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디 임팩트 15권 19화
뒤를 힐끔 살핀 짐브리오는 눈부신 백마를 타고 무서운 속도로 가까워지는 율리비어스를 발견하고 표정이 굳어졌다.
리타가 깨어나 들켰다며 말했을 때 혹시나 싶어서 급히 자리를 피했는데, 불길한 그의 예감대로 마법으로 만들어진 백마를 탄 노인이 그들을 뒤쫓고 있었다.
까마귀 마법을 펼치느라 지친 리타는 짐브리오의 반응이 이상해 뒤를 돌아봤다. 방 안의 노인이 백마를 타고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짐브리오, 미안해. 까마귀가 날아온 곳을 어떻게 알고 쫓아온 건지 모르겠어.”
기어들어 가는 그녀의 목소리에 짐브리오는 다리에 힘을 주며 외쳤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떨어지지 않게 목 꽉 잡아!”
“내가 비골을 소환해서 저자를 막아 볼게.”
“지쳐 보이는데, 그럴 힘이 남아 있어?”
“해 볼게!”
흑마력과 체력 소모가 엄청난 까마귀 마법을 사용한 리타는 연이어서 강한 흑마법을 발휘하기 버거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코앞까지 쫓아온 노인을 막기 위해선 뭐든지 해야 했다.
리타는 달리고 있는 짐브리오의 등에 업힌 상태로 음산한 주문을 외웠다.
그녀의 몸에서 극도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허공을 때렸다.
섬광과 함께 공간이 갈라지며 3미터에 이르는 장신의 비골이 나타났다.
양손 도끼를 손에 움켜쥔 어둠의 전사는 은색 망토를 휘날리며 리타 옆을 달렸다.
“비골! 우리들을 보호해!”
다급한 리타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어둠의 전사 비골은 온몸으로 리타와 짐브리오를 감쌌다.
콰앙!
율리비어스가 날린 붉은 마법 창이 비골의 몸에 가로막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그 충격의 여파로 리타와 짐브리오는 길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바닥을 구르며 벌떡 일어선 짐브리오는 창백한 얼굴을 한 리타를 얼른 품에 안고 달리며 뒤를 돌아봤다.
칠흑처럼 어두운 흑색 몸을 가진 비골이 길을 막고 서서 노인과 싸우고 있었다.
“얼마 못 버틸 거야. 힘이 부족해서 약한 비골을 소환했거든.”
리타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붉은 마법 창에 머리와 심장이 뚫린 비골이 퍽 소리를 내며 증발하듯이 사라졌다.
“너희들은 내 손에서 절대 빠져나가지 못한다.”
백마를 탄 노인이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무서운 기세로 쫓아왔다.
금세 따라 잡힌 짐브리오는 이를 악물다가 화재로 반쯤 허물어진 방벽이 보이자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곳은 대상인이 소유한 발굴지로, 얼마 전 큰 화재가 나서 안에 건물과 방벽 들이 상당한 피해를 봤다.
발굴지 결과가 시원찮아 돈만 날릴 판에 큰 화재까지 당한 대상인은 막대한 복구 비용까지 들 상황에 처하자 아예 발굴지에서 철수를 한 상태였다.
텅 빈 발굴지 안으로 들어간 짐브리오는 불에 타다 만 건물들이 밀집한 곳으로 전력을 다해 달려갔다.
“리타, 내가 저 괴물 같은 노인을 유인할 테니까, 건물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밖으로 빠져나가.”
“나 혼자 도망가라고?”
“말 들어!”
“내가 유인할게 짐브리오가 도망가.”
“입씨름할 시간이 없어.”
짐브리오는 말을 하며 옆으로 몸을 굴렀다.
번쩍이는 붉은 마법 창이 날아와 그가 피한 자리에 꽂혔다.
화염이 솟구치며 땅이 움푹 파였다.
“리타, 준비해, 저 앞 건물을 지나칠 때 건물 안쪽으로 널 던질 테니까.”
입안에 들어온 흙을 뱉어 내며 짐브리오가 말했다.
“그러지 마, 죽더라도 같이 죽어야지.”
“죽긴 왜 죽어, 살아야지. 명심해, 저놈이 날 쫓아오면 뒤돌아보지 말고 밖으로 나가 도망쳐.”
또다시 뒤에서 날아오는 붉은 마법 창을 피한 짐브리오는 불에 타다 만 건물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치며 리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내려다봤다.
리타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를 악문 짐브리오는 화재를 당해 무너지기 직전인 건물을 향해 재빨리 리타를 밀어 넣었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흩어져 있는 불에 그슬린 나무 판 하나를 집어 들어 품에 안았다.
리타를 건물 안쪽에 밀어 넣고 나무 판을 가슴에 품는 과정이 워낙 순식간에 벌어져 백마를 타고 여유 있게 뒤를 쫓는 율리비어스는 그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짐브리오는 리타가 숨어 있는 건물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이 망할 노인네야! 대체 정체가 뭐냐!”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감히 나를 엿본 것이냐?”
“모르니 물어보지! 크흑!”
율리비어스를 도발하던 짐브리오는 앞에서 폭발한 붉은 마법 창에 몸이 튕겨 올라 뒤로 수 미터나 날아갔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은 그는 거구의 몸답지 않은 유연한 몸놀림으로 땅바닥을 굴러 충격을 최소화한 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속해서 날아온 붉은 마법 창에 결국 큰 충격을 받아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가슴을 땅에 댄 채 바둥거리는 짐브리오를 향해 율리비어스가 차가운 얼굴로 다가갔다.
더그덕더그덕.
눈부신 백마가 흙먼지를 만들며 천천히 짐브리오 앞에 섰다.
“네놈이 얕은수를 썼구나. 한 녀석은 어디에 숨겼느냐?”
“벌써 도망갔다.”
짐브리오는 말을 하며 기습적으로 단검을 날렸다.
사아악.
다섯 개의 단검 중 네 개는 율리비어스에게 막혔지만, 마지막 한 개는 노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율리비어스의 어깨가 금세 피로 붉어졌다.
“어때? 내 단검 맛이? 그래도 내게 한수는 있지?”
짐브리오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누워서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뜻밖에 부상을 입은 율리비어스는 백마를 없애고 짐브리오에게 걸어갔다.
그의 얼굴은 시체처럼 표정이 없어서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날 엿본 이유가 궁금해서 지금껏 살려 뒀는데, 네 녀석이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아, 그러시었소? 그럼 이유를 말하면 살려 줄 거요?”
“말장난을 하는 것을 보니, 죽어도 입을 열 녀석이 아니로군.”
율리비어스가 마법진을 발로 그리자 안에서 가시넝쿨이 나타나 짐브리오의 전신을 휘감아 버렸다.
“크으윽.”
살갗을 파고든 날카로운 가시들이 조금씩 움직이며 짐브리오의 온몸에 상처를 냈다.
“가시는 조금씩 커질 것이고, 가시넝쿨이 움직이는 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다. 온몸의 피부와 살점, 뼈가 갈라지는 소리를 귀로 생생히 들어 보아라. 네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니까.”
“야!”
뒤에서 갑작스레 들리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율리비어스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 사람 풀어 줘! 당신을 엿본 사람은 나니까!”
“왜 더 숨어 있지 그러냐? 이 녀석을 죽인 후, 널 찾아가려 했는데.”
리타는 한 발 한 발 다가서며 고통에 신음하는 짐브리오를 응시했다. 이 모든 상황이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 같아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어서 그 사람 풀어 줘. 그리고 날 죽여.”
“맹랑한 것 같으니라고. 흑마법을 제법 배운 것 같다만, 넌 사람을 잘못 골랐다.”
율리비어스의 손에 붉은 마법 창이 생성됐다.
“그래도 네가 제 발로 나온 게 기특해 저 녀석은 고통 없이 죽여 주마.”
“안 돼!”
리타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율리비어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붉은 마법 창을 짐브리오에게 집어 던지려 했다.
그 순간 고요한 발굴지가 흔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고 싶나!”
율리비어스는 귀청을 자극하는 큰 목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무너진 방벽 쪽에서 웬 사내가 대검을 들고 바람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거리가 좀 있다 싶었는데, 어느새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놀랍도록 발이 빠른 자군.’
율리비어스는 경각심을 가지며 손에 든 붉은 마법 창을 짐브리오에게 집어 던졌다. 죽일 자는 죽여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거리를 좁힐 대로 좁힌 도현은 장풍을 날려 중간에 붉은 마법 창을 박살 내 버렸다.
콰앙.
화염과 함께 사라진 붉은 마법 창의 모습에 율리비어스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누구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
손을 어지럽게 움직이자 10여 개의 붉은 마법 창이 순식간에 생성돼 짐브리오를 향해 재차 날아갔다.
“그럼 내가 막아 주지!”
서걱서걱.
짐브리오를 괴롭히던 가시넝쿨을 칼질 서너 번으로 모두 없애 버린 도현은 피투성이가 된 짐브리오를 어깨로 받친 상태에서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콰콰콰콰쾅쾅.
붉은 마법 창들이 호신강기에 막혀 요란하게 폭발하며 많은 화염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 충격과 열기는 호신강기 안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호신강기 안에서 이 상황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짐브리오는 찢어진 입술로 작게 말했다.
“왔구나…….”
“조금만 더 버텨요.”
“그래, 네가 와서 안심이다. 나는 됐고, 리타나 데리고 피해. 저 노인, 비골도 순식간에 없앤 마법사야.”
“둘 다 무사히 데리고 갈 겁니다.”
호신강기를 푼 도현은 활화산 같은 내공이 깃든 대검을 바닥에 꽂았다.
대검의 형상을 한 집채만 한 황금 검이 땅을 두부처럼 가르며 앞을 가로막고 있는 율리비어스를 향해 짓쳐 들었다. 붉은 마법 창 수십 개는 한데 묶어야 저 정도 위세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율리비어스는 굳이 맞서지 않고 옆으로 몸을 피했다.
콰콰쾅쾅.
빈 수레들과 벽돌로 지어진 발굴지 창고 건물이 황금 검에 맞아 버섯구름을 만들며 폭발을 일으켰다.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황금 검을 날려 율리비어스를 물러나 게 한 도현은 전신이 피투성이인 짐브리오를 업은 상태로 리타에게 바람처럼 달려갔다.
“리타! 짐브리오 위에 올라타!”
도현이 내미는 대검을 디딤돌 삼아 위로 훌쩍 뛰어오른 리타는 부상당한 짐브리오 등에 자리 잡았다.
“짐브리오, 괜찮아?”
리타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으…… 괜찮아.”
짐브리오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거구의 짐브리오와 그 위에 리타까지 한데 업은 도현은 무거울 텐데도 표정 변화 없이 맹렬한 속도로 무너진 방벽을 향해 달려갔다.
율리비어스가 백마를 소환해 쫓아오고 있었지만, 쉽사리 따라잡히지 않을 정도로 도현의 신법은 대단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뒤를 쫓아오는 율리비어스를 힐끔 쳐다보며 리타가 도현에게 물었다.
“로나에게 들었어. 두 사람이 정탐 갔다고.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해서 와 본 거야.”
몬스터 사냥을 떠났다 고대 도시로 복귀한 도현은 몸이 아파 방 안에 누워 있는 로나로부터 이들을 걱정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왔다가 이들을 구한 것이다.
“그랬구나.”
“락제프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던데, 왜 그런 거야?”
“나도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다들 열심이잖아, 도현도 마찬가지고.”
리타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현은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다.
“리타, 저 노인이 마법 구조물을 만든 사람이지?”
뒤에서 날아오는 붉은 마법 창을 피하며 도현이 물었다.
“응.”
“저 사람은 율리비어스란 자야.”
“어? 도현이 그건 어떻게 알았어?”
“나중에 얘기해 줄게.”
“그 늙은이였군. 젠장.”
도현과 리타의 대화를 힘없이 듣고만 있던 짐브리오가 놀라며 말했다. 그는 율리비어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왼쪽 위.’
등 뒤에서 다가오는 강한 기운을 감지한 도현은 리타가 어디로 움직이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신속하고 정확한 움직임으로 붉은 마법 창을 회피했다.
콰아앙.
도현을 노렸던 율리비어스의 붉은 마법 창은 애꿎은 남의 방벽에 부딪쳐 폭발을 일으켰다.
깜짝 놀란 방벽 경비들은 반사적으로 아래를 지나는 율리비어스에게 화살 공격을 퍼부었다.
“이 녀석들이 감히!”
율리비어스는 도현에게 집어 던지려 한 두 개의 붉은 마법 창의 방향을 바꿔 화살 공격을 한 방벽 위 경비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콰앙!
붉은 마법 창 두 방을 맞은 방벽 일대가 폭발하며 큰 불기둥이 솟았다.
“으아아악!”
“팔에 불이 붙었어!”
방벽의 주인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율리비어스는 자신에게 화살을 쏜 자들을 용서치 않았다.
불타오르는 방벽을 보며 리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칠게 없이 행동하는 사람 같아.”
“리타, 네가 몰라서 그렇지, 율리비어스의 악명은 수십 년 전부터 유명해.”
힘없이 말을 하던 짐브리오는 고개를 들어 도현이 달려가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눈이 커졌다.
모자로 얼굴로 가린 딘이 말을 타고 길 한가운데 서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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