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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62화 (362/575)

[362] 디 임팩트 15권 12화

“예, 그러니까 장난을 쳤는데 제 몸을 이렇게 움켜쥐어서는…….”

“그만하게,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어린아이를 때려서야 쓰나.”

한심하다는 듯 말하는 어베인을 향해 짐브리오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대장, 어린아이라뇨. 리타하고 저 몇 살 차이도 안 납니다. 도현보다 나이가 많고요.”

“자넨 리타가 불쌍하지도 않나? 영원히 저렇게 어린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어베인은 시무룩한 얼굴로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리타에게 다가갔다.

“괜찮으냐, 리타?”

“예, 죄송해요, 대장. 오늘은 제가 장난이 좀 심했어요. 짐브리오 잘못이 아니에요.”

“착하구나. 알면 됐다. 다음부턴 주의해. 짐브리오가 요즘 얼음탑 쪽 동정을 살피느라 많이 피곤해 있어.”

“네.”

어베인이 방을 나가자 짐브리오가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엉덩이 아프냐?”

“조금.”

“그러게 왜 자는데 건드냐, 건들길.”

짐브리오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자려고?”

“아니, 잠 다 깼다. 그런데 조금 전에 그 마법 손인지 리타손인지는 뭐냐? 못 보던 마법인데. 소름 끼치기도 하고.”

“헤헤, 놀랐지? 그거 내가 얼마 전에 터득한 새로운 마법이야. 다른 것도 보여 줄까?”

리타가 음산한 주문을 외우며 손짓을 하자 방 안에 리타를 닮은 거대한 얼굴이 둥둥 떠다녔다. 그것도 목 위로 잘린 거대한 리타의 얼굴이었다.

깜짝 놀란 짐브리오가 움찔했다.

“뭐, 뭐냐, 그거?”

“내 신체를 닮은 모습으로 다양한 걸 만드는 마법이야. 공격도 가능해.”

방 안의 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리타의 얼굴이 입을 쫙 벌리며 짐브리오를 삼키려 했다.

“미치겠네, 정말. 잘 봤으니까, 그만해, 얼른.”

“응.”

마법 얼굴을 사라지게 한 그녀는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락제프의 도움으로 내 흑마법이 더욱 다양해졌어. 발전도 하고.”

“비골보다 더욱 강한 녀석을 소환하는 것도 가능하냐?”

“비골 위로 마왕이 있는데, 그 녀석은 아직 안 돼. 대신 비골이 상당히 강해졌어. 얼음탑주는 몰라도 그 아래 녀석들은 강화된 비골의 제물이 될걸.”

락제프와 함께 밤낮으로 열심히 마법 공부를 한 그녀의 흑마법 발전 속도는 눈에 띌 정도였다.

“짐브리오, 이따가 더 어두워지면 우리 얼음탑 녀석들이 있는 곳에 가자.”

“그곳은 왜?”

“사실 내가 오늘 굉장한 마법을 배우게 됐거든. 그 마법을 사용하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다른 곳의 모습을 보고 들을 수가 있어.”

“뭐? 먼 곳에서 보고 들을 수가 있다고?”

짐브리오가 놀란 눈으로 벌떡 일어났다.

“응, 아직 내 능력이 부족해서 아주 먼 곳까지는 아니지만, 방벽 밖에서 얼음탑 녀석들의 동정은 파악할 수 있을 거야.”

“어떤 방법으로?”

“내 눈과 귀가 되는 까마귀를 소환해서 보내는 거지. 까마귀가 보고 듣는 건 나도 동시에 보고 들을 수가 있거든. 긴 시간은 유지하지 못하지만 말이야.”

그녀의 말을 들은 짐브리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얼음탑주 곁에는 침묵의 기사단 출신의 쌍둥이 검객 세티앙과 루시앙 외에도 의문의 노인이 있었다.

쌍둥이 검객 노인들이야 오래전 두 눈으로 본 기억이 있어서 운 좋게 알아봤지만, 의문의 노인은 그러지 못했다.

카샨이 쩔쩔매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내부 정보자의 정보를 보더라도 보통 노인이 아닌 건 확실했다.

그 노인의 초상화를 어렵게 구해 어베인과 로나, 딘, 리드만과 머리를 맞대고 누구일지 추측해 봤지만 전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완벽히 생소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리타의 능력을 이용한다면 그 노인의 정체를 알아내는 건 물론 그들이 나누는 중요한 대화도 엿들을 수 있을지 몰라.’

얼음탑주 곁에 강자들이 계속 모여드는 것을 볼 때, 씨드와 관련된 게 분명했다. 도현이 오기 전까지 충분한 정보를 확보해 두어야 했다.

“리타, 너 대단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됐구나.”

“응, 이 마법은 붉은 흑마법서 열두 권 중에 일곱 번째 책에 있는 거야. 비골이 네 번째 책에 기록된 소환 마법이었으니까, 이 까마귀 마법은 무척 난해한 거지.”

리타는 주머니를 뒤적여 락제프의 영혼이 들어가 있는 자수정을 꺼냈다.

“락제프 님, 뭐라고 그러셨어요?”

-잡담 그만하고, 가서 마법 공부나 하자고 말했다.

“싫은데요. 오늘은 까마귀를 이용해서 정보를 모을래요.”

-헛짓거리 하라고 네가 널 돕고 있는 줄 아느냐! 난 빨리 이 지옥 같은 자수정 속에서 소멸되고 싶다. 그러려면 네가 하루빨리 소멸 마법을 완벽히 사용할 수준으로 올라서야 하지 않겠느냐.

“아는데요. 전 동료들을 도와야 한다고요. 오늘은 그만 주무세요.”

리타는 자수정을 주머니에 쏙 넣고 짐브리오를 돌아봤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

“무슨 문제?”

“내가 까마귀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내 정신은 까마귀와 합체가 되기 때문에 내 육신은 꼼짝 못하게 돼. 그러니까 누군가가 날 보호해 줘야 돼.”

“그거야 내가 널 업고 다니면 되겠고. 대장에게 가자. 모두 모여서 네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의논해 보자고.”

“응.”

리타는 짐브리오와 함께 신이 난 표정으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어두운 방.

표정이 없어 차갑게 느껴지는 노인이 작은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움직여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복잡한 구조물의 설계도 같은 것을 그리던 노인은 목이 말랐는지 옆에 놔둔 물 잔에 손을 댔다.

물을 조금 마신 그는 의자를 뒤로 밀치고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숙소 밖에서 경비를 서는 플레온 가문의 병사들 잡담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2층에서 잠시 내려다보던 노인은 손에 든 물 잔을 밑으로 떨어트렸다.

고향 얘기에 정신이 팔려 잠시 목소리가 높아졌던 병사들이 깜짝 놀라 위를 올려다봤다.

“시끄러워서 통 집중을 할 수가 없구나. 네놈들 고향이 어딘지 내가 알아야 하는 까닭이라도 있더냐.”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는 감정 없는 음성이 병사들의 온몸을 짓눌렀다.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말없이 경비병들을 내려다보던 율리비어스는 조용히 창문을 닫고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그는 반듯한 자세로 앉아 다시 펜을 손에 들었다.

“이제 좀 낫군.”

마법학의 대가 율리비어스는 고대의 위대한 대마법사 론의 마법을 왜곡시키고 방해하는 마법 구조물 설계에 다시 집중했다.

씨드를 함께 찾아 나누자는 얼음탑주의 연락을 받고 반신반의하며 브링틱에 온 그는, 이곳에 도착해서야 얼음탑주로부터 거인의 섬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되었다.

탑주가 원하는 건 불사의 거인들을 약화시키는 마법진이었는데, 율리비어스는 도전해 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마법진에 강한 승부욕을 가지고 임하고 있는 중이었다.

‘흥미로운 싸움이 아니던가.’

표정 없는 그의 얼굴에 거짓말처럼 짧은 미소가 어렸다.

“카샨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방문 밖에서 들리는 얼음탑주의 제자 목소리에 율리비어스는 펜을 움직이며 대꾸했다.

“들어와.”

문이 열리며 카샨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탑주의 말을 전했다.

“탑주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이 시간에 말인가?”

깊은 밤이었다.

“아무래도 그 일 때문인 것 같군.”

율리비어스와 쌍둥이 검객은 낮에 신경전을 벌이며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들은 이곳에서 서로에 대해 처음 알게 됐고,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 순간부터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율리비어스의 손에 침묵의 기사단 일부가 큰 피해를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펜을 놓고 일어선 율리비어스는 무심한 눈빛으로 카샨을 스쳐 지나갔다.

얼음탑주의 방 안에서 다시 만난 율리비어스와 쌍둥이 검객은 서로에게 한마디 말도 걸지 않고 말없이 앉아 있기만 했다.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얼음탑주가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세 분을 어렵게 청한 건 함께 힘을 모아 씨드를 찾자는 좋은 뜻에서요. 그런데 정녕 이 사람 체면은 못 본 체하고 이렇게 반목을 할 겁니까?”

탑주는 자신의 부러진 이를 일부러 크게 드러내며 손짓을 했다.

“다들 보시오, 이 없어진 이들을! 난 씨드를 찾기 위해 그 폭주하는 미친 용병 녀석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했소. 베일 가문과 척을 지는 건 물론이고 말이오. 내가 이렇게 힘을 쏟으며 씨드를 찾으려 하는데, 세 분은 아니란 말이오?”

“탑주.”

율리비어스가 조용히 입을 뗐다.

“내가 문제가 아니오, 저자들이 문제지. 난 과거 일 따위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오.”

“기사단 형제들이 죽은 일을 과거 일 따위라고 치부할 수는 없지. 그것이 설령, 40년 전 일이 아니라 4백 년 전 일이라 하더라도 말이야.”

쇳소리가 나는 쉰 목소리로 세티앙이 대꾸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은은한 위엄이 배어 있었다.

그들 사이에 차가운 기류가 더욱 진해지자, 탑주는 무거운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따라 놓은 술잔을 들어 올렸다.

“여기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소. 난 세 분을 내게 도움이 되라고 부른 것이지 이렇게 나를 무시하라고 부른 게 아니오.”

“무시하다니, 오해요, 탑주.”

세티앙의 동생 루시앙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고대의 많은 강자들도 거인들을 물리치지 못해 씨드를 차지하지 못했소. 우리가 강하다고 하나 그 강함이 한데 모이지 않으면 아마도 고대의 많은 강자들처럼 아쉬움 속에 씨드를 놓치고 말 거요.”

“음…….”

세티앙과 루시앙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낮게 침음성을 터트렸다. 그들이 안면만 있는 정도인 얼음탑주와 손을 잡으려는 이유는 씨드 때문이었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브링틱과 가까운 융트에 베일 가문의 병력이 대기 중이라고 하오. 조만간 베일 가문과의 싸움이 또 한차례 벌어질 것 같은데, 우리끼리 이렇게 단합이 안 되서야 어떻게 저들을 물리치고 거인의 섬 일에 집중할 수 있겠소.”

얼음탑주는 술잔을 들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긴말하지 않겠소. 우리 넷이 힘을 합하면 씨드는 우리 것이 될 거요.”

얼음탑주가 팔을 뻗어 건배를 청하자 율리비어스가 천천히 일어나 술잔을 들어 올렸고, 세티앙과 루시앙도 과거의 일을 잠시 접어 두고 이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넷이 건배를 한 이후로는 분위기가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율리비어스, 거인들의 힘을 약화시킬 마법진은 어떻게 잘돼 가고 있습니까?”

탑주의 물음에 율리비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완성 중이오. 그런데 그 마법진을 위해서는 거대한 마법 구조물이 필요할 것 같소.”

“거대하다면 어느 정도요?”

“지금 밖에 서 있는 방벽의 세 배 정도 높이를 가진 삼각형 모양의 마법 구조물이오.”

“상당한 크기로군.”

세티앙이 쇠를 긁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할 것 없소. 망각의 숲 악령들을 몰아내고 그 숲에 있는 나무들을 이용하면 되니까.”

탑주의 말을 들은 율리비어스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부연 설명을 했다.

“내가 구상하는 마법진은 나무 구조물은 버틸 수가 없소. 론이 거인들에게 펼쳐 놓은 강력한 불사의 마법을 왜곡하고 마나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석조 구조물이 필요하지.”

“방벽 세 배 높이의 마법 구조물을 돌로 만들자는 말이오?”

방 안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놀란 눈빛으로 율리비어스를 쳐다봤다.

“그러지 않고는 내가 만든 마법진을 견디지 못할 거요.”

마법 천재이자 마법학의 대가 율리비어스는 악명을 얻을 만큼 마법진을 실험하다 많은 사람들과 건물들을 파괴했다. 그런 만큼 그의 말이 과장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목재가 아닌 돌로 그 정도 크기의 마법 구조물을 세우려면 많은 석재와 인력이 필요할 텐데, 시간도 많이 걸릴 테고. 비밀리에 이 일을 실행할 수 있겠소?”

세티앙과 루시앙이 탑주를 보면서 의문을 표했다.

탑주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괜찮다는 듯 말을 꺼냈다.

“망각의 숲 근처에 석산이 있는 걸 봤소. 석재는 거기서 충당하면 될 것 같고. 채석과 운반할 인력은 내 제자인 카샨의 도움을 받으면 될 거요. 그 가문의 일꾼용 몬스터들을 사람 대신 대규모로 이용하면 될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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