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64화 (364/575)

[364] 디 임팩트 15권 14화

짐브리오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름 견문이 풍부한 그도 생전 처음 보는 건축물 설계도였다. 그림상의 건축물 크기는 대단했고, 알 수 없는 복잡한 마법진들까지 그려져 있었다.

“대장, 이게 뭔지 알 것 같소?”

“글쎄…… 마법과 관련된 것 같긴 한데, 짐작하기 어렵군. 건물 모양도 괴상하고.”

어베인은 끝이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거대 건축물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볼수록 해괴한 그림이었다.

“사람이 안에 살려고 짓는 건축물 같지는 않아요. 창문이 하나도 보이지 않잖아요. 이대로 지으면 빛이 하나도 안 들어와서, 답답해 죽을 거예요. 마치…… 무덤 같잖아요.”

로나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드만, 이런 걸 어디서 본 적이 있나?”

영주의 물음에 리드만 사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저도 본 적이 없습니다.”

“카샨이 쩔쩔맬 정도의 노인이라면 필시 대단한 자가 분명 할 텐데, 그런 자가 방 안에서 이런 걸 그리고 있다…….”

의문의 노인 방에서 발견된 심상치 않은 건축물 설계도에 방 안의 사람들은 의혹이 깊어졌다.

사실 그들이 리타가 보고 온 그림을 다들 달라붙어서 조사한 이유는 의문의 노인 정체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될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노인의 정체는커녕 괴상한 건축물 그림에 머릿속이 더 복잡해져 버렸다.

“아, 그냥 지나갑시다. 이 빌어먹을 그림이 뭐라고, 에잇!”

골치가 아팠는지 짐브리오가 인상을 쓰며 종이를 구겨 바닥에 내팽개쳤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 그림에 정신을 팔 순 없지. 며칠 후에 리타와 함께 다시 한 번 정탐을 하고 오겠소.”

“내 생각은 말이에요.”

사람들이 그림을 보는 동안 한발 물러나 있던 리타는 구겨진 종이를 펴며 말을 이어 갔다.

“이 건축물은 어떤 마법을 발동시키기 위한 것 같아요. 마법진은 하나의 독립된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여러 개가 모이면 또 다른 성질의 힘을 발휘하기도 하거든요.”

여기 모인 사람들 중 마법에 관해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리타였다.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말하자면 이 건축물은 그 자체로 어떤 마법을 발동시키는 마법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건축물이 마법진이라고 한다면 어떤 마법을?”

머리 아프다며 종이를 내팽개친 짐브리오가 급히 물었다.

“그건 나도 모르지.”

“몰라?”

“응, 내가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어. 이 그림을 그린 노인이나 알겠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한 짐브리오를 향해 리타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락제프 님이 있지. 혹시 아실지도 몰라.”

리타는 호주머니에서 자수정을 꺼냈다.

“락제프 님, 주무세요? 락제프 님, 얼른 일어나세요.”

그녀는 자수정을 흔들며 여러 번 말했고, 잠시 뒤 자수정에 눈동자가 나타났다.

-뭐냐?

귀찮다는 듯이 락제프가 툭 말을 던졌다.

“락제프 님, 이것 좀 봐 주세요.”

건축물이 그려진 종이를 보여 줬지만 락제프는 보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왜 그걸 봐야 하지?

“제자가 부탁을 하니까요.”

-네가 내 제자라고? 내 제자라면 내 말을 잘 들어야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마법 공부에 집중하라고 했더니, 날 무시하고 정탐이나 하고 돌아다녀?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리타는 꾸벅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우리는 동료이자, 친구예요. 이들과 같이 있는 한, 저도 제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나중에, 네가 날 소멸시킨 후에 그렇게 해. 정탐 갔다가 네가 잘못되면 누가 날 소멸시켜 주겠냐?

“지금 제 걱정해서 그러신 거예요? 정탐 갔다가 제가 다칠까 봐?”

-흥! 너 같은 돌머리를 누가 아낀다고.

“언제는 머리가 비상한 마법 천재라면서요.”

-시끄럽다! 난 그만 들어가겠다. 내 도움으로 그 건축물이 어떤 용도인지 알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락제프는 방 안에서 오고 간 이야기들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락제프 님! 락제프 님!”

리타가 여러 번 이름을 불렀지만 락제프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짐브리오가 자수정을 노려보며 욕을 한 바가지 뱉어 냈다.

“이 배은망덕한 노인네야! 우리가 당신을 그 어둡고 칙칙한 나무 속에서 나오게 해 주고 자수정 속에 갇힌 영혼을 소멸시켜 주려 노력하고 있는데, 그래 기껏 우리가 도움을 청하니까 그것 하나 못 들어주겠다는 거냐! 이 미친 늙은이!”

-미친 늙은이?

리타가 애타게 찾아도 나오지 않았던 락제프가 짐브리오의 욕에 자극을 받아 바로 나타났다.

-네놈이 정녕 고통스럽게 죽고 싶은 게냐!

“나와서 죽여 보시오. 얼마든지 죽어 드리지. 그 전에 이게 뭔지 좀 봐 주쇼.”

짐브리오가 잽싸게 종이를 자수정 앞에 가져갔다.

-치워라.

“미친 늙은이란 말 취소하리다. 내가 심했소. 하지만 당신도 정도껏 하시오. 리타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돕고 삽시다, 돕고!”

방 안에서 락제프에게 함부로 할 사람은 짐브리오밖에 없었다. 모두들 딴청을 피우며 아슬아슬한 락제프와 짐브리오 사이의 긴장감을 애써 모른 척했다.

-내가 밖에 있었다면 널 개미 먹이로 던져 줬을 것이다.

“자, 어서 이걸 보시오. 리타 말로는 이 건축물이 하나의 마법진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데, 어떤 것 같소?”

락제프는 짐브리오의 욕에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이대로 또 자수정 속으로 사라지는 건 너무 속 좁아 보였다.

락제프는 결국 종이에 시선을 뒀고, 잠시 후 놀람과 감탄이 섞인 목소리가 자수정 속에서 흘러나왔다.

-대단하구나! 이토록 뛰어난 마법 구조물을 창안하다니!

“이게 대단한 거요?”

-대단하다마다. 각각의 작은 마법진들이 얽히고설키며 힘을 증폭시켜, 결국엔 저기 마법 구조물의 정상에서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발생시키도록 설계된 것이야. 마법에 대한 극히 뛰어난 이해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마법적 상상력이 풍부한 자가 아니면, 이런 걸 창안할 수가 없지. 참으로 기발한 자야.

락제프는 마법 구조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대단하게 증폭된 마법의 힘은 무엇을 위해 사용되나요?”

리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마법 구조물의 최상층부에 어떤 마법진이 설치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뭐가 됐든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게 될 거다.

“정말 대단한 건가 보네.”

짐브리오가 굳은 얼굴로 방 안의 사람들을 둘러봤다.

모두들 비슷한 심정이었다. 이런 대단한 마법 구조물을 만든 사람이 평범할 리가 없었다. 의문의 노인의 정체가 더 궁금해지는 상황이었다.

-내가 살던 시대에도 이 정도 마법 구조물을 설계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서너 개 정도의 마법진을 연결하는 정도였는데, 수십여 개가 넘는 마법진이라니. 너희들은 이것을 설계한 자를 아주 조심하는 게 좋을 게다.

락제프는 눈동자를 옆으로 돌려 리타를 응시했다.

-특히, 리타. 앞으로 이자의 방 안을 몰래 엿볼 생각은 하지 마라. 위험할 수 있어.

“조심할게요.”

-계속 까마귀로 살피겠다는 뜻이냐?

“그게 아니라 마법 공부 열심히 할게요.”

리타가 어물쩍 웃으며 넘어가려 할 때, 조용히 듣고 있던 영주 딘이 나섰다.

“락제프, 한 가지 묻겠습니다. 이 마법 구조물을 이용하면 씨드를 지키고 있는 거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만큼의 마법을 발휘할 수 있습니까?”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순 없겠지, 워낙 뛰어나게 설계된 마법 구조물이니까.

긍정적인 그의 대답에 방 안의 분위기가 살짝 무거워졌다.

“대장, 아무래도 이놈들이 거인들을 상대하려고 이 마법 구조물인가 뭔가를 계획하고 있는 것 같소. 얼음탑주가 이것 때문에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을 합류시킨 것 같고.”

“제 생각도 그래요. 얼음탑주가 우리 예상보다 더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온 것 같아요.”

로나가 걱정 깊은 음색으로 말했다.

“얼음탑주가 이 빌어먹을 마법 구조물을 만들어서 써먹기 전에 우리가 먼저 움직여서 씨드를 찾읍시다.”

-거인들이 그리 만만한 존재 같았다면, 벌써 고대의 강자들이 씨드를 차지했을 것이다.

“거, 옆에서 초치지 마시오. 별로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짐브리오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냉정하게 말하는 거다. 너희들이 오래 살라고. 여기 있는 인원에 수련을 떠난 도현이 돌아온다고 해서 얼마나 큰 전력이 될 것 같으냐?

“도현은 강하오.”

-강하지. 너희들도 그만큼 강한가?

방 안이 조용해졌다.

-나 같으면 론의 지팡이를 찾는다 해서 곧장 거인의 섬으로 달려가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을 거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소?”

-이 마법 구조물을 보니 그 얼음탑주란 녀석이 꽤나 힘을 발휘할 것 같다. 그 녀석이 거인과 싸우도록 뒤에서 지켜보다가 결정적일 때 나서서 씨드를 노려.

“뒤통수를 쳐라? 흐흐흐, 락제프, 참 음흉하시오.”

짐브리오는 음침하게 웃으며 동료들을 둘러봤다. 락제프의 말에 다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모습이었다.

“도현이 오면 다시 의논해요. 그가 어떤 생각인지 들어 봐야죠.”

로나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처럼 생긴 작은 몬스터 샤닐은 몸을 낮추며 은밀히 수풀을 벗어나다 대검을 땅에 꽂고 기다리던 도현에게 발각됐다.

놀란 샤닐은 특유의 민첩함을 이용해 수풀 속으로 다시 숨으려 했다. 그 순간 도현은 땅에 꽂아 놓은 대검을 번개처럼 뽑아 앞으로 길게 휘둘렀다.

검이 어찌나 빠르고 정확한지 샤닐은 자신의 머리에 있는 뿔이 잘렸다는 것도 모른 채 수풀 속으로 도망쳤다.

마나가 응집된 샤닐의 머리 뿔을 집어 든 도현은 가방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 그 안에 집어넣었다.

안에는 푸른 빛을 은은히 발산하는 샤닐의 뿔이 스무 개가 넘게 들어 있었다.

그동안 미개척 지역을 돌아다니며 몬스터 사냥을 하다 하나둘 모은 게 이렇게나 많아졌다.

가방을 등에 멘 도현은 땅에 꽂아 둔 대검을 뽑아 어깨에 걸쳤다.

대검이 길어서 허리에 찰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등에 메자니 이런저런 물건들이 가득한 가방이 그의 등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조금은 불편하지만 대검을 어깨에 메고 다니며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사용하곤 했다.

손에 익지 않은 무기였지만 며칠 사용하다 보니 그럭저럭 적응이 된 상태다.

날이 저물 무렵 그는 숲에서 온천을 발견했다.

지하에서 샘솟는 작은 크기의 온천은 도현의 피로를 풀어 주기 안성맞춤이었다.

옷을 벗고 안에 들어간 도현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송골송골 이마에 땀이 맺혔다.

‘고대 도시는 별일 없겠지?’

발굴을 하고 있을 동료들을 잠시 떠올린 도현은 거인들을 상대하며 어떻게 하면 결계에 접근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 고민은 그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었다.

동료들이 거인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거인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칫하면 동료들만 아까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뒤에서 살금살금 접근한 하급 몬스터를 장풍으로 날려 버린 뒤 온천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그만 고대 도시로 돌아가야겠어.’

고대 왕궁은 신비로움을 잃은 채 폐허가 된 모습으로 지하에서 발견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매달려 부서진 돌을 나르고 고대 왕궁의 유물들을 발굴했다.

플레온 가문과 계약을 맺은 용병들도 일꾼으로 투입돼 발굴을 지원하고 있었다. 부서진 왕궁의 건물 잔해 밑으로 반짝이는 뭔가가 보이자, 용병은 돌을 옆으로 옮기는 척하며 반짝이는 것을 몰래 챙겨 주머니에 넣으려 했다.

그 순간 얼음 사슬이 쏜살같이 날아와 그의 몸을 휘감았다.

“으아악!”

그가 허공에서 비명을 지르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봤다.

“이놈! 감히 얼음탑의 물건을 도둑질하려 하다니!”

백발의 노마법사 샤비엔다가 호통을 쳤다.

“사, 살려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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