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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68화 (368/575)

[368] 디 임팩트 15권 18화

“예, 덕분에요.”

“다행이군. 얼음탑주에게 당해서 부상이 오래갈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때 자넨 괜찮다고 했지만, 꽤 심각해 보였거든.”

헬구스는 크샤코 가문의 사람들이 있는 방향을 힐끔 쳐다본 뒤 목소리를 낮췄다.

“날 어떻게 찾아낸 건가? 내 변장이 신통치 않았나?”

“얼굴은 좀 달랐지만 체형이나 걷는 모습이 눈에 무척 익더군요.”

“아, 그랬군. 내가 볼일이 급해서 예전 습관처럼 걸었더니 바로 표가 난 거야. 앞으로 신경 써야겠는걸. 아니, 근데 자넨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몬스터를 상대로 검술 수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곳이니까요.”

도현의 설명에 헬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계속 강해진 이유가 있었군. 항상 이렇게 긴장감 속에 수련을 하니 그럴 수밖에. 하아, 부럽군. 내가 자네 노력에 반만 따라갔어도 이 모양 이 꼴로 살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한탄 섞인 어조로 말하는 그에게 도현이 물었다.

“헬구스, 변장하고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도현의 질문에 잠시 고민을 하던 헬구스는 대단한 비밀을 말해 주듯 목소리를 깔았다.

“자네나 되니까 내가 말해 주겠네. 실은 씨드 때문에 이러고 있어.”

“씨드요?”

“놀랐지?”

헬구스는 헛기침을 하며 괜히 목에 힘을 주었다.

“고대 도시나 고대 왕궁엔 씨드가 없어. 여기서 먼 곳에 있는 망각의 숲 안에 호수가 하나 있는데, 그 안에 존재하는 섬에 씨드가 있지. 문제는 그 씨드 주위에 마법 결계가 쳐져 있고, 무서운 거인들이 지키고 있다더군. 고대의 강자들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그 사실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야기하자면 무척 긴데, 시간이 없으니까 간략하게 설명해 주지.”

헬구스는 언제 휴식 시간이 끝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칼라치와 카샨이 어떻게 손을 잡게 됐는지 빠르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된 거군요.”

도현은 탑주의 손에서 자신을 구해 준 칼라치를 잠시 떠올렸다. 강해지기 위해 죽음의 엘바까지 복용한 사내다. 씨드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았다면,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지금 이 사람들과는 어딜 가고 있는 겁니까?”

“마법 구조물 때문에 망각의 숲으로 가는 중이네.”

“마법 구조물요?”

“아, 그 이야기를 또 해 줘야겠군. 그래야 이해하기 쉽지. 탑주를 돕기 위해 강력한 자들이 와 있어. 스므차 성주와 비견되는 최강자들인, 침묵의 기사단 출신의 쌍둥이 검객 세티앙과 루시앙. 그리고 탑주도 조심한다는 수십 년 전에 종적을 감췄던 악명 높은 마법사 율리비어스.”

도현은 처음 들어 보는 이름들이었지만, 탑주와 비교해 명성이 뒤지지 않는 자들인 것 같아서 살짝 긴장이 되었다.

“마법 구조물은 이 악명 높은 마법사 율리비어스가 설계한 것인데, 이걸 통해 거인들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더군.”

“그래요?”

도현의 눈이 반짝였다.

“금방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에이, 그럴 리가 있나. 저기 일꾼용 몬스터들과 인부들을 보게. 이 마법 구조물 하나 세우는 게 작은 성 하나 짓는 것에 필적할 만큼의 석재와 시간, 인력이 들어간다더군.”

“엄청나군요.”

“그러게 말일세. 아무튼 그래서 탑주가 이 일을 크샤코 가문의 차남 카샨에게 떠맡겼어. 배신자인 줄도 모르고.”

이때 호각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출발 준비를 해라!”

멀리서 들리는 고함 소리에 바위 뒤에 앉아서 도현과 얘기를 나누던 헬구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현도 따라 일어났다.

“저 안에 칼라치와 이디언도 있습니까? 안 보이던데요.”

“남장을 해서 그렇지 이디언도 저 안에 있네. 칼라치는 크샤코 가문의 뒤를 밟는 자들을 죽이며 따라오고 있고. 카샨도 아까 보이던데, 아마 칼라치를 만나러 갔을 걸세.”

“그렇군요. 그런데 헬구스, 왜 칼라치와 함께 움직이는 겁니까? 씨드를 찾는 일에 탑주를 비롯한 많은 강자들이 참여하고 있어서 무척 위험할 텐데요.”

도현의 물음에 헬구스가 턱에 맺힌 땀을 훔치며 피식 웃었다.

“사는 게 뭐 있나. 내가 왕실에서도 지내보고 다크캐슬에서 구역장으로 지내보는 등 나름 온갖 경험을 다 해 봤는데 말이야, 결국엔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게 최고더라고. 난 솔직히 거인 구경이나 한번 해 보고 싶어서 칼라치를 따라가는 거네.”

“그렇습니까?”

도현은 헬구스의 말이 왠지 거짓말 같지 않아 보였다.

“이제 그만 가 봐야겠군.”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 알려 주셔서.”

“우린 다크캐슬 출신이 아닌가? 서로 돕고 살아야지. 열심히 한번 해 보게, 씨드가 자네 게 될지도 모르니까.”

“예?”

“내가 씨드 이야기를 할 때 그리 놀라지 않은 걸 보면, 자네도 씨드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아닌가?”

넘겨짚는 말일 수도 있었지만 도현은 굳이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저도 솔직히 욕심이 나긴 합니다. 그리고 씨드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고요.”

“응원하겠네. 조심하게.”

“헬구스, 감사합니다. 조심하십시오.”

진심이 담긴 도현의 말에 헬구스는 낮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넬 오늘 만난 건 칼라치에게 비밀로 하겠네. 굳이 알아서 좋을 건 없잖아?”

도현이 말없이 미소를 짓자 헬구스는 그의 대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검 좋아 보이는군.”

도현의 검을 칭찬한 그는 서둘러 무리를 향해 뛰어갔다.

짐브리오와 리타는 얼굴을 가린 옷차림으로 어두운 고대 도시 길을 걷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방벽들이 높고 길게 쭉 이어져 있어서 탁 트인 공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앞에서 오는 마차를 피해 옆에 서 있던 리타는 다시 길을 걸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곧 도현이 돌아오겠지?”

“아마 그렇겠지.”

“내가 준 향신료로 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었을 거야.”

“그 향신료, 재료가 별거 없던데,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맛을 내는 거냐?”

짐브리오는 리타의 향신료를 바닥에 쏟아 놓고 재료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놀라운 맛을 만들어 내는 게 신기해서 특별한 게 있나 싶었는데, 그런 건 없었고 주위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양념 재료들이었다.

“배합이 중요해.”

말에 힘을 준 리타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부모님을 죽이고 어린 그녀를 납치해 무려 30년간 종처럼 부려 먹었던 흑마법사 모엘은 식성이 까다로운 자였다. 맛이 없을 때면 매질을 습관적으로 했다. 리타는 매를 맞지 않기 위해 음식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 속에서 태어난 게 그녀만의 향신료였다.

“원래는 몸에 안 좋은 향신료를 연구하다가 우연히 아주 맛있는 향신료가 탄생한 거야. 도현이 날 구해 주지 않았다면, 아마 10년 쯤 후에 모엘은 내 음식에 몸이 상해 죽고 말았을걸.”

음산하게 웃으며 리타가 옆에서 같이 걷는 짐브리오를 올려다봤다. 그 시선이 마치 ‘너도 음식으로 죽일 수 있어.’ 하는 눈빛으로 보여 짐브리오는 살짝 식은땀이 났다.

“내 음식에 손만 대 봐라, 손모가지를 잘라 버릴 테니까.”

“독보다 무서운 게 먹는 거야. 이건 독이 아니라 먹으면서도 눈치 못 채거든. 서서히 몸이 쇠약해지면서 결국엔 자다가 심장이 멈춰 죽고 말지. 물론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상당히 연구를 많이 한 듯한 그녀의 말에 짐브리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네가 만든 향신료는 음식에 안 넣을 거야. 불안해서 먹을 수가 있나.”

리타는 어깨를 들썩이며 개구쟁이처럼 큭큭대며 웃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한참을 걸은 그들은 마침내 고대 왕궁 발굴지 근처에 도착했다.

짐브리오는 걸음을 멈추며 리타를 봤다.

“너, 락제프에게 혼나는 거 아니냐? 까마귀 마법으로 또 정탐했다고.”

“이미 혼날 상황이야.”

그녀는 방 안에 락제프의 영혼이 담긴 자수정을 놓고 후다닥 뛰어나와 짐브리오와 이곳에 왔다. 정탐을 안 하고 이대로 돌아가도 마법 공부를 안 하고 돌아다닌 그녀에게 락제프는 싫은 소리를 할 게 뻔했다.

“대단한 마법 구조물을 만든 노인이 누군지 다들 궁금해하잖아. 내가 다시 한 번 들어가서 조사해 볼게. 대화를 하고 있으면 엿듣고.”

“리타, 그냥 돌아가는 게 어때?”

“싫어. 여기까지 와서?”

“락제프가 한 말이 왠지 꺼림칙해서 그래. 그 노인이 대단해서 네가 위험할 수도 있다잖아.”

“조심할게. 그냥 하자. 멀리서 조종하는데 어떻게 들키겠어?”

“그런가?”

머리를 긁적인 짐브리오는 몸을 낮췄다.

“업혀.”

“응.”

폴짝 뛰어 짐브리오의 등에 업힌 그녀는 잠시 후 까마귀 마법을 시전하고 정신을 잃었다.

“내 목소리 들려 짐브리오?”

“어? 너 뭐야, 이제 말도 할 수 있냐?”

짐브리오는 자신의 눈앞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말을 하고 있는 까마귀를 놀란 눈빛으로 응시했다.

“헤헤, 까마귀 마법이 조금 익숙해져서 말할 수 있게 된 거야. 다녀올게. 내 몸 잘 지키고 있어.”

까마귀는 힘찬 날갯짓을 하며 밤하늘 높이 떠올랐다.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제는 별로 어지럽지도 않았다.

플레온 가문의 병사들이 지키는 방벽을 넘어간 까마귀는 곧장 마법 구조물을 만든 노인의 방을 향해 날아갔다.

잠시 후, 병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건물 2층 창가에 까마귀가 소리 없이 착지했다.

‘자고 있네?’

불이 꺼진 방 안에 노인이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녀는 지난번처럼 까마귀의 부리를 이용해 창문을 조용히 열었다.

‘저것들을 통해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낼 수 있을까?’

까마귀는 노인이 벗어 놓은 겉옷과 돈주머니로 보이는 가죽 주머니를 향해 날갯짓을 하며 접근했다.

탁자에 발톱을 걸고 내려앉은 까마귀는 겉옷을 뒤적이다가 가죽 주머니를 발톱과 부리를 이용해 열어 봤다.

금화 몇 개와 작은 보석 두 개, 은화 서너 개가 들어 있을 뿐 신분을 알려 줄 만한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물건만으로는 어렵겠어. 누구랑 대화를 하고 있었으면 제일 좋았을 텐데.’

그녀는 까마귀의 눈으로 잠을 자고 있는 노인을 매섭게 노려봤다.

‘마법사가 분명한데, 누구일까? 탑주만큼 공격 마법이 뛰어난 마법사라면, 도현에게는 큰 부담이 될 텐데. 날카로운 부리를 이용해 목을 뚫어 버릴까?’

까마귀의 눈이 푸르스름해졌다. 그 순간 잠을 자던 노인이 눈을 번쩍 떠 까마귀를 쳐다봤다.

율리비어스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깜짝 놀라 날갯짓을 하며 열린 창문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창문은 율리비어스가 손짓을 하자 쿵 하고 닫혀 버렸다.

창문에 몸이 부딪힌 까마귀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율리비어스는 허리를 굽혀 까마귀의 몸통을 잡으려 했다.

율리비어스의 손이 까마귀 몸에 닿으려는 순간, 까마귀는 수백 개의 검은 깃털로 변해 공기 중으로 사라져 갔다.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창문을 활짝 연 그는 발로 마법진을 그렸다.

방 안에 생성된 반짝반짝 빛나는 가루들이 까마귀가 날아온 이동 경로를 따라 방벽 밖까지 길게 이어졌다.

히이이잉!

눈부신 백마를 소환한 율리비어스는 말에 올라 창문을 뚫고 2층에서 뛰어내렸다.

와자자작.

창문이 부서지는 소리에 밑에서 경비를 서던 병사들이 급히 위를 쳐다봤다. 백마가 그들의 머리 위를 넘어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다다다다다닥.

백마는 율리비어스를 태우고 바람처럼 달려 눈 깜짝할 사이에 방벽 앞까지 도달했다.

콰아앙!

앞을 가로막는 나무 방벽을 뚫고 나온 백마가 요란하게 울부짖으며 제자리에 섰다.

까마귀가 날아온 최초의 장소를 찾아냈지만, 마법을 부린 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눈빛이 차가워진 율리비어스는 좌우를 둘러보다가 백마를 오른쪽으로 달리게 했다.

잠시 뒤, 깊은 어둠 속에서 리타를 업고 달려가는 짐브리오가 그의 눈에 포착됐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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