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 디 임팩트 15권 20화
도현도 그를 알아보고 얼굴이 밝아졌다.
영주 딘은 말 머리를 돌려 도현과 나란히 달렸다.
콰앙!
근처에서 폭발한 붉은 마법 창의 영향으로 흙과 돌 조각들이 딘의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얼굴에 작은 생채기가 난 딘이 손을 내뻗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짐브리오와 리타를 넘겨주게.”
“네.”
재빨리 앞뒤로 그들을 태운 딘은 뒤를 쫓아오는 율리비어스를 힐끔 돌아봤다.
“탑주 곁엔 하나같이 괴물 같은 자들만 모여 있군.”
“영주님, 저자는 제가 막겠습니다. 먼저 가십시오.”
“혼자서 괜찮겠나?”
“저자가 무서워서 도망치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둘의 안전이 걱정돼 자리를 피한 거죠.”
도현의 강인한 눈빛을 접한 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믿고 먼저 가겠네.”
“도현, 조심해. 위험하면 피해. 알았지!”
도현은 달리는 속도를 천천히 늦췄다.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리타와 짐브리오가 점점 멀어져 갔다.
도현은 뒤를 돌아봤다.
붉은 마법 창이 쇄도해 오고 있었다.
몸을 회전시켜 마법 창을 피한 도현은 앞에서 달려오는 백마를 향해 대검을 번개처럼 휘둘렀다.
번쩍이는 푸른 섬광이 어둠을 가르며 백마와 그 위에 타고 있는 율리비어스를 한꺼번에 베고 지나갔다.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며 백마는 산산조각 났지만 율리비어스는 안개처럼 몸이 사라지더니 도현과 멀찍이 떨어진 공간에 스르륵 나타났다.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마나 소모가 극심한 공간 이동 마법으로 몸을 피했지만, 전광석화 같은 도현의 검에 옷자락 일부가 잘린 것이다.
율리비어스는 허공에 마법진을 그려 달려오고 있는 도현에게 그것을 집어 던졌다.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간 삼각형의 마법진 속에서 수십여 명의 빛의 전사들이 빠르게 튀어나와 도현을 공격했다.
채채채챙.
1미터가 채 안 되는 빛의 난쟁이 전사들은 힘은 부족했지만 그 민첩함이 놀라워서 도현이 감탄할 정도였다.
그러나 감탄은 했을지언정 도현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도현의 대검이 움직일 때마다 서너 명씩 빛의 알갱이로 변해 허무하게 사라져 갔다.
“주인님에게 거역한 자는 죽음을!”
“성스러운 죽음을!”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던 빛의 난쟁이 전사들이 대검이 휩쓸고 지나가자 퍽퍽 터지며 빛의 알갱이로 변했다.
“죽어라!”
바닥을 구르며 도현의 다리를 검으로 찌르려는 빛의 전사 머리에 도현의 대검 손잡이가 박혔다.
꽈앙.
목이 움푹 들어간 빛의 전사가 균열을 일으키다가 퍽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삽시간에 빛의 전사들을 없앤 도현을 향해 율리비어스는 수십 개의 붉은 마법 창을 기습적으로 날렸다.
태양 빛처럼 강하게 빛나는 붉은 마법 창은 앞서 사용했던 것들보다 훨씬 더 큰 힘이 서려 있었다.
도현이 피할 공간을 없애고 날아온 수십 개의 붉은 마법 창은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일시에 그에게 내리꽂혔다.
콰콰콰쾅쾅쾅.
엄청난 폭발과 함께 생성된 화염 폭풍이 넓은 길을 휘몰아쳐 주변의 방벽까지 집어삼켰다.
길옆 방벽 위에서 도현과 율리비어스의 싸움을 구경하던 병사들과 용병들 수십 명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밑으로 떨어졌다. 방벽 역시 기울어진 채 활활 타올랐다.
주변에 사람이 있건 없건 피해를 보건 말건 인정사정없는 율리비어스의 공격이었다.
“끝났나?”
온갖 비명이 난무하는 방벽의 상황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율리비어스는 오직 도현에게만 관심을 두었다.
불길과 자욱한 연기가 가득한 곳을 주시하던 율리비어스의 눈썹이 꿈틀댔다.
도현이 대검을 들고 천천히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도현은 호신강기로 간신히 폭발을 견디고 나온 상태였다.
“피해를 입지 않은 것 같군. 아주 인상적이야.”
“재밌나?”
도현의 차가운 눈빛이 율리비어스의 눈동자를 관통했다.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좋은 눈빛이군, 탐날 정도로.”
율리비어스는 멀찍이 물러났다가 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 위의 공기가 무섭게 소용돌이치더니 주변의 많은 것들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바닥의 흙과 깨진 돌, 불타고 있는 부서진 방벽의 잔해와 불길과 연기, 불에 타 죽은 병사 시신과 그들이 착용하고 있던 병장기, 심지어 부상당한 사람들까지 마법진 속으로 쏙쏙 빨려 들어갔다.
“살려 줘!”
“으아아악!”
주변의 온갖 것들을 끌어당긴 마법진 위의 소용돌이가 서서히 그 움직임을 멈췄다.
마법진이 만든 강한 흡입력에 대항해 제자리에서 버티던 도현은 소용돌이가 멈추고 드러난 모습에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간 모든 것들을 몸의 부속품처럼 삼은 거대 괴물이 서 있었다.
무려 10미터 가까운 크기에 괴물이었다. 괴물의 두 다리는 죽은 병사들의 시신이 뒤엉켜 있었고, 몸통과 양팔은 방벽의 불길과 연기가 뭉친 모습으로, 얼굴은 흙과 돌들로 이뤄져 있었다.
기괴하고 역겨운 모습이었다.
‘음…….’
도현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거대 괴물을 노려보며 대검에 내공을 주입했다.
대검이 새파랗게 불타올랐다.
“저놈을 죽여라!”
율리비어스의 명령을 받은 거대 괴물이 도현을 향해 주먹을 강하게 내려찍었다.
섬전 같은 움직임으로 괴물의 주먹을 피해 안쪽으로 파고든 도현은 괴물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 대검을 무릎 부위에 내리꽂았다.
‘내 검을 밀어낸다.’
강한 내공의 힘을 실은 검인데도 불구하고 예상 밖의 거친 반발력이 느껴졌다. 도현은 순간 내공을 더 끌어올려 녀석의 무릎 안에서 황금 검을 만들어 터트려 버렸다.
쩌저저적.
도현의 힘을 견디지 못한 거대 괴물의 무릎이 결국 폭발을 일으켰다.
콰앙!
기우뚱 서 있는 거대 괴물은 무릎을 망가트리고 몸통으로 올라온 도현을 잡기 위해 양손으로 자신의 몸을 쳤다.
쿠웅. 쿠웅.
불길과 연기로 이뤄진 거대 괴물의 손을 피한 도현은 가슴을 타고 어깨에 오른 뒤, 거대 괴물의 얼굴에 대검을 내리쳤다.
퍼억.
비틀거리는 거대 괴물의 얼굴에 달라붙어 있던 도현은 괴물의 얼굴에 박혀 있는 대검을 힘주어 밑으로 내리그었다.
얼굴이 반으로 갈라졌고, 도현은 그 기세 그대로 내려와 괴물의 몸까지 길게 상처를 냈다.
쿠워어어어!
얼굴과 몸에 치명상을 입은 거대 괴물은 비틀거리다 율리비어스가 있는 방향으로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쿠우웅.
생명의 기운이 사라진 거대 괴물은 주변에서 빨아들인 것들을 모두 풀어내고는 소멸됐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구나, 보통의 힘으로 파괴할 수 없는 것인데.”
오래전 율리비어스는 이 마법 괴물을 이용해 마법사들과 수천 명의 병사들을 막아 내며 먹던 음식을 다 먹고 그 자리를 유유히 떠난 적이 있었다. 마나 공격에 내성이 있어서 파괴되지 않는 단단한 괴물이었는데, 도현이 너무도 쉽게 파괴해 버린 것이다.
말을 하던 율리비어스는 빛살처럼 빠르게 다가오는 도현을 피해 뒤로 물러나며 붉은 마법 창을 소나기처럼 날렸다.
솟구치는 화염 폭풍을 뚫고 나온 도현은 율리비어스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의 눈을 노려보며 대검을 빠르게 횡으로 그었다.
‘숨 쉬기가 힘들군.’
율리비어스는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무거운 검의 기운에 여유롭던 표정이 사라졌다.
단순히 대검을 한번 휘두른 것뿐이었는데, 전신에 상상할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는 급히 견고한 마법 방패를 만들어 앞을 방어했다. 그러나 도현의 검은 마법 방패를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며 그 너머에 있는 율리비어스를 향해 멈추지 않고 쇄도했다.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진 율리비어스는 어쩔 수 없이 마나 소모가 극심한 공간 이동 마법을 재차 사용해 도현의 사나운 검으로부터 벗어났다.
도현의 검이 신기루처럼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는 율리비어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아악.
호검술의 정화가 깃든 검으로 겨우 머리카락 일부만 잘라 낸 도현은 아쉬움을 삼킨 채 오른쪽 방벽 위를 올려다봤다.
‘대단한 마법이군. 저 먼 곳까지 순간 이동을 하다니.’
도현은 신법을 발휘해 방벽 위의 율리비어스를 쫓으려 하다가 멈칫했다.
길 저편에서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검을 찬 노인들이었는데, 얼굴이 똑같이 생긴 게 쌍둥이 형제 같았다.
바람처럼 달려온 그들은 폐허처럼 변한 현장에 홀로 서 있는 도현을 힐끔 쳐다보다가 방벽 위에 서 있는 율리비어스를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높은 방벽을 평지처럼 밟고 올라간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율리비어스 옆에 나란히 섰다.
“율리비어스, 대체 무슨 일인가?”
세티앙이 물었다.
“내 방을 엿보던 자들이 있어서 쫓고 있던 중이었다.”
“당신 방을?”
세티앙과 루시앙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백마를 탄 율리비어스가 방벽을 부수고 나갔다는 말에 탑주 대신 알아보기 위해 길을 따라 내려오던 중이었다.
“혹시 저자인가?”
세티앙과 루시앙의 시선이 방벽 아래 대검을 들고 서 있는 도현에게로 향했다.
“저놈은 그들과 한패야. 엿보던 자들은 벌써 도망쳤고.”
“허허, 이런, 저자에게 발이 묶여 있었던 거로군.”
대번에 전후 사정을 파악한 세티앙과 루시앙이 낮게 혀를 찼다.
“검을 든 자세가 제법이긴 하지만 당신을 곤란하게 하다니, 저자가 그렇게 대단한가?”
“궁금하면 직접 부딪쳐 보게, 난 좀 쉬어야겠으니.”
도현을 상대로 전력을 다하고 싶지 않았는지 율리비어스는 한발 물러났다.
세티앙과 루시앙 형제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율리비어스가 싸우다 선뜻 뒤로 빠지는 모양새를 보니, 대검을 든 사내가 대단한 검객인 것 같았다.
침묵의 기사단 형제들을 죽인 율리비어스는 언젠가 그 빚을 받아 내야 할 대상이지만, 씨드를 찾기 전까지는 힘을 합쳐야 할 입장이었다.
그들은 율리비어스의 방을 엿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대검을 든 사내를 잡기로 했다.
그들이 방벽을 미끄러지듯 타고 내려가 도현을 상대하려는 순간, 방벽 위를 주시하던 도현이 검을 거두고 갑자기 도망치기 시작했다.
“네 이놈!”
싸울 것처럼 분위기 잡고 서 있던 도현이 몸을 피해 달아나자, 세티앙과 루시앙은 어이가 없었는지 그 뒤를 쫓았다.
도현은 꼬리처럼 따라붙은 쌍둥이 노인들을 돌아봤다.
‘저들이 세티앙과 루시앙이겠지?’
헬구스가 스므차 성주와 비견되는 최강자들이라고 했던 노인들이었다.
조금 전까진 호기심에 한판 붙어 볼까 싶었지만, 저들과 마법사인 율리비어스가 합공한다면 그도 위험해질 수 있어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의 목적은 저들과 끝을 볼 때까지 싸우는 게 아니라 동료들을 구하는 것이었다.
동료들이 몸을 뺄 수 있게 충분히 시간을 벌어 줬으니 무리해서 싸울 이유는 없었다.
고대 왕궁 발굴지와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얼음탑주까지 가세한다면, 그땐 정말 사면초가에 처할 수 있었다.
‘저 검객들과 붙어 보고 싶긴 한데…….’
도현은 예리한 눈빛을 발산하며 뒤를 쫓아오는 쌍둥이 노인들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아쉬움을 접고 도망치는 데 집중했다.
세티앙과 루시앙은 도현을 잡기 위해 달리는 속도를 배가시켰지만, 도현은 그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미로 같은 고대 도시 길을 달리다 서서히 그들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선물
도현을 놓치고 돌아온 율리비어스와 세티앙, 루시앙이 얼음탑주의 방 안에 모였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얼음탑주는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놈이로군! 베일 가문의 그 용병 녀석!”
“대검이 아니라 장검을 사용한다고 하지 않았소?”
세티앙의 물음에 얼음탑주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답했다.
“검이야 바뀔 수가 있소. 젊은 사내란 점과 비슷한 외모, 율리비어스를 놀라게 만든 검술, 스므차 녀석이 사용하던 황금 검 수법, 그 녀석이 아니면 대체 또 누가 있겠소?”
“음, 탑주에게 당하고 멀리 도망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곳에 있다니, 그자도 참으로 대담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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