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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57화 (357/575)

[357] 디 임팩트 15권 7화

호신강기를 거둔 도현은 땅에 처박힌 기마 몬스터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투구 사이의 목이 베인 병사 몬스터들은 몸을 떨며 불타올라 재로 변해 갔고, 말 몬스터 역시 목이 잘려 한 줌 재로 변해 버렸다.

도현은 뒤를 돌아보다가 허리를 숙이며 검을 옆으로 그었다. 기마 몬스터의 검을 피한 도현이 말 몬스터의 두 다리를 잘라 버린 것이다.

앞으로 고꾸라진 기마 몬스터의 목숨을 취한 도현은 몬스터가 떨어트린 녹슨 창을 발로 걷어찼다.

기세 좋게 달려들던 기마 몬스터가 얼굴에 창을 맞고 그대로 불길에 휩싸였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도현은 혼란스러웠다.

지난 일주일간 인간 몬스터들을 없애며 느꼈던 마음속 의구심은 기마 몬스터들로 인해 더욱 커지고 있었다.

무장한 기마병들도 원래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몬스터다.

도현은 위에서 공격하는 병사 몬스터를 밑으로 끌어 내려 목을 베어 버린 뒤, 홀로 남은 말 몬스터까지 목을 잘랐다. 주인 잃은 말 몬스터는 그 혼자서도 도현을 공격했기 때문에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수백 필의 기마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굳은 얼굴로 전투를 벌이던 도현은 성에서 방패와 검을 든 병사 몬스터들이  꾸역꾸역 걸어 나오자 뒤로 물러날 준비를 했다.

오전부터 긴 전투를 벌인 상태에서 성안의 몬스터들까지 전부 상대하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안에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도현은 검에 내공을 가득 주입했다. 눈부신 푸른 광채가 그의 검신에 어렸다.

“너희들은 어떤 존재인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중얼거린 도현은 앞을 가로막은 기마 몬스터들에게 검을 무겁게 휘둘렀다.

콰앙.

검에 맞은 기마 몬스터들은 몸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포위망을 벗어난 도현은 고개를 돌려 언덕 위의 성을 힐끔 쳐다봤다.

그와 싸우던 몬스터들이 성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도현은 회색빛 대지를 벗어나 그의 보금자리처럼 변한 원시림의 샘으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기마 몬스터가 착용했던 녹슨 철갑이 들려 있었다. 후퇴하며 챙겨 온 물건이다.

긴 세월의 흔적이 담긴 녹슨 철갑을 한동안 응시하던 도현은 가슴 부위의 녹을 제거했다. 비상하는 독수리의 문장이 철판 깊이 낙인되어 있었다.

도현은 이 문장을 본 기억이 있었다. 폐허로 변한 성벽의 벽돌에서였다.

기마 몬스터들은 원래 성에 소속된 병력이었던 것이다.

거인의 섬이 있는 망각의 숲에서 악령에 귀속돼 숲의 노예로 변한 해골 병사들을 본 적이 있다. 찢어진 깃발을 들고 정처 없이 떠도는 그들의 모습과 오늘 상대한 성의 병사 몬스터들이 겹쳐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녹슨 철갑의 가슴 부위를 내려다보는 도현의 눈빛이 깊어졌다.

칼라치와 이디언, 헬구스는 브링틱 성내에 있는 넓은 집에 머물고 있었다. 카샨이 마련해 준 이곳은 높은 나무와 담이 내부를 가려 주는 저택으로, 크샤코 가문의 소유였다.

어두운 밤, 카샨은 무거운 얼굴로 그 집을 방문했다. 열흘 만이었다.

정원에서 땀을 흘리며 방패술을 수련하던 칼라치는 거대한 강철 방패를 땅에 내려놓았다.

“얼굴이 어둡군.”

“밤이 아닌가?”

“낮이라 해도 당신 얼굴은 지금처럼 어두웠을 것 같군. 무슨 일이지?”

칼라치는 정원에 아무렇게나 앉으며 서 있는 카샨을 올려다봤다.

안대를 한 칼라치와 잠시 시선을 주고받던 카샨은 그처럼 정원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음탑주의 친구들이 모두 도착했어.”

“생각보다 더 강자들인가 보군. 표정이 어두운 걸 보니.”

“누군지 알면 당신도 나만큼 표정이 어둡게 될 거야.”

카샨은 멀리서 지켜보는 시녀에게 손짓을 했다.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시녀가 쪼르르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그녀는 크샤코 가문의 사람으로, 카샨이 내어 준 이 집의 시녀였다. 당연히 그녀에게 카샨은 거역할 수 없는 신분의 높은 사람이었다.

“술을 가져오너라.”

“예.”

시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카샨이 고개를 돌려 칼라치를 봤다.

“자네, 스므차와 싸워 본 적이 있다고 했지?”

스므차 이야기가 나오자 칼라치의 눈빛이 강해졌다.

“그런 적이 있지. 난 스므차 성주에게 반기를 든 구역장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건 왜 묻지?”

“친위대장은 죽였지만, 결국 그에게 패했다고 했지?”

“본론을 말해. 설마 얼음탑주가 기다리던 친구가 스므차인가? 그가 온 건가?”

칼라치의 목소리에 어느새 힘이 들어가 있었다.

술집 여자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아버지는 스므차다. 임신 사실을 알고도 어머니를 매몰차게 버린 그에게, 비참하게 죽은 어머니의 한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진정해, 그는 아니니까. 내가 스므차 얘기를 꺼낸 건 과거에 그자에게 밀리지 않고 싸웠다고 소문이 난 쌍둥이 검객 때문이니까.”

“쌍둥이 검객이라면…… 침묵의 기사단 출신의 세티앙과 루시앙이로군.”

칼라치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자네도 아는군. 맞아 그들이야. 얼마 전 내가 항구에서 그들을 데리고 왔지.”

그들은 스므차처럼 수십 년 전 대륙을 뒤흔들었던 강자들이다.

“나도 실제로 본 건 처음이네. 탑주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를 뻔했지.”

카샨은 시녀가 술과 잔을 쟁반에 받치고 오자 잠시 말을 멈추었다. 시녀가 술을 놓고 조용히 물러가자 그때서야 카샨이 말을 이었다.

“안 좋은 소식은 그뿐만이 아니야. 이틀 전엔 내가 누구를 마중 나갔었는지 아나?”

“누구지?”

칼라치는 잔에 술을 채우며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40년 전, 마법진을 실험한다며 작은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린 위인이 있어. 마법학의 대가 율리비어스. 그가 어두운 망토를 휘날리며 브링틱 항구에 발을 디뎠지. 탑주가 악마를 불러들였어.”

카샨이 두려워한 자는 세티앙과 루시앙이 아니었다. 표정이 없는 노인, 율리비어스였던 것이다.

“난 그를 잘 모르겠군.”

“모를 수도 있겠지, 그가 벌인 엉뚱하고도 위험천만한 일들은 워낙 오래전 일어났으니까. 겉으로 쉽게 드러난 일도 없었고. 더구나 마법에 관심 없는 자들이 알 만한 인물은 아니야.”

카샨은 술을 한 모금하며 차가운 눈빛을 발산했다.

“하지만 이디언에게 물어보게,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아마 그녀라면 마법학에 대가 율리비어스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을 거야. 그는 앞서 말한 세티앙과 루시앙보다 더 위험한 자야.”

“겁에 질려 있군.”

“말조심해. 그는 얼음탑주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인물이니까. 내가 조금 긴장한다고 해서 전혀 창피할 일이 아니야.”

술잔을 거칠게 비우는 카샨을 지그시 응시하던 칼라치는 그의 빈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야비하고 속내를 숨기는 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솔직한 구석도 있군. 그래, 그들 세 명이 전부인가?”

“탑주가 다른 말이 없는 걸 보면, 그들이 전부인 것 같아.”

“그렇군. 검객 두 명과 마법학의 대가라는 자 그리고 얼음탑주. 확실히 쉽지는 않겠어. 포기할 텐가?”

“포기?”

카샨은 낮게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천만에. 뜬구름 같은 씨드 이야기도 아니고, 내 눈앞에 씨드가 바로 보이는데 당신 같으면 포기하겠나?”

적발 거한 칼라치는 카샨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술잔을 기울였다.

“포기하긴 힘들겠지.”

“차라리 잘됐어. 탑주와 그자들이 힘을 합해 거인들을 처리해 줄 테니까. 우리는 그 뒤를 노리면 돼.”

카샨은 상대하기 버거운 인물들이 나타났지만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발굴은 어떻게 돼 가나?”

“많이 진척됐어. 조만간 고대 왕궁의 옛 모습이 햇빛 아래 드러날 거야. 문제는 과연 탑주의 예상대로 론의 지팡이가 그곳에 있는가 하는 거야.”

“만약 없으면?”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지. 거인을 넘더라도 씨드를 보호하는 마법 결계를 열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으니까. 우리를 위해서라도 론의 지팡이가 있는 게 좋아.”

카샨은 술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내로 수하를 보내겠네. 거처를 용병 시장으로 옮기는 게 좋겠어. 론의 지팡이를 찾게 되면 탑주의 행보가 빨라질 거야. 필요할 때 만나려면 브링틱 성보다는 그곳이 낫겠지.”

카샨이 사라지자 이디언이 집안에서 걸어 나와 칼라치 옆에 앉았다.

“무슨 말을 하던가요?”

“브링틱에 온 탑주의 친구들이 누군지 알려 주고 갔소.”

“그래요?”

이디언의 눈이 반짝였다.

“누군데요?”

“침묵의 기사단 출신의 쌍둥이 검객 세티앙과 루시앙.”

그의 대답에 이디언의 눈빛이 흔들렸다.

“예상보다 더한 강자들이네요. 탑주가 그들을 어떻게 알고서…….”

세티앙과 루시앙은 오래전, 몰락한 왕실을 마지막까지 지키다 사라진 기사들이다. 그들의 실력이 하도 대단해서 왕궁을 둘러싼 수만의 적국 병사들이 며칠이 지나도록 왕궁을 점령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었다.

혼자서도 강하지만 둘이 뭉치면 대륙의 그 어떤 강자들이라도 두렵지 않다던 그들, 그들이 탑주와 손을 잡은 것이다.

“또 한 명 있소.”

칼라치는 술병에 남은 마지막 술을 비우고 말했다.

“마법학의 대가 율리비어스라고 하던데…… 당신, 혹시 아시오?”

“누구라고요? 율리비어스?”

이디언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카샨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그자 이름만 나오면 다들 겁에 질리는군.”

“그는 마법의 천재예요. 너무 뛰어나서 기존의 마법을 파괴하고 왜곡하는 것을 즐겼죠. 그는 50년 전에 이미 대륙에서 악명을 떨쳤던 마법사예요. 그의 마법 실험에 죽은 사람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요. 심지어 작은 도시를 하루아침에 마법진으로 멸망시킨 사람이에요. 마법을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자, 그가 율리비어스인 거죠. 작은 도시를 없앤 사건 때문에 쫓기다 수십 년 전 사라진 마법사인데, 그가 여기에 다시 나타나다니.”

숨도 쉬지 않고 설명할 만큼 이디언은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래도 방패에 머리가 쪼개지면 죽겠지.”

“농담할 때가 아니에요. 세티앙과 루시앙, 거기에다 율리비어스까지…… 모두 내가 예상한 것 이상의 강자들이에요.”

“날 보시오, 이디언.”

칼라치는 앉은 자세에서 수심에 찬 이디언의 어깨를 살며시 붙잡았다.

“난 말이오, 지금이라도 당신이 이 일에서 빠졌으면 좋겠소.”

“그럴 수 없다고 말했잖아요. 당신에겐 내가 필요해요.”

“아주 위험한 상황이오. 카샨은 내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다고 호기롭게 외치고 갔지만, 난 그의 눈 깊은 곳에서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을 읽었소.”

“칼라치.”

“당신을 이런 위험한 상황 속에서 계속 끌고 가는 게 내가 기쁨이 되겠소? 고통일 뿐이오. 그러니 내 말대로 이곳을 떠나시오.”

진지한 칼라치의 눈빛에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던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살 만큼 살았어요. 당신과 함께하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아요. 우린 반드시 씨드를 차지할 거예요!”

맹세하듯 말한 그녀는 집 안으로 쌩하니 들어가다 마주 걸어오는 헬구스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똑바로 보고 다녀요!”

“내가 부딪혔나?”

“뭐라고요?”

이글거리는 그녀의 눈빛과 날 서고 뾰족한 목소리에 흠칫한 헬구스는 뒷걸음질 쳤다.

“왜 이러는 거야, 이디언. 내가 뭘 잘못했다고.”

“조심해요.”

“조심하라면 조심하지, 허 참.”

냉기를 풀풀 흘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응시하던 그는 정원에 앉아 있는 칼라치에게 다가갔다.

“왜 저러는 건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데?”

“카샨이 왔다 갔어.”

칼라치는 조금 전 들은 이야기들을 말해 주었다.

“흠, 무서운 자들이 왔군. 그들 정도면 거인들을 상대할 수 있으려나?”

고개를 갸웃한 뚱뚱한 헬구스는 뒷짐을 진 상태로, 앉아 있는 칼라치의 주위를 천천히 맴돌았다.

“어렵군, 어려워. 탑주와 그자들이 거인과 싸우다 만신창이가 되지 않는 한, 무슨 수로 그 막강한 자들을 없앨까? 카샨이 크샤코 가문의 힘을 빌린다 해도 한계가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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