒤에 숨어서 혀를 날린 녀석이 힘없이 도현에게 끌려왔다.

번쩍.

목이 잘린 녀석이 불꽃을 일으키며 타올랐다.

도현은 바위에 뛰어오르며 사방으로 검을 부드럽게 휘둘렀다. 검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실린 힘은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도현을 쫓아 바위로 뛰어오르던 스무 마리의 인간 몬스터들이 일제히 불타오르며 땅으로 추락했다.

커다란 바위 위에서 인간 몬스터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도현은 주변을 훑어봤다. 수천의 인간 몬스터들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도현을 죽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정말 지옥이 따로 없군.’

살의에 찬 얼굴로 몸부림치는 모습이 꼭 지옥에서 허우적대는 인간들과 비슷해 보였다.

‘지옥에서 해방시켜 주지.’

도현은 냉정한 눈빛으로 끝없이 덤벼드는 인간 몬스터들의 목을 사정없이 베고 또 베었다.

콰앙.

도현의 팔꿈치에 목뼈가 부러진 인간 몬스터가 바위 위에서 미끄러지다가 다른 몬스터들에게 머리를 짓밟혔다.

죽은 인간 몬스터의 몸에서 발화가 일어났고 거센 불길은 순간적으로 몬스터의 몸을 재로 만들었지만, 주변에 밀집되어 있는 다른 인간 몬스터들은 그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도현의 빈틈만을 노리며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인간 몬스터가 독하게 공격하면 공격할수록 도현의 손 속은 더욱 매섭고 차가워졌다. 등 뒤에 천 길 낭떠러지를 두고 싸우는 사람처럼 도현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그 안에 들어오는 인간 몬스터들을 모조리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루 종일 싸움을 벌인 도현은 체력 안배에 신경 쓰며 뒤로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다음 날도 똑같은 패턴으로 싸움을 지속하고 물러난 도현은 사흘째 되는 날, 내성으로 가는 길을 점령한 인간 몬스터들을 거의 다 제거할 수 있었다.

‘이제 백 마리 정도 남은 건가?’

내성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마지막 인간 몬스터 무리를 보던 도현은 손에 쥔 검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내성 근처에 다다르기까지 거의 일주일, 셀 수 없이 많은 인간 몬스터를 잡으며 여기까지 왔다.

몸 곳곳에 상처를 훈장처럼 단 도현은 상처의 쓰라림을 참으며 마지막 인간 몬스터 무리 속으로 몸을 날렸다.

격렬하게 도현을 공격하던 인간 몬스터들은 하나둘 재로 변해 갔다.

‘구십팔, 구십구, 백…… 백하나!’

마지막 인간 몬스터의 목을 쾌검으로 날려 버린 도현은 검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한동안 멈춰 서 있다가 서서히 검을 회수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며칠 전만 해도 가득했던 그 많았던 인간 몬스터들이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질릴 정도로 많은 수였지만 하루하루 그 수를 줄이다 보니 결국은 모두 제거할 수 있었다.

긴 전투를 벌인 도현은 적막감이 감도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내성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성안에 몬스터가 또 있을까?’

긴장을 풀지 않은 도현은 2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접근해 갔다.

성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는데, 수십 미터 높이의 성벽과 그보다 높은 여러 첨탑들이 하늘 높이 치솟은 웅장한 모습이었다.

언덕 위로 올라가며 성을 주시하던 도현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칙칙한 검은색 성문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듯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성문을?’

도현의 시선이 성문에 집중됐을 때,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

성문을 통해 수백 필의 기마병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기마병들이 아니었다. 마상의 병사들은 녹이 잔뜩 슨 갑옷과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고, 투구 속 얼굴은 도현이 앞서 죽인 인간 몬스터들처럼 피부가 벗겨져 살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 밑에 말 역시 몬스터와 다를 바 없었다. 늑대처럼 이빨이 사납게 돋아나 있었고, 이마에는 코뿔소처럼 날카로운 뿔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이번엔 몬스터 기마병인가?”

도현은 굳어진 표정으로 언덕을 빠르게 내려와 전투준비를 했다.

순식간에 언덕을 몰아쳐 내려온 기마 몬스터들은 해일처럼 밀려와 도현을 그대로 깔아뭉개려 했다.

그러나 그 전에 도현의 황금 검이 먼저 그들을 짓밟았다.

콰콰쾅쾅.

연거푸 펼친 강력한 황금 검이 전열을 유지하며 달려오던 기마 몬스터들을 폭풍처럼 강타했다.

종잇장처럼 찢긴 말 몬스터와 마상의 병사 몬스터 들이 허공 높이 떠오르며 불길에 휩싸였다.

투투툭둑 철그렁.

기마 몬스터가 사라진 자리에 그들이 착용했던 녹슨 갑옷과 병장기 들이 우수수 처박혔다.

‘이들의 기운은 조금 더 강하군.’

기마 몬스터들이 죽으며 남긴 기운을 흡수한 도현은 옆으로 몸을 굴렸다. 마상에서 집어 던진 기마 몬스터들의 창 수십 개가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퍼버버벅퍽퍽.

수십 개의 녹슨 창이 땅 깊숙이 박히며 도현이 있던 자리를 벌집으로 만들어 놨다.

도현이 몸을 바로 세웠을 때, 가까이 다가온 기마 몬스터 수십 기가 그대로 그를 짓밟으려 했다.

순간적으로 호신강기를 펼친 도현과 수십 기의 기마 몬스터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앙. 쾅쾅. 콰콰쾅쾅.

전속력으로 돌진해 온 기마 몬스터들은 큰 폭음을 남기며 주변으로 튕겨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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