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66화 (366/575)

[366] 디 임팩트 15권 16화

“베노아 원로, 지금 내 앞에서 자식의 죽음을 거론하는 거요?”

올라르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난 자식을 두 명이나 잃어 봐서 그 가슴 아픔을 잘 알고 있어요.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올라르, 당신은 절대 참을 수 없는 아픔일 거요.”

베노아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말을 계속했다.

“브링틱의 평화는 우리 세 가문이 조금씩 양보하며 얻은 결과요. 그 평화를 당신 아들로 인해 깨지 않았으면 하는 바요. 고대 도시 일에 끼어들지 마시오. 전에 원로께서 말씀하였듯, 카샨은 크샤코 가문과 상관없는 얼음탑 사람이 아니오?”

베노아와 히반을 배웅하고 돌아온 올라르는 한동안 달을 보며 마음속에 깃든 화를 삭인 뒤에야 아들들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카심과 카샨 형제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원로들과 함께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돌아갔다.”

피곤한 얼굴로 의자에 깊숙이 몸을 실은 올라르는 앞에 서 있는 아들들을 둘러봤다.

“무슨 일로 이렇게 같이 온 것이냐?”

“아버지, 카샨을 도와줘야겠습니다.”

장남 카심의 말에 올라르는 조용히 서 있는 카샨에게 시선을 뒀다.

“설마 베일 가문과의 싸움에 병력을 지원해 달라는 말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아버지.”

“그럼 무엇이냐?”

“카샨, 네가 직접 말씀드려라.”

카샨은 품속에서 필사해 온 율리비어스의 마법 구조물 설계도를 아버지에게 보여 주며 그것의 용도와 함께 자신이 탑주로부터 이 구조물을 지으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가문의 몬스터들과 병력들이 필요합니다.”

“차기 탑주 자리를 네게 넘겨주겠다고 탑주가 약속을 했다 이 말이지, 고대 마법도 전수해 주고.”

올라르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 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그의 말을 믿을 수 있겠냐?”

“그는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저를 이용하기 위한 방편이라 해도 말입니다. 하지만 전 더 큰 걸 원합니다.”

“음, 씨드를 말하는 거겠지?”

올라르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아들의 손에 들린 마법 구조물을 힐끔 쳐다봤다.

“대공의 숙부와 큰 싸움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네가 이런 것을 들고 올 정도면, 탑주는 대공의 숙부를 안중에도 두지 않나 보구나.”

“그럴 수밖에요. 그의 곁에는 침묵의 기사단 출신의 세티앙과 루시앙, 게다가 이것을 만든 율리비어스라는 악명 높은 마법사가 있다고 합니다.”

장남의 설명에 올라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베일 가문은 얼음탑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 이곳 브링틱에서만큼은요. 아버지, 카샨을 돕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아버지 대신 크샤코 가문을 이끌고 있는 장남 카심은 힘 있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응시했다.

“탑주 혼자만이 아니라 쟁쟁한 강자들이 주위에 같이 있는데 어떻게 씨드를 차지하겠다는 것인지 난 생각할수록 무모해 보일 뿐이다.”

부정적인 아버지의 말에 카샨은 잠시 생각을 하다 대답했다.

“아버지, 너무 걱정 마십시오. 기회를 보겠다는 것일 뿐입니다. 상황이 어려울 것 같으면 차기 탑주의 자리에 만족하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가문의 몬스터와 병력을 지원해 주십시오.”

“흐음.”

올라르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길게 시간을 들여 숙고를 했다. 지루하게 그 시간을 견디던 카심과 카샨은 부친이 결국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집에서 나온 그들은 브링틱 성을 빠져나와 크샤코 가문의 성으로 말을 몰아갔다.

“형님, 오늘 밤, 탑주가 베일 가문의 병력을 공격할 겁니다.”

“그럼 너도 가 봐야 하는 거냐?”

“아닙니다. 이번 공격은 탑주와 세티앙과 루시앙, 율리비어스 네 명만이 움직일 겁니다.”

“비명이 밤새워 이어지겠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카심은 말을 더욱 힘차게 몰아 성으로 향했다.

가시넝쿨

작은 강이 흐르는 넓은 들판엔 5천에 가까운 베일 가문의 병력이 군막을 치고 숙영을 하고 있었다.

정예병 3천과 용병 2천으로 이뤄진 이들 부대는 원래는 베일 가문이 지원하고 있는 남부 대륙의 한 영주를 돕기 위해 편성되었다. 대공의 긴급한 지시가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쯤 남부 대륙에 도착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밤이 깊어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각, 숙영지를 향해 네 명의 노인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숙영지 불빛이 점점 가까워질 무렵, 얼음탑주가 말했다.

“대화를 나누기 전에 따끔한 맛을 먼저 보여 주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래야 말이 통할 것 같으니까.”

탑주가 마법을 펼치려 하자 율리비어스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왜 그러시오?”

“내가 만들어만 놓고 확인을 못 한 마법진이 하나 있는데, 효과가 어떨지 저들을 상대로 시험해 봤으면 좋겠소.”

“원하신다면.”

탑주는 머리 높이로 올린 지팡이를 밑으로 내렸다.

걸음을 멈춘 율리비어스는 발을 빠르게 움직여 순식간에 마법진을 그렸다.

어찌나 빠른지 옆에서 지켜보던 탑주나 쌍둥이 검객이 감탄을 할 정도였다.

우우우우웅.

둥근 마법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하늘로 솟구쳤다. 끝없이 올라간 밝은 빛은 밤하늘의 구름을 관통했다.

잠시 후, 빛이 관통한 밤하늘의 구름 저편에서 수십 가닥의 푸른 번개가 숙영지를 향해 떨어졌다.

번쩍번쩍.

콰콰쾅. 쾅쾅쾅.

난데없는 벼락이 수십 개나 떨어지자, 숙영지 곳곳이 불길에 휩싸였고 벼락에 맞아 즉사한 사람도 발생했다.

“흠…… 생각보다 좀 약한 것 같군. 미안하오, 이 정도로는 저들에게 경고가 안 되겠지.”

율리비어스는 두 발을 다 이용해 폭풍 같은 기세로 커다란 마법진을 만들었다.

마법진이 완성되자, 붉은 광채가 나는 거대한 빛줄기가 그 안에서 튀어나와 밤하늘의 구름을 재차 관통했다.

그 순간 세상을 환히 밝히는 강렬한 번개 하나가 숙영지 중심부를 향해 떨어졌다. 땅에 떨어지는 순간, 큰 피해를 일으킬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번개는 숙영지 중심부에 떨어지지 못하고 허공에 붙잡히고 말았다.

지켜보던 율리비어스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어느 놈이 내 마법을 방해하고 있군.”

강렬한 번개는 구슬 모양으로 뭉쳐지더니 도리어 그들이 서 있는 쪽으로 번쩍이며 날아왔다.

어둠을 가르며 날아온 집채만 한 크기의 구슬 모양의 번개는 땅의 풀을 일순간에 재로 만들며 네 노인을 집어삼킬 듯 덮쳐 왔다.

그 순간 루시앙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검에 거대한 기운을 실어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쾅쾅!

루시앙의 검에 반듯하게 잘린 구슬 모양의 번개는 좌우로 날아가 땅에 처박히며 큰 폭발을 일으켰다.

주변으로 날리는 흙먼지 속에 서 있는 그들을 향해 숙영지 쪽에서 네 명의 강한 기세를 풍기는 노인들이 달려왔다.

대공의 숙부 돈조르니와 마법사 로제로, 쌍도끼 노인 커크, 활 쏘는 노인 에이저였다.

척.

탑주 일행 앞에 도착한 돈조르니는 빠르게 적들을 면면을 훑었다. 얼음탑주 외에는 처음 보는 자들이었다.

“얼음탑주, 오랜만이오.”

“그러게 말이오. 내가 탑주가 되기 전에 만났으니, 꽤 오래전이지.”

탑주는 돈조르니 옆에 늘어서 있는 세 명의 강자들을 눈여겨보며 답했다. 생김새만으로는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낮에 찾아가려 했더니, 이 새벽에 웬일이시오?”

“발굴로 바쁜 그곳에 지장을 줄까 봐 내 친히 이 시간에 왔소. 뭐 잘못된 거라도 있소?”

“남의 땅에서 발굴하는 기분이 어떠시오?”

“남의 땅이라니, 지금은 나의 땅이지.”

얼음탑주의 대답에 돈조르니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껄껄 웃어 댔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흠, 왜 말이 안 되는지 모르겠군. 베일 가문의 그 수많은 영지 중 돈을 주고 산 게 있던가? 힘으로 빼앗아서 넓힌 게 아닌가? 베일 가문은 되고 왜 나는 안 된다고 생각하나?”

“영지전과 이건 엄연히 다르니까 하는 말이오.”

“천만에, 내겐 모두 똑같을 뿐이야.”

“탑주도 나이를 먹더니 참으로 뻔뻔해지셨구려. 젊었을 때 나와 술을 마실 땐 수줍음이 많던 견습 마법사였는데.”

탑주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돈조르니, 말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게다. 내가 이 시간에 온 이유는 당신과의 한때 옛정을 생각해서 아량을 베풀기 위함이니까.”

“아량?”

“병사들을 데리고 돌아가라. 목숨을 취하고 싶지 않으니까.”

“뭐라? 하하하!”

돈조르니는 허리에 찬 검에 손을 올려놓고 크게 웃었다. 눈물을 찔끔 흘릴 만큼 웃던 그는 서서히 웃음을 거뒀다.

“이보시오, 탑주, 고맙긴 한데, 그러지 못하겠소. 나야말로 당신에게 제안을 하겠소. 고대 도시 땅과 그 안에서 지금까지 발굴한 유물들을 모두 남겨 두고 내일 저녁때까지 떠나시오. 차후 대공께 사죄의 서신과 함께 성의 있는 배상금을 낸다는 약속도 하시고 말이오.”

“싸우자는 말이로군.”

탑주의 눈에서 살기가 어른거렸다. 돈조르니 곁에 뜻밖에 강자로 보이는 늙은이들이 서 있었지만, 쌍둥이 검객과 율리비어스를 대동한 그는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한편, 돈조르니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탑주 옆에 말없이 서 있는 자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얼굴이 똑같이 생긴, 검을 찬 노인들은 팔짱을 낀 상태로 먼 밤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자세만으로도 빈틈이 없어 보였다.

검을 수련한 돈조르니는 한눈에 이 쌍둥이 검객이 탑주 못지않은 무서운 강자들이라는 걸 직감했다.

‘쌍둥이 검객 중 이만한 자들이라면…… 이런, 그들이로군!’

안색이 살짝 변한 돈조르니가 쌍둥이 검객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명성이 자자한 침묵의 기사단 출신의 세티앙과 루시앙이 아니시오?”

“그렇소, 돈조르니 경.”

자신들을 알아보자 별수 없다는 듯 쌍둥이 형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이 왜 이곳에 계시는 겁니까?”

“탑주를 돕기 위해 있는 거요.”

“두 분께서도 베일 가문에 검을 들겠다는 겁니까?”

“돈조르니 경이 이번 일만 양보하시오. 앞으로 베일 가문의 일에 나와 루시앙이 개입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세티앙은 자신의 뜻을 명확히 전달했고, 돈조르니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

“커크, 에이저.”

“왜 그러나?”

“세티앙과 루시앙을 상대할 수 있겠나?”

“투지가 끓어오르는군.”

거구의 쌍도끼 노인 커크가 도끼를 마주쳐 불꽃을 만들었고, 에이저는 언제라도 활시위를 당길 준비를 마쳤다.

“로제로, 탑주를 맡게, 난 저 기분 나쁜 노인을 상대할 테니까.”

“알겠네.”

한쪽 다리가 의족인 마법사 로제로가 절뚝이며 탑주를 마주 보고 섰다.

“넌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나 보군.”

율리비어스는 자신에 대해 묻지 않는 돈조르니를 빤히 보며 물었다.

“싸우면서 물어보려고 했지.”

서늘한 미소를 지은 돈조르니는 검을 뽑았다.

휘황찬란한 빛이 그의 검을 휘감아 돌았다.

“돈조르니, 일단 싸우게 되면 당신들뿐만 아니라 저기 뒤에서 다가오는 5천 명의 목숨도 오늘 이 들판에서 모조리 사라지게 될 거야.”

탑주의 차가운 경고에도 돈조르니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대공을 대신해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 봐.”

“오냐, 소원대로 해 주지.”

탑주의 전신에서 엄청난 기운이 흘러나오자 들판에 공기들이 요동쳤고, 에이저의 활시위에 담긴 강철 화살이 마나가 주입돼 새파랗게 타올랐다.

그렇게 그들이 막 싸우려는 찰나였다.

펑!

하늘에서 폭음이 울리며 폭죽이 한 발 터졌다.

붉은 폭죽은 울부짖는 사자의 형상을 만들며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누가 대공의 신호탄을?’

베일 가문의 문장과 흡사한 저 폭죽은 대공이 직접 전투에 참여하거나 현장에 나타났을 때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아무나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일단 폭죽의 의미를 확인해야 했다.

“친구들, 잠시 뒤로 물러나게.”

돈조르니가 급히 검을 거두며 소리쳤다.

영문을 몰랐지만 돈조르니의 친구들은 각자 서너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물러나자 탑주 또한 기운을 서서히 가라앉히며 돈조르니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돈조르니, 왜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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